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7)
# 107
Chapter.26 옆 동네 방문기
할 말이 없어졌다.
루린이 항상 말하는 자기 것이라는 주장은 이런 거였나? 처음 알았다.
서로의 것이라.
나도 루린의 것. 루린도 나의 것. 뭐 그런 부부 같은 말을 하고 있어 이 드래곤은.
하지만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말을 한참동안 곱씹었다.
그 말의 울림이 나쁘지 않아서.
“그런가….”
“그렇다!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대가 그러지 않았냐! 그대는 내 것이 되겠다고 했다. 왜 까먹었냐! 나는 그 말을 죽어서도 잊지 않을 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때는 네가 날 죽이려고 하던 것 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런 건 기억 안 난다. 꿈 꿨냐, 그대?”
불리한 기억은 뇌 속에 없다는 듯. 루린은 청문회 중인 정치인 같은 소리를 하더니 고개를 픽 돌려버렸다.
“모른다앗! 나 보지마라! 나 없다!”
루린은 지금 내 허벅지에 누워있는 상태. 그 자세로 몸을 돌려 누워서 얼굴을 내 배 쪽으로 오게 한 뒤 눈을 양손으로 가려버렸다.
덕분에 뺨만이 노출돼 드러난다.
그래서 그 볼을 콕 찔렀다. 부드러운 뺨이 내 손가락에 의해서 쏘옥 들어간다.
그러자 슬쩍 손을 치우고 눈을 뜨더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곁눈질로 나를 본다.
“그러니까 네가 날 보자마자 인간 따위 죽으라며….”
“싫다아아아아아!”
그 아련한 기억을 입에 담자 루린이 다시 눈과 귀를 가리고 내 배로 머리통을 파묻어 버렸다.
“대체 뭐하세요? 기억 안 난다며?”
“으으으으으아아아!”
루린은 결국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옥좌에 우뚝 서서 발을 쿵쿵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외친다.
“그때의 이 몸은 바보였다! 그대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대는 내 전부인데 그대를 죽이다니. 그건 자살이다! 으으으으으! 지워라! 그 기억은! 그대 머리에서 지워버릴 거다.”
“바보. 정신망각을 써봐야, 나는 너보다 마나가 높아서 소용없지요.”
“흐으으으으.”
“그렇게 분하다는 표정 하지마라? 네가 자초했던 일이구만. 어쨌든 이제 다시 움직이자.”
이 정도면 대전 앞은 조용해졌을 거다.
그렇다면 이젠 진짜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면 된다.
“문밖으로 나가면 바로 앞 쪽에 조그만 탑이 하나 있거든? 그 탑의 중간층으로 텔레포트하자.”
“알겠다. 여기 싫어졌으니까. 그대가 옛날 일을 이야기해서!”
루린은 반찬이 부실하다고 심통 부리는 결혼 40년차 남편 같은 소리를 하면서 쿵쿵거리며 문을 발로 차버렸다.
커다란 문이다.
대전의 높이와 비례하는 커다란 문.
공성전을 할 때 공격 측의 병사들이 그렇게나 부수려고 기를 쓰고 충차를 때려 박는 그런 크기의 문.
그 앞에 서 있던 병사들까지 튕겨나가 버렸고 나는 곧바로 루린과 껴안았다.
“저기 저 탑!”
“알겠다아!”
루린이 대답했고 눈앞에 어둠이, 곧 어지러움이, 그리고 하얀 빛이 차례대로 지나가더니 몸이 지면에 닿았다.
그 말인즉, 이동이 완료되었다는 거고.
우리는 아무도 없는 탑 안에 서 있는 중이었다.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드래곤 정도의 존재뿐이라는 사실은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은 모른다.
그렇지만 이곳은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 그것도 한 둘이 아니고 여러 명이다.
드래곤을 알아보면 벌어질 쓸데없는 소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중간층을 골랐다.
예전에 황궁에 있을 때 몇 번 들르기도 했던 장소, 마법사의 탑.
내가 알기로 이 시간이라면 모든 마법사들이 꼭대기에 있는 수석 마법사의 방에 모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보아하니 그 전통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루린과 함께 그 꼭대기 층을 향해 올라갔다.
“재미없는 마법진이다.”
루린이 대뜸 내뱉은 한마디.
꼭대기에 올라가니 어림잡아 6명 정도의 마법사들이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오는 마법진 외곽에서 뭔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궁정 마법사는 적어도 5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들만이 취직 가능한 엘리트 코스.
그 중에서도 수석 마법사는 7클래스 이상에 도달한 마법사가 맡는 것이 보통이다. 내 목표가 바로 그 7클래스의 마법사였다.
황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힘들다.
황궁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다 숙소도 일정치 않다. 황궁 안에서 최소한 궁정 마법사 정도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황궁 기사단과 더불어 궁정 마법사.
그 두 단체만이 황궁 안에서 지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7클래스 마법사이자 백작이라고 불리는 메드린느는 황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적절한 인물이었다.
그 메드린느가 있는 곳이 바로 이 황궁 안 마법사의 탑.
갑자기 등장한 루린이 재미없는 마법진이란 표현을 쓰는 바람에, 모든 마법사가 이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중에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실험을 지켜보던 메드린느도 있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곤 매우 놀라 입을 벌렸다.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이랄까?
그러더니 의자에서 번쩍 일어나 내 앞으로 후다닥 달려와 무릎을 꿇어버렸다.
“에, 엘르시온님!”
사색이 된 얼굴로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나의 마나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이기에, 자신의 부하들이 보고 있다는 것조차 망각한 채 경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오랜만이다?”
마법사에게는 클래스가 신분을 가르는 최고의 기준이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현 황제가 즉위한 후 마법사로는 처음으로 백작의 칭호를 받았고, 평소에 매우 도도하며 거만한 그녀가 이런 행동을 보이자 주위 마법사들은 매우 놀란 얼굴로 뭔가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뭣들 하느냐. 이 분은…!”
“쉿!”
나는 메드린느의 행동을 막기 위해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그 뜻을 알아챘는지 메드린느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흠흠,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손님과 의논할 게 있으니 모두 물러가라!
마법사들의 얼굴에 의문이 퍼진다.
자신들이 알기에는 공작급 이상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저자세를 보이지 않는 그녀가 떠받드는 태도를 취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수석마법사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마법사들은 허둥지둥 자리에서 떠나갔다.
결국, 남은 건 나와 메드린느. 그리고 마법진에 장난을 치고 있는 루린 뿐이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기별을 주셨으면 바로 나갔을 텐데요.”
호감이 간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매우 깍듯하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만 않는다면 더는 탓할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황제를 만나러 왔으니 조금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폐, 폐하를 말입니까?”
“그래, 황제폐하.”
“실례지만, 엘르시온님이라면 알현을 신청하시면 언제든지 폐하를 뵐 수 있을 것 같사온데….”
메드린느가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고개만을 까닥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당연히, 몰래 만났으면 좋겠으니 하는 말이다만?”
“아…!”
“지금 황제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내 주겠어? 시끄러워지는 건 질색이니 조용하게 황제만 만난 후 떠날 생각이니까.”
“그렇습니까…? 어디 계신지는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래 뵈도 궁에는 여러 연줄이 있습니다!”
“그래? 그거 잘됐군.”
“네, 네! 저, 절 거둬주신다면 이 몸 바쳐서….”
“잠깐잠깐, 난 은퇴한 요리사라고? 너무 앞서가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다시, 세상에 나오시려는 게 아니셨습니까?”
메드린느가 뭔가 아쉽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건 절대 아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사고를 쳐놓고 다시 부하가 되겠다고?”
“그건… 엘르시온님, 그것은….”
메드린느가 사색이 된 얼굴로 어쩔 줄 모르며 몸을 움찔거렸다.
예전에 그녀가 내 직속 부하였던 때의 이야기가 또다시 떠오른다.
내가 몬스터 연합군 총대장의 자리에 올라있을 때다.
이제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하튼 부탁 좀 한다. 사소한 일이니까 조용하게 처리해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메드린느는 미련이 묻어나는 얼굴로 일어났다.
“다녀와. 옥상에 있을 테니.”
“예, 예!”
메드린느가 탑에서 내려간다. 동작이 빠릿하다. 그걸 지켜 본 후 루린과 함께 마탑의 옥상으로 이동했다.
황궁에서 활약할 당시 지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니 솔직히 매우 익숙하다. 물론 여러 가지로 바뀐 것도 많지만.
옥상으로 올라오니 거센 바람이 살랑인다. 높이는 높지 않지만 그래도 주변의 다른 궁들은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저 수 많은 궁들 중에서 황제가 어디있는지만 알아내면, 이동은 금방이다.
“오, 시원하다.”
루린의 머리카락도 마구 흩날린다. 옷자락도.
고운 얼굴에 바람이 부딪히자 눈썹을 찌푸린다. 눈을 모기만큼 뜨고는 옥상 밖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왜 웃긴지 모르겠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 옆에 섰다. 그러자 루린이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물었다.
“그대, 언제까지 여기 있냐? 전에처럼 오래 있냐?”
물론 대답은 노다.
“그럴 리가 있나. 요구할 것만 전하고 금방 돌아갈 거야. 물론 레어로 가는 건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다만.”
“뭐, 나는 상관없지만. 그대가 가자고 하면 지옥도 괜찮으니까. 꺅!”
대사를 흘리는 중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루린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얼굴에 찰싹 붙는다. 입술에도 머리카락이 붙고 아주 가관이랄까.
“퉷퉷! 내 머리가 날 공격하다니 나쁜 녀석이다!”
“바보야. 이 경우에는 바람이 공격한거지. 아니 뭐 공격까지도 아니지만.”
“히히히.”
“왜 웃어?”
“그대가 얼굴을 만져서.”
잔뜩 헝클어져 정면에 늘어진 루린의 기다란 머리를 정리하는 중인데 그게 좋단다.
기분 좋아 보인다.
바보잖아. 보통 이런 걸로 기분이 좋아지나?
“루린….”
멋있는 황궁 풍경. 그리고 루린의 대사. 뭔가에 홀린 듯 나는 루린의 턱을 잡았다.
“그대?”
루린이 나에게 턱이 잡힌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왜 그러냐는 얼굴이다.
“그게… 눈 감아봐.”
“어어?”
뭔가 센티멘탈해져서 루린에게 더 다가갔다. 루린은 눈을 감으라니 별 다른 의문도 없이 눈을 꼭 감는다.
“저, 저기….”
하지만 바로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메드린느의 목소리에 놀라서 루린의 턱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흠, 흠.”
그리곤 헛기침을 한 후에 메드린느를 쳐다봤다.
“와, 왔나?”
“예! 폐하가 어디 계신지 알아냈습니다!”
메드린느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연애랑은 거리가 먼 마법사이기 때문인지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하고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칭찬을 갈구하는 표정이다.
“그래서, 황제는 어디 있는데?”
“지금, 프레라님과 같이 계십니다. 14번째 후궁이십니다.”
“14번째? 거긴 또 어딘데?”
엄청나게 늘었구만. 새삼 감탄하며 묻자 메드린느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물론, 물리적인 거리는 어차피 상관없다.
중요한 건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지의 여부일 뿐.
“루린, 가자. 엥?”
장소를 알아냈기에 루린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루린은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를 바라본 상태에서 눈을 감고 정지상태다.
“야, 루린! 눈 떠. 눈!”
그러자 루린이 눈을 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신경질을 낸다.
“뭐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냐! 왜!”
“그, 그러게?”
“그대 옛 동료가 그랬다. 눈 감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그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거짓말인가, 으으, 가만 안 둔다.”
엉뚱한 데다 화를 내기 시작했지만 그냥 놔뒀다. 그리고 텔레포트를 종용했다.
메드린느야 루린의 정체를 알고 있다. 드래곤 전쟁당시, 필연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으니. 물론, 그 비밀을 누설할 생각은 없을 거다.
그것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메드린느 정도 되는 마법사가 모를 리가 없으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