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
# 1
Chapter.1 시작의 고기
그레이크시 외곽.
아담한 언덕에는 나의 식당이 있다.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위치. 주변 경치가 좋은 식당이지만 사실 단점이 더 많다. 상업지구나 주거지구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에, 이 언덕 위까지 찾아오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단점이자 장점.
자동차가 있는 세상이 아니다.
물론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비행기도 없다.
마법과 검. 그리고 몬스터. 거기에 던전과 헌터들이 뒤죽박죽. 제국과 왕국이 존재하는 판타지의 세상. 이 대륙에 소환당한 지도 벌써 15년이 흘렀다. 어느덧 30대 초반.
나는 마법사다. 은퇴한 마법사다. 최강의 클래스라는 9클래스의 벽을 돌파한 대마법사라고 불린다. 하지만 지금은 식당의 주인이다.
그간의 삶은 평화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늘 전장. 전장. 전장.
대마법사라는 위치에 걸맞게 수많은 전장에 불려 나가야 했다. 몬스터와의 전쟁. 드래곤과의 싸움. 목숨을 내걸고 싸운 대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저 영웅이라 치켜세워줄 뿐.
싸움에 지친 나는 은퇴를 결심했다. 15년이나 싸웠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철부지인 고교생 때 소환되어 지금껏 그저 싸우는 인생이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2년에 그쳤을 군대. 여기서는 진짜 전장이 15년이나 계속됐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버리고 루베른제국의 지방도시인 그레이크에 자리를 잡았다. 9클래스의 마나를 쌓아 올렸으나 아직도 현대로 돌아갈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마법사로 남는 건 평화와는 거리가 먼일이었다. 분명히 사방에서 뭔가가 꼬일 터.
아직 현대에 있을 무렵,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 식당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은퇴하고 말이다. 유명한 주방장이 되어 활약한 후 조그만 식당을 차리는 것. 쉐프라는 직업을 상정하고 중고등학교 내내 요리학교에 다니던 나의 꿈. 은퇴 후의 노후설계가 색다른 세상에서 현실이 되었다.
쉐프가 아닌 유명한 마법사의 삶을 살다가 은퇴라는 것이 원래 꿈꾸던 인생설계와 달라진 점이지만.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
이곳에 식당을 차린 지 1개월이 조금 넘었다. 아직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손님은 단골이 몇 명.
메뉴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니, 손님이 원하면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자유로운 식당이 좋다.
어차피 자기만족이다. 돈이 필요하진 않다.
드래곤 하트를 뜯어 먹었던 드래곤의 레어에서 발견한 보물. 그 보물이 있기에 먹고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자기만족이다.
보물을 팔아서 건축한 2층집. 1층은 식당이고 2층은 나의 집이다. 1층 식당은 주방과 4개의 테이블로 구성돼 있다. 주방에는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아담한 책상 크기의 철판과 각종 냄비가 놓여 있었다. 현대의 감각으로 만들어낸 드워프제 요리기구들. 직접 의뢰한 핸드메이드다.
아침에 일어나면 테이블과 주방기구들을 한 번 닦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청소가 끝나면 시장으로 향한다.
모든 걸 마치고 나면 점심나절.
장사의 시작이다만.
역시나 오늘도 파리만 날린다.
“여어!”
멍하니 있자니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면서 들어오는 손님. 낯익은 남자다. 우리 식당의 고기를 대주고 있는 푸줏간 주인.
처음 만났던 날, 그 일 이후로 가끔가다 이렇게 불쑥 찾아오곤 했다. 물론 시장바닥에선 맨날 만나는 사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행차하셨습니까? 아침에 시장에선 아무 말도 없더니.”
“질 좋은 고기가 들어와서 말이야. 자 그날과 같은 우바 뱃살이다!”
크놀씨는 주방에다가 고기를 냅다 던졌다. 선명한 분홍빛의 고기. 딱 봐도 신선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장사하는 사람이지만, 가끔가다 이런 질 좋은 고기가 들어오면 먹고 싶어진단 말이지.”
“하아, 그러세요? 아침에는 분명히 우바고기는 들어온 게 없.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침과는 말이 달랐다. 그러자 크놀씨는 슬쩍 뺨을 긁적였다.
“정말 없었어! 그때는! 정말이야!”
“네? 없던 고기가 점심때가 되니까 하늘에서 떨어졌답니까?”
“그래, 바로 그거다!”
“미쳤어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진심을 담아 반문해주자 크놀씨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주방을 볼 수 있는 바 테이블 의자를 빼고 앉아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항복이다 항복! 급하게 공수해 왔다. 왠지 마시고 싶은 기분이라서.”
“흐음.”
어쨌든 손님이 원한다면 거절할 필요는 없다. 얼추 보니 딱 한 근 정도였다. 양을 보니 정말로 급하게 구해 온 느낌이다. 그렇게나 고기가 먹고 싶은 기분이란 뭘까 궁금했다. 그것도 고기를 파는 푸줏간 주인이 말이다.
“그때 네놈이 해줬던 요리를 먹고 나서는 말이야 마시고 싶으면 생각이 나더라고. 흐흐. 그러니 빨리 내놔라. 어차피 벌레만 날리는 주제에.”
“거 벌레만 날려서 죄송하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
크놀씨를 처음 만났던 건 아직 식당을 열기 전이다.
그 당시에 나는 고기를 공수해 줄 푸줏간을 찾다가 난관에 부딪혔다. 워낙에 작은 도시라 다양한 몬스터 고기를 구하는 건 꽤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빛이 되어준 것이 마지막으로 들른 크놀씨의 가게였다.
“구할 수 있는데?”
마지막으로 들른 푸줏간. 우락부락한 근육의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호호, 이이가 소싯적에 용병 일을 하면서 알던 동료들이 곳곳에 있어서 몬스터 고기도 다양하게 구할 수 있답니다.”
“그렇습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에게나 내 고기를 팔지 않는다. 이건 철칙이야. 내가 발품 팔아서 공수 받은 고기들이 아무렇게나 요리되는 건 참을 수가 없는 일이지. 네놈이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어휴, 이 망할 화상아! 또 시작이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이러다가 굶어 죽겠어. 굶어죽는다고!”
“이것만은 안 돼. 내 자존심이란 말이야!”
언성을 높이는 부부. 부인은 젊었을 때 남자를 상당히 울렸을 것 같은 미모였다. 지금도 40대로 보이니 여전히 곱다고 볼 수 있다.
“사모님, 괜찮습니다. 자신 있어요.”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 언덕에 식당을 개시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제 요리를 보여드릴게요.”
자신은 있었다. 마법사로 세상을 주유하던 시절 동료들은 항상 내 요리를 칭찬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좋아. 나는 말이다, 내 마음에만 들면 그 손님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원하는 고기를 구해다 주지. 하지만 마음에 안 들면 절대로 팔 수 없단 말이다!”
“예예, 그럼 우바고기를 좀 주시겠어요? 우바 뱃살이요.”
“뭐?”
“네?”
남편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부인도 그리고 크놀씨도 뭐라는 거냐는 얼굴을 했다.
“뱃살? 뱃살로 요리를 한다고?”
“네.”
“그 기름기 많은 부위를 왜 굳이 먹는데?”
“괜찮습니다. 평가는 이따가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어쨌든 실력을 보여드리려면 한 번은 파셔야죠.”
부부가 서로를 쳐다봤다. 크놀씨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우바 뱃살 두 근을 끊어왔다.
“벨르렌고기나 우카고기가 아닌 우바라니, 대체 무슨 요리를 하나 두고 보자. 그건 그냥 가져가라. 훈제용인데 버린 셈 치겠어.”
크놀씨는 그렇게 말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한숨을 쉬는 부인에게 값을 치르려고 했으나 그녀는 받지 않았다.
“괜찮아요. 저래보여도 장인정신이 있는 사람이라, 뭐 그런 모습 때문에 결혼한 것 같기도 하지만. 호호.”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더니, 구박을 하지만 남편의 뜻은 존중한다는 듯 기어코 돈을 받지 않았다.
“그, 혹시 남편께서 술을 좋아하시나요?”
“어떻게 보이는데요?”
“술고래로 보입니다만.”
“보이는 그대로랍니다.”
부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였다.
나는 우바고기를 가지고 귀가했다. 우바고기란 돼지고기를 말한다. 이곳에서는 돼지를 우바라고 불렀다. 우카란 소를 칭한다. 그리고 벨르렌은 늑대형 몬스터 고기다. 몬스터 고기 중에 가장 인기가 많다. 잡냄새가 없고 쫄깃한 식감이 그만인 고기다.
이런 특유의 맛을 내는 몬스터 고기가 이 세상에선 오히려 돼지나 소보다 인기가 좋았다. 전문 사냥꾼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골에까지는 잘 공수가 되지 않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이 푸줏간과 거래를 트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나는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요리를 준비했다. 곧 부부가 올 터.
우바의 뱃살이란 돼지 삼겹살을 의미한다. 내 영혼이 담긴 음식이다. 고향의 추억이 듬뿍 담겨있다.
이곳의 우바고기는 기름기가 현대의 돼지보다 두 배는 많았다. 그래서 더 인기가 없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기름을 모조리 제거하면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 크놀씨가 준 삼겹살은 매우 선명한 핑크빛으로 그만한 신선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 오늘 잡은 고기겠지.
바깥쪽으로 기름 덩어리를 제거하고 최대한 얇게 썰어낸다.
주방 안쪽에는 돌덩어리를 깎아 만든 저장고가 있었다. 그 저장고는 매일 아침 아이스계열의 마법을 사용하여 얼려준다. 저장고라기보단 마법을 이용한 냉장고였다.
이곳에서 쓰는 물과 불 얼음은 모조리 마법을 이용한다. 그것이 나의 방침이랄까.
손질한 고기에는 후추와 소금을 뿌린다. 물론 이 세상에도 소금은 존재한다. 후추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에 있는 다양한 조미료와 향신료는 이 세상엔 없다.
이것은 소환마법의 응용품이다.
나는 현대의 물건을 소환하는 대마법을 완성해냈다.
왜냐면,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차원 이동의 마법을 열심히 연구했고, 그 결과 전이마법이 아닌 엉뚱한 소환마법을 발견해 냈다.
아직 개선점이 매우 많다. 개선하다 보면 나도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소환되는 물건의 크기가 한정적이라는 것. 내가 들 수 있는 정도의 무게랄까.
게다가 소환은 하루에 한 번이 최대였다. 차원을 넘나드는 소환에는 엄청난 마나가 사용된다. 회복이 더딜 정도로.
그리고 또다른 문제. 가공되지 않은 물건을 소환하면 이상하게 팍 상해서 온다는 게 문제였다. 가공품도 유통기한은 있다. 그러니 이건 유통기한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편리했다. 물론 공짜로 가져오는 건 아니다. 가치가 더 많은 보물을 남기고 가져온다. 등가교환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래서 후추다. 후추와 소금을 뿌려둔 고기. 밑간을 한 고기에 다시 비장의 무기를 사용한다.
서멀 블레이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몬스터의 몸을 1억 개가 넘는 조각으로 나눌 수 있는 특수한 마법. 마나를 조정해서 미세한 감각으로 마법을 뿌리면 고기에는 수천의 칼집이 생겨 버린다. 그것도 앞면에만. 정확하게 마법을 끊어버리는 게 포인트다. 뒷면까지 마법이 들어가면 너덜너덜한 수천의 고기조각이 될 뿐이니까.
“여긴가?”
“그런 거 같은데.”
요리를 준비하고 있으려니 부부가 나란히 등장했다.
“어서 오세요. 이리 앉으시죠.”
텅 빈 식당을 둘러보는 부부에게 손짓했다. 주방과 붙어있는 바 테이블로 걸어온 부부가 의자에 앉았다.
“가게가 참 예뻐요.”
“예쁘긴 무슨. 이런 데다 식당을 만들고 무슨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여보. 어휴, 죄송해요. 이 사람은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입만 험한지라.”
부인이 대신 사과를 한다. 나는 그냥 흘려들었다. 저런 성격의 사람도 뭐 가끔 있는 법이지.
“그럼 곧 요리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지금껏 삼겹살을 맛없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이 세상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우바 뱃살을 내놓으라고 말하기도 했고.
나는 바 테이블 앞 드워프제 철판 아래에 파이어볼을 장착했다. 철판이 달궈지기 시작한다. 후추와 소금을 뿌려둔 삼겹살을 굽는다.
치이이이이익!
맛있는 소리를 내면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삼겹살. 바로 이 소리가 식욕을 자극하는 보물이다. 앞면에만 수천의 칼자국을 낸 것은 그 부분만 기름기가 빠져서 겉은 바삭해지고 뒷면은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호오, 그렇게 굽는단 말이지?”
크놀씨와 그 부인도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철판에 굽는 모습을 보더니 더 불평은 없었다. 여기서 쇼타임이다. 나는 지글거리는 삼겹살에 더 강한 불맛을 주기 위해 파이어볼을 사용해서 철판 위를 한번 뒤덮었다.
퍼엉!
그리고 곧바로 마나를 끊어 파이어볼을 없애버리면 삼겹살 구이가 완성이다.
곁들일 음식은 샐러드다. 쌈이라는 건 호불호가 갈리는지라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삼겹살에는 빠질 수 없는 참기름과 소금 후추를 섞은 기름장을 내놓았다. 양파를 숙성해서 간장과 함께 소스를 만드는 것도 맛있지만, 오늘은 가장 기본적인 조합으로.
“마법사이신가요?”
부인은 파이어볼을 보고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흥, 파이어볼이야 뭐 기본마법이지. 맛이 중요한 거지 여기가 식당이지 전쟁터는 아니잖아?”
“알겠으니 기름장에 찍어 드시죠.”
고기를 그냥 입에 가져가려던 크놀씨가 기름장에 고기를 적셨다.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노릿노릿 구워진 고기의 냄새가 식감을 자극했는지 크놀씨의 손놀림은 매우 빨랐다. 부인은 성격 그대로 조심스럽게 고기를 입에 가져간다.
우걱우걱. 두 사람의 입에서 고기가 씹힌다. 이때가 유일하게 긴장되는 순간이다.
“허어?”
크놀씨의 찌푸렸던 눈살이 환하게 펴졌다. 심하게 놀란 얼굴이었다.
“이, 이게 우바 뱃살이라고?”
“맞는데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크놀씨는 고기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이렇게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고 기름기가 포만감을 주면서도 산뜻한 맛이 날 수 있는 거지? 불맛이야 마법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마구 고기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쩝쩝.
쩝쩝.
쩝쩝쩝.
그저 먹기만을 반복한다. 삼겹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엄청 맛있어요.”
접시를 비우고 나서야 나를 보면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는 크놀씨.
“임마! 더 내놔라! 더! 더더더더! 내가 준 고기는 분명히 이것보다 더 많을 텐데?”
“그전에 해줄 말이 있지 않으세요?”
“쳇. 그렇지. 합격이다! 합격. 무슨 고기든 말 만해! 못 구하는 거 빼고는 다 구해주마! 우하하하하! 고기 더 내놔!”
크놀씨는 큰소리를 치면서 삼겹살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침이 떨어진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맹수였다. 고기를 노리는 맹수.
“예이, 예이, 갑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하곤 철판에 남은 고기를 몽땅 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