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84
83화. 러블리엔젤(1)
***
“헐. 완전 소름 돋는 맛이야.”
“진짜 맛있네요. 씹을 때마다 육즙이 팡팡 터져. 이건 함박스테이크가 아니라 완전···.”
“떡갈비 맛이지?”
“맞다. 떡갈비.”
“그래. 딱 그 맛이네. 떡갈비.”
햄버그스테이크를 시식한 직원들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시식에 참여한 소혜 남매까지.
“소혜랑 동구는? 너희도 맛있어?”
“네. 삼촌 완전 마ㅅ···@#$&% 켁켁.”
입안 가득 햄버그스테이크를 쑤셔 넣고, 말을 하려던 동구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동구 너! 누나가 음식 입에 넣고 말하지 말랬지? 괜찮아?”
“켁··· 괘, 괜찮아. 누나.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 완전 최고야.”
“사장님 이거 비결이 뭐예요?”
연신 포크를 움직이던 강훈이 물었다.
“음··· 고기를 기계 대신 칼로 열심히 다져서 만드는 거?”
“크으~ 역시 음식은 정성이야. 대단하십니다. 사장님. 존경스러워요.”
“자. 강훈아.”
차해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감탄하는 강훈에게 날카롭게 손질된 두 자루의 칼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뭐긴. 칼이잖아. 칼. 열심히 다져. 너무 뭉개지면 안 되고, 적당히 고기 식감이 살아날 정도로. 하루에 50접시씩 팔 거야.”
“허걱! 그, 그걸 왜 저에게?”
“니가 해야지. 누가 해?”
“그런 건 주방 보조가.”
강훈이 갓 들어온 신입 이지영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뭐···. 앞으로 햄버그스테이크는 재료 준비부터 조리까지 싹 너한테 맡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막내한테 맡겨야겠다. 지영···.”
“사, 사장님. 잠깐만요!”
강훈이 황급히 해준의 손목을 낚아챘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셔야죠. 제 말은 왜 하루에 50접시만 파냐 이 말이죠. 70접시도 가능한데. 제가 새벽에 출근해서 팔이 부서져라 고기를 다지겠습니다. 요즘 하도 꿀잠 자서 불면증도 없어졌어요.”
이강훈의 태세 전환에 직원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근데, 민주는 요즘 뭐한데요? 얼굴 안 보니까 보고 싶네.”
민주가 썬플라워를 그만둔 지도 벌써 한 달.
데뷔까지 약 5주 정도가 남았다고 들었다.
“새벽에 연습실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연습만 한대. 데뷔가 얼마 안 남아서 죽어라 연습만 하나 봐.”
해준도 새벽에 잠깐 얼굴을 보는 게 전부다.
민주가 너무 피곤해 보여 피로 회복에 좋은 음식과 피부에 좋은 레몬청, 그리고 다이어트 도시락을 전해주고, 잠깐 얘기를 나눈다.
“엄청 빡세네.”
“불쌍하다.”
“그래도 조만간에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거잖아요.”
“그럼 부러운 건가?”
걸그룹으로 데뷔해 TV도 나오고 돈을 많이 버는 건 부러운 일이지만,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건 불쌍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해준도 괜히 민주가 걱정됐다.
오늘 새벽에도 꽤나 피곤한 얼굴로 나왔기 때문이다.
‘잘하고 있으려나?···’
***
러블리엔젤의 멤버는 민주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리더를 맡은 21살의 태린은 보컬과 안무 실력을 고루 갖춘 만능 캐릭터다. 솔로로 데뷔해도 손색없는 실력이지만, 최근 가요계 추세가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대세를 이루는 바람에 러블리엔젤의 멤버로 발탁됐다.
다음으로 18살 서아는 귀여운 얼굴에 어울리는 깨발랄한 예능감 충만 캐릭터였고, 한 살 아래의 래퍼 하린은 서아와 정반대의 시크한 매력을 가진 단발머리 소녀였다.
마지막으로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 16살 연우. 그녀는 키 작은 쪼꼬미 캐릭터지만, 폭발적인 성량을 갖춘 러블리엔젤의 메인보컬이었다.
이들은 모두 짧게는 2년에서 5년의 JH 연습생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데뷔 막판에 합류한 비주얼 센터 민주가 싫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모두 착한 성격이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태린 언니, 안녕하세요.”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온 민주가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는 태린에게 꾸벅 인사했다.
태린은 바닥에 엎드려 다리를 180도 벌린 채로 손을 흔들었다.
“민주 와쏘? 넌 오늘도 예쁘구나. 역시 우리팀 비주얼답다. 앞으로 더 예뻐져라.”
놀리는 게 아니다.
태린은 팀 내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리더로서 냉철한 분석력도 가졌다.
그녀도 회사처럼 팀의 비주얼 센터 자리를 심각하게 걱정했다.
개성 넘치는 외모의 4명을 하나로 묶어줄 강력한 비주얼 센터의 부재. 회사에서 민주를 캐스팅해 데려왔을 때야 태린은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예뻐. 예쁜 애 중에서 제일 예뻐.’
여배우들 틈에 데려다 놔도 꿀리지 않을 외모였다.
어디서 저런 인재를 데려왔는지.
태린은 민주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쁜 뇬.”
“부끄럽게 자꾸 왜 그러세요.”
“부끄러워하지 마. 니 외모를 즐겨. 넌 우리 센터라고. 예쁜 애들 중에서 제일 예쁜 거야.”
“어휴, 진짜···.”
“꺄앗, 언니들~!”
“서아양.”
뒤이어 해맑게 들어오는 깨발랄 서아와 멤버들.
서아, 하린, 연우는 모두 지방 출신으로 회사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하린 하이!”
“언니들. 연우도 왔어욤.”
“울 막둥이 왔어?”
“네. 히히.”
러블리엔젤의 완전체가 모였다.
칙칙한 지하연습실이 환해졌다.
한창 수다스러울 나이의 여자 다섯 명이 모였으니, 연습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어제도 밤늦게까지 연습하다가 흩어져 잠만 자고 다시 만났는데,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을까.
“···서아 언니가 그랬다니까요. 얼마나 황당했는데요.”
막내 연우가 예능캐 서아가 숙소에서 행한 엽기적인 행동을 태린에게 늘어놨다.
“큭큭큭, 진짜?”
“넹. 숙소에 있으면 얼마나 재밌는데요. 완전 코미디라니까요. 참, 언니들은 숙소 언제 들어와요?”
“우리? 다음 주쯤 들어갈 거 같아.”
데뷔하면 스케줄 관리와 팀워크 차원에서 팀 전체가 숙소 생활을 해야 한다.
연차가 쌓이고 개별 활동이 늘어나면 개인 숙소를 구해서 나갈 수도 있지만, 갓 데뷔하는 그녀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히히. 다 들어오면 재밌겠다.”
“아, 배고파.”
스트레칭을 끝낸 태린은 생수로 마른 입술을 살짝 축였다.
그녀도 데뷔를 앞두고 다이어트 중이라 극한에 가까운 제한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언니 젤리 먹을래요?”
태린의 말에 막내 연우가 가방에서 젤리를 한 주먹 꺼냈다.
설탕이 잔뜩 묻은 새콤달콤한 젤리는 초콜릿, 치즈볼과 함께 연우의 주식이었다.
“미쳤니? 쌤들 오시면 몸무게 체크부터 할 텐데? 이거 먹으면 바로 쪄.”
“응? 진짜요? 전 아무리 먹어도 안 찌는데.”
뇸뇸뇸-
“으흠~ 맛있오.”
젤리를 입에 쏙 넣고 약 올리듯 입을 오물거렸다.
연우는 팀 내 유일한 다이어트 제외자다.
작은 체구에 귀여운 볼살이 매력 포인트. 오히려 다이어트를 하면 카메라에 불쌍하고, 퀭하게 잡히는 탓에 혼자만 자유로운 식사가 가능했다.
놀림에 화가 난 태린이 치즈처럼 쫀득하게 늘어나는 연우의 볼을 잡고 좌우로 쫘악~ 늘렸다.
“헤헤. 안 놀릴게요. 놔줘요, 언니.”
“큭, 귀여워.”
동생의 애교에 금세 화가 풀렸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고, 러블리엔젤의 매니저 임나영과 안무 담당 강은정, 프로듀서 용형준과 대표인 김정후까지 총출동했다.
““안녕하십니까.””
웃고 떠들던 소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안무연습실에는 보통 매니저와 안무가만 내려오지만, 오늘은 중요 포지션의 인물들이 총출동했다.
“몸무게부터 체크하자.”
임나영이 연습실 구석에 있던 디지털 체중계를 꺼내오며 말했다.
“아으~ 쌤! 너무해요. 얼굴 보자마자 체중계부터 들이밀기 있기 없기?”
“있기다. 요것들아. 어서 올라가.”
“잠깐만요. 화장실 좀 다녀오고요.”
“나도. 나도.”
“지금 물 뺀다고 몸무게 안 빠져. 순순히 올라가시지.”
“아아~.”
연우를 제외한 네 명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차해준 덕분에 착실히 감량에 성공하고 있는 민주도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JH 연습생이 된 후로 체중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태린이부터 올라가.”
후드집업과 양말까지 무게 나가는 건 모두 벗어던지고, 얇은 레깅스에 스포츠 브라만 착용한 태린이 조심스럽게 체중계에 올라섰다.
“45.9! 그대로네?”
키 160인 태린의 목표 몸무게는 45.5킬로.
워낙 볼륨감 있는 몸매를 타고나다 보니 100그램을 줄이는 것도 벅찼다.
“왜 안 빠졌어?”
“죄송합니다. 뭔 짓을 해도 더 안 빠져요.”
태린은 회사에서도 유명한 연습벌레.
누구보다 독하게 연습하고, 자기관리를 하는 걸 매니저도 알고 있다.
“분발하자. 다음.”
태린이 내려오자 서아와 하린이 순서대로 체중계에 올랐다.
결과는.
“서아랑 하린이는 왜 몸무게가 늘었어? 너희들 숙소에서 몰래 뭐 먹은 거 아냐?”
“아, 아니에요.”
“저희 암것도 안 먹어요. 맨날 쟤만 치즈볼 시켜 먹지.”
서아가 젤리를 오물거리는 연우를 보며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종일 입에 간식을 물고 사는 연우는 몸무게가 그대로고, 죽어라 다이어트하는 자기들은 늘었으니 억울할 만했다.
“연우, 너! 언니들 다이어트 방해할래?”
“헤헤. 죄송합니다.”
“너도 숙소에서 치즈볼 금지야. 젤리도 혼자 몰래 먹어. 안 그럼 너도 다이어트 시킨다.”
“넵!”
마지막으로 민주가 체중계에 올랐다.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니 민주의 눈에 45.6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오, 민주는 또 빠졌네. 계획대로 착실하게 빠지고 있어. 민주가 처음에 몇 킬로였지?”
“49요.”
“한 달 만에 3.4킬로나 뺀 거야?”
단순히 몸무게만 줄인 게 아니다.
극한의 체중감량 중에도 피부 트러블도 없고, 볼만 퀭하게 빠지는 부작용도 없었다.
카메라 앞에 선 모습 모니터로 보면 그야말로 천사의 모습이랄까.
노메이크업이 그 정도니 풀메이크업에 의상, 헤어까지 하면 어떨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대박. 어떻게 빼? 난 한 달 내내 굶다시피 해도 1킬로도 안 빠지던데.”
“우리도요.”
“언니 비결이 뭐예요?”
“체질이 그런 거 아냐? 연우처럼.”
감량 성공이 그저 부러운 태린, 서아, 하린이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놨다.
“아니에요. 저도 먹으면 바로 찌는 체질이에요.”
민주의 20년 인생에 딱 한 번의 흑역사가 있었다.
바로 작년. 민주는 고3 때 입시 스트레스로 10kg 가까이 체중이 불어났다.
원흉은 민주가 불쌍하다며 삼시 세끼 꼬박 챙겨 먹인 베프 효정.
물론 합격자 발표가 난 이후부터 입학 전까지 빡세게 다이어트를 해서 다시 원래 몸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체중감량은 민주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빼?”
“그냥 하루에 샐러드 한 끼 먹고 무조건 빼는 거죠.”
“뭐야? 똑같네. 그렇게 먹으면 어지럽지? 종일 기운도 없고.”
“맞아요. 해롱해롱한다니까요.”
태린과 서아의 말에 하린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전 버틸만하던데요?”
“으잉? 진짜?”
“뻥 치지 마요, 언니.”
“진짜야.”
민주는 큰 눈을 끔뻑이며 진실을 호소했다.
하지만, 민주는 몰랐다.
자기가 먹는 다이어트 도시락과 나머지 멤버가 먹는 도시락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태린, 서아, 하린이 먹는 한 끼 샐러드는 소스 한 방울 없는 완벽한 풀떼기 식단. 단백질은 무조건 달걀흰자나 닭가슴살로 섭취. 포만감을 위해 오이나 방울토마토, 자몽 같은 걸 아주 조금씩 섭취할 뿐이었다.
반면 민주의 것은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와 대하구이가 올라간 푸짐한 한 끼 식사.
그러니 배는 조금 고파도 어지러울 일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