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82
81화. 옆집 할아버지(5)
***
민주를 대신할 직원과 주방 보조를 새로 뽑았다.
28세 김형택과 21세 이지영.
평범한 외모의 김형택은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보유한 전직 카페 사장. 경영난에 못 이겨 가게를 폐업하고, 해준의 매장에 취업했다. 그리고 지영은 대학을 중퇴한 평범한 아이였다.
“민주야 넌 언제까지야?”
“내일모레까지요.”
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한 민주는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바쁜 시간에만 가게 일을 돕고, 새벽과 밤에는 기획사 연습실로 출근해 안무와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해준이 그럴 거 없이 바로 기획사로 출근하라 했지만, 민주 본인이 인수인계 기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인수인계는 핑계일 뿐, 해준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억지를 쓴 셈이다.
민주는 이제 겨우 차해준과 사귀게 됐는데, 더 못 만나게 됐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크으~ 우리 가게에서 스타 셰프에 이어 연예인까지 배출되다니. 여기 터가 좋은 거야 뭐야!”
강훈이 감탄하며 말했다.
“아직 연예인 아니에요. 연습생이지.”
“그래. 나도 스타 셰프 아니거든?”
겸손해하는 민주 뒤로 해준이 반찬을 가득 담은 쟁반을 들고 오며 말했다.
“지영아. 주방에 반찬 남은 거 좀 나르자.”
“네, 사장님.”
주방 막내 지영이 후다닥 달려갔다.
강훈도 일손을 도우면서 입은 쉬지 않았다.
“민주는 아직 연습생이라 쳐도 사장님이 스타 셰프가 아닌 건 아니죠. 시청률이 몇 퍼센트인데. 제가 찾아보니까 저번 주 예능 시청률 3위던데. 게시판도 온통 훈남 셰프 가게 어디냐는 질문으로 도배됐다니까요.”
“그건 맞아요. 사장님.”
“인정. 나도 봤어. 우리 와이프도 사장님 보러 재은이랑 올라온다고 했다니까요.”
동식마저 찬양 행렬에 동참했다.
썬플라워뿐 아니었다.
이서준은 이제 바빠질 테니 아예 자기네 소속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잖다. 대표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니, 해준에게 최대한 유리한 계약을 맺어준다나?
요즘 부쩍 주방까지 찾아와 사진이나 사인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많아져 해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 얘긴 그만하고 식사나 하죠.”
“넵!”
사람이 늘어나 테이블 2개를 붙여야 간신히 다 앉을 수 있었다.
처음엔 혼자였던 가게가 이젠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우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요즘 썬플라워 직원 식사는 푸짐한 한식이다.
기분에 따라 삼겹살, 소불고기, 제육볶음, 생선구이, 해물찜 등 다양한 메뉴를 올린다.
“오늘은 생선구이에 소고기미역국이네요.”
“이거도 먹어봐. 파래무침이 새콤달콤하네.”
“진짜 맛있다. 사장님, 한식 뷔페 같은 거 차리셔도 성공하실 거 같아요.”
“그거보다는 카페가 낫지 않나? 요즘 손님 중에 은근 물어보는 사람들 많다니까요. 커피 원두 뭘 쓰는 거냐고. 원두만 따로 팔아달라는 사람도 많아요.”
동식을 비롯한 직원들이 칭찬을 늘어놓으며 식사를 했다.
민주만 빼고.
“민주야. 너 왜 거기 앉아?”
“밥 안 먹어?”
“응. 오늘은 안 먹어.”
“헐, 니가 밥을 거부한다고?··· 왜?!”
차해준의 요리라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게 민주였다.
그런데,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음식 보이콧을 선언하며 따로 앉으니 은정과 강훈이 의아해할 만했다.
“나. 다이어트 해야 해.”
“다이어트? 니가 뺄 살이 어딨다고? 암튼 예쁜 것들이 더 하다니까.”
“실장님이 빼야 한대. 이번 주까지 1킬로 못 빼면 혼난다고.”
“1kg? 그거 한 끼만 안 먹으면 빠지는 거 아냐?”
“강훈 오빠. 그건 오빠 같은 사람들이나 해당되는 거고. 민주 쟤는 삐쩍 말랐는데 1킬로를 어떻게 빼.”
“아, 그런 거야?”
“네. 그런데, 데뷔 전까지 4킬로는 빼야 한대요.”
세상 무너진 표정이다.
“4kg? 그러다 뼈만 남겠다.”
“핑키데이 알지? 거기 유정 언니 보니까 완전 깡말랐어.”
“진짜? TV에는 평범하게 나오던데?”
“그러니까. 에휴···.”
민주의 말도 맞다.
해준도 혜리를 처음 만난 미팅 날 꽤 놀랐었다. 함께 프로그램을 한다니 미리 영상 몇 개를 봐두고 갔는데, 실물은 영상보다 훨씬 날씬했었다.
그러니 실제로 딱 보기 좋은 몸매의 민주도 어느 정도 다이어트를 해야 카메라에 예쁘게 보일 터.
‘그거라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해준은 주방 한쪽에서 숙성 중인 아보카도를 보며 생각했다.
…저녁 7시 30분.
북적거리던 디너 손님들이 빠지고, 간신히 숨통이 트일 정도가 되었다.
벽시계를 힐끔 본 해준이 동식에게 주방을 맡기고, 옆으로 빠졌다.
“형님. 이제부터 들어오는 주문은 형님이 맡아주세요.”
“어디 가시게요?”
“아니요. 다른 것 좀 만들게요.”
“네, 걱정 마세요.”
해준은 따로 빼놓은 B급 농작물을 가져왔다.
아보카도를 비롯한 몇 가지 샐러드 채소들.
모두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라는 설명이 붙은 식재료다.
‘일단 샐러드가 제일 좋겠지?’
어떤 음식을 만들어도 되지만, 민주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샐러드가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먹는 걸 좋아하는 민주를 위한 도시락.
그게 차해준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단 샐러드 채소부터 깔아주고.’
투명 플라스틱 도시락에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루꼴라, 로메인, 상추를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삶은 달걀, 토마토, 아보카도를 푸짐하게 담고, 독성 중화 열매를 첨가했다.
‘겉보기엔 블루베리랑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맛은 좀 쓰지만···.’
다른 식재료와 함께 섭취하면 쓴맛이 중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직화로 구운 대하 한 마리와 등심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어슷 썰어 올렸다.
[소고기 듬뿍 아보카도 샐러드] – 섭취 후, 2시간 동안 지방 분해가 활발히 된다. 유산소 운동을 겸한다면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다.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섞은 드레싱을 따로 포장했다.
칼로리가 다소 있어도 지방 분해에 효과적이니, 먹고 운동만 하면 된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차해준은 퇴근 준비를 하는 민주에게 조용히 접근했다.
“앗, 오빠.”
“퇴근하는 거야?”
“네. 바로 연습실로 가요.”
“데려다줄까?”
“매니저 오빠가 픽업 오기로 했어요.”
비록 연습생 신분이지만, 데뷔를 앞둔 만큼 소속사에서 철저히 관리했다.
“그래? 그럼 연습하기 전에 이거 먹어?”
“이게 뭐예요? 우와~ 맛있겠··· 오빠. 저 다이어트 한다니까요. 다이어터한테 소고기를 먹이겠다고요?”
샐러드를 받아들고, 초승달 눈을 뜨며 웃던 민주가 입술을 샐쭉거리며 눈을 흘겼다.
“괜찮아. 그건 안 쪄.”
“세상에 안 찌는 음식이 어디 있어요?”
“너 헬스하는 사람들이 단백질 섭취를 뭐로 하는지 알아?”
해준이 사뭇 진지한 눈을 뜨고 물었다.
“당연히 닭찌찌살이죠. 그걸 어떻게 먹나 몰라. 닭은 다리랑 허벅지가 존맛인데. 그쵸?”
“큭, 그치. 퍽퍽살보다는 다리지. 암튼 닭가슴살은 가성비 때문에 먹는 거고, 연어나 새우, 소고기, 우둔살에도 단백질이 엄청 들어있거든. 비싸서 못 먹는 거지. 단백질 먹으면서 운동하면 몸매 좋아진다니까. 모니터에 더 예쁘게 나올걸? 그리고 아보카도는 다이어트에 좋다잖아.”
“하, 하긴··· 그렇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소고기 듬뿍 아보카도 샐러드의 정당성을 어필했다.
민주는 뭔가 설득되는 눈빛이었다.
종일 굶은데다 샐러드 옆에 자리 잡은 막 구운 스테이크가 먹어달라고 유혹하니 어쩌면 일부러 설득되는 것일지도.
“갑자기 너무 굶어서 빼면 그것도 건강에 안 좋을 거야. 그쵸 오빠?”
“그럼. 그럼. 하루 한 끼는 괜찮아.”
“먹을까?”
“먹어. 절대 안 쪄. 내가 장담한다. 대신 먹고 나서 안무 연습해. 꼭.”
설명대로라면 2시간 동안 지방 분해가 활발해지니, 살은 안 찔 것이다.
운동만 한다면 살이 더 빠지는 것도 가능하고.
“히히. 넵! 맛있겠다. 연습실 가서 몰래 먹어야지~. 오빠, 저 갈게요.”
“응. 잘 가.”
***
연습실에 도착한 민주는 몸무게부터 쟀다.
‘48.9kg? 아··· 종일 물만 마셨는데, 고작 200g 빠졌네.’
매니저 몰래 도시락을 연습실까지 가져온 민주는 해준의 샐러드 도시락을 펼쳤다.
먹음직스럽게 쌓인 소고기 스테이크와 새우구이.
침을 꼴깍 삼킨 민주는 스테이크부터 집어삼켰다.
“오? 음! 이거 진짜 맛있다.”
턱관절을 움직이자, 소고기의 육즙이 팡팡 터졌다.
쌉싸름하면서도 아삭한 채소가 소고기의 깊은 맛을 한층 끌어올려 주는 역할을 했다.
냠냠냠-
행복해지는 맛이다.
칼로리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다.
한 끼 먹고, 열심히 운동하자.
이게 민주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아~ 맛있어. 행복해.’
그래도 하루 꼬박 굶었으니 몸무게 유지는 될 것이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민주는 샐러드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배가 차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생수로 입을 게우니 타이밍 좋게 안무 선생님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민주. 오늘 뭐 먹었어?”
“종일 물만 마시고, 지금 막 샐러드 하나 먹었어요.”
“잘했어. 그럼 샐러드 먹은 만큼 빼야겠지? 딱 2시까지만 하자.”
“2시? 새벽 2시요?···”
“안무 마스터해야지.”
“히이잉.”
“애교 부려도 소용없어. 모레부터 팀으로 맞추려면 해야 해. 자, 가자.”
흥겨운 음악이 시작되고, 빡센 안무 연습이 이어졌다.
…집에 돌아온 민주는 샤워를 하고 다시 체중계 앞에 섰다.
“제발··· 빠졌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왼쪽 발을 체중계 위에 살짝 올렸다.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숫자.
눈을 꼭 감고, 모든 체중을 체중계에 실었다.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뜨며, 숫자를 확인한 민주.
“48.4kg?! 헐, 대박 빠졌네.”
하루에 무려 700g을 뺐다.
다이어트 첫날이라 수분이 빠지는 걸 고려하더라도 엄청난 성과다.
“이 정도면 다이어트 할만하네. 내일 오빠한테 또 도시락 만들어달라고 해야지.”
싱글벙글 웃으며 체중계에서 내려왔다.
때마침 걸려온 해준의 전화.
“오빠!”
-깜짝이야.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오늘 나. 다이어트. 성공적!”
-빠졌어? 다행이다.
민주는 배시시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안무 연습에 지쳐 피곤한데도, 해준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운이 났다.
“오빠 말이 맞나봐요. 샐러드 먹었는데도, 살 안 쪘어요.”
-거봐. 먹고 유산소 운동하면 안 찐다니까.
“그 도시락 내일도 만들어줄 수 있어요?”
-당연하지. 매일 만들어줄게.
“헤헷. 고마워요.”
-빨리 자.
“네.”
전화를 끊은 민주는 깊은 금세 잠에 빠졌다.
***
민주를 위한 샐러드 도시락을 만든 해준은 튀김용 기름의 온도를 올렸다.
‘돈가스가 드시고 싶다고 했지?’
애석하게도 한영수의 병을 낫게 할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다.
해준이 할 수 있는 건 체력에 보탬이 되며 한영수의 미각을 충족시켜 줄 음식뿐.
최선을 다해 가장 맛있는 돈가스를 튀겨주고 싶었다.
지글지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튀김 소리.
튀김옷이 갈색으로 변하며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다른 반찬과 한영수가 먹고 싶다던 딸기잼까지 손수 만들어 병원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오늘도 한 노인은 병원 앞마당 정원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수술을 3일 앞둔 그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갔다.
“또 물망초 보고 계셨어요?”
“뭐. 그냥··· 하도 예쁘게 폈길래.”
“들어가요. 돈가스 싸 왔어요.”
“돈가스? 딸기잼도 가져왔지?”
“그럼요. 빨리 들어가요. 눅눅해지면 맛없으니까.”
영수를 부축해 병실로 들어간 해준은 그가 먹고 싶다던 돈가스를 펼쳐놨다.
꿀꺽-
“맛있겠구나.”
“그럼요. 할아버지도 아시겠지만, 저희 가게 손님 많아요.”
“어디···.”
해준이 돈가스를 썰려는 한영수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레몬을 꺼내 돈가스 위에 뿌렸다.
“잠깐만요. 레몬 한 조각 짜고요.”
“레몬을 어떻게···.”
한영수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드시고 싶은 건 슈니첼이잖아요. 제대로 드시려면 이렇게 드셔야죠.”
한영수가 슈니첼을 어떻게 아는지는 몰라도 딸기잼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할 때 그가 먹고 싶은 게 돈가스가 아닌 슈니첼임을 직감했다.
돈가스와 슈니첼은 조리법도 미세하게 다르다.
거친 빵가루도 묻히지 않고, 기름에 튀기는 게 아닌 지지는 방식으로 굽는다.
“자, 드세요.”
제대로 만든 슈니첼을 본 한영수는 감격에 겨운 눈으로 한참을 응시하다가 한 조각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
와사삭-
맛있다.
너무 바삭하지도 않으며, 소스가 없어 퍽퍽하면서도 달콤한 딸기잼과 어우러졌다.
그 옛날 그곳에서 먹었던 맛.
‘그래. 이 맛이야.’
슈니첼을 머금은 한영수는 추억에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