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25)
# 125
Chapter.30 시계
그다지 변한 건 없다.
내가 조금 더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는 걸 제외하면.
물론 그것만으로 뭔가 커다란 변화가 생겨날 리는 없다.
우리는 이대로 천천히, 천천히, 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것이다.
사소한 변화 중에 가장 큰 것은 루린의 버킷리스트가 꼬옥에서 쪼옥으로 변해버렸다는 점이랄까.
물론 당연히, 꼬옥 때처럼 자주 해줄 생각은 없다.
그런 건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왔을 때, 즉 분위기에 따라서 일어나는 사랑의 행위지, 뭘 시도 때도 없이 입술 박치기를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루린이 변한 것은 그 정도.
그리고 내가 변한 것을 손에 꼽자면, 이 녀석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어졌다는 정도다.
루린은 지금 내 위에서 자고 있다. 침대가 맨 아래. 그 위에 나. 그리고 그 위에 루린.
웃기지도 않는 3단 구조다.
물론 내 몸 위에 퍼져서 뒹굴거리는 고약한 잠버릇을 가진 우리 드래곤님 또한 좋아하지만.
이 녀석은 평소에는 얌전하게 자는 편인데, 피곤하기라도 하면 잠버릇이 매우 괴랄해지는 습관이 있었다.
그럴 때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루린을 옆으로 치워야 한다. 그러면 빙글빙글 돌아가 혼자서 이불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가는데, 이럴 때면 진짜로 자고 있나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성체의식으로부터 한 달.
크게 변한 것은 없는 우리의 일상.
여전히 진도는 키스뿐이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금 더 깊게 연결되었다고 믿고 있는 지금.
이제 남은 것은 루린 어머니의 사건이겠지.
원수를 갚고 오명도 씻고, 루린이 드래곤들 사이에서 그 어떠한 불명예조차 받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가장 큰 숙제다.
물론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적의 실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니, 그 실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하겠지.
그 머리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벌려놓은 일들부터 해결할 생각이다.
지금 나는 그레이크 소년과 함께 이 세상에 시계라는 물건을 도입시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 시계를 생각했을 땐, 데드란시를 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겸사겸사의 느낌이 돼 버렸다.
현대보다 과학의 수준이 많이 뒤처지는 세상이지만, 솔직히 불편한 건 그다지 없다.
현대에서 과학으로 해결하던 부분은 마법과 루린으로 해결한다. 오히려 과학을 가뿐히 뛰어넘는 생활이 가능하다.
집 앞에 온천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시간을 정지해서 식재료를 상하지 않게 해 냉장고보다 더 월등한 보존방법을 쓸 수 있으니.
또, TV보다 루린을 보고 있는 편이 더 즐겁고.
그러니 현대의 문명은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딱 하나 불편한 게 있다면 그건 시간의 개념이다.
이 세상에는 시계가 없다.
나 혼자서 하는 일이야 상관없다. 혼자 시간을 맞춰 쓰면 되니까. 하지만 식당의 오픈 시간과 클로즈 시간도 그렇고, 식당에서뿐 아니라 시장에서도 좀 더 정확한 시간을 알고 장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시계가 있으니, 시간에 맞춰서 가게에 가는데, 다른 상인들은 문 여는 시간이 너무나도 제각각이다.
매일매일 커다란 오차가 발생한다.
특히 구름에 해가 가려서 오전인지 오후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날씨가 지속되면 이런 현상은 더더욱 심해진다.
그래서 시계다.
그리고 이왕 도입시킬 거라면 그것으로 자산을 불리자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또, 그 시계공장을 데드란시에 만든다면, 공장의 근로자 수요로 인한 고용창출로 데드란시의 백수문제도 해결된다.
데드란시에서 회수한 횡령금과 리에든의 재산 등을 자본금으로 삼아 한 번 제대로 일을 벌여보자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쿼츠시계나 손목시계 같은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시계를 도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이쪽에서도 어느 정도 구현 가능한 시계.
그것을 찾다가 선택한 것은 태엽식으로 돌아가는 추의 원리를 이용한 괘종시계였다.
커다란 몸체와 커다란 톱니바퀴.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작고 예술적임 부품과 다르게, 큼지막한 부품들로 이루어지기에 어느 정도 기술력을 가진 드워프가 앞장선다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괘종시계를 만들어 전국에 팔기 시작하면 그만큼 돈이 된다.
시간의 개념을 알아버리면 그것이 없던 세상과 그것이 있던 세상으로 나뉠 정도로 세상이 달라질 테니까.
당연히 시계는 필수품이 되고, 그 필수품이 가져다주는 로열티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복제품이 나올 수도 있고, 특허권의 개념이 없기에 그걸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계의 원리를 독학으로 이 세상의 사람이 파악하는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터.
그때까지 팔려나갈 시계만 해도 이미 큰 자산을 확보하고, 데드란시 또한 시계의 고장으로 알려지게끔 하는데엔 충분하겠지.
그만큼 또 발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데드란시의 사람들도 먹기 살기 좋아지고, 나는 돈을 벌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자산을 늘리면 루린이 맨날 주장하는대로, 레어 곳곳에 금칠이 가능할 테니까.
그래서 가장 먼저 괘종시계를 소환해서 그레이크 소년에게 보여줬고, 소년은 눈이 튀어나오다 못해서 기절할 뻔 했다.
괘종시계란 기다란 나무 상자에 추시계가 들어가 있는 물건이다. 손목에 차는 태엽시계에 비해서는 톱니의 구조가 그나마 나쁘지 않다.
이쪽세계도 24시간이 하루고.
1년의 주기도 똑같다.
현대에서 지낸 시간과 이쪽에서 지난 시간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번에 확인했으니까.
문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 파악하고 이것을 만들어낼 실력 있는 장인이 필요하다는 점인데 여기에는 역시 드워프 만한 적임자가 없다.
중요 설계와 작업은 드워프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데드란시의 실업자들에게 직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믿을 수 있는 드워프를 찾는 것부터였다.
“루린. 벌써 1시다 일어나.”
뭐가 됐던 루린을 깨우는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이게 변하는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나중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루린과 루린주니어를 동시에 깨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건 조금 아찔한 상상이었다.
“1시? 으으, 싫다. 오늘은 2시에 일어난다.”
루린에게도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쳤다. 그렇기에 표현도 해가 중천에 떴다는 것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시간을 언급하기 시작했는데 루린은 또 그걸 맞받아쳐서 1시간이나 더 잔다며 몸을 뒤척였다.
당연히 용납할 순 없지만.
“흐으이잉.”
이불을 걷었더니 더 몸을 웅크리고 콧소리를 흘리는 매혹의 드래곤씨.
“이미 깬 것 같은데 그만 발악하시지?”
“안 깼다!”
루린은 더 몸을 웅크려 머리를 베개 아래로 들이밀었다. 내가 베개를 확 치우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흐이잉 거리며 정면으로 눕더니 이번에는 그 상태로 나를 향해 양손을 벌렸다.
“그럼 쪼옥 이다!”
못 말린다. 눈을 감고 입을 내미는 모습이라니.
진짜 못 말린다.
정말 못 말린다.
하지만 꼬옥도 그랬듯이 쪼옥도 그리 자주 남발할 생각은 없다. 너무 매너리즘이잖아 그런 건.
매일 두근두근하는 삶, 좋지 않아? 루린에게 있어서도.
그래서 입술대신 보드라운 볼에다가 쪽, 을 해주고 돌아섰다.
이것도 쪼옥은 쪼옥이니까.
“이거 아니다!”
그러자 볼을 어루만지며 벌떡 일어나 자신이 원하는 쪼옥과의 차이점을 피력하며 눈썹을 치켜뜬다.
“이것도 뽀뽀인데? 싫다 이거지? 너무한 거 아냐?”
“싫다고는 안했다. 하지만 그거 말고…!”
“시끄러, 그런 건 분위기야 분위기. 그렇게 입술 쭉 내민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난 분위기 같은 거 상관없다아아아아! 화장실에서도 쪼옥하고 싶단 말이다!”
웃기고 있네.
적어도 그건 좀 참아주라.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관자놀이를 빙빙 짓눌러 준 다음에 등을 돌렸다.
하지만 곧 등 뒤로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 루린이 점프해서 내 등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간다.
등 뒤에 달린 거북이 등껍질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려놓을 때까지 나를 조랑말 취급한 루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륵 바닥으로 내려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곰돌이 무늬 잠옷이 늘어져 내린다.
커다란 잠옷이라 루린이 그 안에 싸여있는 느낌으로 손이 소매 속으로 들어가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사우나실이다.
루린이 일어나면 항상 먼저 사우나로 잠을 깨게 만든다. 너무 심한 사우나가 아니고 간단하게 수증기를 쐬면서 잠에서 갓 깨어나 둔해진 뇌를 활성화시키고 혈액순환을 도운 뒤에 샤워를 하는, 뭐 그런 전개다.
사우나실은 매우 최근에 도입했다. 목욕탕만 있는 것이 조금 허전했기에 사우나까지 만들어 버렸다.
다만, 현대의 사우나실과는 조금 다르다.
사우나의 기원은 핀란드다. 사우나라는 단어 자체가 핀란드어니까.
사우나는 원래 핀란드 전통방식의 목욕탕을 뜻한다. 목욕탕이라고는 해도 흔히 아는 욕탕은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사우나다.
다만 한국에 흔한 것과 다르게 내가 만든 것은 핀란드 전통식인 건식 사우나다.
더운 수증기로 몸을 덥혀서 혈액순환과 피부미용을 돕는 방식으로 이쪽에서 만들어내는데 더 편한 것이 바로 이 핀란드식이었다.
가운데 화덕을 만들고 불을 때면서 돌을 달구고, 물을 뿌리면 수증기가 발생하는데 이 방식을 이용한다.
물론 그 일을 하는 것은 고용된 하급 몬스터.
이른바 루룬들의 부하다.
루룬들만으로 레어의 살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기에 녀석들이 부릴 수 있는 몬스터를 고용하여 레어를 관리시켰다.
사우나 내부의 목재만 해도, 금값에 버금가는 최고급 목재고, 증기를 만들기 위해서 뿌리는 물은 대륙 최고높이의 봉우리에서 나는 설산의 암반수다. 몸에 좋은 것은 다 가져다 놨다.
그리고 핀란드식 사우나의 필수품, 자작나무도 준비되어있다.
자작나무는 잎이 녹으면서 향도 나고 말캉말캉해지는데 이걸로 몸을 때리며 자극하면 그렇게 좋다나.
세레이나와 엘레나를 초대했을 때 이 자작나무로 전쟁이 벌어졌었다.
루린이 먼저 몸에 좋다면서 세레이나를 자작나무로 때리기 시작하니까, 세레이나가 그걸 가만히 참고 있을 리가 있나?
“어떠냐! 이걸 맞으면 피부가 좋아진다!”
“오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너도 한 번 당해봐라.”
“머리를 왜 때리냐아아아!”
뭐 이런 식?
그런데 웃긴 것은 그 격렬한 데스매치를 보면서 엘레나가 했던 말이다.
“저, 저도 때려주시면 안돼요?”
맞을수록 피부가 좋아진다고 생각했나 보지.
어쨌든 잠옷 상태의 루린과 함께 사우나로 들어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