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10)
# 110
Chapter.26 옆 동네 방문기
***
“마음에 드십니까?”
“그렇고말고.”
리카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에든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50줄이 넘어서도 여전히 색을 밝히는 남자.
그럴수록 상대하기는 편하지만.
“그렇다면 이걸 좀 부탁드립니다.”
리에든이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들었다. 물론 뇌를 파괴하는 그 약은 아니다. 이것은 극약이었다. 뇌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먹으면 죽는다. 소리 소문 없이 생을 마감하게 만드는 극약.
차라리 뇌만을 파괴하는 그 약보다 만들기도 편한지라 자주 사용하는 약이었다.
“이, 약의 특징은 조금 쓴 맛이 있다는 겁니다. 독약으로 서는 부적격하죠. 독약이란, 무색무취,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마시게 해야 하는 예술품이 아니겠습니까?”
“이걸… 어떻게?”
리카르도가 의문을 뿜어냈다. 리에든은 계속해서 웃을 뿐.
“다만, 이미 쓴맛을 느낀 순간 죽어버립니다. 그 정도의 극독이라서요. 당신의 영주성에 있는 남작인가 뭐시기인가에게 선물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도에 알아봤으나, 황제가 갑자기 나서서 시골의 귀족을 자신의 직속으로 삼아 내려 보냈다고 한다.
공작들 말로는 뒷방에서 놀기만 하다가, 원래부터 황제 직속령인 데드란시가 공작령으로 넘어갈 것 같으니, 급하게 아무귀족이나 추려서 내려 보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데드란시의 사정도 모르고.
그냥 직속령을 뺏기기 싫다고 손을 내민 뭐 그런 거니 평소처럼 도망치게 만들라고 그동안 그렇게 돈을 쏟아 부은 귀족의 전갈이 있었다.
그럼 더 망설일 것도 없다.
놈은 데드란시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 약은 쓰긴 하지만, 흔한 독약과 다릅니다. 독약으로 죽었다는 걸 모를 테니, 그저… 돌연사로 처리하세요. 젊은 사람이 일찍 죽게 되다니 안됐네요.”
***
이곳에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현재는 집무실에서 멍 때리는 중이고.
똑똑똑-!
마침 들리는 노크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부임해 온 후로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척. 그냥 그렇게 있었다. 데드란시의 정상화는 리에든과 그 무리를 박멸하고 나서부터니까.
“들어와라.”
이볼크 남작을 연기하며 대답하자 문을 열고 흰머리의 남자가 들어온다. 대대로 데드란시의 영주성을 관리하던 리카르도라는 시종장이다.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시종장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물론 불편한 점은 없다. 불편해도 상관없다.
계속 머물 것도 아니니.
하지만 이 남자.
데드란 백작 체포당시에는 백작에게 얻어맞는 등의 불화가 심했기에 오히려 다른 귀족처럼 수도로 압송되지 않았다.
그 후로는 뭔가 뒷배라도 둔 것처럼 여전히 시종장 임무를 수행중이다.
데드란 백작 이후의 대관들에게도.
베르나에게 물었더니 어릴 때부터 매우 음흉한 사람이라고 했다. 데드란 백작과 쏙 닮았다고.
심지어 데드란 백작이 도구로 생각하는 자신들 자매에게 손을 대려고 하기까지 했다는 파렴치한 이야기도 들려온다.
미친놈 아닌가?
어째서 데드란 백작과 같이 싸잡혀 들어가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때의 내 목적은 데드란 백작의 처리였기 때문에 다른 놈들까지 어찌 되는지 살피지 않기는 했지만.
리카르도는 계속해서 내 앞에서 실실거린다. 그 뒷모습을 아는 상황에서는 그저 가증스럽다.
“딱히 불편한 건 없다.”
“그럼 다행입니다.”
리카르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쟁반에 든 차와 다과를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남방 왕국에서만 나는 특산품으로 특유의 향기가 일품인 차입니다. 그리고 다과 또한 최고급입니다.”
“그런가? 그거 고맙네. 거기 놓고 가도록.”
그러자 리카르도가 뭔가 아쉬운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 쟁반을 들고 물러갔다.
하지만 놓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찻잔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이게 뭔데?
“이게 뭐냐?”
창문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루린이 킁킁거리며 다가온다. 먹을 거에 반응하는 루린의 코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니까.
***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조금 열어놨기에 가능한 일이다.
“잠 좀 깨, 이제 곧 밤인데 그러고 있냐.”
“그대도 잠 깨라. 나는 원래 이런다.”
목소리를 엿들으며 리카르도는 손톱을 깨물었다. 빨리 차를 마시고 죽든지 과자를 먹고 죽든지 할 것이지 사람을 감질나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거 향기가 좋은 것 같다!”
“그래? 마실래?”
드디어!
리카르도는 문 앞에서 쾌재를 불렀다. 차를 마시라고 권하는 목소리. 너무나도 바람직하다. 죽어줘야 할 놈들은 빨리 죽어줘야 하는 법.
“그치만 아까 그놈이 가져온 거라 짜증난다.”
“왜?”
“맘에 안 든다.”
여자 쪽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맘에 안 든다니, 리카르도는 열 받아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감히 나를 평가해?
쓰레기 같은 것들이. 리카르도는 땅바닥으로 퉷 침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맘에 안 드는 커플이었다.
“뭐 향기는 좋네.”
남자쪽이 먼저 차를 들었는지 후르르 마시는 소리가 났다.
“크윽, 쓰잖아. 냄새만 좋은데? 남부 왕국에 이런 차가 있어?”
“쓰냐? 그럼 난 안 먹는다. 쓴 건 싫다.”
오도독.
그리고 곧 다과를 깨무는 소리가 들렸다.
푸우우웁!
퉷! 퉷!
“이, 이이이이거도 쓰다! 그 맘에 안 드는 놈! 음식도 쓰게 하고, 역시 죽여야 한다. 그대, 너무 쓰다! 이거 어떡하냐. 입 안이 얼얼하다. 으아아아앙! 짜증난다!”
징징거리는 목소리.
하지만 이상했다.
리에든이 말하기로 쓴 맛을 느끼는 순간 죽는다고 그랬다.
하지만 둘 다 쓰다는 평가만 내리고 죽지를 않고 있었다. 놀란 리카르도가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어젖혔다.
분명히 찻잔이 비워져 있고 집무실 바닥은 여자쪽에서 뱉은 다과로 지저분했다.
지금도 퉷퉷거리며 발을 구르고 있다. 호들갑 그 자체다.
양이 부족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리에든이 말하길 조금만 넣어도 죽는다고 했고. 분명히 한 병을 모조리 듬뿍 넣어줬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엘은 심장에 박힌 드래곤 하트덕분에, 루린은 드래곤이라서 독 따위 소용없다는 걸 리카르도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으니.
***
제국 남부에서 암약하는 메르힌의 본부가 최근 데드란으로 이동했다. 메르힌은 살수들이 모인 비밀조직이다. 요인 암살을 주로 시행하며, 귀족들의 구린 일을 도맡아 하는 조직이다.
그 메르힌의 총수인 메칸은 최근 리에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둘이 작당해서 금고를 털어서 도망치려 했다는 건가?”
“사, 살려주세요. 총수님! 그건 다 사정이! 사정이 있습니다!”
메칸은 본부의 창고에서 조직원 두 명을 심문하는 중이었다. 매우 전형적인 광경.
메칸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입니다! 제 아들이, 아들이 아파서! 총수님!”
“호오, 그럼 넌?”
메칸이 시종일관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남자의 옆을 가리켰다.
“저는 이놈의 사정이 딱해서….”
“흐흐흐, 이놈들 좀 보소? 메르힌의 금고는 곧 내 금고다. 내 돈을 훔쳐가려 한 주제에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면 끝이야? 끝이냐고, 엉?”
메칸이 꿇어앉힌 남자들의 이마를 손가락을 툭툭 밀었다. 자기 것에 손을 대는 부하라니.
더 두고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메칸이 가장 못 참는 것이 자신의 것을 건드리는 것이다.
“둘 다 묻어.”
메칸이 결국 다른 부하들에게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암살조직의 총수. 당연히 검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재밌는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창고에 등장한 남자.
리에든과 그의 오른팔인 베르네토였다.
“허어, 이거 리에든님, 어인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조금 부탁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러십니까? 그럼 들어가시지요.”
“아니, 그전에… 재밌는 일을 하고 계셨는데 조금 참견해도 되겠습니까?”
리에든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물었다. 메칸은 리에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리에든의 수완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최근 메르힌에 돈이 억수로 굴러들어오는 것도 이 남자 덕분이니.
게다가 실력도 자신과 비슷하고, 이 동맹은 당분간 쭉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메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맘대로 하시지요.”
대답을 들은 후 리에든은 꿇어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재밌는 놀이가 있습니다.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리에든은 실실 웃으면서 품에서 단검 두 자루를 꺼내더니 두 남자의 앞에 툭 하니 던져 놓았다.
그리고 자신도 쭈그리고 앉아서 단검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고 바닥에 단검을 내리꽂았다. 그러자 단검의 칼날이 칼자루 안으로 쑥 들어갔다.
“둘 중에 하나는 가짜 칼날입니다. 줄 테니 서로 찌르세요. 한 명은 살 수 있답니다? 그냥 있으면 둘 다 묻혀 죽는데,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가 생기는 겁니다. 좋은 도박 아닌가요?”
리에든은 단검을 들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품 안에서 섞더니 다시 두 남자의 앞에 던져놓았다.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봤다. 그런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리에든이 메칸을 향해서 물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돕기 위해 금고에 손을 댔다죠?”
“뭐, 그렇습니다. 매우 괘씸하죠. 차라리 일을 늘려달라고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배신이자 반역행위입니다.”
“후후, 한 명은 살려줘도 괜찮지 않습니까. 서로를 도우려고 하던 남자들이 이제는 서로 죽이려 하는 모습. 얼마나 즐겁습니까?”
리에든이 음흉한 미소와 함께 말하자 메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렇군요.”
그 악취미적인 발상이 메칸의 마음에도 들었기 때문이다.
“저기 보세요.”
이미 두 남자는 각자 단검을 들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 방에 끝내세요. 급소로 힘껏 찔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 사람을 살려주겠어요.”
리에든이 다시 말했다.
그러자 두 남자가 메칸을 향해 소리쳤다.
“그, 그럼 정말로 살려주는 겁니까?”
“뭐, 그러기로 했으니 그래야지.”
메칸이 대답하자 두 남자가 다시 서로를 노려본다. 이미 동료애고 뭐고 사라진 눈빛이었다.
“형님 이러깁니까?”
“시끄러…! 애당초 네놈이 완벽한 계획이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어쨌든 둘 다 암살자들. 한 번에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급소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단검을 상대방의 심장에 냅다 꽂았다.
피가 솟구친다.
살아난 쪽은 없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 다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네, 네놈…!”
풀썩.
동시에 쓰러진 두 남자.
리에든은 그걸 보면서 매우 커다랗게 웃기 시작했다.
“이런? 언제 바꿔치기 한 겁니까?”
메칸조차 놀랐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가짜단검을 섞기 위해 리에든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진짜 단검 두 자루를 두 사람 앞에 던져놓았다는 것을.
“하하하하, 역시 리에든님. 저는 아직도 하수입니다 그려.”
“뭘 이런 걸 다. 삶에 대한 약간의 희망이 솟아났다가 죽어나가는 모습, 정말로 즐겁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즐겁습니다. 하하하!”
두 남자는 그렇게 웃으면서 본부의 건물로 올라왔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자마자 성격 급한 메칸이 질문을 시작했다.
“물론 저런 여흥을 위해서 여기까지 행차하신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십니까?”
“새로 영주 대리가 왔다고 합니다.”
“호오, 또요? 거참 지겹네요.”
“제가 원하던 백작이 아니고 갑자기 또 사람이 바뀌어서, 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
리에든이 손을 목으로 가져가 긋는 시늉을 했다. 메칸이 곧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사람입니까?”
“별거 없습니다. 여러 루트로 조사해 봤는데 그냥 시골 남작이라고 합니다. 황제의 변덕이라고 하던데, 이놈만 없으면 곧바로 제 뜻대로 상황이 돌아갈 거 같은데….”
“뭐 그게 어렵습니까. 기사단이 없는 남작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흐흐흐.”
“하지만, 그래도 귀족이니 확실한 처리를 부탁합니다. 먼저 독약을 사용해 봤는데, 시종장놈이 못 미덥게도 실패해버렸지 뭔가요? 보아하니 약을 바닥에 쏟기라도 한 거 같은데, 자기 실수는 생각 안 하고 변명만 해대는 꼴이 마음에 안 듭니다. 쯧쯧.”
“여부가 있겠습니다. 제 바로 아랫놈을 보내겠습니다. 실력은 확실합니다. 메르힌의 넘버 투라고 불리는 놈입니다.”
메칸의 말에 리에든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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