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45)
# 145
Chapter.34 루린의 장보기
***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셀리에 관해서 별다른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레이느씨도 그레이크 소년도 발 벗고 나선 모양이지만, 소식은 완벽하게 제로였다.
시장의 정보통과 시의 영주가 나섰다. 그런데도 정보 한 톨도 못 건졌다고 하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셀리는 그레이크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그레이크시의 시민들에게 아무리 수소문 해봐야 오리무중에 빠질 뿐이지.
결론은 셀리는 외지에서 왔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이 생긴다.
아무래도 뭔가 복잡한 문제에 휘말린 게 아닌가 싶은데, 소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어린 소녀가 보고 들은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해주고 싶어도 말해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또 다르다. 소녀는 뭔가 기억이 날 것 같다며 시장으로 내려가자고 주장했다.
이건 긍정적인 신호다. 어쨌든 소녀가 혼자가 된 원인을 찾으려면 소녀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런 이유로 소녀를 직접 데리고 시장으로 내려왔다.
고아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그레이크시에서 편하게 살아가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고아라는 것이 확실해 졌을 때의 이야기다.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소녀를 애타게 찾아 헤매고 다닐 수도 있으니 함부로 처신할 순 없는 일.
그러니 소녀의 출신이나 홀로 시장을 헤매던 이유를 알아보고 연고자가 없는지 찾아봐야 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셀리야, 뭘 하다가 시장까지 왔는지 생각 안 나? 여기에 앉아 있었지?”
“으응.”
소녀가 주위를 조금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이곳에 앉아 있었던 것은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 모양이었다.
“뭐하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나?”
“으응.”
엄마 이름도 아빠 이름도 모르겠다고 하던 소녀.
엄마 아빠가 죽었다고만 반복하던 소녀가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뭐하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난다니.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정말? 어쩌다가 시장에 왔는지 기억나?”
“아니.”
소녀는 이번에는 다시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방금 분명히 기억이 난다고 했는데 갑자기 또 왜 이러나 싶어서 물었다.
“그럼 뭐가 기억나?”
“저기.”
“저기?”
소녀는 손가락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서 엄마 아빠 죽었어.”
“저기서?”
그동안 엄마 아빠가 죽었다고만 하던 그녀가, 누군가 엄마 아빠를 죽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여전히 손가락을 곧게 뻗고 있었다.
“응. 저기!”
“좋아. 루린, 가보자.”
루린에게 그리 말한 후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소녀가 루린을 크게 불렀다. 루린은 아까부터 흐느적거리고 있다가 그 부름에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언니!”
“응?”
“언니가 엄마.”
“어어?”
“여긴 아빠!”
“뭐?”
그리고 소녀는 엉뚱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러더니 소녀는 루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냐 그 손은… 필요 없다.”
“아이참 엄마! 잡아줘!”
“아빠는 그리고 엄마 손 잡아줘!”
“뭐?”
소녀의 지휘 아래 얼떨결에 나는 루린의 손을 잡고 그 루린의 반대쪽 손은 소녀가 차지했다.
아니 보통은 엄마 아빠라고 하면 딸이 가운데 있고 양쪽으로 부모가 손을 잡아야 하는데 이건 왜 이래?
“오오, 괜찮다. 이건. 히히, 잘했다. 부하 2호.”
“그렇지?”
루린의 손에 내 손을 꼭 쥔다. 드래곤의 손이 따뜻하다.
루린의 몸은 인간 상태일 때 상당히 따뜻한 편으로, 한국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충격에 빠져있던 당시 그 따뜻한 루린의 품에 많은 위로를 받았었지.
손만 보면 가냘프고 부드럽다. 평생 손에 물 하나 안 묻혔을 것 같은 그런 손.
아니 뭐 잠자고, 싸우고, 일은 거의 안 하고 살았으니 틀린 이야기는 아닌가?
루린은 양손이 구속당해버렸다. 하지만 기분은 매우 좋아 보인다.
“부하2호, 그래서 어디로 가냐?”
“저기!”
그러자 소녀는 남아있는 한쪽 손으로 다시 또 먼 곳을 가리켰다.
확실히 알고 말하는 건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소녀의 저 손가락이 아니면 신원을 알아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시간은 남아돈다.
그렇다면 가볼 일이다.
“좋아, 가보자.”
“으히히히. 그대 손이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그냥 이상하다. 아아! 이상한 그대 손. 히히.”
“뭐래…?”
루린은 그렇게 기분이 붕 떠서 걸었고 소녀는 계속해서 한곳을 가리켰다.
걷다 보니 그레이크시의 시내에서 벗어나는 경계까지 와버렸다. 이 밖은 농경 지역이다. 그리고 더 벗어나면 산이 나오고, 더 벗어나면 아예 다른 도시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데드란시와 그레이크시가 반달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 그 반달의 북서쪽이 되겠다.
방향적으로는 뭐 그렇다.
“이런 데서 넘어왔다고?”
끄덕끄덕.
소녀가 루린의 손을 잡은 채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부하는 거짓말 안 한다. 그대. 더 가보자.”
“웬일로 마음 씀씀이가 좋아졌대?”
“히히히. 충성을 보이니까?”
“웃기고 있네.”
어쨌든 뭐 여기까지 온 거 저 손가락이 멈출 때까지는 가봐야지. 그래서 우리는 손을 잡은 채로 더, 더 걸었다. 그러자 넓은 밭이 사라지고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경계지역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때 계속해서 하늘 쪽으로 방향만 가리키던 소녀가 드디어 손가락을 아래로 향했다.
“저기저기!”
“저기?”
“응!”
내 물음에 강하게 대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소녀. 소녀의 손가락이 멈춘 곳에는 웬 요새가 하나 있었다.
요새라니?
이런 데 왜 요새가?
이곳에 그레이크시의 병영이나 요새가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산길도 아닌데 산적의 요새가 있을 리도 없고.
뭔가 수상했다. 예전에는 없던 요새다. 생긴 지 별로 안 된 요새.
“루린, 셀리를 안아 올려봐. 빠르게 가보자.”
“뭔데 그러냐? 소소소손 왜 놓냐!”
“그렇게 한가로울 때가 아닙니다. 루린님.”
나는 루린의 손을 놓고 빠르게 요새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발견했다. 수상한 요새에 수상한 경비병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이런 요새의 안에 있는 건 노예상단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노예상단은 계속해서 이동하며 돌아다닌다. 나라와 나라를 넘어서도 돌아다닌다.
데드란시의 소식을 아직 모르고, 다른 나라에 있다가 돌아왔다면 이곳에 요새가 있는 것도 이해는 간다.
즉 멋모르고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다는 이야기다. 리에든의 잔재는 아직도 남아있던 건가.
그렇다고 한다면.
소녀가 여기서 우연히 도망친 거라고 한다면, 부모가 없는 것도, 그레이크시 안에서 소녀의 지인을 찾아낼 수 없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모든 정답은 저 요새에 있다는 건데.
바로 그때 때마침 요새의 문이 열렸다. 반대편 산기슭에서 마차가 달려오더니 요새 앞에 멈춰 섰다.
“꺄아악!”
여자들이 머리채를 쥐어 잡힌 채 거칠게 끌려 들어갔다. 마차에 태워진 여자들이 불법적으로 잡아들여졌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여자들이 끌려 들어가고, 요새 안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소년이 한 명 내동댕이쳐졌다.
1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다.
“이 새낀 버려.”
그리고 요새의 문은 굳건하게 닫혔다.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초소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은 소년을 구해서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이미 정신을 잃고 피투성이가 되어있으니 소년은 기억 못할 터. 하지만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셀리가 신기하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소녀는 이미 루린이 시장에서 도망칠 때 엉겁결에 텔레포트를 경험했다.
그리고 소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를 버리고 다닐 때도 아니니.
“루린, 엘레나의 진료소로 가자.”
***
소년이 일어났다. 소녀가 그 모습을 바라본다. 루린은 관심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있다.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진다.
소년은 다행히 엘레나의 대회복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칼에 베인 상처가 수두룩했으나 대회복의 위력으로 거의 아물었다. 힐링마법이나 대회복은 외상에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멜리!”
눈을 뜬 소년은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를 바라본다. 그의 눈에 내가 비친다. 그리고 엘프인 엘레나와 세레이나, 루린, 셀리를 보더니 마지막으로 다시 나를 봤다.
그리곤 갑자기 나를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 악마들!”
소년이 내 목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누가 악마냐! 뭐, 가끔 악마긴 하지만. 으음, 아무튼 그거 놔라!”
그 손을 치운 것은 루린이다.
루린은 씩씩거리면서 곧바로 소년의 몸을 차버렸다. 갓 회복한 소년은 그 강력한 발차기에 바닥으로 굴러가버렸다.
쿨럭쿨럭-!
소년은 거친 기침을 하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진 상태다.
“루린, 잠깐 있어봐. 아직도 여기가 노예상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가만히 그 소년의 앞으로 다가갔다.
소년이 다시 나와 루린, 소녀 그리고 엘프를 바라본다.
엘프는 노예상단의 주력상품이기도 하다. 천하의 쓰레기라고 할 수 있고, 내가 문답무용으로 앞뒤 안 가리고 박살내는 놈들이 있다면 바로 그게 노예상단이다.
“내 동생을 내놔라! 내 동생을 어디다가… 멜리… 멜리….”
소년이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악을 쓰며 소리쳤다.
여기서 조금 예상이 빗나갔다. 우연의 일치라는 게 있다.
그러니까 혹시 이 셀리가 이 소년의 동생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으나, 소년은 셀리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저 먼 곳을 바라보며 멜리라는 이름을 들먹이고, 그러다가 다시 나를 노려본다.
일단 뭐 이름도 다르니까.
소녀와 소년은 별개의 사건인가? 어쨌든 셀리가 이곳에 온 것도, 이 소년이 이 모양이 돼서 동생을 찾는 것도 모두 노예상단 놈들의 짓이라는 건 변함없다.
“그러니까 여긴 노예상단이 아니야.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
“맞아요. 엘님은 다친 당신을 구해서 오셨답니다. 그러니까 은인이 됐으면 됐지 그렇게 노려보면서 무섭게 공격할 대상은 아니에요.”
엘레나가 약간 거친 음성으로 소년에게 말했다. 엘레나의 목소리가 이렇게 일그러지는 건 처음 봤다.
언제나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는 그녀인데.
하지만 그 덕분에 소년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그런… 죄송합니다!”
그리곤 다시 머리를 땅바닥에 박더니 사죄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기 전의 일 기억하나?”
내가 묻자 소년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드디어 실감이 난 모양이었다.
“노예상단으로 동생을 구하러 갔다가… 경비병들에게 장난감처럼 당한 뒤에… 그러다가… 기억이 끊겼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말해 주겠어?”
나는 달래듯 소년에게 부탁했다.
소년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이 노예상단을 끈질기게 추적해 왔다고 말하며, 지난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