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5)
# 15
Chapter.4-1 휴식과 칵테일
“일어나라 드래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평범한 오후. 아직도 퍼질러져 있는 드래곤을 깨운다. 이것 또한 일상이다.
“우웅?”
변함없이 눈을 비비며 비틀비틀 일어나는 검은 머리의 드래곤. 난리가 난 드래곤의 머리를 마치 습관처럼 정성스럽게 정리하고 있는 나.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일상.
루린은 말했다. 자신의 머리는 드래곤 상태에서의 털과 같은 것이라고. 그러니 인간 따위가 만지는 건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며 방방 뛰었지.
지금은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부드럽게 해달라고 난리다. 루린의 머리카락은 마치 비단결 같다. 그래서 솔직히 빗는 보람은 있다.
대충 씻기고 입히고 1층으로 끌고 나오면 그때야 좀 정신을 차려서 나를 바라본다. 물론 첫마디는 항상 정해져 있다.
“밥 줘라. 밥! 밥! 배고프다. 밥!”
어린 시절 직장에서 귀가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던 첫마디랑 매우 비슷하다. 물론 아버지가 이놈의 드래곤처럼 귀엽게 방방 날뛰지는 않았지만.
내 주위를 폴짝 뛰면서 두 손을 치켜들고 밥을 요구하는 드래곤. 당연히 볼은 잔뜩 부풀어져 있다. 배고프다는 신호다.
“알았으니 여기 앉으시죠. 드래곤님.”
“오냐. 빨리 내놔라!”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 테이블에 앉는다. 루린이 먹는 건 당연히 고기요리다.
채소는 별로 안 좋아한다.
드래곤이 채소를 좋아하는 게 더 웃긴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아예 안 먹는 건 아니다. 고기랑 같이 있으면 그냥저냥 먹는 정도.
드래곤에게 영양이 어쩌니 하면서 채소를 먹이는 것도 웃기니까 그다지 강요는 하지 않는다.
“루린. 오늘은 목욕하자. 얼른 밥 먹고 준비해.”
“목욕 말이냐?”
드래곤이 눈을 빛내며 일어났다.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 몸이 찌뿌둥했는데 잘 됐다!”
“무슨 아저씨 같은 대사를 하고 있냐. 최강의 종족께서 몸이 찌뿌둥하다고? 드래곤 중에서는 꼬마 주제에?”
어떤 인간보다야 오래 살았지만, 드래곤 중에서는 뭐.
그러니 건방지다.
나는 손으로 루린의 입술을 잡아 쭉 당겼다. 그러자 입술이 삐죽 당겨진 그 상태로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든다.
“우우우우우”
그레이크시에도 목욕탕은 존재한다. 현대로 치자면 로마제국과 비슷한 형태의 대중탕이다. 하지만 이놈의 드래곤을 혼자 목욕탕에 밀어 넣었다가는 건물이 날아간다. 루린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인간으로서는 빵점짜리라고 할까.
유희 자체도 날 따라나선 것이 처음인지라 인간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그녀니 뭐 어쩔 수야 없는 부분이지만.
루린은 그저 어머니가 물려준 레어에서 잠만 자던 드래곤이니까.
어쨌든 루린을 홀로 여탕에 보낼 수 없다는 이유도 있고 수많은 사람이 사용한 목욕탕보다는 자체적으로 만든 깨끗한 온천이 좋다는 이유도 있기에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평소에는 가벼운 샤워.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목욕탕을 이용하는 게 나의 규칙이다. 일정한 패턴으로 사는지라 루린은 그 규칙에 자동으로 포함된다.
루린은 딱히 목욕 자체를 싫어하진 않았다. 아니 지금의 반응처럼 오히려 좋아하는 편. 뜨거운 물을 좋아하는 드래곤이다.
그런지라 임시휴무 간판을 내걸고 루린의 손을 잡아끌어 언덕 안쪽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이쯤에다가 만들자.”
“여기?”
“응, 저번에 경험한 바에 의하면 딱 여기가 지하수맥이야.”
이 시대의 지하수는 청정하다. 현대의 지하수하고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화학적인 오염물질이 있을 리는 없다. 게다가 이쪽의 지하수는 그레이크시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물의 수맥이 빠져나가는 길이다. 즉 식수로서 검증된 지하수다.
저번에는 엉뚱한 곳을 파다가 마그마가 튀어나올 뻔 했다. 드래곤이 너무 힘을 줘서 말이지.
“자, 힘내라 드래곤.”
나는 방향을 가리키며 루린을 재촉했다.
“여기란 말이지. 맡겨둬라.”
당당하게 대답한 루린은 곧 입을 벌렸다. 그 입에서 브레스가 튀어나온다. 드래곤의 몸일 때와 비교하면 그 위력이 반에 반도 못 미치지만, 오히려 온천을 만들 때는 딱 좋다.
잘못해서 대형 마법을 사용하면 온천을 만들기는커녕, 아예 언덕이 박살이 나니까.
그렇기에 미세한 조절이 가능한 지금의 브레스가 차라리 최적이다.
루린은 먼저 언덕의 중앙을 동그랗게 깎았다. 그리고 그 중앙에 브레스를 계속 사용했다.
드래곤 브레스가 언덕을 몽땅 뚫고 지표면 아래까지 파고든다. 브레스의 힘에 의해서 밀린 지하수가 요동치면서 뿜어져 나온다.
볼록 솟은 언덕 면 중앙을 동그랗게 파서 다듬어 놓았기에 브레스의 압력에 의해서 물길이 튀어나와 차오른다. 어느 정도 차면 곧바로 마법 방어막으로 구멍을 막아버리는 게 포인트다.
“헥헥! 입 아프다!”
루린이 입을 다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또 인간의 몸은 불편하다고 궁시렁거린다.
“힘들어도 아직 쉴 순 없어. 뚫어놓은 구멍에다 보호마법이나 걸어놔, 이대론 물이 빠져나가니까.”
“이미 했다. 날 뭘로 보고 그러느냐. 히히히. 그대는 하수로군!”
“그랬어요? 잘하셨네요.”
고온의 드래곤 브레스 덕분에 물 온도는 매우 뜨겁다. 아니 뜨겁다 못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대로 들어갔다가는 황천길 구경하기 딱 좋다.
나는 아이스 마법으로 물 한쪽을 얼렸다. 물이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만.
목욕하기 적당한 온도는 아무래도 한 30~40도 정도니까.
물을 순환시키면서 조금 기다리면 적당한 온도가 된다. 온도도 적당하고 크기도 적당한 온천의 탄생이다.
물론 드래곤 브레스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덥혔으니 엄밀히 말해서 온천은 아니다. 온천은 마그마 같은 것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뜨거워진 물을 의미하니까. 하지만 우리에겐 온천이다. 용암이나 드래곤 브레스나 뭐. 같은 성질이지.
“이제 들어가도 되냐?”
루린이 슬쩍 물의 온도를 확인한다. 그러더니 옷을 벗어젖혔다. 매일 내가 깨워서 닦고 옷까지 입히는 그녀의 알몸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수건 가져가. 노출 드래곤아.”
“인간이란 정말 너무 귀찮다. 흐유유.”
던진 수건이 루린의 머리 위에 착지한다. 루린은 수건에는 손조차 대지 않고 온천에 풍덩 들어가 가장자리에 기대어 아저씨 같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크흐, 이건 좋다. 매일 하고 싶지만 귀찮은 게 흠이다. 그대, 안 들어오고 뭐하느냐?”
“간다. 가.”
나도 옷을 벗었다. 그리고 대형 타월로 중요부위를 감싸고 뜨거운 물에 들어간다. 오, 딱 좋은 온도다. 피로가 풀리는 기분. 이 뜨거움. 흐아아아.
루린의 반대쪽에 기대고 몸을 지졌다. 루린은 여전히 머리 위에 올린 수건을 치울 생각은 안한 채 목소리를 늘어뜨린다.
“후냐아.”
급기야 흐느적거리기 시작. 뜨거운 김이 하늘로 올라간다. 그레이크시 너머에 있는 그레이크 산 저 너머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극상의 경치다.
“좋아, 기분 좋으니까 선물을 주지.”
“응? 선물 말이냐? 그게 무엇이냐!”
드래곤이 선물이란 말에 반응해서는 드디어 머리 위에 있는 수건을 집어 들고 내 쪽으로 풍덩풍덩 걸어온다.
나는 온천의 가장자리 위쪽에 올려둔 가방을 열었다.
“칵테일이랄까?”
“칵테일이 뭐냐?”
“술이랑 비슷하지.”
“오오, 이런 데서 술인가!”
슬슬 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하려는데 루린의 눈망울에도 별님이 들어 앉는다. 나는 가만있으라고 손짓한 후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초콜릿 리큐어. 그중에서도 초콜릿 크림 리큐어. 모차르O 초콜릿 리큐어다. 쉽게 말해서 초콜릿 술이라고 보면 된다.
루린이 딱 좋아할 맛이라고 할까.
초콜릿을 소환하려다가 엉겁결에 실수로 소환한 물건.
예전에 요리학교에 다닐 때 들어만 본 물건으로 나도 맛은 잘 모른다.
초콜릿 리큐어를 잔에다가 따랐다. 초콜릿 크림으로 된 시럽 같은 술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여기에 우유를 섞는다. 내가 쓴 이 모차르O 초콜릿 리큐어는 초콜릿이 훨씬 돋보이는 게 특징─
이라고 쓰여 있다.
수저로 마구 섞어주면 간단하게 칵테일 완성이다.
“이게 대체 뭐냐? 색깔이 이상한데?”
“과연 맛도 이상할까? 먹어봐.”
한잔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리고 나도 슬쩍 들이켰다.
푸하핫.
역시 맛있다.
초콜릿의 달콤함이 입안 전체에 퍼진다. 그러면서도 초콜릿에 섞인 알코올이 뇌를 덮친다. 그 씁쓸하면서도 알딸딸한 기분 좋음이란.
약간 고급스러운 아몬드 초콜릿 같은 풍미 뒤에 쌉쌀한 알코올 맛. 특히 우유가 전체적으로 알코올을 중화시켜서 부드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달다.
뜨거운 물 위에서 초콜릿 술이라니.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온천조차 또한 직접 만들었으니 이 또한 사치스럽다.
그리고 주변의 풍경 또한 마치 지상낙원 같은 느낌을 준다. 푸르른 하늘과 저 멀리 산자락. 그리고 일단은 미녀인 눈앞의 드래곤.
“어, 어? 이거 달다!”
단맛을 느낀 드래곤은 맛을 음미하긴커녕 그대로 원 샷 해버렸다. 그러더니 잔을 넘긴다.
“한잔 더!”
“야, 무슨 좀 음미하면서 먹어.”
“흥! 너무하다. 치사하다 그대.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는 술을 이제야 내놓다니. 나는 단 게 좋으니까 말이다! 히히히!”
그래, 여자들이 좋아하는 술이기도 하지. 무려 초콜릿이니까. 루린은 녹는듯한 표정으로 다시 내가 준 잔을 받아넘겼다. 그러더니 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엥?
“흐히히히히! 마이따! 마이어. 그대에도 먹어라.”
그러면서 나를 덮친다. 말 그대로 덮쳐졌다. 내 위에 몸을 포개더니 그 기세로 내 이마와 루린의 이마가 박치기한다.
“흐읍!”
그러더니 이놈의 드래곤은 손으로 내 입을 벌리더니 자기 입에 있는 초콜릿 술을 그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루린의 입안에 머금었던 초콜릿의 단맛이 퍼져든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 식충 드래곤이 미쳤나?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참나.
나는 간신히 드래곤의 입술을 떼어냈다.
“흐히히히. 마이찌? 왜 아머고 있어!”
그러면서 루린은 아직 남은 초콜릿 술을 들이켰다. 이건, 완벽하게 소주를 먹고 취했을 때의 반응이다.
잠깐만.
뭔가 찝찝해진 나는 그대로 뒤돌아 초콜릿 리큐어 병을 살폈다.
알코올 도수 17도.
사람을 기겁시키는 문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잠깐, 루린! 그만 먹어 스톱! 멈춰라 드래곤!”
어쩐지 평소엔 절대 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더라니.
술만 취하면 엉겨 붙는 드래곤이 세상에 어딨… 아니 여기에 있구나.
나조차 처음 먹는 술이라 미처 알코올 도수를 확인하지 못한 게 실수였다. 우유를 섞는 바람에 17도나 되는지 몰랐던 게 문제기도 하지.
“실어! 마이따 마리다!”
결국, 몽땅 잔을 비운 루린이 다시 나에게 엉겨 붙었다.
“흐히히. 그대 그어 아느야? 예전에 그대의 동료가 그래다. 입술을 훔치라고오! 그럼 꼼작못한다고 해어! 내놔라 입수르을!”
“웃기지마 주정뱅이 드래곤아!”
“꺄아아악!”
아까 한 말 취소다. 자신이 하는 짓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말.
의외로 이 드래곤은 입술이 닿는 의미를 대충이라도 알고 있었다. 그놈의 예전 동료.
하지만 취한 드래곤에게 덮쳐지고 싶은 생각은 제로다.
목욕을 중지하고 눈을 빙글빙글 돌리며 축 늘어진 드래곤을 들쳐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온몸을 닦고 침대에 눕혀놔도 필사적으로 나에게 엉겨 붙으며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어쩔 수 없이 밤이 깊을 때까지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물론 다음날 곧바로 온천은 메꿔 버렸다. 필요할 때만 파서 쓴다. 그게 원칙이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