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40)
# 140
Chapter.34 루린의 장보기
어느 날.
나는 앞에 앉은 루린의 옆머리를 쓸어 넘기고, 뒷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후 기습적으로 손에다가 종이쪽지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자, 루린 읽어봐.”
“이걸?”
묶은 머리 때문에 이마와 두 눈이 깔끔하게 드러난 루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곧 일단 시키는 대로 종이쪽지를 낭랑한 음성으로 읽기 시작했다.
“흐응? 우카 등심 2kg 우바 삽겹살 2kg 우바 뒷다리….”
하지만 곧 의문을 머금은 눈동자로 고개를 흔들었다.
“폴리모프한 상태로는 이만큼 못 먹는다. 그리고 지금은 배부르다.”
“너 먹을 건 아닌데? 그런 걸 왜 종이에 적겠어?”
“그럼 뭔데?”
루린과의 결혼.
모든 것이 해결되면 결혼을 할 것이라며 장로에게 말한 이상 루린만 승낙한다면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 그것이 결혼이다.
그 말은 루린이 나와 함께 인간들과 계속해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잊고 속세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에.
그러니 이 생활은 오랜 세월 계속 될 것이다.
그 끝이 있다면 아마도 루린이 나와의 삶에 싫증을 내는 그 날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내 목숨이 다하는 날이거나.
드래곤의 마음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마음이란 것은 갑자기 변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전자의 경우도 불현듯 찾아올 수 있는 미래일 수 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로 원하지 않기에, 결국 오랜 세월 루린과 살아가는 쪽을 내 미래라고 한다면, 루린은 인간과의 삶에 조금 더 적응할 필요가 있다.
인간들과 말조차 섞기 싫어하고 다른 생명체를 그저 벌레 보듯 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조금은 온화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뭔 일만 생기면 죽여도 되냐고 묻는 건 이제 좀 지양시키고 싶으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지금 하고 있는 건 바로 그 첫 번째 단계다.
미션명은 루린 혼자 시장 보내기.
이 미션을 완료시키기 위해서 지금 나는 루린을 뒤에서 안은 채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루린과 나 사이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내가 허락하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인간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
그러니 이번 미션에도 이 원칙은 적용된다. 그러니까 이것만 어기지 않는다면 혼자 놔둬도 엄청난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나는 그런 기대감을 품고서 루린에게 시장에서 사와야 할 것을 적은 종이쪽지를 읽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루린은 종이에 쓴 식재료들을 그저 자기가 먹을 걸로만 인식한 채, 앞으로 다가올 미션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 내 턱을 올려다보았다.
사실 이 미션은 시장에 나가서 장을 보는 것 보다, 루린을 혼자서 시장에 내보내는 과정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그러니 사실, 미션의 이름은 루린의 시장보기가 아니고, 루린을 시장에 혼자서 가도록 만드는 것이 미션성공의 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루린이 혼자서 시장에 가는 걸 승낙하게 만드냐?
그 난제에 대해서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불현듯, 기습적으로, 저도모르는 사이에 승낙하게 만드는 방법.
일명 엉겁결에 승낙하게 만들기 작전.
나는 지금 바로 그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루린을 뒤에서 안았다. 이미 루린을 앞에 앉혀 머리를 묶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백허그를 하는 것 자체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백허그를 당한 루린은 즉각적인 반응을 내보인다.
“흐냐?”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내 턱을 바라보던 고개를 원상복구. 그리곤 돌부처처럼 몸을 정지시킨다.
그 상태로 귀는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개진다. 아직도 기습적으로 껴안으면 귀가 빨개진다. 진도가 키스까지 나간 지금에도 루린은 늘 말과 행동이 불일치한다.
그렇게 나에게 구애하는 것 같으면서도, 저가 먼저 달려들거나, 꼬옥을 하거나, 쪼옥을 하지 못한다.
말로는 뭐든지 하는 녀석이지만, 술에 취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작 중요할 때 부끄러워서 먼저 안겨들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 드래곤님이시다.
뭐, 그 갭이 또 귀엽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딱히 걱정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그 귀여움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루린의 이름을 나지막이 속삭인다.
“루린.”
그리고 동시에 루린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더 강하게 껴안는다. 내 심장의 고동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루린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꼬옥, 그것도 뒤에서 꼬옥을 시전한 결과 루린의 눈동자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대….”
뭔가 끓어오르는 심정을 담아 입을 연다.
그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바로 지금이 기회다.
“루린, 혼자서 시장 다녀올 수 있지?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그러니 알았다고 대답해봐.”
물론 이 상태로 끝나면 곧 정신을 차릴 위험이 있다. 그러니 마지막 비장의 수를 콤보로 먹인다.
비장의 수, 이른바 필살기는 사실 별거 없다. 그저 루린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 상태에서 가만히 귓속에다가 숨을 불어 넣으면 그만이다.
후우우우우-!
이렇게.
그러면 이상한 소리와 함께 즉각적인 반응이 찾아온다.
“흐갹.”
몸을 부르르 떨면 그 상태로 루린을 다시 꼬옥 껴안는다. 루린의 따뜻한 열기가 내 가슴팍으로 느껴진다.
내 품에 꼭 들어오는 따뜻함.
사실, 나도 요즘은 이렇게 루린을 뒤에서 안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고, 행복함에 빠져들지만, 지금은 그 감정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미션중이니까.
“아까 질문에 알았다고 대답해. 그럼 더 안아줄게. 알았지?”
“아까 질문이 뭐, 뭐뭐뭐 뭐였냐…?”
“어서 알았다고 하세요. 루린님.”
“아아아아알았다! 그러니 더 꼬옥 해주면 된다. 그대가 다정하다니 꿈인 것 같다.”
“후후후, 그러게.”
그렇게 말하면 조금 죄책감이 들지만, 이 모든 게 결국은 루린을 위해서다. 그래서 더 악마 같은 웃음을 흘리며 꼬옥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대답했다?”
“뭐냐? 내가 지금 뭐에 대답했냐?”
루린이 곧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지만 당연히 무시한다. 여기까지 하면 일단 미션은 성공이다.
***
“이건 사기다. 속았다!”
루린은 혼자서 언덕을 내려가면서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삐죽 나온 입술은 엘이 준 핑크핑크 립밤을 바른 덕분에 누구보다도 번들거린다.
사고가 정지된 틈을 타서 그런 일을 꾸미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얄밉고.
밉고.
나쁘다.
그런 생각을 마구 해대고 있었으나 잘 다녀오라며 이마에 해준 키스 때문에 2분에 한 번꼴로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헤헤거리는 중이었으니, 말과 행동은 여전히 일치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어루만진 후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투덜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텔레포트도 금지고, 싸움도 금지고, 당연히 누굴 죽이는 것도 대원칙이니 금지고, 안되는 게 너무 많아서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드래곤에게 인간이란 그렇다.
알아서 굽신거리면서 공물을 바치거나 공포에 떨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존재일 뿐인데, 갖다 바쳐도 모자란 판에 직접 나가서 인간에게 물건을 사야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인 것이다.
하지만.
루린에게 엘이란 그렇다.
그 당연한 드래곤의 법칙조차도 필요 없을 정도로.
엘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별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한구석에서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정말 사기였다.
한 없이 약해진 틈을 타서 말도 안 되는 걸 승낙하게 만들다니.
그래도 귓가에 숨을 불어넣는 그 순간은 좋았다.
마치 전기가 온 것 같은 찌르르함과 함께 온몸이 터질 것 같았던 그 느낌은 행복했다.
루린은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다시 귀가 빨개졌다.
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승낙했던 일을 다시 물리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겠다는 엘의 말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쟁이와는 같은 방에서 자지 않겠다는 별거 선언에는 공포가 밀려왔으니, 투덜거리며 혼자 시장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매우 귀찮았기 때문에 걷는 속도는 한없이 느리적거렸다. 빠르게 해치우고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루린은 거기까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당장 눈앞의 일만 생각한다. 그것이 드래곤이니까.
그러니까 흐느적흐느적.
걸음걸음에 귀찮음이 묻어 나왔다. 하필이면 오후의 햇살이 평소보다 더 따사롭게 비추는 것이 루린은 원망스러웠다.
만천하에 흐드러졌던 봄꽃이 어느덧 사라지고 새싹을 머금은 초록색의 물결이 곳곳에 피어나는 시기.
당연히 완연한 봄을 잔뜩 머금은 햇살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덕분에 루린은 걸을 때마다 졸음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음냐.”
좀만 자고 갈까 하는 생각이 몰려오는 눈꺼풀. 루린은 심지어 걸으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흐힝. 안 되겠다.”
하지만 엘이 없는데서 자기는 싫었다. 레어에서 자고 있는 도중에 엘이 일을 보러 다니는 것과는 다르다.
거긴 우리 집.
하지만 여기는 아니니까.
밖에서 잠들 때는 엘의 품, 엘의 등, 엘의 가슴팍, 하다못해 엘의 다리를 물고 늘어지지 않고서는 안 된다.
최소한 시야에 엘이 들어오거나, 냄새가 느껴지거나, 그런 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잠들기 싫었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계속 되었던 외톨이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서 기인한다.
그저 잠밖에 몰랐던 과거로 돌아가기 싫어서 루린은 마구 눈을 비볐다. 그리고 햇빛을 노려봤다.
모든 건 저 햇빛이 잘못이다.
마법으로 구름을 움직여 해를 가려버릴까. 물론 곧바로 고개를 가로 젓는다.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바에야 그냥 걷는다. 그것이 루린의 생각.
이런저런 잡생각과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언덕을 다 내려왔고 곧바로 시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루린도 그레이크시의 지리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엘과 둘이서 수없이 내려와 놀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내려온 적은 별로 없다. 엘이 감기에 걸렸을 때 엘레나의 진료소를 찾아갔던 정도?
드래곤은 한번 지나쳤던 길은 절대 잊지 않는다. 루린은 그저 경험이 일천하여 상식이 부족할 뿐 다른 부가 기능은 누구보다 우월한 위대한 존재니까.
그렇기에 루린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크놀의 정육점에 도착했다.
크놀은 어딘가 놀러가고, 정육점에 나와서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건 레이느였는데, 루린을 보자마자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해버렸다.
너무나 의외의 인물이 혼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놀라서 주위를 좀 더 살폈다. 하지만 혼자였다. 누가 뭐래도 혼자다.
루린과 항상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레이느는 그 신기한 마음을 듬뿍 담아 루린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별일이네요.”
“별일 아니다. 근데 별일이 뭐냐?”
루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정육점에 가까이 다가갔다. 정육점 안쪽으로 수많은 고깃덩어리가 눈에 띈다. 고기를 좋아하는 루린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