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97
96화. 늑대토벌(1)
***
“하하. 이거 뭔가 흥미진진한데?”
대장간을 나온 해준은 NPC에게 히든 퀘스트를 부여받은 RPG 게임의 플레이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떨리기도 했지만, 흥미도 생겼다.
“스타크 아저씨 말처럼 일단 용병부터 구해야겠다. 그렇다면 여관부터 가야겠지? 가자, 뭉치야!”
“냥!!”
해준은 여관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카일이 묵고 있는 2층 숙소.
마침 그는 늑대 사냥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웬일이냐?”
“스승님과 늑대 사냥을 하고 싶어서요. 겸사겸사 광산에서 철광석도 캐고. 늑대 가죽은 스승님이 몽땅 가지세요. 전 철광석만 캐오면 됩니다.”
“싫은데. 내가 왜 네 파티에 껴야 하지?”
“검 구해오라면서요.”
“구해오면 연락하라니까.”
“그러니까 함께 구하러 가자고요.”
“싫다!”
사정상 해준의 검 선생을 하고 있지만, 카일은 혼자가 익숙했다.
은밀히 움직여 목표물을 포착해 한 마리씩 잡아내는 것이 카일의 사냥 스타일.
해준의 실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카일에겐 짐만 될 뿐이다.
“넌 따라오면 짐만 될 텐데. 검도 없잖아. 사냥은 어떻게 하려고?”
“제 활이 명중률 높은 건 스승님도 아시고 계시잖아요.”
해준이 어깨에 둘러멘 활통을 툭툭 치며 말했다.
요즘은 100발이면 96발 정도는 원하는 과녁에 맞힐 솜씨까지 끌어올렸다.
‘녀석이라면 방해는 안될 텐데.’
잠시 고민한 카일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동행을 허락했다.
“흥. 마음대로 해라. 난 한 시간 후에 출발할 거야. 늦으면 안 기다릴 거다.”
“네! 장비 챙겨서 금방 오겠습니다.”
농장에 돌아온 해준은 늑대토벌에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
힘과 민첩섭 등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버프가 붙은 요리를 잔뜩 챙기고, 혹시 몰라 마법 가루와 외상 치유 연고까지 챙겼다.
‘이 정도면 늑대 수십 마리랑 마주쳐도 살아남을 양이니까 충분하겠지?’
고블린 배낭을 멘 해준이 다시 여관으로 향했다.
***
마을 입구에서 북쪽.
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니 숲이 우거진 작은 오솔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10여 분쯤 걸었을까.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이 사라지고, 숲이 어둡고 거칠어졌다.
“이제부터 조심해야 할 거다. 주변을 경계해.”
카일이 검의 손잡이를 고쳐 쥐며 말했다.
해준도 언제든 활을 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했다.
“뭉치야. 너도 긴장해.”
“야아옹.”
얼마를 걸었을까.
그르릉-
늑대가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춘 카일은 손짓을 통해 앞의 늑대가 3마리라는 걸 해준에게 알렸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모습을 드러낸 늑대 무리.
몸집이 뭉치의 4배 이상은 커 보였다.
커다란 나무 뒤에 은신한 카일은 해준에게 작은 목소리로 작전을 지시했다.
“내가 왼쪽으로 돌아 들어갈 테니 오른쪽 녀석을 공격해. 호흡을 흐트러트리지 말고, 집중해. 자칫 내가 맞을 수 있으니까.”
“네.”
“간다.”
해준과의 거리를 적당히 떨어트린 카일이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늑대 무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그에게 달려들었고, 해준은 그 틈을 이용해 후미에 있는 늑대를 정조준해 화살을 날렸다.
휘리릭-
“깨깽.”
“명중이다. 뭉치야 달려.”
두 번째 활시위를 당기는 사이 뭉치가 화살에 맞고 비틀거리는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뭉치에게 어그로가 끌린 사이 해준이 쏜 화살이 다시 명중.
단 두 발 만에 첫 번째 늑대를 무릎 꿇렸다.
해준의 검술 스승 카일 역시 능숙하게 칼을 휘둘러 첫 번째 늑대를 제압했다.
‘허, 벌써?!’
실전에서의 카일은 더 묵직하고, 날렵했으며, 날카로웠다.
고블린 수십 마리를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쉬고 있어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지막 늑대에게 달려들며 카일이 외쳤다.
휘릭-
서걱-
카일은 단 일격에 늑대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와 함께한 첫 전투는 싱거우리만큼 금방 끝나버렸다.
“흥. 땀도 한 방울 안 났군. 챙길 것만 챙겨서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자.”
카일이 늑대 가죽을 능숙하게 벗겨 근처 나무에 걸었다.
아마도 돌아오며 회수해갈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해준이 무두질한 늑대 가죽을 배낭에 담았다.
“그, 그건? 마법 배낭?”
늑대와 조우했을 때조차 평온함을 잃지 않던 카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평생 전장을 떠돈 카일도 소문으로만 듣던 물건이다.
뭐든 담을 수 있으며, 무게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신비한 배낭.
“그걸 어디서?···”
“하하. 그냥 어쩌다 보니 얻게 됐습니다.”
해준이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가 가진 게 배낭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카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난감했다.
마법 요리에 외상 치유 연고까지.
해준이 카일에게 숨긴 비밀이 너무나 많았다.
“빨리 넣고, 이동하시죠.”
잽싸게 늑대 가죽을 배낭에 넣은 해준이 앞장서 걸었다.
사냥은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반나절 사냥으로 소탕한 늑대 숫자가 적어도 30마리.
사냥 시간보다 늑대 무리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왜 마을 주민들이 광산을 포기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순조로운 사냥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시죠.”
해준이 자리를 잡고 앉자, 카일도 따라 앉았다.
“일단 이것부터 마시고 계세요. 식사는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체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마법 음료를 카일에게 건넸다.
해준의 검술 스승인 카일이 탱커 겸 딜러라면 해준은 원거리 딜과 버프를 책임지는 역할이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카일의 소진된 체력을 복구하는 건 필수.
카일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해준은 배낭에서 재료를 꺼냈다.
야외 취사인 만큼 모든 재료는 손질해 밀키트 형식으로 챙겨왔다.
오늘의 메뉴는 힘과 체력, 민첩성을 골고루 높여주는 비프 스튜.
서둘러 불을 지핀 해준은 모닥불 위에 작은 냄비를 얹었다.
“배고파도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천상의 맛을 보여드리죠.”
비프 스튜는 재료와 충분한 조리 시간이 맛을 좌우한다.
먹기 좋은 한입 크기로 깍뚝 썰기 한 소고기, 당근, 감자, 양파를 토마토와 레드와인을 넣고 한 시간가량 졸여주면 완성이다.
“냐아앙~.”
솥에 버터와 소고기, 채소를 넣고 볶고 있을 때, 뭉치가 자기 몫도 달라는 듯 해준을 보며 불쌍하게 울어댔다.
“알았어. 좀만 기다려 스튜만 올려놓고, 네 것도 챙겨줄게.”
소고기가 갈색으로 변할 즈음 와인과 토마토, 맛을 돋워줄 향신료를 넣었다.
이제 뭉근하게 끓이기만 하면 스튜가 완성된다.
손 가는 과정을 끝낸 해준은 뭉치에게 닭가슴살을 얇게 포 떠 건조한 육포를 줬다.
건조 과정에서 마법 가루를 첨가한 덕에 섭취하면 후각이 민감해진다.
냠냠-
뭉치가 육포를 맛있게 씹어먹는다.
생명 뿌리, 재생 풀, 독성 중화 열매로 만든 가루는 마치 MSG 가루처럼 요리에 들어가 특별한 버프를 만들어준다.
대체로 원하는 버프가 붙긴 하지만, 때로는 양 조절에 실패해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생기기도 했다.
“아직 멀었나?”
카일이 재촉하듯 물었다.
“거의 완성이에요.”
가방에서 미리 구워둔 바게트를 꺼내 스튜 접시에 올렸다.
“드셔보세요.”
“고맙다. 음··· 몸이 따뜻해지는군.”
스튜 국물에 빵을 찍어 고기를 얹어 먹은 카일이 중얼거렸다.
평소 맛에 대한 평가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전투 중에 이렇게 맛 좋은 요리를 먹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맛있어.’
카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금세 스튜를 비운 그가 해준에게 빈 접시를 내밀었다. 그러자 해준이 씨익 웃으며 접시에 스튜를 다시 가득 채웠다.
“괜찮죠?”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해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소의 그라면 뾰족한 말을 뱉었을 터.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극찬이나 다름없다.
사냥터에서 요리를 두 접시나 비운 건 실로 오랜만이다.
포만감이 들면서 몸에 기운이 돌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카일은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었다.
왕국에서 벌인 오우거 토벌 당시 궁중 요리사가 힘이 증가하는 버프가 붙은 요리를 토벌대에게 하사한 적이 있다.
이건 마치 그때 먹었던 요리··· 아니, 그보다 더 몸에 활력이 돌았다.
‘그러고 보니 바닥난 체력도 꽤 많이 회복된 것 같고.’
용병 생활에 이골이 난 카일은 자신의 체력이 얼마나 되고, 또 얼마나 휴식을 취해야 회복이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오늘은 평소보다 유난히 회복 속도가 빠르다.
‘평범한 농사꾼은 아니야.’
역시 차해준은 뭔가 비범한 능력을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던 순간,
킁-
해준 옆에서 꼬리를 말고 휴식을 취하던 뭉치가 북쪽을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민감해진 후각으로 뭔가 냄새를 맡은 것이다.
“왜 그래 뭉치야?”
“냐아앙!”
“늑대 무리?”
“저쪽이다.”
카일이 빠르게 검을 움켜쥐고, 몸을 숙였다.
배낭을 멘 해준도 언제든 활을 쏠 수 있게 시위에 화살을 올렸다.
둘은 몸을 잔뜩 낮춘 자세로 전진했다.
얼마쯤 앞으로 나가자 땅바닥에 널브러진 광산 팻말이 보였다.
‘저 앞에 광산이 있다!’
드디어 광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숫자가 너무 많은데?!”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드넓게 펼쳐진 암석 지대. 뒤로는 기암괴석이 높게 솟아있어 늑대 무리의 거점은 천혜의 요새 그 자체였다.
광산 입구로 보이는 동굴 앞에는 수십··· 아니 족히 백 마리는 넘는 숫자의 늑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녀석들의 숫자도 숫자지만, 호위하듯 진영 중앙에 서 있는 덩치 큰 늑대는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위압감이었다.
“저 자식. 포스가 장난 아니네.”
백전노장 카일조차 저런 상대는 까다롭다며 혀를 내둘렀다.
광산을 목전에 두고 퇴각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설마 백전노장 용병 카일 스승님께서 이대로 물러서진 않겠죠?”
해준이 슬쩍 카일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왔다.
“무슨 소리. 이제야 제대로 땀 좀 흘리겠구만.”
여유 있는 척 말을 뱉었지만,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비단 두려움 때문은 아니다.
전투를 앞두고 느껴지는 묘한 흥분감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100마리가 넘는 숫자의 늑대 무리를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
‘화살도 몇 개 남지 않았고.’
해준이 화살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우두머리를 노려라.”
“우두머리요?”
“늑대는 우두머리만 제압하면 나머지는 순한 강아지가 되는 법이지.”
해준이 멀리서 정조준한 화살을 우두머리에게 맞추면, 카일이 돌격해 목을 베어버린다는 작전이다.
“한발에 쓰러지지 않을 거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다리를 노려. 스피드를 떨어트려 놓고 목을 베는 전술이다.”
“맡겨주세요.”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해준은 젤리와 과자를 입에 털어 넣었다.
각각 집중력과 침착성을 높여주는 마법 요리다.
‘설마 이걸 쓸 줄이야.’
그리고 카일에게도.
“스승님도 이것 좀 드세요.”
해준은 귀하디 귀한 [괴력의 샹그릴라] 병을 꺼내 카일에게 넘겼다.
숙성된 와인과 레몬, 라임, 자몽, 사과, 수박 거기에 귀한 시드르 꿀까지 섞어 만든 음료다.
마시면 30분간 자신의 힘에 300%의 괴력을 낼 수 있다.
지속 효과가 끝나면 30분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소진하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 같은 전투에 딱 필요한 마법 요리다.
“한가하게 술 따위를 마시고 있을 시간이?··· 설마 마법 요리냐?”
“시간 없다면서요. 빨리.”
카일의 질문에 즉답을 회피한 해준이 활시위를 크게 당겼다.
음료를 비운 카일은 몸에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걸 느꼈다.
“갑니다.”
파앗-
쉬리릿-
화살이 호쾌한 잔상을 남기며 수십 마리 늑대 무리를 뚫고 날아갔다.
예리한 화살촉은 그대로 우두머리의 앞다리에 명중.
동시에 뭉치와 카일이 앞으로 돌격했다.
“뭉치야. 왼쪽 다리를 물어!”
“냥냥!!”
뭉치가 빠르게 왼쪽으로 뛰어갔고, 카일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돌진했다.
우오오오-
늑대들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빠른 스피드의 뭉치가 우두머리의 왼쪽 다리를 물어 작전대로 움직임을 봉쇄했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카일이 묵직한 대검을 휘둘렀다.
서걱-
“깨애앵!”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우두머리가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