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41)
# 141
Chapter.34 루린의 장보기
“이거 내놔라.”
루린은 여러 고기의 냄새를 킁킁거리다가 본래의 목적이 생각났는지 뒤늦게 엘이 준 종이를 레이느에게 내밀었다.
사실 레이느에게 있어서 루린은 매우 특이한 여자였다. 엘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말을 해도 단답형이거나 어째서인지 명령형이다.
하지만 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루린이 엘에게 보내는 아우라 정도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깨달았다고 할까.
어쨌든 레이느는 명령형의 말투를 사용하는 루린의 행동양식을 분석해보다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엘도 딱히 루린에 대한 것을 설명해주거나 한 적은 없어서 여러 가지로 비밀에 싸여있지만, 엘은 예전에 마법사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루린을 보며 같이 있고 싶은 여자라고 칭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뭐 결국 중요한 건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서 통한다는 게 아닐까.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어쨌든 그건 아름다운 일이니 기꺼이 응원 중이었다.
따라서 루린의 말투야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레이느는 곧바로 종이를 받아들었다.
“음, 우카 등심 2kg… 잠시만요. 곧 챙겨드릴게요.”
레이느가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정육점 안으로 들어갔고 루린은 그걸 가만히 지켜봤다.
고기는 좋아한다.
구워먹으면 맛있다.
오늘은 고기인가? 그건 좋은 일이다.
이렇게 사기를 당했으니 그 정도야 당연한 권리지. 루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기를 노려봤다.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루린이 고기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괴로워하고 있으려니 드디어 레이느가 돌아왔다.
“으음. 여기 있어요. 이따가 배달하라고 할까요?”
“아니다. 이 정도는 한 손가락이다.”
루린이 장바구니에 든 고기를 받아들었다. 그 순간부터 정육점은 루린의 시야에서 벗어났고 관심에서도 사라졌다.
쿨하게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걷는다. 다음 목표는 야채였다.
레이느는 그런 루린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엘이 은퇴한 마법사라면, 물론 레이느는 엘이 5클래스에서 6클래스의 마법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 정도의 마법사면 귀족 취급이다.
그러니 루린 또한 어느 지체 높은 집의 딸이고, 루린과의 결혼을 집안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엘이 데리고 도망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말투도 납득이 간다.
그 높은 지위를 포기하고 엘과 도망치다니, 너무나도 멋진 로망스다. 레이느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만약 낯선 누군가가 루린을 찾는다면, 절대로 대답해 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주먹을 쥔다.
그리고 강하게 쥔 그 주먹은 허락 없이 놀러나간 크놀에게 퍼부어질 예정이었다.
레이느의 핀트가 조금 어긋난 상상은 꿈에도 모른 채 루린은 고기를 획득한 후 다음 미션을 위해서 다시 또 걷기 시작했다.
곧 시장 안쪽이 나타났다. 이쪽 길은 루린에게 더 익숙하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엘레나의 진료소가 있기 때문이다.
루린이 유일하게 혼자서 찾아왔던 적이 있는 바로 그 엘레나의 진료소.
그리고 그 진료소의 앞에는 익숙한 빨간 머리가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그걸 본 루린은 다다다 뛰어가 세레이나의 뒤통수를 가격해버렸다.
퍼억-!
“뭘 늘어져 있냐. 바보 녀석.”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식곤증에 빠져있던 세레이나는 뒤통수에 느껴지는 충격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본래 다른 드래곤이 접근해오면 경계심에 일어나는 게 정상이지만, 이미 근처에 블랙드래곤 루린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경계심은 이미 늘어진지 오래였다.
그 결과 이런 참사를 당한 세레이나의 눈썹이 마구 치켜 올라갔다.
“감히 누구 머리를 때리는 거야? 이게!”
“졸지마라.”
원래라면 자신도 식당 앞에 늘어져 저러고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은 엘의 마수에 걸려서 이러고 있으니 다른 드래곤이 자는 꼴은 배 아파서 못 본다.
“으으.”
루린은 그런 생각으로 세레이나를 마주봤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다. 자신도 자고 싶다. 그래서 한 대 더 치려는데 세레이나가 잽싸게 피해버렸다.
루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드드래곤은 그저 맞고 있으면 그만이다. 맞고 있으면!
“뭐야, 검은 게 왜 미쳐 날뛰냐? 고삐가 풀렸어?”
세레이나가 루린에게 발차기를 날리며 외쳤다. 하지만 루린은 그 발차기를 슬쩍 몸을 비틀어 피해버렸다.
“가소롭다.”
하지만 덕분에 장바구니가 바닥에 떨어졌다. 잘못해서 흙먼지가 들어갈 뻔 했다. 깜짝 놀란 루린이 냉소를 거두고 후다닥 장바구니로 손을 가져갔다.
“뭐하냐 너. 진짜 고삐가 풀렸네. 니 주인 어딨어?”
“시장 본다.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라.”
“방해는 니가 해놓고 뭔 헛소리야 이게 정말!”
세레이나가 다시 한 번 분노하면서 주위를 마구 둘러봤다. 하지만 역시나 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엘과 떨어져서 다닌다고?
이 바보가?
세레이나는 매우 황당한 표정으로 루린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먹어버렸냐? 배고팠어?”
“뭘 먹어. 안 먹는다. 이 고기는 구워먹어야 한다.”
“아니 그거 말고….”
아. 이 바보가! 라고 생각하면서 세레이나는 한마디 더 하려고 했지만 포기했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너, 장보러 나온 거냐?”
“그렇다.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라.”
장보러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세레이나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구, 이 드래곤의 수치야. 뭘 하는 거니.”
“수치는 너다.”
“세, 세레이나님, 이거 왜 이래요?”
그리고 그때 진료소 안쪽에서 급박한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뭔데?”
루린을 보고 있던 세레이나가 진료소 안으로 들어갔고 루린은 이내 관심을 끄고 등을 돌려 엘이 지정해준 야채가게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 루린의 시야에 웬 소녀가 한 명 들어왔다.
5살에서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그 소녀가 루린의 눈에 띈 이유는 단순했다.
소녀가 꾀죄죄한 몰골로 건물 벽에 웅크리고 있어서도 아니며 소녀의 얼굴이 귀엽기 때문에 멈춰선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루린에게 있어서 인간의 얼굴 따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 귀여운 소녀가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루린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것과 반대로 먹거리, 즉 그 소녀가 먹고 있는 것에는 관심이 있었다. 소녀가 처음 보는 이상한 풀꽃을 우물우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맛있다는 표정으로.
“그게 뭐냐?”
루린은 웅크려 풀꽃을 우물거리는 소녀의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췄다.
사실 루린의 뇌 속은 매우 단순하다.
그녀의 뇌 속은 70%가 엘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고 20%는 엄마에 대한 복수가 차지하고 있다. 5%는 배고픔과 잠이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싫다는 감정이 약 1% 정도씩. 그리고 역시나 콩알만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호기심이다.
가끔 루린은 귀찮음 속에서도 호기심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엘을 대신하여 판결을 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딱 그런 상태였다.
소녀가 신기한 것을 먹으니 궁금해진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엘과 살고난 후부터는 맛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 조금 높아졌다. 먹을 것에 대한 호기심은 이제 뇌 속을 5% 정도까지 차지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거 히비렌 꽃.”
소녀는 그런 루린에게 풀꽃의 이름을 말해준 뒤 별다른 움직임 없이 계속해서 풀꽃을 씹어 먹었다.
“히비렌 꽃? 첨 듣는다. 맛있냐?”
인간 세상의 꽃 이름 따위를 루린이 알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기본적인 인간들의 상식조차 모르는 그녀다.
마나에 관한 타고난 지식을 제외하고는, 상식을 익힐 만한 경험을 한 적이 전혀 없다.
그저 수백 년 레어에서 자는 것이 전부였던 루린이니까.
물론 상식이 풍부하다고 해도 소녀가 먹는 꽃은 특이했고 루린이 신기해 할만 했다.
꽃을 요리에 쓰는 경우야 드문드문 있지만, 소녀가 먹는 꽃은 그런 요리용 꽃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기에 호기심이다.
풀꽃만 따 먹는 소녀에 대한 호기심.
아니, 소녀는 아니고 풀꽃에 대한 호기심.
“응. 맛있어.”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루린에게 히비렌 꽃을 내밀었다. 배가 고팠던 루린은 슬쩍 꽃을 받아들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립밤으로 번드르르한 입을 살짝 벌린다. 긴 머리가 흘러 내려와 방해하자 인상을 쓰면서 귀 옆으로 넘긴다. 엘이 묶어준 머리를 풀고 내려온 탓이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고 히비렌 꽃이라고 불린 정체 모를 풀꽃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볼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정도로 히비렌 꽃이 큰 식물은 아니지만, 맛이 점점 맘에 안 들어서 이리저리 굴리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맛도 안 났으나 곧 루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뇌에서 이딴 건 먹는 게 아니라는 신호를 보낸다.
“퉷퉷!”
입안에 남아 있는 히비렌 꽃을 모조리 뱉고는 황당한 얼굴로 소녀를 쳐다봤다.
예전의 루린은 몬스터를 그냥 생으로 먹는 등, 무지막지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때는 어둠에 자신이 먹혀들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고, 이미 입맛이 고급이 돼버린 루린에게 있어서 소녀가 먹는 꽃은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뭐 이딴 걸 먹냐. 이상한 인간 녀석.”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그런 루린에게 아랑곳 하지 않고 꽃을 오물오물 잘도 씹어 먹고 있다.
“이거 맛있어. 언니.”
“언니? 누가?”
“언니는 언니!”
소녀가 루린을 가리킨다. 루린이 주위를 둘러봤다. 거기서 소녀를 상대하고 있는 건 자신뿐이다.
“이상한 인간이다. 아무튼 그런 맛없는 거 먹는 거 아니다. 예전의 나 같은 녀석이군.”
“아니야. 맛있어 정말루.”
루린의 직설적인 발언이었으나 소녀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계속해서 히비렌 꽃을 씹어 먹었다.
오물오물.
소녀의 조그만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계속해서 오물오물. 젖살이 통통한 볼살에 맛있음을 증명하는 홍조가 비친다.
루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저 풀이 맛없다는 것으로 호기심은 해소됐으니까.
그러니 다시 채소류를 사기 위해 가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난 간다.”
그렇게 말한 후 등을 돌렸다. 하지만 곧 누군가 다리를 잡는 느낌에 멈춰야 했다.
소녀가 루린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진 탓이다.
“뭐냐. 이건!”
루린은 당황했다. 언제나 그렇듯 미세한 피어는 항상 그녀를 감싸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미모에 집적대는 남자들은 자동방어가 된다.
하지만 이 소녀는 루린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떨어져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피어를 아주 조금 더 흘려보냈다.
공포심.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정도 되면 공포심에 놀라서 손을 떼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피어를 더 흘리면 공포심에 실신하고, 조금 더 흘리면 보통의 인간은 거기서 죽어버린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다. 엘이 노발대발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건 곤란하다.
인간을 죽이면 엘은 한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터.
그러니 아주 조금, 조금씩 피어를 흘려보냈다. 소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 충분히 반응이 와야 한다.
하지만 소녀는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언니? 나, 언니 좋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