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96
95화. 데뷔(4)
***
대기실 앞에서 해준을 기다리던 민주는 남자 친구가 돌아오자 낚아채듯 그를 데리고 구석으로 사라졌다.
“오빠 뭐예요?”
“응? 내가 뭘?”
민주는 잔뜩 삐쳐 입이 튀어나왔지만, 그것 나름대로 귀여운 매력이 있었다.
“서영 선배랑 둘이 뭐하고 오셨나 구요?”
“뭐, 그냥. 대화.”
“치. 좋았어요?”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이번에는 희번덕거리며 도끼 눈을 떴다.
“뭔가 뒤가 구린 짓을 하고 온 거 아니에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던가 별스타 맞팔을 했다던가.”
“아니. 갑자기 자기가 얼마나 잘났는지 아냐면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던데? 그래서 그냥 돌아온 거야.”
“정말요?”
“그럼. 내가 뭣 때문에 거짓말을 해.”
“칫. 알았어요.”
질투에 불타던 민주 눈동자가 드디어 예의 순진한 눈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임나영 매니저가 드라이 리허설을 한다며 민주를 찾았다.
드라이 리허설과 카메라 리허설까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생방송 무대뿐.
사람들이 대기실 모니터로 ‘생방송 음악 카운트다운!’을 초조하게 시청했다.
해준은 여분으로 챙겨온 장미차를 끓여 멤버들과 스태프에게 돌렸다.
차를 마신 사람들이 이내 차분해졌고, 해볼 만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러블리앤젤 무대 준비하세요.”
“넵!”
조연출의 콜에 멤버들은 파이팅을 외치고, 무대 뒤로 향했다.
해준도 스태프들과 함께 그녀들을 뒤따라갔다.
앞 팀 무대가 끝나고, MC가 신인 러블리앤젤을 소개했다.
그녀들은 몇 달간 연습한 춤과 노래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와아~ 첫사랑 설렘이 가득했던 러블리앤젤의 노래 아주 잘 들었습니다.”
“다음은 이번 주 1위 후보죠. 이서영 씨를 모셔보겠습니다.”
이서영을 호명하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어느 때보다 도도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른 이서영.
MC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늘 1위 자신하시나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 말고 누가 있어요? 아!··· 그 노래? 좀 후지지 않아요? 당근 제가 1위죠.”
“와우!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최고의 작곡가, 프로듀서와 함께한 곡이라 그런가요?”
“풉? 제 말 귓등으로 들었어요? 나 이서영이야. 대한민국 여자 가수 탑. 그 사람들이 내 덕에 돈 버는 거지. 이번 노래는 순전히 제가 잘한 거예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서영의 말에 일순 모두 얼어버렸다.
“······.”
수백 명의 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에서 망언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말은 이미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생중계됐기 때문이다.
“서영 선배 왜 저래? 약 먹었어?”
“인성 터진 컨셉으로 나가기로 했나? 근데 전혀 어색하지 않아.”
“풉! 은퇴할 생각인 건가? 완전 막 나가네.”
대기실에서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던 가수들은 이서영의 돌발행동에 놀랐다.
그리고 러블리앤젤도.
“와~ 서영 선배 장난 아니네.”
그중에서 가장 놀란 건 서영의 소속사 대표.
자신의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음악 방송을 틀어놓고, 모니터하던 그는 마시던 음료를 내뿜으며 쌍욕을 내뱉었다.
“쟤··· 쟤 미쳤어? 왜 저러는 거야?!”
…이서영이 생방송에서 한 돌발 발언은 주말 오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고 무대에 올랐더니 어지러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해명했지만, 여론은 이미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진짜 약 빨고 한 말이었네.
-맨정신에 하기는 좀 힘든 말이었지.
-이서영 인성 터진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했음.
-내 친구 언니가 이서영 코디였는데, 일 시작하고 한 달 만에 관둠. 갑질, 갑질 세상에 그런 갑질이 없다던데.
-나 이서영 로드였다. 그 X, 완전 성질 개 더러움. 매일 새벽에 강남 유명한 김밥집에서 김밥 안 사가면 욕먹었고, 브레이크 세게 밟는다고 지랄. 빨리 간다고 지랄! 늦게 간다고 지랄!! 열 받아서 결국 때려침.
-증권가 찌라시 보면 이민영 왕따 시켰다던대. 그래서 탈퇴한 거고. 걔 쓰러졌던 게 과로가 아니라 자살 시도였다던데.
-레알임? 미쳤네.
-이서영은 까도 까도 괴담만 나옴.
-흥미진진하다.
결국, 이서영은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1위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잠시 정신이 어떻게 된 것 같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고, 자중하겠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왕따 논란은 사실이 아니다. 이번 앨범 활동은 여기까지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라는 내용의 사과문까지 올려야 했다.
반면 러블리앤젤의 노래는 10위권 안으로 안착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사이 차해준의 한식 뷔페도 정식 오픈을 했다.
썬플라워에 이어 가성비 맛집으로 인기를 끌었고, 주변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줄을 서서 먹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진짜 왜 그랬을까요?”
스케줄을 끝낸 어느 날.
한식 뷔페로 몰래 찾아온 민주가 해준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몰래 데이트를 즐겼다.
“글쎄. 난 모르지.”
“참. 오빠 나 다시마 젤리 다 떨어졌어요. 또 만들어줄 수 있어요?”
“응. 당연하지.”
“이상하게 그거 먹으면 춤이 잘 춰진다니까. 설마 거기에 약 탔어요?”
“약? 뭐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에 둥둥 뜨는 약? 그런 게 있으면 나 좀 줘라. 가져다 팔게.”
“히히. 그런가?”
“이거나 마셔.”
해준은 피로 회복 버프가 붙은 시원한 음료를 민주에게 내밀었다.
민주는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캬아~ 시원하다. 피로가 싹 가시네.”
“그래?”
해준은 민주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
차원의 농장.
밭일을 끝낸 해준은 서둘러 검술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의 훈련을 도와주는 카일은 벌써 도착해 한바탕 땀을 흘리고 있었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스승님. 수확할 작물이 꽤 많아서요.”
“요즘 수확량을 꽤 많이 늘린 것 같던데? 울타리 밖에도 새로 밭을 일구고.”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한식 뷔페를 정식 오픈한 후, 식재료 사용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된 해준은 생산량을 증량했다.
“스승님 그런데 팔에 흉터가?···”
“이거?”
등에서 어깨에 이르는 커다란 흉터를 대수롭지 않게 힐끗거리는 카일.
“별거 아냐. 늑대를 몇 마리 사냥했지. 요새 몸이 좀 근질근질해서 말이야.”
“모, 몸풀기로 늑대를요?”
“딱 적당하더군. 게다가 가죽을 손질해서 팔면 골드도 준다기에.”
카일도 교역상 물품 의뢰를 해결해주는 것 같았다.
의뢰품은 골드 벌이가 짭짤하니 몸도 풀고, 돈도 벌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약 좀 발라 드릴까요?”
“약? 됐어. 침이나 바르면 낫는 상처에 약은 무슨. 훈련이나 해라.”
카일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어깨를 으쓱한 해준은 칼을 들고 훈련용 허수아비 앞에 섰다.
자세를 고쳐잡고, 호흡을 가다듬어 칼을 휘둘렀다.
휙-
휙-
휙-
허수아비를 고블린 대역으로 검술을 연마하던 그때.
깡-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허수아비를 내려치던 해준의 검이 부러져버렸다.
“헙!”
팔짱을 낀 채 해준의 검술 자세를 지켜보던 카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검이었어. 부러질 때가 되긴 했지. 이 기회에 더 튼튼한 검을 구하는 건 어떠냐? 네 몸에 맞게 제작을 해도 좋고.”
“제작이요?”
“몸에 맞는 튼튼하고, 날카로운 검이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법이다.”
“음···.”
카일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최근 들어 전투가 뜸하긴 했지만, 고블린의 무장도 점점 강해지는 마당에 성능 좋은 검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검이 없으니 당분간 수업은 못 하겠군. 난 늑대 토벌이나 갈 테니 검이 준비되면 다시 연락해.”
라는 말을 남기고 카일이 휙 돌아가 버렸다.
굳이 카일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동굴 탐험을 재개할 생각이었기에 검을 준비해야 갰다.
“어차피 의뢰품도 넘겨야 하니까 마을로 내려가 볼까?”
“냐아앙~.”
어디선가 나타난 뭉치가 해준의 다리 사이를 오가며 낮게 울어댔다.
“뭉치. 어디 다녀와?”
“야아옹.”
“바닷가에서 사냥하면서 놀았어? 근데 너 요즘 덩치가 좀 커진 거 같다.”
처음엔 귀엽게 복실복실했던 녀석의 몸집이 최근 몰라보게 성장했다.
성체가 된 건지 아니면 아직 더 성장할지는 해준도 모른다.
다만, 귀엽다는 말보다는 늠름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해 보였다.
‘이 녀석 대형묘였나?’
뭉치는 해준이 수련을 할 때나 탐험을 할 때 늘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보상으로 닭가슴살과 마법 재료를 섞은 사료를 건넸는데,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큰 것일지도.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클 줄이야.’
작은 표범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사자 같은 갈기가 인상적인 메인쿤이라는 대형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뭉치는 그런 종일지도 몰랐다.
“서두르자.”
“냥~!”
해준이 수레에 의뢰품을 싣고 마을로 향하자, 뭉치도 그의 뒤를 어슬렁거리며 쫓았다.
네리에게 물건을 넘기고, 골드를 챙겨 대장간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쇠를 단련하는 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대장간이 어쩐지 조용했다.
“냐아앙?~”
“그러게. 무슨 일 있나? 일단 들어가 보자. 계세요?”
굳게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밀어 대장간에 들어간 해준과 뭉치.
대장장이 스타크가 우울한 표정으로 해준을 맞았다.
“자네 왔군.”
“대장간이 오늘따라 조용하네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네.”
“왜요?”
“보다시피 철광석이 없어.”
과연 스타크의 말처럼 검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철광석과 주괴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작업장 구석에 가득 쌓여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멀비어 상단 외에 강철을 취급하는 교역선 상단이 따로 존재하는데, 그들이 물건을 싣고 오던 중 풍랑을 만나 좌초됐다는 것.
“당분간 검은 고사하고, 화살이나 농기구조차 생산할 수 없을지 몰라. 의뢰품 납품 일정이 코앞인데, 큰일이야.”
“저런··· 큰일이네요.”
해준에게도 큰 문제였다.
당장 검을 제작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화살도 이젠 몇 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구해야 일정에 맞출 텐데.”
“철광석은 이 마을에서 안 나나요?”
“나긴 하지.”
“그럼 직접 가서 캐면 되잖아요.”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냐.”
“광산이 마을 밖에 있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쪽에 늑대가 잔뜩 출몰해 접근할 수가 없어.”
몇 년 전쯤부터 마을과 광산을 잇는 숲에 늑대가 출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토벌대를 꾸려 늑대를 사냥하며 광산을 오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늑대 개체 수가 급격히 늘었고, 자연스럽게 길이 끊겼다고 했다.
“흠··· 그렇군요.”
“늑대만 어찌하면 철광석을 가져올 수도 있을 텐데.”
“철광석을 캐는 건 어렵나요?”
“어려운 거야 없지. 예전 광산도 그대로니 가서 캐오기만 하면 될 거다.”
해준은 스타크에게 철광석의 생김이나 특징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자세하게 이야기해주던 스타크는.
“설마 직접 구하러 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럼 제가 직접 구해오면 검을 만들어주실 수 있겠어요?”
“만약 구해만 준다면 최고의 검을 만들어주지.”
스타크의 눈이 반짝였다.
이대로라면 다음 교역선이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해준이 기꺼이 나서서 철광석을 구해준다고 나섰으니 그의 처지에선 반가울 수밖에.
“어렵지 않지. 다만 네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맡겨주세요.”
“냐아아~!”
해준과 뭉치가 동시에 대답했다.
“대신 구해다 드리면 약속대로 최고의 검을 만들어주세요.”
“좋다. 참, 너 혼자서는 힘들 텐데 용병을 고용해보는 게 어때?”
용병이라는 말에 적임자가 떠오른 해준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