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63)
# 163
Chapter.36 히비렌 꽃과 연주회
관객들이 숨 쉬는 것도 잊고 연주에 빠져버린 것. 그것이 곧 결과다.
관객의 반응을 보면 이미 승부는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그들이 자존심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열중했는지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베르나의 연주가 끝나고 수 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입조차 여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놀란 건 엘도 마찬가지였다.
‘베르나가 이 정도의 연주를 할 줄 안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 그건 아닌가?’
그랬다고 할지라도 우선 루린이 실력으로 우승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루린이 우승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엘에겐 루린의 우승의 최우선이다.
물론 그 우승은 실력에 의한 우승이어야 한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누가 봐도 베르나의 우승이 정당하다는 것이 엘의 결론이었다.
강렬한 연주에 혼이 나가 있는 그레이크 소년을 뒤로하고 엘은 일어나서 움직였다.
이 엄청난 연주에 정당한 결과를 부여하기 위해서.
약 2분이 더 지나고, 간신히 사회자가 정신을 차리고 진행을 재개한다. 하지만, 그 이후 참가자들의 연주는 솔직히 말해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
베르나는 연주가 끝난 후 대기실로 돌아왔다. 대기실에서도 물론 연주 소리가 들린다.
로리아나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대기실에 돌아온 베르나를 맞이했다.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이다.
“뭣들 하고 있어요? 당장 저 천한 것의 손을 잡아서 뭉개버리세요!”
자신보다 더 대단한 실력자라는 것, 그런 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다면 망가뜨려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진리다.
로리아나 델리안의 머릿속 회로는 딱 그렇게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베르나가 연주하는 내내, 다른 참가들이 놀란 얼굴로 자신을 힐끗거렸을 때부터, 손톱을 깨물면서 절대로 저 귀족의 수치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결심한 바.
그 치욕을 풀기 위해서 원래 밖에 있던 공작가의 호위기사들을 대기실에 들여놓았다.
공작가의 호위기사들이 우르르 베르나를 둘러쌌다.
“다시는 건반에 손도 댈 수 없도록 뭉개버리세요. 감히 예선에서 그런 모습으로 델리안 공작가를 능멸하다니!”
기사들이 베르나의 팔을 붙잡는다.
그러자 갖은 모욕, 뺨을 맞거나 밀쳐져서 바닥을 구르거나, 귀족 신분으로는 평소에 절대 경험할 일 없는 온갖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그저 가만히 있던 베르나가 처음으로 손을 감싸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소, 손은 안돼요! 소, 손만큼은!”
드디어 연주에 성공했다. 남편 앞에서 칠 수 없다는 트라우마까지 치유된 건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저 여자에게까지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가, 아들이 그렇게나 말했듯이, 과거의 연주회에서도 절대 실력이 모자라서 꼴찌를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에.
이제 그걸 알았기에.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도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그 마음을 담아 연주를 했다. 자신의 삶을 모두 쏟아낸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승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것은 넘겨줘도 된다. 하지만 절대로 손은. 하지 못한 것이 있기에 손만큼은.
베르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 손을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우악스럽게 그녀의 팔을 잡아 빼서 바닥에 내려놓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기사들의 힘을 베르나가 이겨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기사들이 해머 같은 것을 치켜들었다. 베르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안돼에에에에에!”
소리를 지른다. 기사들이 로리아나 델리안을 쳐다봤다. 최후의 명령을 받기 위해서.
“뭘 보고들 있어요? 당장 돌아서요! 리엔달님. 모른 척 해주세요.”
“싹은 뽑아야 합니다.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로리아나가 같은 공작가의 리엔달에게 양해를 구하곤, 다른 일반 귀족가의 참가자들에게는 엄포를 놓은 후 눈빛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이번에는 또 다른 발악을 시작했다.
자신을 모욕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만들었으며 심지어 실력도 마음에 들지 않는 또 다른 한 명.
오히려 그쪽 여자에게 더욱 역겨움이 쏟아져 올라왔기에 로리아나는 손가락질을 하며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저 건방진 것도 잡으세요. 어디 황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끈 떨어진 먼 방계주제에 직계나 다름없는 델리안 공작가에게 이리도 무례하다니! 저것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원래대로면 관객에게 조롱받고 야유를 받으면서 속이 풀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그 두 명이 나란히 자신의 속을 뒤집어 놓았으니, 공작이 줬던 주의는 아예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 순간.
로리아나 델리안이 감히 손가락질을 해버린 그 당사자인 루린은 이미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다.
로리아나가 미쳐 날뛰기 전부터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무는 중이었고.
그 이유는 베르나 때문이다.
루린은 연주를 배우면서, 듣는 귀도 열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연주 실력에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어찌 보면 문외한인 엘보다도 더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실력까지 도달한 것이다.
인간의 문화 따위에 실력을 키울 생각은 없었으나 저도 모르게 그렇게 돼버렸으니.
그렇기에 베르나의 연주를 듣고 이를 악물었다.
‘지다니.’
‘졌다! 이 몸이!’
게다가 베르나의 연주를 듣는 순간, 루린은 저도 모르게 예전 일을 떠올리며 센티멘탈한 감정에 빠져버렸다.
그 부분은 베르나가 엉망진창이었던 삶에서 그레이크 백작을 만나 처음으로 광명을 느꼈던 바로 그때를 연주로 승화했던 대목.
루린은 거기서 엘과 만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감정이 움직였다. 그러니 분하지만 졌다! 바로 그것이 루린의 상태였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 루린에게 ‘감히’ 기사들이 달려와 손을 잡으려 들었다.
루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히 자신을 만지려는 기사들에게 그저 피어를 발산했다. 가뜩이나 화나는데 감히 무슨 짓거리를.
이 세상에서, 자신을 만질 수 있는 것.
그건 단 한 명뿐인 게 당연하다.
그 외의 존재는 허락 없이 손끝 하나 건드리는 것조차도, 먼지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죄악.
그 피어에 기사들은 모조리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피어가 주는 강렬한 무게감!
평소에 나오는 피어는 아주 미세해서, 그냥 눈과 눈이 마주치면 살짝 공포심을 깃들게 하는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대놓고 강렬한 피어를 발산했고 기사들은 호흡곤란에 빠져서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녀석. 아까부터 왱왱 시끄럽다아아아! 난 벌레가 싫다! 왱왱거리니까!”
“이, 이게 무… 무슨!”
루린이 세레이나를 발로 차듯, 로리나아의 몸에 날아 차기를 먹였다.
퍼어어억-!
로리아나의 몸이 생전 처음 당하는 발차기에 쿠당탕탕, 의자너머로 날아가 꽂혀버렸다.
엘이 죽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만 안 했으면 벌써 죽여서 입을 막아버렸을 것이다. 루린에게 있어서 시끄러운 인간은, 왱왱거리는 파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을 벌레를 대하듯이 대하는 것, 그것이 루린이 보통의 인간을 대하는 태도였으며 드래곤의 평범한 사고다.
루린은 터벅터벅 걸어서 베르나에게 다가갔다. 베르나의 손을 붙잡고 있던 기사들도 지금은 모조리 바닥을 구르고 있다.
루린은 베르나에게 피어를 거두고는 가만히 쳐다봤다.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루린에게 엘의 부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루린이 생각하기에, 그레이크 소년은 엘의 부하였다.
그러니까 자기 부하도 되는 일.
“루, 루린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엘의 마법과도 같은 것이라고 이해한 베르나가 놀란 얼굴로 루린을 불렀다.
루린은 그런 베르나에게 자기 마음을 그대로 내뱉었다. 어떤 필터링도 없이.
“너도 마음에 안 든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기 저거 정도는 아니니까 봐준다. 그리고 다음번엔 이길 거다. 실력으로 이길 거다! 이 몸이 못하는 건 없는 거다! 으으! 짜증난다!”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을 쿵쿵 차고는, 엘에게 가기위해서 대기실을 걸어 나왔다.
우승자를 뽑을 때까지 대기실에 있어야 한다고 엘이 그랬기에 하는 수 없이 답답한 곳에 있었던 거지만, 스스로 졌다고 인정한 루린에게 대기실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
“설마 그레이크 가문에게 우승의 혜택을 내려줄 생각은 아니시겠죠? 폐하? 실력으로 뽑는다는 건 어차피 허울 아닙니까. 견제를 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위대한 존재를 우승자로 뽑으시면 되는 일입니다.”
모든 참가자의 연주가 끝나고 황제는 우승자를 뽑기 위해 선택을 하겠다며 연주홀에 있는 일종의 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델리안 공작을 비롯한 네 공작이 모두 우르르 황제를 따라 방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공작을 대표해서 델리안 공작이 황제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그 망할 것. 그딴 귀족의 수치에게 우승 따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마구 조롱이나 당하라고 예선에 붙여놨더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기에 델리안 공작은 너무나도 심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우승만큼은 절대 시킬 수 없었다. 그레이크시에 세금면제라는 날개까지 달아주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그건 곤란하네. 이미 모두에게 철저하게 실력으로 뽑는다고 천명한 바, 황제가 말을 바꾸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델리안. 실력으로는 누가 봐도 우승자가 명백한 상황. 그걸 없던 일로 하라는 셈인가?”
“폐하! 언제부터 이해관계가 그렇게 깨끗하셨습니까! 이번 대회 자체가 상황이 바뀐 것은 위대한 존재의 참가 때문이니, 그렇다면 그만한 실력을 보여준 위대한 존재에게 우승을 줘서 마무리 하고, 이 이상한 대회는 그만 끝내는 것이 정상입니다.”
황제가 델리안 공작의 말에 고개를 젓자, 공작은 물러나지 않고 그렇게 주장했다.
그레이크 소년의 건방짐은 별개의 문제다. 그레이크시에서 나오는 수입은 어마어마할진데, 세금면제의 혜택까지 받게 되면 그 재력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 재력으로 제국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건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일.
특히나 그레이크 소년의 성향이 맘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폐하, 이쯤에서 타협하시옵소서. 다른 정책들에 저희 공작들의 동의를 받기 원하신다면 중립적인 위대한 존재를 뽑으시라는 말입니다.”
“자네!”
황제와 델리안 공작이 눈싸움을 시작했다. 일렌 공작과 세르게이 공작, 태무란 공작도 그 생각은 일치했기에 황제는 지금 4대1로 싸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체 언제까지 그레이크시에 얼토당토하지 않은 혜택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제국에는 제국법이 있습니다. 이제 그 혜택을 거두고 그레이크시를 원래의 위치에 편입시키세요!”
“그건 곤란합니다만.”
공작의 말에 대답한 것은 황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젊은 목소리.
바로 엘의 목소리였다.
특실 문을 박살내고 들어온 엘은 천천히 황제의 앞으로 다가갔다. 공작들과 황제의 시선이 모조리 엘에게 꽂혔다.
황제가 있는 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상황이었으나 그 사실에 대해서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방 앞에 쓰러져 있는 기사들을 보면서도 아무도.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뽑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당신들, 헛소리는 우바우리에나 가서 하시지요? 듣는 귀가 썩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엘이 공작들을 쓰윽 노려봤다.
“그레이크시에 관해선 여기 폐하께서 다시 설명해 주실 겁니다. 폐하, 그만 숨기고 공작들에게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공작님들은 헛소리를 그만 지껄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함부로 떠들다가 공작령이 통째로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말이죠.”
엘은 딱 그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려 특실에서 걸어 나왔다. 공작들은 그저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끼리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눈앞에 지나간 남자는 드래곤들조차 한 수 접어주는 남자.
그들은 모두 그 사실을 드래곤 전쟁에서 목격했다. 두 눈으로. 그 믿을 수 없는 장면을.
규격 외의 인간.
엘이 진심으로 화났을 때에 보여주었던, 수십 마리의 드래곤을 동시에 쓸어버린 그 강대한 마법.
그 마법을 생각하면 닥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그것이 절대적인 힘이 가진 위력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