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73
72화. 뜻밖의 부상(2)
***
야밤 식당 출연자들이 모인 단톡방은 이미 혜리 걱정으로 한가득하다.
[여진] : 괜찮니? [서준] : 이게 무슨 일이야? 부상이라니! 괜찮아?혜리는 대답 대신 반깁스한 다리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확인한 사람들은 걱정을 늘어놨다.
뒤늦게 대화에 합류한 해준도 혜리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부를 물었다.
[해준] : 누나 많이 안 다치셨어요? [혜리] : 조금. 크게 다친 건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장PD] : 이번 주말 촬영 괜찮겠어요? 너무 무리다 싶으면 일일 알바 개념으로 대타 투입 시킬게요. [혜리] : 아뇨! 제가 나갑니다. 반드시!! [서준] : 무리하면 안 된다며. [혜리] : 괜찮아요. 무리 아니에요.혜리는 방송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얻은 10년 만의 인기인데, 고작 발목에 금이 간 거로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연습생 시절, 혹독한 체중 감량과 연습량을 견뎌냈다.
데뷔 후 앨범이 망해 지방 행사를 전전하면서도 꿋꿋이 이겨냈고, 예능에서 망가지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모두 소화해낸 것이 혜리다.
‘어떻게든 낫고 말 거야.’
방송과 첫 단독 콘서트.
그 어느 것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혜리] : 저 꼭 나아서 갈게요. 프로그램 촬영도 지장 없이 해낼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피디님.장일수 피디가 말이 없었다.
깊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톡 내용을 보고 있자니, 해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음···.”
잠시 고민하던 그는 따로 방을 파 혜리를 초대했다.
병문안은 못 가니 대신 도시락을 보내주고 싶다는 핑계로 숙소 주소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힘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낸 음식은 꼭 혼자 다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톡방을 나왔다.
“뭐래요?”
해준이 폰을 내려놓자, 뒤에 서서 궁금해하던 강훈이 물었다.
“약간 부상이 있나 봐.”
“다행이네요. 크게 다친 줄 알았는데.”
“응.”
2~3주간의 스케줄이 불투명할 정도로 큰 부상은 맞지만, 굳이 강훈에게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강훈아, 이거.”
해준은 강훈에게 불면증에 특효인 양파 스프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밤에 잠 안 올 때 먹어. 그럼 푹 잘 수 있을 거야.”
“따뜻한 우유 같은 거 마셔봤는데, 효과 없던데.”
“이건 달라.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덜어 먹어. 다 먹으면 또 얘기하고.”
“감사합니다.”
차원의 농장 동굴로 돌아온 해준은 미리 만들어 놓은 마법 요리 도시락을 꺼냈다.
닭가슴살 샌드위치와 산양유 셰이크. 혹시나 있을 고블린과의 전투 부상을 염려하며 미리 만들어 둔 도시락이다.
원래 레시피는 바닐라를 넣어 달콤한 맛과 향을 더하지만, 여기엔 재생 풀과 독성 중화 열매를 넣어 맛이 씁쓸했다.
[산양유 셰이크] – 섭취 후, 2시간 동안 뼈가 튼튼해진다. 쓰다! 하지만,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닭가슴살 샌드위치’와 함께 섭취하면 부러진 뼈도 금방 붙을 정도로 강력한 효과가 있다.풀과 열매가 모두 소진돼 더는 만들 수 없지만, 혜리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사람은 나보다 혜리 누나니까.’
***
“진짜로 보냈네.”
벨소리에 나가보니 혜리 앞으로 퀵서비스 도시락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썬플라워 차해준.
짧은 문장이지만, 해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어차피 약을 먹으려면 식사를 해야 했다.
“잘 먹을게.”
혜리는 해준의 당부대로 닭가슴살 샌드위치와 산양유 셰이크를 꼭꼭 씹어먹었다.
셰이크는 일반적인 음료와 다르게 좀 쓴맛이 감돌았지만, 평소 홍삼 액기스나 한약을 즐겨 먹던 혜리의 입맛에 의외로 잘 맞았다.
“안 달고, 맛있네? 내 입맛을 알고 있나?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걱정이 조금은 사라졌다.
며칠 만에 먹은 제대로 된 식사다.
보통 활동기에는 제로 칼로리 탄산수나 물, 방울토마토 같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하지만, 지금은 회복이 우선. 발목 골절에 대해 다방면으로 조사한 혜리는 앞으로 며칠간 절대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하루라도 빨리 낫기 위해 영양가 많은 식단을 골고루 섭취하고, 빠트리지 않고 약을 먹으며, 다친 왼발을 절대 사용하지 않기.
이 세 가지가 혜리가 정한 규칙이다.
‘마음 편하게 먹자. 의사가 시킨 대로 하면 금방 나을지도 몰라.’
약을 챙겨 먹은 혜리는 찜질팩을 발목에 얹은 채 침대에 누웠다.
안무 영상을 반복해 보며 복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몸은 회복을 위해 쉬면서, 머리는 쉬지 않는다.
그런데 어쩐지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하아암··· 졸리다. 딱 10분만 자자.”
…그 시각.
섬으로 향한 차해준은 밭에 심어둔 열대과일을 잔뜩 수확하고, 고블린 동굴을 탐험했다.
전초기지에 다다르자, 해준은 보폭을 좁혀 은밀하게 기동했다.
혹시라도 다른 고블린이 경계를 서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
‘음··· 없구나.’
다행히 전초기지를 지키는 새로운 고블린 무리는 없었다.
해준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를 통과하자 이번엔 커다란 절벽이 나타났다.
‘동굴 안에 절벽이라니!’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곁에 서 있던 뭉치가 갑자기 시끄럽게 울어댔다.
“야아옹~ 냥!”
“쉿. 조용히 해. 여기도 고블린이 있을지 모른다고.”
“냐아앙~ 냥냥!”
“응? 어디?”
절벽 중간을 보라는 뭉치의 말에 해준이 시선을 돌렸다.
“저기 뭐가 있다고 하는 거야?”
“냐앙.”
“왼쪽?”
뭉치가 말한 곳을 응시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절벽 중앙. 커다란 바위 사이의 작은 틈으로 돋아난 작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보였다.
‘독성 중화 열매다!···’
그 위로는 재생 풀이 잔뜩 나 있었다.
“여기서 캐오는 거였구나.”
일전에 토벌한 고블린이 가져온 풀과 열매는 이곳에서 캐온 게 분명했다.
절벽 높이가 높지도 않고, 밟고 올라갈 곳도 많았다.
방해꾼만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잔뜩 캐 마법 요리 재료로 쓸 수 있다.
막 올라가려는 찰나,
“그르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5마리의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젠장.’
고블린을 먼저 발견한 해준이 몸을 숨겼다.
상황 판단이 빠른 뭉치도 해준 곁으로 다가와 기척을 숨겼다.
반대쪽에서 걸어온 고블린들은 지체없이 절벽을 기어올라 열매와 풀을 채취했다. 둘은 절벽 꼭대기의 풀을 나머지 셋은 암벽을 기어 다니며 열매를 땄다. 한 시간 동안 부지런히 움직인 고블린 무리는 수확할 만큼 충분히 익지 않은 것들을 제외하고, 모조리 채취해버렸다.
‘싹 쓸어가네.’
녀석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아마도 풀과 열매가 자라는 시간을 계산해 채취하러 오는 듯했다.
‘그렇다는 건, 저 녀석들을 해치우지 않으면 풀과 열매를 채취할 수 없다는 뜻인가?’
세 마리도 겨우 처리했는데, 이번엔 다섯 마리라니.
산 하나를 넘으니 더 큰 산이 기다리는 셈이다.
‘잡을 수 있을까?’
3 대 1 전투도 운이 좋아 이겼다.
만약 두 마리가 따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또, 뒤늦게 달려온 녀석 중 한 마리의 발에 화살이 명중하지 않았다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전투력이 다르다.
카일에게 매일 혹독한 지옥훈련을 받으며, 스스로 느끼기에도 몰라보게 전투력이 상승했다.
그러나 현재 자신의 전투력으로 5명을 상대하기엔 무리다.
‘둘?··· 아니면 셋?’
지금의 전투력으로는 최대 셋이 한계다.
저번처럼 고블린 무리가 흩어질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든 떨어트려 놔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아!···”
해준의 머리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잠에서 깬 혜리는 시간을 확인했다.
10분만 자려고 누웠는데, 눈을 떠보니 6시간이나 훌쩍 지나있었다.
‘늦었다.’
오늘은 음방 사녹 이후, 온종일 안무 연습 스케줄이 잡혀있는 날.
연습에 늦은 혜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주위가 어두워 벽을 더듬거리며 형광등을 켰다.
방이 환해지자, 거울 속 자신의 발목에 깁스가 보였다.
“맞다. 나 사고 났지.”
그제야 혜리는 오전의 사고를 떠올렸다.
무대 아래로 추락한 충격 때문에 발목 실금이 생겼고,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많이 괜찮아졌네.’
잠이 들기 전만 하더라도 다친 부위가 욱신욱신 아팠다.
그런데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통증이 견딜 만··· 아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잠이 덜 깨 그런가?”
아니면 약 기운 때문일 수도 있으니, 혜리는 조심스럽게 방으로 가 목발을 짚고 다시 나왔다.
식탁 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발목을 움직였다.
“왜 안 아프지?”
그때, 매니저 실장 호철이 숙소로 들어왔다.
“좀 괜찮아?”
“네, 많이 좋아졌어요. 애들은요?”
“연습하고 있지.”
“실장님, 저 내일부터 연습하면 안 돼요?”
호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연습? 너 미쳤냐? 절대 안정하라는 의사 말 못 들었어?”
“그게··· 안 아파요.”
“안 아프다고?””
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철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혜리를 쳐다보았다.
너무 빤히 쳐다보자 민망해진 혜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물었다.
“너 설마 무대 올라가고 싶어서 뻥 치는 거 아니지?”
혜리라면 그럴 것 같았다.
핑키데이가 지금처럼 뜨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극한체험, 직업! 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섭외가 와 출연했더니, 해당 프로그램 피디가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무리하게 일을 시켜 다치고 돌아왔다. 그런데도 혜리는 말도 하지 않고, 억지로 무리해서 무대를 소화하다가 부상 부위가 악화했었다.
“저 이제 안 그래요.”
“네 몸이 먼저야.”
“진짜라니까요.”
“그럼 내일 병원 가보자. 정형외과 잘하는 병원으로 다시 섭외할게.”
“알았어요.”
다음날.
호철과 혜리는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많이 가는 정형외과 병원을 찾았다.
X-ray를 비롯한 몇 가지 검사를 한 의사는 뜻밖의 진단을 내렸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요? X-ray도 깔끔하고, 증상도 없습니다. 아주 멀쩡한 발이에요.”
“네? 어제는 분명 실금이 갔다고 했는데요?”
“음··· 저희도 그게 의아하긴 합니다.”
의사는 혜리가 어제 타 병원에서 촬영한 X-ray를 보며 말했다.
“자세히 보면 여기 분명 실금이 있는데, 오늘은 없으니까요. 저희도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깁스는 안 해도 된다는 뜻이죠?”
혜리가 더없이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검사와 진단이 왜 잘못됐는지, 무엇 때문에 무대 추락 사고가 일어났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 무대에 올라도 된다는 사실 하나였다.
“네. 혹시라도 피로 골절이 생길 수 있으니까 병원은 꾸준히 나오시고, 안무 연습은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나온 혜리는 이 기쁜 소식을 멤버와 야밤 식당의 단톡방에 가장 먼저 알렸다.
[주희] : 꺄아아앗~! 축하해요, 언니. [하영] : 다행이다. [유정] : 빨리 연습실로 텨 와욧!! ㅋㅋㅋ야밤 식당 출연자들도 의사의 오진이 다행이라며, 혜리를 위로했다.
…“잘 해결됐네. 다행이다.”
단톡을 확인한 해준은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샌드위치와 셰이크의 효과가 제대로였는지 혜리의 실금이 무려 하루 만에 나았다.
“그럼 나도 슬슬 고블린 토벌에 나서볼까?”
농장으로 들어간 해준은 토벌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겼다.
장검과 화살 그리고, 오늘 토벌에 핵심인 그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