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0)
# 100
Chapter.23 엘프의 숲
소환마법의 시전횟수가 하루 1회에서 5회까지 늘어났기에 안심하고 재료를 소환한다.
주재료는 발사믹 식초였다.
발사믹 식초란 최고급 포도즙을 나무통에 넣고 숙성시켜서 만든 식초를 말한다.
위스키처럼 오래 숙성될수록 더 향이 좋고 깊은 맛을 낸다. 맛이 성장한다는 표현이 가장 들어맞는 물건이다.
내가 엘프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건 그 발사믹 식초를 응용한 드레싱이었다.
마요네즈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엘프들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포도랑 비슷한 과일만 구한다면 얼마든지.
물론 맛을 마음에 들어 할 때의 이야기지만.
이 답 없는 엘프들의 입맛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우선 양파를 마구 다졌다. 짓이긴 양파에 다진 마늘을 섞는다. 그리고 여기에 최고급 발사믹 식초를 섞는다.
추가로 올리고당의 단맛과 소금의 짠맛, 그리고 레몬즙의 싱그러운 맛으로 풍미를 더한다. 그러면 딱 엘프들이 먹는 선식의 맛을 돋워주는 훌륭한 드레싱이 탄생한다.
우리 앞에 놓인 채소에 그 드레싱을 뿌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래도 엘레나가 가장 적임자.
나는 그녀에게 드레싱을 뿌린 야채를 넘겨줬다.
“한 번 먹어보세요.”
모든 엘프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엘레나가 아무런 지체 없이 내가 준 야채를 입에 가져갔다.
식당에 처음 왔을 땐 그녀도 내 요리에 머뭇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한 신봉자다. 매일 와서 내 요리를 먹을 지경이니까.
“우와! 엘님 대단해요!”
엘레나는 답지 않게 과한 몸동작을 선보이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무래도 동족들에게 이 맛을 더 표현하고 싶어 하는 몸동작 같았다. 그거 고맙네.
“항상 먹던 야채가 한층 격이 올라갔어요. 여러 가지 맛이 나면서도 야채의 식감도 그대로 살아있고, 특히나 깊은 단맛과 향의 풍미가!”
“그래요? 고맙네요.”
엘레나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자, 나는 족장인 네리아 앞에 있는 채소에도 드레싱을 뿌려줬다.
엘레나 덕분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네리아는 얼떨결에 채소를 입에 가져갔다.
그리곤 깜짝 놀라서 기다란 귀를 쫑긋거린다.
“우리 엘프의 숲은 지금 큰 위기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니 좋아할 때가 아닌데도, 손님이 주신 이 선물이라는 건 대단하네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요?”
왠지 나에게 말한다기보다는 엘프들에게 말하는 기분이었다.
이거라면 생기 하나 없는 엘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 듯.
족장이 그리 나오자 엘프들은 나에게 강렬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엘프들에게 모두 드레싱을 뿌려주고 다녔다.
“어머나!”
“어머!”
“오오!”
사방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생전처음 미각이 자극을 받았으니 당연하리라.
“아니 이런 풀이 뭐가 맛있다고. 아무리 그런 걸 뿌려봤자.”
“난 고기가 좋다. 그대.”
세레이나와 루린은 내민 풀과 드레싱을 거부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쭈. 하지만 세레이나는 그렇다 쳐도 루린은 결국 내 편을 들게 돼 있었다.
내가 언제나 루린 편이듯이.
“루린, 이리 와, 아아.”
“흐엉?”
세레이나와 함께 풀을 보면서 고개를 내젓던 루린이 필살기에 이끌려서 결국 입을 벌리고 다가와 드레싱을 받아먹는다.
“야! 이 지조 없는 검은 자식아!”
배신당한 세레이나가 루린을 향해 달려갔다.
“흐음, 맛있다. 새콤달콤하다. 뭐 그대가 했으니 당연한거지만.”
퍼어어억!
그와 동시에 세레이나의 킥이 루린을 향했고. 두 사람은 곧 바닥에 구르며 엎치락뒤치락. 아주 그냥 쇼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악스러운 것은 그러다가 선글라스가 벗겨졌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 네리아의 눈이 루린과 세레이나와 마주친다.
곧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위, 위대한 존재이시여!”
“위대한 존재이시여!”
식사를 하던 엘프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일어나 땅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한다.
엘레나가 처음 루린을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니.
“호호호! 들켰군!”
세레이나는 뒹굴다가 일어나 격하게 웃기 시작했다. 못 말리는 녀석들.
“에, 엘레나! 위, 위대한 종족을 모시고 오다니… 이게 대체 무슨…!”
네리아가 졸도할 것 같은 기색으로 엘레나에게 말을 짜냈다.
“시끄럽다! 나에게 주목해라! 이 레드드래곤 세레이나님에게!”
세레이나가 발광을 하면서 폴리모프를 풀어버린다. 엘프의 숲 중앙. 건물이 있는 광장에 레드드래곤이 포효하며 날아올랐고 놀란 엘프들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마나의 폭풍이 일어난다.
“천박하다. 빨간 건 하여간.”
루린은 신경도 안 쓰며 세레이나와 싸우다 일어난 그 자세로 야채를 먹고 있다. 배가 고프긴 고팠나 보다.
“네리아님.”
“소, 손님이시여…? 그대는 인간… 어째서 위대한 분께 꿇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큰 화를… 받습니다!”
내가 족장을 부르자 네리아는 벌벌 떨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이 혼란스러운 광경을 해결하는 방법은 일단 세레이나를 얌전히 만드는 일이지.
“세레이나!”
“왜 불러! 이제부터 신나는 참인데.”
“셋 셀 동안 폴리모프해서 내 옆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엘프족 한가운데서 손들고 서 있게 할 거다. 언제나 말하듯이 그게 싫으면 그레이크시에서 떠나 줘야겠고.”
“그런 치사한!”
“하나… 둘….”
“알겠어! 알겠다고! 거참, 뭐 그리 숫자 세는 게 빨라!”
세레이나가 다시 폴리모프를 하더니 빨간 머리칼을 나부끼며 내 앞으로 착지한다.
“네리아님, 다른 분들과 함께 일어나세요.”
엘프들은 인간인 내 말을 듣는 드래곤을 보고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이다.
“우적우적, 엘프들아. 엘은 나와 동격이다. 그러니까 엘 말을 안 들으면 이 풀처럼 우적우적이다.”
엘프들의 눈에 드래곤임이 확실한 루린이 그렇게 떠들고. 역시나 드래곤임을 뽐내던 세레이나가 인간 상태로 내 옆에 서서 꼼짝 못하자.
“뭐, 일단은 대화를 합시다. 대화를. 일어나세요.”
엘프들은 이제 내 말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매우 겁먹은 얼굴로 벌떡벌떡 일어난다.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음이 확실한 엘레나가 곤란한 얼굴로 네리아에게 다가갔다.
“네리아님, 괜찮아요. 엘님은 드래곤을 뛰어넘는 마나를 가진 분. 그렇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분이세요. 걱정할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대체….”
네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엘프들이 자신들을 뛰어넘는 드래곤의 마나를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현재 내 마나는 드래곤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나는 내 마나를 자유자재로 숨길 수 있었으니까.
***
엘프들이 엘의 존재를 이해하기까지는 그 이후로도 한참이 걸렸다. 그만큼 인간이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믿기 힘든 광경.
그 사실을 이해한 후에는 엘에게 경외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날뛴 보람이 있지? 날뛴 나를 제압한 인간! 복종할 수 있는 구조라는 이야기지. 어때? 엘프들과 하렘을 만들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인데? 호호호.”
“너, 일부러 그런 거냐?”
“글쎄?”
세레이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엘을 쳐다봤다. 역시 이 여자는 머리에 여우를 키우고 있는 드래곤이다. 엘은 세레이나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네리아는 긴급하게 자리를 마련하여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이 왜 엘레나를 불러야 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실은 근처에 있는 이리만티움이라는 골드드래곤님이 계십니다.”
“골드드래곤? 그 탐욕적인 놈들이?”
세레이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듯.
“드래곤이 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골드인 것까지는 알 수가 없으니까.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깨어났어?”
“그렇습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세레이나의 질문에 네리아가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엘에게 골드드래곤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기 심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드래곤하트. 그 드래곤하트의 주인은 드래곤 로드다.
그리고 대대로 드래곤의 전체의 수장이라 일컬어지는 드래곤로드는 골드드래곤에서 나왔다.
이전의 로드가 엘에게 하트를 넘긴 후 죽은 다음 차기 드래곤로드는 아직 선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레드와 블랙이 더 기를 쓰고 싸우는 중이고.
드래곤로드를 배출한 종족. 하지만 커다란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금은보화와 아름다운 것을 숭배할 정도로 좋아하는 욕심꾸러기라는 것에 있다.
물론 그런 존재는 드래곤로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드래곤로드가 계속 공석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 엘의 추측.
“근처에 레어를 가지고 계신 이리만티움님께서 얼마 전 기나긴 수면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엘프들에게 공물을, 즉 엘프 하나를 시종으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나요?”
하여간 드래곤이란 존재는 이상한 놈들이 많다. 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네리아는 숨을 들이키더니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이 제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엘레나를 부를 일도 없었겠지만, 저를 비롯하여 셀리네, 노리아까지 모두 이리만티움님의 눈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족장 서열인 엘레나를 부르게 된 겁니다.”
엘의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엘레나는 네리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리만티움.
그것은 어린 시절의 엘레나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심어줬던 드래곤이다. 그렇기에 루린을 처음 만났던 날 그렇게 떨었을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상황은 분명히 자신에게 책임이 있었다. 서열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
“그런가요. 제 차례라면 제가 책임 지는 건 당연해요.”
엘레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네리아도 셀리네도 노리아도 다녀왔는데 자신이 거부하는 건 엘프의 숲에서 태어난 존재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물론, 부탁하면 된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부탁하면 자신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서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엘레나는 쉽게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미 엘에게 이곳까지 같이 와달라고 떼를 썼다. 그런 주제에 다시 또 부탁하는 건.
엘레나에게 있어서는 엘에게 귀찮은 존재로 찍히는 것이 두려웠다.
예전에는 몰랐다.
인간이란 존재.
아니 인간이란 존재를 넘어서서 타인에게 이런 감정을 품게 된다는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모든 감정은 첫 경험이다.
하지만 엘에게는 누가 봐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엘레나는 그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것만으로 행복한 자신의 욕심 없음이 우스울 때도 있었지만, 그건 원래부터 욕심이라고는 없는 엘프로 태어나서가 아닐까.
하지만 가끔 그런 그녀도 놀라게 하는 욕심이 있다. 죽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그 욕구.
엘과 루린이 그레이크시를 떠나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을 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졌던 바로 그때.
엘레나는 세상을 잃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엘레나가 혼자서 그런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세레이나가 대뜸 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뭐, 엘레나는 그레이크시의 의사니까. 줄 수야 없지.”
그 질문에 엘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도 그래서 따라온 거니까. 걱정 마, 엘레나.”
세레이나가 엘레나의 등을 토닥거렸다. 자신은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도 당연하다는 듯 나설 생각을 하는 사람들.
하긴, 이 사람들은 엘프가 아니다.
엘프는 부탁을 받으면 그 부탁이야 들어주는 종족이다. 하지만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일은 잘 없는 종족이었다.
부탁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던 엘레나에게는 그렇게 싱겁게 구원의 손길이 떨어졌다.
레드드래곤 세레이나.
사실 엘을 데려가자고 말한 것도 세레이나였다. 엘에게 와서 부탁을 하게 된 건, 자신도 왠지 엘에게 엘프의 숲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 그렇지만… 그런 폐를….”
엘레나가 무심결에 그 말을 내뱉었다. 순간 엘레나는 자신이 엘프인 것을 처음으로 한탄했다.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은 순전히 엘프의 특징이니까.
“레어에 같이 가서 설득을 하거나 실력행사를 하거나 뭐든 해보죠. 그러니 네리아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엘레나는 우리 그레이크시 식당의 일원 중 하나라서 끝까지 보호할 생각입니다.”
엘은 네리아를 향해 분명하게 일원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일원.
자신이 드래곤과 엘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엘레나는 처음 알았다. 그 말의 울림이 매우 좋아서 귀가 쫑긋거릴 정도로.
너무나 기쁜 말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결국 엘레나는 고개를 숙이며 호의를 받아들였다.
“엘레나, 엄청난 분들과 사귀게 되었구나.”
네리아는 이 모든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얼굴로 숨을 들이 삼켰다.
공물을 바치지 않고 끝날 수 있게 된다면야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 게다가 위대한 존재가 두 명이다. 반대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후암….”
모두의 표정이 진지한 그 순간 하품소리가 건물 안에 퍼진다.
엘의 등에 기대어 늘어져 졸다가 하품을 하던 블랙드래곤은 눈을 비비며 쏠리는 시선에 놀라 한마디를 내뱉었다.
“왜들 보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