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54)
# 154
Chapter.36 히비렌 꽃과 연주회
“그렇지는….”
델리안 공작은 귀찮다는 듯이 미쉘 백작을 쳐다봤다. 그 손짓을 본 미쉘 백작이 그레이크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것에 대해선 내가 설명해주지.”
“그, 그건 감사합니다.”
“수도 연주회가 엄청난 규모로 치러진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연주회는 연주 실력을 겨루는 그런 꿈같은 곳이 아니다.”
“네? 그러면…?”
“물론 처음에는 그런 뜻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었지.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는 동안에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다른 방향 말입니까?”
그레이크 소년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연주회가 대회이며 우승자가 뽑힌다는 것은 제국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미쉘 백작은 그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연주회의 우승이라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대귀족들이 회동하여 황권을 견제하기 위하여 돌아가면서 황제 폐하께 제국 중앙군의 반절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는데, 그것과 연주회 우승이 관련이 깊지.”
그레이크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국 중앙군. 줄여서 제국군.
그것은 사실상 제국의 군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공작들의 공작령에는 당연히 군사력도 포함된다. 그레이크시에도 경비병을 포함한 군사력이 존재한다.
이 군사력은 전쟁이 나면 자신이 속한 공작의 지휘 아래 모이게 된다.
이것이 지방군이다.
하지만, 중앙군은 황제에게 직속된 제국의 군대를 말하는 것으로 국경방어와 수도방위를 통괄하는 제국 군사력의 통칭이다.
제국의 황권 강화를 위하여 초대황제가 만들어낸 이 군단덕분에 제국에서는 대귀족의 군사력이 최저의 수준으로 제한되어 왔다.
영지에서 징병할 수 있는 숫자는 시를 경비할 수 있는 수준이 고작.
군사력이 중앙군에 집중되는 것이다.
그리고 변경백이 없다.
국경의 수비는 중앙군대가 맡는다. 따라서 다른 일반적인 봉건제의 나라처럼 국경 지역의 후작들에 한하여 군사력의 증강을 인정하는 제도도 없다.
하지만 그 이후로 황권 약화를 거듭하면서, 제국에서는 황권의 견제를 위하여 중앙군의 반을 대귀족 중 한 명이 1년씩 위임통치를 해오고 있었다.
군 주요보직에 자신들의 가신을 임명할 수 있는 임명권이 생기게 된다.
병사를 지휘하는 대장이 소속 가신이 되는 것이니, 그 견제권은 강대하다.
바로 이 중앙군이, 엘이 처음에 이쪽 세상으로 전이되었을 때 징병 돼 구르고 또 굴렀던 군대다.
마법사가 된 후로 주요보직을 맡은 것도 바로 이 중앙군.
그리고 수백 년 전부터 중앙군을 반씩 나누어 운용했던 바로 이 비밀스런 중앙군 이분화에 유일한 예외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엘이었다.
드래곤 전쟁이 벌어진 그때.
황제와 공작들에게 중앙군의 전 군권을 위임받았다. 전원일치에 의한 군 통수권자가 생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어쨌든 황제가 군대를 장악하고 폭군이 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생겨난 이 제도.
그리고 연주회가 바로 이 제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그레이크 소년이 아찔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설명을 마친 미쉘 백작은 다시 연주회로 이야기를 돌렸다. 미쉘 백작과 델리안 공작에게는 사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미쉘 백작의 목소리가 좀 더 낮아졌다.
“그러니까 연주회에서 뽑히는 우승자가 속한 세력에서 군권의 반을 장악한다는 거다. 공작들이야 서로 군권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뽑기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무를 겨루는 건 또 너무 야만적이고, 그렇다고 돌아가면서 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 그러니 레가나다. 우리 귀족에게 걸맞으면서 교양 있고 우아한 것은 레가나뿐이니. 바로 그 실력을 가지고 선정하지. 그런데 황제직할령도 아니며, 공작령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작령도 아닌, 그저 배분이 유보되었을 뿐인 자네의 영지는? 당연히 무소속 상태로 출전 자격이 없게 되지. 연주회의 우승자는 4공작의 세력권 안에서만 나오니까.”
그렇다면 베르나의 경우는?
후작령 소속이었다. 하지만 꼴찌.
데드란 백작이 관여했다고 했다.
실력으로 평가하지 않고 예선에서 그레이크 백작가를 깔아뭉갤 생각으로 꼴지를 만들었던 건가.
후작세력의 힘이 너무나 약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 100퍼센트 순수한 실력보다 어느 정도 권력의 입김이 들어갈 테니.
그레이크 소년은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델리안 공작은 베르나를 그저 더럽다고 칭했다.
사정을 모두 알면서도 그저 더럽다고.
그런 사람을 제대로 섬길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사람이 제대로 그레이크시를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절대로 아니라고.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
그레이크 소년은 대저택에서 있던 일을 상기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대로는 참여조차 못 한다니.
자신의 멍청함을 꾸짖으면서 그레이크 소년은 무거운 걸음으로 빌려놓은 저택의 앞에 섰다.
영주성처럼 방음이 잘되어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렴풋이 베르나의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그럴수록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
수도.
또 제국의 수도.
이제는 새롭지도 않다.
이번에 수도에 온 것도 황제를 만나기 위해서다.
하긴, 은퇴한다고 수도를 떠났으니 굳이 올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뿐인 게 맞기는 하다만.
그래도 은퇴를 한 게 맞냐고 여길 정도의 빈번함이긴 했다.
뭐, 인생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거지.
“그대, 뭘 그렇게 쪼개냐. 바보 같다.”
“지금 바보 같았어?”
끄덕끄덕.
대답 대신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린.
내 팔에 매달려 제로거리에서 고개를 흔드는 중이다.
“너 때문에 뒷머리가 없어져서 더 바보 같아 보이는 걸 수도.”
“맞다. 바보다.”
“얌마! 누가 바보야? 자꾸 그러면 나도 네 머리를 깎아버린다?”
“싫다! 절대로 싫다. 안 된다! 머리라는 건 아무나 깎을 수 없는 것이다!”
루린은 마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내놓고 가라는 산적을 만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양손으로는 머리를 잔뜩 감싸 쥐고 경계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차피 넌 조절 가능하잖아?”
“그랬나?”
“어이고 위대한 존재께서 요즘 완전 인간이 되셨어?”
“히히히, 뭐 그것도 상관은 없다. 아니다 인간은 안 된다!”
루린은 인간이 되도 상관없다며 쿨한 대답을 하며 웃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기 시작했다.
“상관없다며 왜 안 돼?”
“그대가 어디 있든 금방 쫓아갈 수 없다. 텔레포트는 쓸 수 있어야 한다!”
“스토커냐.”
“스토커?”
“뭐 그런 게 있어.”
“뭔지 모르겠지만 나같이 훌륭한 존재인가 보군. 스토커란 건.”
“아니… 절대 아닌데. 그 반대라고 할까.”
“그대.”
“응?”
“왠지 화난다!”
루린은 고개를 홱 돌리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반대쪽으로 성큼성큼 걸었더니 다시 홱 내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으으으으!”
그리곤 왼발로 땅바닥을 쿵쿵 치더니 볼을 부풀린 채 결국 내 옆으로 쪼르르 따라왔다. 2초도 가지 못한 반란이었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짜증난다. 그 인간마법사. 게다가 황제도. 이 몸을 영접하려면 달려오든가 해야 마땅한 것인데!”
뭐, 말은 맞는 말이지.
물론 지금 같은 경우는 몰래 찾아 온데다가 황제는 우리가 온 걸 모르고 있으니 영접은 말이 안 되지만.
오히려 황제가 부르지 않았는데 당당하게 쳐들어갈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서 나뿐일 테니 충분한 대우 아닌가?
잠시 후 마탑 아래에서 메드린느가 급하게 뛰어올라왔다. 요즘 메드린느는 약간 내 집사가 된 느낌이다.
“오늘은 폐하께서 황궁 서재에 계십니다.”
“그래? 조용히 안내해 주겠어?”
“네, 알겠습니다!”
쩔쩔매는 메드린느의 안내를 받아서 자객을 잡는다고 난리를 치게 만들었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매우 평화적으로 황제의 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황제에게 온 목적이야 한 가지다.
히비렌 꽃을 위해서.
셀리의 안녕을 위해서다.
환생이니, 뭐 그런 전설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해주고 그 아이의 안녕을 기원하고 싶었다.
수조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만약 그 전설이 사실이고 언젠가 우리가 아이를 가졌을 때 셀리의 넋이 조금이라도 함께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그러기 위한 히비렌 꽃은, 세레이나의 제보에 따르면 황궁의 보물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대륙에서 진귀한 물건이 발견되면 황궁으로 진상되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세레이나의 제보가 사실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그녀가 어떤 유희를 즐겼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황궁 안에서 지내봤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건 뭐 나중에 들을 기회가 있으려나.
황궁과 세레이나.
그녀답게 화려하고, 능구렁이 같은 면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한 느낌이다.
나는 메드린느와 함께 서재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이미 메드린느가 황제에게 말해놓았기 때문에 우릴 막는 병사는 없었다.
“너무 자주 뵙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폐하.”
“드디어 이 나라에 군림하려고 마음이라도 먹은 겐가?”
서재에서 여러 권의 오래된 책을 살피고 있던 황제가 의자에서 일어나 시종들을 모두 물렸다. 문이 닫히자 황제는 루린의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인간의 황제여. 네놈은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같다.”
“그럴 리가 있겠나이까?”
하지만 그럼에도 루린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다짜고짜 황제에게 투덜거렸다.
덕분에 놀란 황제의 입에서 존댓말이 튀어나온다. 인간을 초월하는 드래곤의 앞에서 황제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현 황제는 드래곤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인간위에 군림하는 드래곤을 잡겠다며 날뛰는 멍청한 짓을 할 사람도 아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망한 경우도 이 세상의 역사에서 몇 번 있었다고 한다.
“엘에게도 허리를 숙여라. 엘은 나보다 더 위대하다.”
루린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나에 대한 대우였다. 내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 듯, 눈빛이 강렬하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제는 루린의 말을 당연하다는 듯 받고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싫다고 하였나이다.”
“그대가?”
루린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긍정했다.
“그러냐.”
“다 이유가 있어. 고맙지만, 지금은 물러나 있으세요. 우리 루린님.”
“후냐.”
루린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황제에게 관심이 식었는지 폴짝폴짝 서재를 향해 달려가 이리저리 책을 빼기 시작했다.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뭘 새삼스럽게.
뭐 자기 남자가 무시당하는 게 싫다는데야, 나쁜 기분인 건 아니지만.
“그건 그렇고 오늘도 도움 하나를 받으려고 찾아왔습니다.”
“도움이라면?”
“황궁 보물고에 히비렌 꽃이라는 진귀한 물건이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저 보관만 해두고 쓸일 없는 물건이라면 양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대가는 충분히 치르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