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61)
# 161
Chapter.36 히비렌 꽃과 연주회
***
“야, 도망자.”
그레이크 소년의 집에 들렀다가 황궁으로 돌아왔을 때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도망자였다.
루린은 텔레포트를 사용해 곧바로 돌아왔는지 건반 앞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얌전히는 아니다. 흐늘흐늘 거리고 있었다.
건반에 앉아서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도망자 아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내 말을 부정한다.
“그리고 왜 이렇게 늦냐.”
“네가 버리고 가서 늦지.”
“어쩔 수 없다! 조금은 참는다. 참은 후에 복이 온다니까 참을 거다.”
루린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다시 건반에 손을 가져갔다.
“뭐 얼마나 참으실 건데?”
그 뒤로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한 번 아까 그 화제를 꺼냈다. 루린은 대답이 없다.
“이 하찮은 대회에서 우승하고, 그대에게 선물을 주면, 다 말해준다.”
루린은 고개를 돌려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답답함과, 마음속의 뭔지 모를 감정이 끓어오른다. 행동, 말하는 것, 그 무엇을 봐도 나에 대한 반감으로 하는 행동이 아닌걸 알면서도.
루린이 날 거부하는 세상.
루린이 만약 날 떠난다면?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나는 루린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렇게 까지 말하는데 참아볼 수밖에.
연주회까지 일주일 남았다. 그런 내 마음속의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린은 건반을 띵띵거리다가 손을 멈추고 다시 나를 돌아본다.
“그런데 그대.”
“응?”
“여기 배운 곡들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뭔가 간지럽다! 재미없는 곡들이다. 다른 건 없냐.”
루린은 자신을 가르쳤던 궁녀가 추천했던 곡들을 전면으로 부정했다.
“이제 악보는 읽을 수 있는데 재미없다.”
“그래?”
하긴, 연주회에서는 자신이 치고 싶은 걸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맞는 곡을 쳐야 더 돋보이는 법이니까.
특히 루린 같은 경우는, 초보니까 자신에게 맞는 한 곡을 철저하게 마스터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일.
나는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항상 루린이 콰과과과광! 건반을 두드리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콰과과광 하면 그 곡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 정식명칭은 아니라지만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바로 그 곡이 말이다.
루린은 저래 봬도 상당히 호쾌한 걸 좋아하는 녀석이고, 그래서 마구 건반을 쾅쾅거리는 걸 마음에 들어 하는 녀석이기도 하다.
루린과 얌전한 곡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니까.
***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어느덧 결선의 날이 밝아왔다.
연주홀은 아침부터 매우 북적거렸다. 지방에서 이 사교계의 큰 행사에 참가하려 올라온 귀족들부터, 수도에 머무는 대귀족들까지 하나둘 연주홀로 모여들었다.
도착하는 시간에도 순서가 있는지 하급귀족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시작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거물들이 등장했다.
가장 나중에 도착한 것은 당연히도 이 나라의 황제.
귀족들이 연주홀을 메우고 있는 와중에 중앙홀의 레가나가 몇 번씩이나 점검된다.
결선에 참가하는 것은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10명이었다.
그 10명이 모두 연주를 하면 황제가 순위를 발표한다. 그것이 이번 대회에 새롭게 만들어진 규칙.
참가자들은 연주홀의 화려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루린은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짜증난다.
그것이 감상이었다.
빨간 거의 조언 따위 역시 무시했어야 하는데. 이딴 인간들의 대회 따위.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엘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일념은 그 짜증조차도 능가했다.
루린은 지금 다리를 꼬고 매우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늘어져서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퉁퉁 부은 볼의 얼굴은 오히려 그녀가 귀엽게 보이게끔 작용하고 있었다.
볼이 퉁퉁 부은 건, 망할 빨간 거가 만들어준 규칙 때문에 욕구불만에 빠졌기 때문이다.
꼬옥!
꼬오오오오옥!
우으으으으으으으.
꼬옥하고 싶다.
루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급기야 입까지 삐죽 내밀었다.
만약에 제대로 되지 않으면, 레드드래곤 따위 정말로 훈제고기를 만들어서 벌레들에게 던져주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면서 혼자서 짜증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대기실에는 당연히 다른 참가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루린보다 더 짜증이 섞인 얼굴로 앉아있는 여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로리아나 델리안이었다.
그 옆에는 일렌 공작가의 리엔달 일렌이 앉아있었다.
사교계에서 이미 유명한 두 사람이다.
대귀족가의 출신은 두 명. 그리고 나머지 참가는 백작이하의 가문에서 참가한 귀족들이었다.
가문의 서열에 따라서 의자에 앉은 사람은 로리아나와 리엔달 뿐.
그리고 추가로 루린이 전부로, 나머지는 모두 서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규칙이다.
그러니 로리아나는 거만하게 앉아있는 루린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예선장에서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중이다.
“로리아나님, 저기 저분, 너무나도 교양이 없지 않습니까?”
루린이 눈을 감고 있기에 피어를 대면하지 못한 상황에서 리엔달이 로리아나에게 입을 열었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 로리아나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고.
“듣기로는 우리와 같은 황족가라고 하는데, 어디 얼마나 떨어져 있는 방계출신인지, 정말 감히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답니다.”
로리아나는 특히나 감히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린이 인간 따위의 말은 모기소리모드로 해놓고 있었기에, 그 순간 로리아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로리아나는 델리안 공작의 엄명 때문에 대놓고 루린에게 뭔가를 하지 못했고, 루린 또한 엘의 엄명 때문에 인간을 건드리지 않고 아예 없는 취급하고 있었다.
살얼음판 같은 평화는 그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중이었다.
“뭐 됐어요. 이따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꼴을 보고 비웃어 주죠.”
로리아나는 리엔달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화가 끓어올라서 다른 화풀이 대상이 없나 주위를 보다가, 벽에 기대어 조용히 명상을 하는 중인 베르나를 포착했다.
그 순간 로리아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로리아나는 거미줄에 걸린 사냥감을 발견한 기분으로 벌떡 일어나 베르나의 앞으로 걸어갔다.
루린이 황족가라는 소리 때문에 참견하지 않고 있던 다른 참가자들도, 그 의중을 깨달았는지 로리아나의 뒤를 우르르 뒤따랐다.
“부끄럽지도 않나요? 연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잘도 모습을 드러냈군요. 혹시 창피당하는 걸 즐기나요?”
“로리아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 표정은 무엇이오!”
베르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30대의 참가자가 로리아나의 말을 거들었다.
“로리아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데드란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창피해서 이 자리에 오지도 못할 텐데, 정말로 철면피네요.”
로리아나의 비위를 맞추겠다며 다른 참가자들도 하나들 끼어들어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평가되는 이번 연주회에서 이번에는 이겨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더라도, 표면적으로, 그리고 사교계에서는 로리아나 델리안에게 밉보여서 좋을 일은 전혀 없을 테니까.
물론 베르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지금 무시하는 건가요? 뭐라도 말을 해보시죠?”
로리아나가 다시 베르나를 긁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르나는 그저 고개를 꾸벅일 뿐이었다. 그 어른스러운 태도가 로리아나는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이 말 같지가 않소?”
로리아나의 눈짓을 받은 참가자 중 하나가 베르나의 머리를 잡아 쥐었다. 그리고 강하게 밀쳐버렸다.
연습에 열중하느라 식사를 꽤 거른 베르나는 힘없이 바닥을 굴러버린다.
베르나는 그래도 그레이크시에서는 누구나 떠받드는 영주의 어머니. 그렇기에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건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 연주홀 자체가 황제와 대귀족이 모여 있는 곳이니 그 상대성에 따르고 있었다.
의자와 함께 베르나가 우당탕-! 넘어진다.
그 와중에 하필 베르나가 넘어져서 멈춘 곳은 루린의 발 쪽이었다.
그 접촉에 루린이 감았던 눈을 뜨면서 소리쳤다.
“아프다!”
가뜩이나 스킨십의 부재로 심기가 불편한 루린이 발을 만지며 베르나를 눈에 담았다.
모기소리가 가뜩이나 짜증났는데 자기까지 건드렸으니 이건 이미 정당방위다. 다 죽여버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베르나가 커다랗게 입을 열었다. 로리아나에게 당하면서도 전혀 열지 않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루린의 이름이었다.
“루, 루린님? 어째서 여기에…?”
그러자 루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엘이 말하길 다른 이름으로 참가했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은 루린이 아니다.
“누가 루린이냐! 루린은 맞지만 아니다.”
“그, 엘님의… 부인 맞으시죠?”
“흐냐?”
화를 내며 일어나던 루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베르나를 자세히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본적 있는 얼굴이다. 그것이 루린의 감상. 하지만 그 어디서가 어디서였는지까지는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몸을 아냐? 넌 누군데?”
베르나는 엘이 엄청난 마법사라는 걸 알고 있었고, 루린 또한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다, 두 사람에 대해서 들은 것도 많아서 루린의 하대에도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그레이크의 어머니이자… 그… 영주성에서 몇 번 만났는데 실례지만 기억이 안 나시나요?”
“응? 그렇군. 그 꼬맹이의 엄마냐? 뭐 됐다. 부인이라고 했으니 봐준다, 히히. 여기 앉아라.”
루린이 자기 옆 의자로 베르나를 끌어 앉혔다. 그리고 크게 하품을 시작했다.
기다리다 보니 슬슬 졸리고 귀찮고, 짜증나고의 삼종세트가 발현되는 중이었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로리아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제 지금 무슨 짓이죠…? 당신!”
로리아나가 그 짜증 때문에 숙부의 말을 어기면서까지 루린의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니 당신이냐?”
루린이 눈을 번뜩이며 로리아나를 쳐다봤다. 로리아나도 루린의 눈을 마주했다. 동시에 미세한 피어가 로리아나를 덮친다.
그 피어를 느낀 로리아나가 깜짝 놀라서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자신이 왜 도망쳤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으나 다시는 루린의 앞으로 다가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참가자들도 동시에 느낀 바.
순식간에 대기실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
“거, 연주회가 쓸데없이 복잡해져서 짜증이 납니다 그려.”
연주홀 귀빈석에 자리 잡은 세르게이 공작이 투덜거렸다.
“뭐 이번 한 번뿐이니 어쩌겠소. 위대한 존재가 관련되어 있다니… 그보다 우승하면, 폐하께 바치는 세금이 1년이나 면제된다는 건 솔깃하지 않소? 거기에 군권까지. 뭐 일석이조 아니오?”
그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델리안 공작이다. 하지만 떠든 것은 델리안 공작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일렌 공작이었다.
투덜거렸던 세르게이 공작가에서는 우승을 노릴 실력자는 없었다. 반대로 일렌 공작은 리엔달이 이번에는 로리아나를 꺾겠다면서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외곽에 있는 태무란 공작은 평소와 다르게 시종일관 조용했다. 이번 일에 엘이 관련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계속 저런 상태다.
다른 공작들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나, 태무란 공작은 절대로 나댈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저 델리안 공작가나, 일렌 공작가에서 우승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위대한 존재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확실한 정보인가?”
그러니 태무란 공작은 이게 가장 궁금했다.
“형편없소.”
델리안 공작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태무란 공작은 흥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일렌 전하, 그보다 그레이크 가문의 출전자 이야기 들으셨나이까?”
미쉘 백작이 싸늘해진 분위기에 적절하게 끼어들어 일렌 공작에게 질문했다.
“아, 그놈. 그렇지 매우 건방진 놈이었다.”
일렌 공작의 반응에 따라 미쉘 백작은 그레이크 가문을 사교계에 아예 발도 못 붙이게끔 창피를 줘서 자기 신세를 깨닫게 하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델리안 공작의 뜻을 대신 전한 것이다.
델리안 공작은 저런 소리를 직접 하는 없어 보이는 짓을 가장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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