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20)
# 120
Chapter.29 봄의 꽃
“곤란한 일이요?”
루린의 생일이 지나면, 조금 내 마음에 솔직해지겠다고 마음은 먹었으나 그것과 결혼은 별개의 일이다.
아직 연인관계도 거치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결혼이라니.
루린에게는 너무 빠른 일이다.
그리고 약속한 것도 있다.
루린의 어머니의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그런 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그녀의 원수를 갚기 전에 결혼이란 것은 시기상조.
사랑하는 것과 결혼은 여러 가지로 다른 이야기니까.
모든 것을 처리한 뒤, 결혼해서, 루린과 아이를 가지고…….
아. 생각이 어디까지 발전하는 거지.
“곤란한 일은 곤란한 일이다. 어쨌든 루린이 자네를 너무나도 좋아하니 하는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이런 말도 하지 않겠지. 곤란해지건 말건 말이다.”
“진정하시죠. 너무 급한 것 같습니다. 루린의 원수를 찾아 죽이고 좀 더 우리 서로가 정신적으로 성장한 후에 결혼을 논해도….”
“…원수?”
“네 원수요.”
“자네, 설마 자네도 그 일이 루린의 어미가 누명을 쓴 거라고 생각하나?”
“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자 장로는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루린이 그렇다고 했으니까요.”
“그 아이가 그 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다고 그걸 덥석 믿는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장로를 향해 단호하게 내 마음을 대답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루린이 믿는 일이니, 저는 증명해 보일 겁니다. 루린이 믿는 진실을.”
“…….”
장로가 내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나도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마치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길거리의 돌을 금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 거 아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이 루린을 믿지 않아도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루린의 그 믿음을 증명해주기 전에 결혼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뭐 좋다. 아무튼 루린을 데려가겠다.”
“네?”
장로는 욕탕에서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나이를 잊은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면서.
“성체의식은 성지에서 이뤄진다. 800살의 생일에 성역에 들어가면 몸이 빛나게 되지. 바로 그것이 성체의식이니라.”
“음, 그럼 같이 가야겠군요.”
“성체의식은 인간이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혼자 보낼 수는. 게다가 혼자 가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루린이라면 당연히 나랑 떨어지지 않겠다고 하겠지.
루린에게는 텔레포트가 있으며, 또 이 장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손녀딸에 대한 마음이 지극하니, 무슨 일이 있을 리는 없다.
메테오를 보여준 지도 얼마 안 됐으니 더더욱.
하지만 혼자 보내기는 싫다.
“장로.”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루린이 서 있었다. 우리 대화를 들은 걸까?
“그래, 할애비다. 돌아가자. 성체의식을 진행해야지. 그거 며칠도 성지에 안 오겠다고 고집부릴 생각이냐?”
“아니다. 갈 거다.”
루린은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힐끗 보았다.
나도 그녀를 쳐다보자, 루린은 갑자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볼을 부풀린다.
저 2종 세트는.
그러더니, 고개를 홱 돌리는 3종 세트까지 선사하며 다시 장로를 보았다.
“성지에 갔다 온다. 그대.”
그리곤 한마디를 남기더니 사라져 버렸다. 장로와 함께.
***
“스승님. 저번에 말씀하신 데드란시의 공장부지 계획서입니다.”
“음, 괜찮네요. 공장 인부 모집도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그레이크 소년이 여러 장의 서류를 보여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계획하고 시킨 일이고, 그저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이니 별건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서류를 살폈다.
“좋네요.”
“네, 그 시계를 이 세상에 공급한다는 그 계획이, 엄청나니까요. 대륙전체에 공급되면 수익도 수익이고, 시간의 개념이 바뀌게 되니… 저기, 그런데 스승님?”
그레이크 소년이 먹이를 빼앗겨 불안한 얼굴의 강아지 마냥 내 눈치를 살피면서 눈알을 굴렸다. 뭔가 겁에 질려있는 것도 같은 표정이어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왜 그럽니까?”
“아니, 그게 혹시 뭔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까부터 표정이 많이 안 좋으셔서… 제가 뭔가 잘못한 일이라도?”
“아뇨, 일처리는 잘 하셨어요. 마음에 듭니다만.”
“하지만, 스승님. 그, 뭔가 화난 것 같으셔서.”
그래 보였어? 전혀 아니다. 그레이크 소년에게 화날 일이 뭐가 있나.
나는 다시 한 번 아니라고 부정해 주고는 서류를 모아서 그레이크 소년에게 넘기며 말했다.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요. 아무튼 이대로 진행합시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레이크 소년은 뭔가 미심쩍다는 얼굴이었으나 그대로 고개를 꾸벅이고 사라졌다.
모르겠다.
아무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그것이 얼굴에 드러난 걸까.
아무래도 문제는 그거겠지.
루린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져 버린 것. 아니, 떠나가기 전에 무려 3번이나 신호를 보내긴 했지만. 대체 왜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옆에 있는 거 말고는 모든 게 귀찮고 짜증난다고 할 땐 언제고?
성체의식이야 중요하긴 하지만 같이 가자고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안 간다고 뻐기거나.
루린의 성격상, 아니, 나의 자만심 이었나.
그럴 리가 없다.
평소의 루린이라면 절대로 안 하는 태도. 내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떠나가 버린 그 모습.
그것이 문제라면.
모르겠다.
그 기분은 저녁이 되도 사라지지 않았다.
확고하게 믿었던 감정에 뭔가 도끼가 꽂힌 기분일까.
식당을 열어야 하는데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라서. 솔직히 요리고 뭐가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그 끓어오르는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활활 끓어올라서.
“여어, 우리 왔다!”
그 와중에 세레이나가 기세등등하게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그 뒤로 엘레나도 따라 들어왔다. 세레이나는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입을 연다.
“어, 까만 거는?”
“걔, 성지에 갔어. 아니 그전에, 드래곤의 마나가 안 느껴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잖아?”
“그러게. 아까 드래곤 하나가 더 느껴지더니, 둘 다 사라지더라고.”
세레이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혼자 갔어?”
“장로랑 같이 갔다니까?”
“어머? 호호, 네 표정을 보니 그 녀석 드디어 진짜 내 말대로 했군.”
빨간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재밌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는다.
레드드래곤탕을 해먹을 때인가.
저것이 왜 저래?
“레드드래곤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냐아냐. 나, 아무 말 안 했는데. 호호, 그렇지 엘레나?”
“해, 했는데요?”
“뭐어?”
놀랐다. 엘레나가 그 무서워하는 드래곤을 넘어서서 진실을 말할 줄이야.
그러자 세레이나가 나를 보더니 숨을 내쉰다.
“하여간. 다 소용없다니까. 같이 사는 동지건 뭐건. 아무튼, 성체의식을 하려면 당연히 성지에 가야지.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한 걸 하러 갔는데 왜 표정이 썩어가?”
“내가?”
또다.
그레이크 소년에 이어서 세레이나도 내 표정을 지적하고 나섰다.
“내 표정이 어때서?”
단체로 왜들 그러는지.
“거울을 좀 보지 그래?”
“시끄럽고, 오늘 손님 안 받는데 엘레나씨와 너를 쫓아낼 순 없고, 흐음 간단하게 해줄 테니 먹고 가.”
나는 오늘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클로즈 팻말을 식당 밖에 걸고 돌아왔다. 세레이나와 엘레나가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세레이나는 흐응, 이라며 묘한 표정이고 엘레나는 나를 매우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무시한다.
나도 밥은 먹어야 되니.
양파를 마구 채 썰어서 냄비에 넣는다. 그리고 버터와 치킨육수를 조금 넣고 마구 볶는다.
그리고 감자와 생크림을 넣고 우유도 조금 넣은 뒤 끓이면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지.
여기에 치즈가루도 넣고 소금도 넣고 후추도 넣고, 구운 베이컨을 집어넣으면 재빠르게 요리가 완성된다.
엘레나는 베이컨이 안 들어간 것.
나하고 세레이나는 들어간 걸로.
요리를 접시 3개에 나눠 담은 후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맛도 안 난다.
왜 입맛까지 없는 거지?
“야아아아아! 이게 뭐야! 으으읔! 메슥거려.”
“엉?”
세레이나의 비명이 귀청을 때렸다. 아니, 공짜로 밥해줬더니 이게 무슨 적반하장이야.
표정을 찡그려 주자 오히려 저쪽이 더 씩씩거리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아니, 이거 왜 이리 달아? 달아도 너무 단데? 적당히 달면 원래 단 건 줄 알고 먹겠는데! 이건 심하잖아!”
“응?”
방금 나도 먹었는데 별 이상 없었는데? 엘레나의 표정을 봤다. 머뭇머뭇 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숙명에 대해서 고뇌하는 것 같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즉, 세레이나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세레이나의 접시에 든 스튜를 떠먹었다.
“읔.”
“거봐 맞지?”
이건 뭐지.
요리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치즈가루를 꺼낸 적이 없다. 치즈가루를 꺼낸 적이 없는데 치즈를 넣었다고 생각했다니?
설탕?
소금대신 설탕. 후추대신 설탕. 치즈가루 대신 설탕을 넣었네.
“그러네….”
이런 실수는 식칼 잡고 처음이다. 넣어야 할 걸 실수한 것 말이다. 내가 먹던 접시에 든 스튜도 마찬가지다. 정신을 붙잡고 먹으니 맛이 느껴진다. 아까는 그냥 정신이 멍해서 그저 요리를 퍼붓느라 몰랐던 걸까.
“엘레나님. 미안해요. 오늘은 내가 상태가 좀 많이 안 좋은 것 같네요.”
“에, 엘님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건!”
엘레나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당탕, 의자가 넘어진다. 평소라면 그 의자를 먼저 챙겼을 엘레나가 내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와 두 손을 맞잡고 나를 올려보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다. 엘레나는 매우 쭈뼛거리며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매우 조심스럽게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여, 열은 없어요. 하지만….”
“아냐, 내가 보기엔 아파서 그런 게 아니야 저건. 어이없네. 훗, 까만 거만 좋은 일이구만. 엘레나, 돌아가자. 쟨 그냥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가장 좋아.”
“네? 하지만 상태가 안 좋으시다고, 정확한 진찰을 해봐야!”
“아니 그러니까 병이 아니라니까? 정신 좀 차리게 그냥 놔둬.”
“네에? 엘니이이임!”
엘레나는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서 안 떨어지다가 세레이나에게 뒷덜미가 붙잡혀 끌려가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세요오오!”
멀리서 메아리처럼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점점 목소리의 크기가 줄어들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클로즈 팻말을 걸어놨기에 식당 안은 조용하다. 하여간 시끄러운 녀석들이다.
“루린, 저거 치우고 잠이나 자자.”
그래. 인정한다. 확실히 나는 이상하다. 나도 모르게 루린을 찾아놓고 입을 막았다. 루린은 성지에 갔다.
지금 이게 무슨 미친 짓 이지?
***
새벽.
잠에서 깨버렸다. 아니 잠에 못 들고 있다. 자려고 할수록 잘 수가 없다.
자꾸 날 그냥 두고 가버린 루린이 머릿속에서 마구 맴돈다.
그게 그렇게나 충격이었나.
스스로도 웃음이 나온다. 아예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며칠 성체의식을 하겠다고 간 것뿐인데.
그래, 그것뿐인데.
감정이 계속 뒤죽박죽 난동을 부린다.
화가 났다가 이해할 수가 없다가 모르겠다가, 최종적으로는 고작 하루뿐인데, 내 옆구리에 없는 것이 화가 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