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77
76화. 소풍에 먹는 김밥(2)
***
“와, 맛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어.”
강훈이 불룩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김밥에 찰떡궁합인 컵라면. 거기에 후식으로 싸 온 과일까지 모두 먹어 치운 뒤였다.
“나 진짜 여기 취직하기 잘한 거 같아. 너무 행복해요.”
“행복하다니, 다행이다.”
만족스러운 소풍이라니 해준도 기분이 좋았다.
“배도 꺼트릴 겸 우리 자전거나 탈까?”
강훈의 제안에 은정이 바로 오케이, 콜! 을 외쳤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강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한강에 나왔으니 남들처럼 재밌게 놀아야지.
“나도 좋아.”
“어? 난 자전거 못 타는데.”
“못 타?”
민주가 난감해했지만, 강훈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배우면 되지. 한 10분 배우면 금방 탈걸?”
“응. 어렵지 않아. 바람맞으면서 페달 밟으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우리 타자.”
해준의 말에 민주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라는 말에 몸이 반응해버린 것이다.
“뭐해요? 빨리 가요.”
“오~ 추진력.”
“무브. 무브. 고고고~!”
강훈과 은정이 따라 일어났다.
“너희들이나 타. 난 낮잠이나 한숨 잘래. 사장님 그래도 되겠죠?”
“편하신 대로 하세요. 소풍이잖아요.”
“그럼 전 짐을 지키면서 한숨 때리겠습니다.”
동식이 얇은 담요를 덮고 누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틈틈이 대리 운전까지 하기에 동식은 늘 피곤을 달고 살았다.
‘형님을 위해 만성 피로에 좋은 레시피 조합을 찾아봐야겠다.’
금세 잠든 동식을 뒤로하고, 해준 일행은 자전거 대여소로 향했다.
한강에서 2인용 커플 자전거를 타보는 게 소원이라는 강훈때문에 은정은 반강제로 커플 자전거에 올라탔다.
불쌍해서 타주는 거라며 확실히 선을 긋는 은정.
강훈도 발끈했다.
“야, 나도 눈 높거든? 사장님, 저희 먼저 갑니다. 출발~!!”
은정과 강훈이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확 치고 나갔다.
그렇게 해준과 민주는 둘만 따로 떨어지게 됐다.
“잡아줄게. 올라타 봐.”
안장을 잡아주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에 올라탄 민주. 해준은 중심 잡으며 타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줬다.
‘스윗해.’
그러나 민주의 귀에는 설명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달까?
“알겠지? 한번 해봐. 뒤에서 잡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오빠.”
두 발을 지면에서 떼 페달에 올렸다.
두근대는 심장처럼 좌우로 마구 나대는 핸들.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으니, 자전거가 똑바로 앞으로 나갈 리 없었다.
“중심 잡고.”
“어! 어! 어?!···”
“조, 조심해.”
“꺄악~!”
쿵-
만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다 넘어진 자전거.
다행히 민첩성 뛰어난 해준이 민주를 감싸 안으며 잔디밭 위로 뒹굴었다.
그 과정에서 해준의 몸 위로 올라탄 민주.
“괜찮아? 안 다쳤어?”
“네. 오빠는요?”
“난 멀쩡하지.”
“다행이에··· 아!···”
껴안듯 포개진 몸을 의식하자, 민주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둘의 사이가 너무나 가까웠다.
서로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리.
몸은 밀착되고, 얼굴 사이의 간격이 채 10cm도 되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민주는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키스할까?’
눈을 꼭 감은 민주가 그대로 입술을 돌진해왔다.
쪽.
“!!??”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소리.
느닷없는 말랑말랑한 감촉에 해준이 놀랐다.
“오빠. 저 오빠 좋아해요. 진심으로.”
눈을 질끈 감은 고백.
해준도 어느 순간부터 민주가 좋아졌다.
여자 쪽에서 먼저 좋아한다는 마음을 고백해왔으니, 이후는 남자인 해준의 몫이다.
“우리 사귈래?”
“네··· 좋아요. 오빠.”
떨리는 입술로 간신히 대답했다.
승낙을 받은 해준은 끌어안은 손에 힘을 꽉 줬다.
“오늘부터 1일이다.”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민주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입술을 내밀었고, 둘은 자연스럽게 키스를 이어갔다.
뽀뽀가 아닌 어른의 키스.
민주의 입술 사이로 해준의 혀가 침입했다.
부드럽고 촉촉했으며, 그녀의 숨결에서 달콤함마저 느껴졌다.
하늘에 붕 뜬 기분이랄까.
‘아아, 소풍 오길 잘했다.’
…한편.
커플 자전거를 타고 멀리 사라졌던 은정, 강훈은 자전거에서 내려 투덜거리며 돌아오고 있었다.
“아오, 진짜. 내가 커플 자전거 싫다고 말했잖아요!”
“권은정. 체인 빠진 게 내 탓이냐?”
“각자 탔으면 안 빠졌을 거 아니에요.”
“어쭈? 이게. 오빠한테.”
“오빠는 무슨. 빨리 자전거나 밀어요.”
잔뜩 신경질을 내고, 고개를 돌린 은정.
그녀의 눈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헐. 대박!”
“왜? 뭔데?”
“저기 봐봐요. 오빠.”
은정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
민주와 해준이 타라는 자전거는 안 타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 폭풍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잔디밭에 누워서.
“어머~ 둘이 사귀나 봐.”
이미 묘한 기류가 둘 사이에서 흐르고 있던 걸 감지한 은정이 마치 자기 일인 양 상기된 목소리로 반응했다.
“쳇, 아주 영화를 찍네. 찍어. 벌건 대낮에. 이 사람 많은 데서 무슨 추태야.”
“부러워서 그러죠? 부러우면 지는 거예요.”
“아니거든?”
‘부럽다.’
‘졌다.’
‘나도 연애하고 싶다.’
“으잇, 젠장! 솔로 천국 커플 지옥. 커플들 다 망해랏!!”
강훈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
다음날.
“소혜야, 동구야!”
“해준 삼촌. 안녕하세요.”
“소풍은 잘 다녀왔어? 도시락은 잘 먹었고?”
“네, 엄청 맛있게 잘 먹었어요.”
“삼촌, 내 도시락 완전 인기 최고였어요. 애들이 다 부러워했다니까요.”
“그랬구나. 근데, 오늘 학교 안 가?”
평소라면 가방을 메고 학교 갈 시간인데, 아이들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임시 휴교예요. 유치원이랑 학교랑 다.”
“휴교? 개교기념일이야?”
“아뇨.”
“근데 왜?”
이유를 들어보니, 소풍에서 먹은 도시락이 잘못됐는지 꽤 많은 숫자의 아이들이 식중독에 걸려 하루 임시 휴교를 하기로 했단다.
원인은 뙤약볕에 방치해 둔 도시락.
그 때문에 대부분 아이들의 김밥이 쉬어버려 김밥을 도시락 메뉴로 싸 온 아이들이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저런··· 너희들은 괜찮고?”
“네. 동구랑 전 괜찮아요. 도시락 나눠 먹은 애들도 안 아프고. 우리건 안 상했나 봐요.”
혹시나 넣어둔 A급 양배추가 제 몫을 톡톡히 한듯하다.
생식으로도 위를 강력하게 보호한다는 설명처럼. 소혜, 동구 남매를 지켜줬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신나서 큰소리로 어제 있었던 소풍 얘기를 늘어놓고 있을 때.
“시끄럽다 이놈들아.”
담 너머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깨가 움츠러든 동구.
“윽, 무서운 할아버지다!”
해준에게도 늘 시끄럽다며 항의하는 바로 그 할아버지다.
처음 이슈 됐을 때처럼 시끄러운 상황은 아닌 데다가, 요즘은 손님들이 자중하는 분위기라 골목이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늘 해준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죄송합니다.”
“골목에서 시끄럽게 떠들지마슈. 시끄러워서 사람이 살 수가 없어!”
해준의 사과에도 할아버지는 주름이 깊게 팬 얼굴이 더 일그러지도록 화를 냈다.
“알겠습니다.”
“크흠···.”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한 차례하고 사라지자, 소혜가 입술을 삐죽였다.
“피이~ 저 할아버지 맨날 저래.”
“할아버지가 너희들한테도 화내?”
“네. 동구랑 저랑 골목에서 놀아도 맨날 시끄럽다고 화내세요. 골목 시끄럽게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맞아. 맞아.”
소혜 남매 외에도 인근 주민들의 할아버지에 대한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득달같이 나타나 조용히 하라는 항의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골목을 다니는데 눈치가 보인다나.
‘왜 그러실까?’
할아버지의 행동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쨌든 자신의 영업이 할아버지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기에 문제가 있다며 해결하고 싶었다.
…“쯧··· 골목 시끄럽게 왜 떠들고 그러는 거야.”
한영수는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일흔다섯.
이 골목에 이사 온 지 20년도 넘었지만, 동네 그 누구와도 교류하거나 친분을 쌓고 살지 않았다.
담벼락의 높이만큼 큰 사람 사이의 벽.
“정신 사납다.”
그의 얼굴에는 꼬장꼬장함이 깊게 새겨져 있다.
평생을 고집스럽게 살아온 남자의 인상.
그런 영수가 마당 구석 담벼락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곳은 작은 화단이다.
담벼락 아래 작은 화단에는 푸른빛의 작은 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그가 애지중지 키우는 물망초다.
조금 전까지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한영수의 표정이 부드럽게 펴졌다.
“시끄러웠지? 내가 다 조용히 시켰어.”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잎을 어루만지는 손길.
온화한 표정에 목소리마저도 부드러웠다.
도저히 동네 골목에서 불리는 심통 할배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어허··· 날씨 좋다.”
허리와 무릎이 아플 나이 임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꽃을 바라봤다.
그런 영수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걸렸다.
***
야밤 식당 두 번째 촬영일.
민주는 해준을 졸라 촬영장을 따라왔다.
한강 공원 소풍 이후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지만, 너무 바빠 변변한 데이트 한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촬영 시작하면 심심할 텐데.”
“괜찮아요. 이렇게라도 따라와야 데이트를 하지. 오빠가 너무 바빠서 안 되겠어.”
픽업트럭에 신선한 해산물과 농작물을 가득 싣고 연남동에 도착한 해준은 잠시 짬을 내, 민주와 함께 공원을 걸었다.
“걸으니까 좋다.”
“옛날 생각나네.”
“탄산수 기계 사러 왔을 때?”
“네. 그때 영업 사원이 나더라 사모님이라고 했는데. 헤헤··· 우리 완전 잘 어울린다고.”
“영업용 멘트 아니었나?”
“그런가? 암튼 기분은 좋았어요.”
결국, 그 남자 말처럼 됐으니 영업 사원이 선견지명은 있는 셈이다.
“해준 씨 왔어?”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니 장일수 피디가 해준을 반갑게 맞았다.
“피디님 안녕하세요. 인사해. 민주야. 여긴 장일수 피디님. 피디님 여긴 저희 직원 김민주예요.”
장일수가 몇 번이나 썬플라워에 찾아왔기에 안면은 있는 사이다.
그러나 정식 인사는 오늘이 처음.
민주가 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촬영장 구경 왔어요?”
“네. 엄청 신기해요.”
“촬영 시작하면 우리 상황실 쪽으로 넘어와요. 거기 오면 편하게 구경할 수 있으니까.”
야밤 식당의 주 무대는 작은 가게.
그러다 보니 스태프들은 옆 사무실을 임시로 빌려 상황실로 사용하고 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해준 씨. 첫방 시청률 봤어요?”
아무래도 첫 방송 출연이라 신기한 마음에 초록 창에 꽤 많이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 우연히 시청률도 봤고.
“숫자로 보긴 했는데, 그게 잘 나온 건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9% 출발이면 아주 좋은 거예요. 차 셰프 호감도도 높고. 암튼 기세를 몰아서 두 자릿수 넘깁시다.”
“네, 피디님.”
윤여진과 김혜리 그리고 이제는 해준맘을 자처하는 토원결의 이서준까지 도착했다.
스태프와 출연자들이 혜리의 안부를 걱정하며 물었다.
제자리 점프까지 뛰면서 건재함을 보여준 혜리는 자신의 경이로운 회복 능력에 스스로 감탄했다.
더불어 걱정하며 도시락까지 보내준 해준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번에도 이서준이 나서 우리 해준이가 이렇게 마음 씀씀이가 대단한 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쩐지 민망해졌다.
“참, 이거 받아.”
혜리가 콘서트 티켓 2장을 내밀었다.
도시락에 대한 보답이다.
“야, 윤 선생님이랑 나는?”
“서준 오빠랑 선생님은 얼굴이 티켓이잖아요. 원하시는 날짜 말씀해주세요. VIP석 빼놓을 테니까.”
“우리 해준이도 이제 유명인이거든? 첫방 시청률 9% 나온 것도 다 우리 해준이 덕분이라고!”
서준이 발끈했다.
티켓을 안 줘서가 아니라, 해준을 평가절하했기 때문이다.
“큭, 어쩔 수 없는 해준맘이구만.”
“자자. 슬슬 촬영 들어갑시다. 메뉴 준비하는 거부터 들어가시죠.”
“네, 피디님.”
“넵!”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촬영이 시작됐다.
야밤 식당 안에는 거치 카메라와 몇 명의 카메라 감독, 출연자만 남겨놓고 모두 퇴장했다.
민주도 상황실로 자리를 옮겼다.
안면이 있는 서브 작가 오지은이 민주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줬다.
‘신기하다.’
구석에 앉아 방해되지 않도록 구경하는 민주.
상황실에는 피디, 작가 외에도 많은 스태프가 있었다.
소속 연기자를 모니터하는 매니저도 그중 하나. 보통 매니저는 촬영을 모니터하면서 연기자가 어떻게 화면에 나오는지를 체크한다.
그러나 핑키데이 매니저 실장은 오늘 모니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유는.
‘예쁘네.’
김민주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