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59)
# 159
Chapter.36 히비렌 꽃과 연주회
“그럼 어서 이동하죠. 어머니.”
그레이크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는 베르나의 팔목에서 손을 떼고 걸었다.
물론 걷다가 멈춰 베르나를 기다려주었다.
베르나가 아들의 옆으로 걸어온다. 여전히 상태는 안 좋지만 그레이크 덕분에 표정은 조금은 나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걷던 탓에, 기역자로 꺾이는 복도에서 한 여자와 몸을 부딪쳤다.
그레이크가 말릴 사이도 없이.
-퍼억.
앞에 있던 여자가 몸을 휘청거린다. 그러다 중심을 잡고는 베르나와 그레이크 소년을 노려봤다.
“당신들 눈 안 달렸나요?”
“죄, 죄송합니다!”
이 연주홀에는 홀을 관리하는 사용인들과, 귀족 딱 두 부류만 존재했다. 물론 그레이크 소년이 마주한 여자의 복장은 매우 화려했고 그것은 자연스레 마주친 여자가 귀족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죄송하면 다인가요? 꿇어요. 이, 대귀족 로리아나 델리안이 넘어질 뻔했다고요!”
델리안 공작가.
이번 수도방문에서 여러 번 자신을 괴롭히던 이름. 델리안이라는 성이 붙어있다는 것은 곧 그녀가 황족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베르나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그레이크 소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곧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물론 법적으로나 귀족사회의 예법으로나, 무릎을 꿇을 필요까지는 절대로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황족의 명령이었다. 또한 그레이크 소년은 더 이상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베르나의 심리 상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으니까.
“사교계에서 본 적 없는 걸 보니, 어디 시골 귀족인 것 같은데, 명심하세요. 수도에서는 귀족이 다 같은 귀족이 아니라는 것을.”
로리아나 델리안은 금발머리를 휙 넘기면서 몸을 돌려 사라졌다. 두 눈에는 경멸만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황족 분께 누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렇지… 황족 분께… 황족 분께….”
역시나 베르나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레이크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면서 다시 베르나를 이끌었다.
“용서하고 돌아간 것 같으니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전, 더 당당한 귀족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러니 어머니 그렇게 주눅 드실 필요는 절대로 없습니다!”
***
드디어 루린의 차례다.
나는 집사복장을 한 연주홀 관계자의 지극한 안내를 받으며 2번 홀에 입장했다.
2번 홀도 연주회장이다. 중앙연주홀의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소규모 원형극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레가나가 설치된 무대, 그리고 객석. 객석은 영화관과 비슷하게 계단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 중간층쯤에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다.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공작 중에서 가장 자부심이 강한 남자로 기억한다. 물론 공작과 나 사이에는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은퇴하는 날 그렇게 천명했기에, 다행히 공작은 그 룰을 잘 지키는 중이었다.
황제 또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루린에 대한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으니까.
물론 공작이든 황제든 루린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루린은 당당하게 레가나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이제 레가나를 배운지 이틀.
실력은 물론 조금 성장했다. 걸음마를 걷는 수준에서 이제 드디어 유치원생 수준에 다다랐다고 할까.
하지만 예선은 바로 오늘이고, 유치원생이 더 성장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물론 결선 날까지는 아직 일주일이나 되는 시간이 남았다.
그러니 결선까지는 여유가 있다.
이 예선만 통과하면 말이지.
루린은 레가나 앞에 앉더니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제야 주위를 본다.
그러더니 얼굴을 찡그리고, 박차고 일어나 이쪽으로 다시 다다다 뛰어왔다.
“그대그대그대그대!”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내가 왜 저기 인간 놈들 따위 앞에서 연주 하냐!”
“…우승한다며?”
“그건 알고 있다. 그 황제 놈이 뽑는 거지. 뭐 인간의 왕이니까 그건 이해한다. 그 정도는 이 몸도 봐줄 수 있다. 실은 봐주기 싫지만, 모…모모목표가 있으니까! 우승해서 그대에게, 으허어어! 아니다. 나 아무 말 안했다. 아무튼 그런 거니까, 저놈들 죽인다!”
“어쭈… 결론이 왜 죽이는 거야?”
나는 어딘가 수상한 말과 함께 요상한 결론까지 내리는 루린의 양볼을 잡아 쭈우욱 당겼다.
잘 늘어진다.
볼따구가 늘어난 루린의 얼굴은 포동포동한 느낌으로 귀엽다.
“시끄럽고, 우승하고 싶은 거면 제대로 참가하세요.”
“으으… 우승…! 할 수 없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리 말하자, 루린은 우승자체보다 그 우승으로 뭔가 이루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인지, 발로 콕콕 바닥을 찍으며 몸을 돌려서 돌아갔다.
히비렌 꽃을 얻기 위해서, 혹은 그걸 원하는 나를 위해서 우승한다고 나선 건줄 알았는데, 뭔가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파헤쳐줘야지.
그 꿍꿍이를.
어쨌든 루린은 시작하라는 말 따위는 당연히 듣지도 않고 마이웨이로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광!
게다가 언제나 시작은 한결같다.
내가 못산다.
시작하기 전에 저렇게 건반을 마구 두드리는 것이 루린은 매우 마음이 든 듯했다.
강렬한 소리가 번쩍이는 게 마음에 든다나?
그리고 이어지는 어설픈 연주.
그래 문제는 이 어설픈 연주다. 예선에서 과연 합격할 수 있느냐의 문제.
물론 승산은 있었다.
델리안 공작을 비롯한 공작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충분히 승산은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드래곤을 떨어뜨릴 수는 없겠지.
일이 잘못되면 모든 것을 황제에게 미뤄버릴 놈들이다.
루린의 실력이 저 모양이니 더 안심하면서 말이지.
“합격입니다!”
잠시 후 예상 그대로의 일이 벌어졌고, 루린은 나에게 와서 역시 자신은 대단하다는 얼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히히, 평가받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저놈들도 연주는 들을 줄 아는군. 어땠냐 그대!”
“아직 한참 부족한데요?”
“뭐냐! 그럴 리가!”
정말로 놀랐다는 얼굴 하지 마시지. 녹음해서 들려주고 싶네.
“그럴 리가 있지. 잘됐다. 이 기회에 뒤로 가서 다른 참가자 연주 들으면서 공부 좀 하자.”
“무슨 공부냐. 이미 최곤데!”
나는 헛소리를 하는 루린을 이끌고 연주홀의 가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출구는 저쪽입니다. 그쪽은 관계자 외 출입금….”
델리안 공작의 옆에 있던 귀족이 우리를 막아서려고 했으나, 공작에게 눈치를 주자 곧바로 무사통과.
우리는 그 상태로 다른 참가자의 연주를 감상했다.
“어?”
하지만 몇 차례 연주가 지나가고도 딱히 대단한 연주를 듣지 못해서 슬슬 돌아가려는 찰나,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여기서 만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인물이다.
저 모자가 어떤 연유로 이런 엉터리 같은 연주회에 참여하게 된 거지?
그 엉터리를 조금 바꿔놓긴 했지만 말이지.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일이 재밌어 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아마도 참가자는 베르나겠지.
그렇다면 실력은?
그녀도 예선을 통과한다면 보험이 하나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히비렌 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보험이.
그레이크 소년은 셀리에 대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루린, 이리와.”
“어어? 벌써 가는 거냐?”
의외로 싫다거나 귀찮다거나, 또는 졸거나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연주에 관심을 보이던 루린이 고개를 갸웃했으나 팔을 잡아끌자 잘 끌려온다.
이쪽에서도 저쪽이 안 보이고, 저쪽에서도 이쪽이 안 보인다.
뭐 말소리와 연주 소리는 들리니까 상관없다.
갑자기 숨은 건, 공작이 앉아 있는 위층에 떵떵거리며 앉아있을 수 있다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일단은 내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다는 뜻도 있었다.
그리고 참가자라면 루린의 라이벌이기도 하니까. 적을 알고 나를 숨기는 건 당연하달까.
“왜 그러냐, 그대?”
나는 루린을 벽 쪽으로 몰았다.
그리고 쿵! 하고 벽을 쳤다.
루린의 얼굴 양옆으로 벽을 짚고 가둔다. 얼떨결에 벽치기 같은 자세가 되어버렸다.
“잠깐만요. 데드란 베르나?”
“아, 그것은 결혼 전의 성입니다.”
“숙부님, 데드란 백작이라면… 그 입에도 담기 힘든 귀족의 수치가 아닌가요?”
루린에게 벽치기를 시전한 상태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말하고 있는 것은 공작의 옆에 있던 금발 머리의 여자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루린이 레가나를 치기 전에도, 치는 중에도 뭐라고 계속 투덜거렸던 여자인 것 같은데.
아까 잠깐 나가더니 언제 돌아왔는지 또 나대는 중이었다.
“하아, 그 더러운 몸으로 나와 부딪혀?”
여자가 그런 소리를 하더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짜악!
그리고 곧 뺨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베르나가 맞은 것 같은 상황.
“데드란 백작과 어머니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만하세요!”
“웃기고 있네.”
공작의 옆에 있던 걸로 봐서, 아무래도 조카거나, 딸이거나, 뭐 같은 가문이겠지. 그 말은 황족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히 그레이크 소년에게 막말을 퍼부어도 죄가 되는 위치는 아니지만.
“불합격이에요. 여기서 당장 나가세요.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니까.”
과연 그레이크 소년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자의 행동은 안하무인이지만, 정치적으로 그레이크 소년이 어떠한 판단을 할지 궁금했다.
“로리아나! 이리 돌아오거라.”
하지만 싱겁게도 상황을 종료시킨 것은 델리안 공작이었다.
“숙부님?”
“그보다, 연주를 시작하지. 그레이크 백작?”
“감사합니다! 전하!”
아마도 뺨을 맞은 베르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을 그레이크 소년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벽치기를 하고 있던 고개를 슬쩍 홀 안으로 들이밀었다. 지금 그레이크 소년은 이쪽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상관없을 터.
눈으로 상황을 확인하니 베르나가 마침 건반에 손을 얹고 있었다. 하지만 상태가 이상하다.
손을 엄청나게 떨고 있었으며 곧 그 떨림은 몸으로까지 옮겨졌다.
“숙부님, 제대로 연주를 치지도 못하는 거 보세요.”
“조용히 하거라!”
의외로 델리안 공작은 다시 큰 소리로 여자를 닥치게 만들었다.
“그대!”
루린이 그 상황에서 내 팔을 툭툭 건드린다. 그래서 내밀고 있던 고개를 돌려서 루린을 쳐다봤다.
“그대, 이 자세는 뭐하는 거냐? 이이이이것도 스킨십이라는 거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한다.”
루린은 이상한 소리를 시작했고 동시에 홀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그레이크 백작, 그녀를 데리고 그만 돌아가게.”
“잠시만요! 전하!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 진정하면 훌륭하게 연주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되었느니. 합격이다. 그 실력이라는 것은 결선에서 보여주도록, 합격했으니 돌아가라는 말이다.”
“네?”
목소리만 들어도 그레이크 소년이 얼마나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갔다.
어째서 합격시킨 거지?
베르나는 건반을 치지 못했다. 그러니 합격은 이상하다. 공작은 나와 그레이크 소년의 관계를 전혀 모른다.
그리고 이상한 건 또 있다.
베르나의 떨림은 조금 비정상적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어 보일 정도로.
긴장만으로 사람이 저렇게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저 두 사람은 내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상황을 알아볼 필요는 있어 보였다. 두 사람이 연주회에 참가한 이유에서부터, 베르나가 저렇게 떠는 이유까지.
실력은 발휘하게 해주고 루린이 기적을 일으키길 바라야 하는 법.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