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48)
# 148
Chapter.34 루린의 장보기
***
잠깐만 그렇다면.
에이 설마?
그건 말도 안 된다. 유령이라니.
엘레나의 설명과, 멜리의 이야기로 추측하자면 지금 상황은 소름 그 자체였다.
밝혀진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 잠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루린도 상한 음식을 씹어 먹은 얼굴로 흐웅 거리기를 반복하며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돌리는 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왜 그러세요, 엘님?”
엘레나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뭐 잘못 먹었냐? 표정이 왜 그래?”
그리고 세레이나도 마찬가지로 루린의 볼 끝을 쿡쿡 찌르더니 엘레나와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세레이나가 볼 끝을 건드렸는데도 루린이 가만히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어이없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레이나와 엘레나에게 간략하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게 무슨… 설마 농담 하시는 건가요?”
엘레나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통에 금발이 찰랑거린다. 감정표현이 적은 엘레나로서는 드문 일.
“잠깐만요. 엘레나님. 그, 히비렌 꽃, 모습을 보이고 싶은 사람을 고를 수도 있는 건가요?”
하지만 성실한 그녀다. 의아해하면서도 내 질문에는 곧바로 대답을 들려준다.
“전설대로라면 죽은 사람의 의지에 모든 게 달려있다고 들었기는 한데… 엘님?”
“아니, 아니에요.”
“잠깐만, 셀리 언니! 그러면, 그러면 어째서 나한테는 안 나타난 거지… 내가 그렇게, 그렇게 찾았는데!… 언니! 언니가 죽었단 말인가요?”
멜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셀리에 관해선 나도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녀는 대체 무엇을 바랐기에 우리 앞에 나타난 걸까.
혹시 히비렌 꽃이 그녀의 바람을 들어서 절대자의 앞으로 데려다 준 것일까? 멜리를 구할 수 있도록?
죽어서도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다니. 그렇게나 힘든 일을 많이 겪었으면 정신이 삐뚤어질 만도 한데.
하긴, 내가 겪은 셀리는 매우 투명하고 맑은 성격의 아이였다.
우는 멜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져 있으려니, 다른 모두도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세레이나다.
“아! 그 히비렌 꽃이란 거 나도 들어본 적 있어. 재밌는 꽃이지. 맞아 맞아.”
“그래?”
하지만 곧 묘한 표정으로 양손바닥을 위로 올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나는 믿지 않지만. 우리 위대한 존재를 넘어서는 꽃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 않냐 검순아?”
“누가 검순이냐! 그리고 나 지금 복잡하니까 말 시키지 마라. 멍청아.”
그 말을 끝으로 루린은 세레이나를 무시해 버렸다. 물론 세레이나가 멍청이란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싸움이 시작됐지만,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쨌든 지금 해야 하는 건 한 가지.
없어진 셀리를 찾는 것.
“일단, 셀리를 찾자. 정말로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그래, 정말로 죽었다면 그 시신이라도 찾아서 묻어줘야 한다. 멜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셀리는 결단코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을 리가 없으니까.
살아있으면 좋겠지만….
나와 루린 외의 존재에게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바람을 치명적으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하긴, 보통의 인간이라기엔 너무 신기한 점이 많았었다. 그것이 모두 히비렌 꽃의 도움이었던 건가.
그 아이가 죽었다니.
그건 정말로 상상하기 싫은 이야기라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지만.
그 결과가 어떻듯 매듭은 지어야 한다.
***
그레이크 소년에게 말하여, 노예상단이 가지고 있던 문서들을 모조리 털어내어 거래기록을 추적.
얼마 지나지 않아 셀리의 행방을 찾아냈다.
노예상단은 루린이 폭발시켰다. 그 외에 셀리에게 잔악한 짓을 했던 모든 것들에게도 그에 합당한 천벌이 내려지겠지.
그런 것들은 물론 사소한 문제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기적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던 그 아이가 사실 살아있기를, 그런 결말을 바라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현실이다.
셀리의 시신은 차갑게 식은 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미 숨이 끊어진 셀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와 엘레나가 힘을 합쳐서 회복마법을 사용한들, 사자(死者)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아이가 나와 루린의 손을 잡고 엄마 아빠라고 불렀을 때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 때 그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 지를 상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때 셀리의 표정이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는 것.
그 아이의 표정이 이제 와서 이해가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 이외의 존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루린조차 관심을 보였던 그런 꿈같은 기억.
멜리는 셀리의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루린은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떠들고 있는 것은 이 일에 전혀 관계가 없는데다가 루린과 비슷하게 인간 개개인의 일에 관심이 없는 듯한 세레이나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네. 히비렌 꽃이 정말로 전설처럼 힘을 발휘했다는 건가?”
세레이나는 루린의 허벅지.
그러니까, 셀리가 루린에게 붙어 볼을 비비던 그 위치에 있던 히비렌 꽃의 꽃잎 조각을 이리저리 보면서 신기한 얼굴로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엘레나도 침울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거들었다.
“너무 슬픈 이야기에요.”
세레이나는 흐음. 이라는 소리를 내더니 팔짱을 끼었고 나는 엘레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그러자 엘레나가 곧바로 뭔가 생각난 듯 나에게 다가와 질문한다.
“전에 제가 히비렌 꽃이 명계의 꽃이라고 했었죠?”
“그랬지. 죽은 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환생, 정화, 성불에 관여한다고 했었나?”
“네. 그건 제가 엘프족이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고문서에서 봤던 내용인데요, 한 가지 기록이 더 떠올랐어요. 물론 그저 전설이나 미신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고문서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 히비렌 꽃으로 마지막 소원을 이룬 자와 접촉한 사람이 다시 히비렌 꽃을 찾아내 품에 가지고 있게 되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정화된 후 환생할 때 그 꽃을 가진 사람 근처에 깃든다는 거예요.”
“그래? 뭔가… 소설 같은 이야기네.”
아니 소설보다는 동화 같다고 할까. 구전동화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렇죠? 히비렌 꽃에 관한 전설은 너무나도 많아서…. 모두 꾸며낸 이야기일 수는 있어요. 죽은 후의 세계라는 것도 너무나 불명료하고, 그런 것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데. 게다가 정말로 엘님이 죽은 자를 봤다고 해도, 그것은 히비렌 꽃과는 관련 없이 죽은 아이의 원통함이 만들어낸 사념체를 본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럴까….”
물론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그것이 가장 말이 되는 소리 같기는 하지만, 분명히 셀리는 히비렌 꽃을 들고 있었으며 심지어 계속해서 그 꽃을 먹는 행동을 반복했었다.
그러니 그녀가 나타났던 것이 히비렌 꽃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마치 전설의 내용처럼.
그렇다면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전설을 왠지 모르게 그저 믿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험난했던 세상의 일을 전부 잊어버리고, 행복한 가정에서 환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우리 앞에 나타나 행복한 얼굴로 웃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환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나와 루린의 아이로 태어나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순간적으로 내 볼을 꽈악 꼬집었다. 아프다. 고통이 뇌 속에 전달되니 조금은 정신이 돌아온다.
그 상태로 나는 진지하게 엘레나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아무튼 전설은 전설이고 미신은 미신이라고 해도, 그 히비렌 꽃을 찾아서 가지고 있으면 셀리가 그걸 찾아 올 수도 있다는 거네요?”
“네, 명계의 꽃이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죠. 히비렌 꽃을 머금은 영혼은 히비렌 꽃의 빛에 이끌린다는…어머, 제가 정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게다가 히비렌 꽃이 아무리 희귀하다고 해도 히비렌 꽃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여럿이라면 그 중 어느 빛을 따라 갈수도 알 수 없고. 꿈같은 이야기죠. 로맨틱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더욱 꾸며낸 전설이라고 생각해요.”
“뭐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죠. 그 히비렌 꽃이란 거 찾아봐야겠어요. 설사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바람을 담아 보는 건 나쁜 일이 아니잖아요? 전설일 뿐이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기적은 뭐라도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터무니없이 희박한 확률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 꽃을 찾아서 가지고 있겠어요. 셀리의 행복을 위해서.”
언젠가.
아마도 먼 훗날이 되겠지만.
나와 루린이 결혼을 한 후, 셀리의 영혼을 우리의 아이로 키운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히비렌 꽃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근처에 환생하여 나타난다면.
알아볼 수는 없더라도.
그래도 그것만으로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히비렌 꽃이 그 정도로 전설과 같은 힘을 담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불운하게 살다 갔으며, 너무나도 짧은 시간,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었던 셀리를 생각하며 전설을 믿어보고자 하는 지금, 내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며 엘레나도 덩달아 심각한 얼굴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런데요. 곤란한 게 있다면, 그 히비렌 꽃… 찾기가 꽤 어려워요. 괜히 전설이니 미신이니 하는 걸로 치부되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으음, 하지만 없는 건 아니잖아요? 히비렌 꽃의 꽃잎을 보고 알아봤으니.”
“네, 존재하는 건 확실해요! 엘프들이 의술을 공부하는 가장 큰 마을이 있어요. 그곳에서 공부할 때 실물을 본 적도 있어요. 아쉽게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지만. 본 적이 있으니 알아본 거고요.”
“존재한다면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의지를 불태우는데 미안하지만.”
그런 나를 향해 세레이나가 다가오더니 어깨를 으쓱인다.
“응? 뭐?”
“나 그거 본 적 있어.”
“어디서?”
세레이나는 유희를 경험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려는 듯 미간을 찡그리더니 입을 열었다.
“수백 년 전 제국의 황궁 보물고에서.”
***
루린과 나는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대.”
“응?”
식당 안에서 루린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뭔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해?”
“으음, 뭔가… 뭔가, 그대는 좋다. 그대에게 의지하고 그대에게 수많은 걸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 녀석은 좀 다르다. 뭔가 안쓰럽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엄마랑 그대 이후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다.”
“정말?”
그건 굉장한 일이다.
루린이 나 이외의 존재에게 감정을 가졌다는 것. 그것은 그녀의 내면이 한층 더 성장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루린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루린의 허리를 꽉 껴안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괜찮아. 자연스러운 일이야. 이상할 거까지는 없지 뭐.”
“흐음.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래? 뭐가 확실한데?”
“난 역시 그대가 죽으면 따라 죽는다. 그대가 죽는 다면 나는 절대로 버틸 수 없겠다는 걸 확신했다! 그대, 죽으면 안 된다.”
루린이 내 품에 안긴 그대로 이마를 비비며 외쳤다.
그래서 그저 대답 없이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가 루린의 어깨너머 주방에 있는 식칼 옆에서 종이 쪼가리를 발견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루린, 잠깐만.”
루린과 떨어져 주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종이쪽지를 들었다.
그것은 무려 셀리가 남긴 편지였다.
․
․
․
․
죄송해요.
말없이 떠나게 돼서 죄송해요.
멜리에게서 들으셨겠지만, 저는 보기보단 나이가 있어요.
그래도 두 분에게는 어린아이겠지만.
영혼이 되니까 못 배웠던 글자를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네요.
그 덕에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요.
저는 더 있고 싶었어요.
진심으로 더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히비렌 꽃으로 하는 여행은 죽을 때 손에 쥔 히비렌 꽃의 개수에 비례해요.
꽃을 먹으면서 실체를 유지하는 거라는 걸 히비렌 꽃이 알려줬어요.
그래서 이제는 마지막이에요.
멜리를 구하고 저는 사라지는 거예요. 더 이상은 가진 히비렌 꽃이 없으니까요.
여기서 지냈던 일은 잊고 싶지 않아요. 분명히 잊어버리겠지만 잊고 싶지 않아서 눈물이 나요. 하지만 그 눈물은 실체가 없어서 허무해요.
그래도 확실한 건, 이곳에서 지냈던 그 짧은 시간이 제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싫어요.
마지막인 게 싫어요.
죽기 싫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나는 왜 죽어야 하나요? 살면서 한 번도 좋은 일이라고는 없었는데, 그런 삶밖에 모르고 있었는데 왜 죽어야 하나요?
…라고 그렇게 원망하고 제 인생을 욕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을 풀었어요.
이 우울했던 세상에 그래도 빛이 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아직 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시간이 됐으니 사라진대요.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서 떨려요.
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그게 정말 무서워요.
진짜로 죽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어서 그냥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무섭다는 건 미련이 있다는 거니까, 그 정도로 좋은 기억이었다는 거니까 그건 그것대로 좋은 걸까요.
두 분을 엄마아빠라고 부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엄마아빠! 엄마아빠!
무서워요.
다음 생이란 게 있을 까요?
그렇다면 좋은 엄마아빠를 만나고 싶어요.
두 분 같이 유쾌한 분들이면 좋겠어요.
하지만 불가능하겠죠. 살아있을 때도 제 바람이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제…
가볼게요.
그럴 시간이에요.
잘 있어요. 엄마, 아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