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81
80화. 옆집 할아버지(4)
***
방패를 든 녀석은 보나 마나 탱커다.
뒤에 네 마리는 딜러겠지만, 아무래도 성가신 쪽은 쇠뇌를 든 녀석들이다.
‘정석대로 가자.’
게임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몬스터 사냥의 정석은 먼저 탱커의 발을 묶고, 공격력이 강한 원거리 무기를 든 몬스터부터 때려잡는 거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녀석들의 발을 묶는 게 쉽지 않은 상황.
그렇다면 방법은 시선 교란뿐이다.
‘일단 탱커부터 도발하자.’
“뭉치야. 방패 고블린한테 달려가서 한 방 먹여줘. 그사이에 내가 나머지 녀석들이랑 싸울게. 할 수 있지?”
“야아옹.”
비장한 표정으로 앞발을 핥는 뭉치.
썬플라워 손님들은 그냥 햇볕 좋은 곳에서 낮잠만 자는 한가한 고양이인 줄 알지만, 농장에서 녀석의 공격력은 의외로 쓸만했다.
“뭉치야. 달려.”
신호를 받은 뭉치가 빠르게 달려 나가 탱커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방패 고블린의 목덜미를 긁어 시선을 분산시켰다.
“끄어억!”
피를 본 방패 고블린이 뭉치를 향해 화난 듯 돌진했다.
바닥에 착지한 뭉치는 그대로 몸을 비틀어 다시 방패 고블린의 품으로 뛰어올라 특유의 냥냥 펀치를 먹여주고, 녀석들이 왔던 길로 도망쳤다.
방패 고블린이 분노하며 뭉치를 쫓았다.
‘뭉치 녀석. 어그로 제대로 끄네.’
뭉치가 한바탕 휘저어준 덕분에 고블린 무리의 진형이 흐트러졌다.
분노한 방패는 흐르는 피를 닦으며 뭉치를 쫓았고, 나머지는 어리둥절해 하며 주변을 살폈다.
해준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활을 당겼다.
목표는 맨 뒤에 선 쇠뇌 고블린.
휘익-
“끼이익!!”
‘명중이다.’
목표한 녀석의 오른쪽 어깨에 해준이 쏜 화살이 그대로 관통했다.
고블린의 비명과 함께 이번에는 해준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끄윽··· 잡아라··· 저 자식.”
멀쩡한 쇠뇌 고블린이 해준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반격을 예상한 해준은 빠르게 몸을 피했다.
쉬이익-
탁-
해준이 있던 자리에 고블린 쇠뇌에서 날아온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코코넛 새우튀김을 먹지 않았다면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겨우 피했네.’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러나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미 두 마리의 손도끼 고블린이 괴성을 지르며 해준에게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준도 정면충돌할 기세로 녀석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다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휙-
몸이 가벼웠다.
그동안의 훈련 성과와 더불어 특별한 효과를 주는 음식 덕분이리라.
해준은 1미터가 조금 넘는 녀석들의 깨를 타고 넘어 쇠뇌를 든 녀석에게 날아갔다.
검을 쥔 손을 고쳐잡고,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으로 검을 내리쳤다.
파앗-
한 마리가 땅으로 고꾸라졌다.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한 해준은 그대로 발을 굴러 화살을 맞은 채 신음하는 두 번째 쇠뇌 고블린의 목을 베었다.
전투가 손쉽게 흘러갔다.
“냥냥냥!”
퍽퍽-
뭉치도 자신의 몫은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날렵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패 고블린의 시선을 빼앗았다.
남은 건 손도끼 고블린 두 마리.
‘차근차근 정리하고, 뭉치를 도와주자.’
손도끼 고블린은 근접 전투를 선호하는 몬스터답게 다시 해준을 향해 돌진해왔다.
이번에는 정면 승부 대신 도망을 선택했다.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으니 멀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손도끼 고블린이 그르렁거리며 쫓아왔지만, 해준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충분히 거리를 벌린 해준은 호흡을 고르고, 화살을 당겼다.
휙-
“끄어억!”
한 발을 쏘고 다시 도망치기를 반복.
손도끼 고블린들은 해준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고, 그렇게 쫓아만 다니다 바닥에 고꾸라졌다.
쿵-
쾅-
“끄르르륵···.”
“꾸엑.”
남은 건 방패 고블린.
활시위를 당겨 녀석을 조준했다.
“뭉치야, 피해.”
“냥냥.”
약 올리듯 여기저기로 달리며 펀치를 먹이던 뭉치가 해준 쪽으로 달려왔다.
뭉치가 사정권에서 벗어난 순간 화살을 쐈다.
팅-
고블린이 방패로 화살을 튕겨냈다.
할퀸 상처가 곳곳에 난 녀석은 잔뜩 성이 난 채 해준을 노려봤다.
“그르륵··· 죽인다···.”
녀석의 눈이 붉게 충혈되고, 코와 입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화가 잔뜩 났네.’
쿵- 쿵- 쿵-
방패를 앞세워 빠르고, 거칠게 돌진해왔다.
간신히 옆으로 구르며 돌진을 막아낸 해준. 그대로 몸통을 돌리며 회전력을 먹인 검을 날렸지만, 고블린이 기세 좋게 방어해냈다.
탱커답게 녀석의 방어력은 훌륭했다.
해준이 내리치는 검에 맞춰 방패로 가격을 시도했다.
‘크윽. 손이 저려···.’
만약 혼자였다면 이대로 체력을 소모하다 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준은 뭉치와 함께였다.
“뭉치야!”
“냥냥!!”
뭉치가 방패 고블린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목과 발목. 손목과 얼굴을 차례로 공격하며 착실하게 데미지를 쌓았고, 마침내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끄어억···.”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은 차해준의 일격.
쏴악-
쿵-
“하아··· 하아··· 이, 이겼다.”
해준은 검을 땅에 박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힘든 전투였다.
싸움이 끝났으니, 보상을 챙겨야 할 차례.
고블린 시체에서 쓸만한 전리품을 찾았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방패 고블린의 품에서 일지가 몇 장 발견됐다.
‘아버지 필체다.’
이번에 발견한 일지는 훼손이 없는 멀쩡한 상태였다.
해준은 첫 번째 장을 읽어 내려갔다.
일지에는 생명 뿌리를 다루는 방법과 외상 치유 연고의 제조법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이거였구나.’
생명 뿌리 가루와 탄산수를 섞는 걸 목격하지 못했으니, 해준이 고블린 전초기지에서 봤던 장면은 제조법의 일부였던 셈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터.
이후에도 몇 가지 내용이 더 있었으나, 나중에 천천히 읽어보기로 했다.
‘농장으로 돌아가면 만들어봐야겠다.’
쇠뇌 고블린의 옆구리에 있던 생명 뿌리를 챙겼다.
갈림길의 왼쪽에서 왔으니, 어쩌면 고블린들은 이걸 왼쪽 길에서 캐왔을지도 모른다.
해준과 뭉치는 고블린이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
“아무래도 여기서 캐 온 것 같지?”
“야아옹~.”
“나중에 다시 와보자. 분명 뿌리가 자라 있을 거야.”
“냥.”
풀과 열매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는 곳에서만 자라난다. 그러니, 뿌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의 탐험은 여기까지.
해준은 전리품을 챙겨 농장으로 귀환했다.
생명 뿌리의 수분을 날려 가루로 만드는 과정을 진행했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인데, 언제 아홉 번을 반복하지?’
나무 그늘에 앉아 숨을 돌린 해준은 품에 넣어둔 아버지의 일지를 꺼내 읽었다.
‘전설의 약초?’
호기심이 생겼지만, 전설의 약초에 대한 언급은 더는 없었다.
다음 페이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해준은 일지의 내용을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다.
일지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게 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뭔가를 계속 시도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떻게 고블린들이 아버지의 일지를 갖고 있는 거지?”
일지를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고블린이 글씨를··· 더군다나 한글로 쓰인 일지를 읽는 것은 불가능할 터.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가지고 다닌 것일까? 내가 그들의 말을 조금이나마 알아듣는 것처럼 고블린도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수도···.’
동굴 속 고블린에게서 아버지의 흔적을 계속 찾을 수 있으니, 토벌은 멈출 수 없었다.
***
“동식 형님. 가게 좀 잘 봐줘요. 저 할아버지한테 다녀올게요.”
해준은 한영수를 위해 만든 반찬을 챙기며 말했다.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모두 A급 재료와 마법 재료를 섞어 만든 음식들이다.
실험 삼아 생명 뿌리 가루를 넣어 음식도 만들어봤으나, 한영수 할아버지의 병에 직접 도움이 되는 마법 요리가 탄생하지는 않았다.
그가 만든 음식으로 한영수가 기적적으로 암을 치유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체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을 뿐.
그래도 체력을 끌어올리면 수술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반찬을 해서 나르는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다.”
입구 근처에서 한영수를 발견했다.
그는 병원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희미하게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웃을 줄도 아시네.’
처음 보는 미소였다.
해준이 영수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할아버지.”
“으어? 크흠··· 흠. 네놈 왔냐?”
“뭐 하고 계셨어요?”
“하긴 뭐, 뭘 해? 그냥 햇볕 쬐고 있었지. 크흠···.”
민망해하며 벌떡 일어서던 영수는 어지럼증에 몸을 비틀거렸다.
해준이 잽싸게 부축을 하며,
“조심하세요.”
라고 말했다.
“컨디션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늙었으니 당연히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지. 그래도 병원 밥이 입에 맞는지 썩 나쁘지는 않아.”
툴툴거리면서도 상태를 자세히 말해준다.
‘다행이네.’
체력 회복에 좋은 음식을 꾸준히 먹였고, 그 효과가 제법 나타나는 것 같았다.
해준은 한영수 부축하면서 그가 앉아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작고 여린 연 파란색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꽃 예쁘다. 우리 마당에도 조금 피었던데. 저 꽃 이름이 뭐지?”
감탄하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한영수가 “물망초.”라고 짧게 말했다.
“물망초요?”
“그래. 물망초야.”
“물망초. 예쁜 이름이네요. 참, 밖에 오래 계시면 안 돼요. 할아버지. 이제 그만 들어가요.”
해준은 영수를 부축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걷던 영수가 불쑥 물어왔다.
“오늘 반찬은 뭐냐?”
“양배추 요리요. 밑반찬도 몇 가지 있고요. 참, 오늘은 톳이랑 미역도 가져왔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맛있어요.”
“네놈 하는 식당이 경양식이라고 안 했냐?”
“네. 맞아요. 돈가스랑 파스타. 뭐 그런 거 팔아요.”
“근데 어째 매번 한식이야? 늙은이라고 무시하는 거냐?”
“할아버지도 그런 거 드세요?”
“그럼. 나라고 만날천날 한식만 먹겠냐? 나도 돈가스 좋아한다.”
“다음에 튀겨다 드릴게요.”
“맛있게 튀겨와. 올 때 딸기잼도 좀 가져오고.”
“네.”
병실까지 부축하고 나서야 해준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을 수 있었다.
“이만 돌아가. 바쁜 거 아냐.”
한영수의 목소리에는 처음보다 온기가 느껴졌다.
장사에 바쁠 텐데도 자신을 신경 써주는 해준이 내심 고마웠다.
“알았어요. 쉬세요.”
해준은 침대에 눕는 영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일은 돈가스를 맛있게 튀겨다 줘야겠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