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72)
# 172
Chapter.38 그대가 없다
드래곤 중에 미식가가 많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미각이 발달 된 종족인데 슬쩍 보니 저 녀석은 딱히 먹는 게 없었다.
먹어도 대충 대충 그냥 짐승을 통째로 삼키는 거 같고.
말 그대로 최악의 식습관.
그러니 이 작전으로 낚겠다는 생각으로 숲을 헤맸다. 레어 근처에는 녀석의 피어 때문인지 살아 돌아다니는 짐승이 아예 없었다. 계곡에도 물고기 하나 살아있지 않고 그 흔한 짐승 한 마리 없다.
그래서 숲을 한참 내려와야 했다. 정상 부근에 레어가 있는데, 아예 산 아래 평지까지 내려와서야 피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부근에는 동물들이 살기에 적당하다.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숲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걷지도 않았는데 짐승들이 이빨을 들이밀었다.
“크르르르르-!”
표범을 닮은 얼룩덜룩 무늬의 들짐승이 나를 공격한다. 발톱으로 할퀴며 배가 고픈지 침을 아주 잔뜩 흘리고 있었다.
으음.
패스다.
저런 육식동물은 별로 맛이 없다.
다시 달려드는 표범인지 재규어인지 모를 녀석을 공격마법으로 멀리 날려 보낸 뒤 다시 탐색을 시도했다.
아까 그놈이 이쪽으로 달려가고 있다가 날 공격했으니 육식동물의 감을 믿어볼까.
그래서 재규어가 향하던 방향으로 걸었다.
결과는 정답이다.
걷다 보니 우거진 숲에서 약간 평원이 나왔는데 거기엔 돼지 비슷한 녀석이 나무에 머리를 박고 뒷발로 땅을 파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통통하다.
척 봐도 맛있어 보인다. 야생 돼지. 그러니까 멧돼지. 이쪽 말로 야생 우바인가.
이거 딱이다. 드래곤의 후각을 교란시키기엔 딱인 식재료를 발견하고 곧바로 마법을 퍼부었다.
하지만 젠장 이다.
잡은 건 좋지만, 레어까지 다시 올라갈 걸 생각하니 한숨은 절로.
괜히 쓸데없는 내기를 했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뭐 마음을 열어야 예전 일을 이야기해줄 것이 아닌가.
지금은 아예 대화가 안 통하는 수준이니.
이 내기가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를 바라면서 일단 필요한 부위만 해체해서 정상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부터가 승부다.
배낭에서 각종 양념을 꺼냈다. 혼자 여행할 때도 기본적인 요리도구들은 필수로 가지고 다닌다.
이 내기가 성립하기 위해서 이 도구들은 필수적이기도 하다.
준비할 요리는 우바갈비다. 그것도 양념 우바갈비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만들 수 있는 요리 중에 가장 후각을 자극하는 요리라서 선택했다.
커다란 돌에 마법을 사용하여 중앙을 파내고 그 안에 우바갈비와 간장을 베이스로 하는 달짝지근한 소스로 재운다.
매우 신선한 고기니까 그 이상은 따로 해줄 게 없다.
이 모든 작업은 당연히 드래곤의 코앞, 레어 안에서 이뤄지는 중이었다.
냄새가 잘 퍼지게 하려면 코앞에서 해야지 뭐 어디에서 하겠어.
이 일련의 과정에서도 블랙 드래곤은 여전히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웅크려 있다.
언제까지 그렇게 관심이 없을지 보자.
나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다짐을 불사르며 다시 요리를 재개했다.
평평한 돌을 찾아서 파이어볼을 이용해 달군다. 파이어볼 정도 되는 온도로 돌을 달구면 불판과 차이는 크지 않다.
특히 달궈진 돌은 잘 식지도 않는다.
손을 갖다 대면 손이 구워지겠지.
그런 온도까지 올라온 돌 위에다가 재워둔 우바갈비를 올렸다.
치이이익-!
맛있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달착지근한 소스가 익으면서 레어 전체에 냄새를 뿌린다.
크으윽.
못 참겠네.
익숙한 나도 이런데 이런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처음 맡아본 드래곤이야 뭐.
나는 슬쩍 웅크린 드래곤을 쳐다봤다. 몸체가 아주 살짝 움찔거린다.
하지만 이쪽을 돌아보거나 하지 않았다. 여전히 관심 없다는 투다.
그럼, 먹방을 시작해 볼까.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프다. 앞뒤로 잘 구워진 우바갈비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뚝뚝 소스가 떨어진다. 야들야들하게 생긴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오, 녹는다 녹아!”
미친놈처럼 혼자서 커다랗게 감상을 내뱉었다. 진짜로 맛있다. 고기의 질이 꽤 좋아 보인다.
냠냠.
우걱우걱.
걸신들린 것처럼 우바갈비를 섭취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굽는다. 돌판에 소스가 잔뜩 묻어서 사방으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쩝쩝.
우바갈비가 이렇게도 부드러울 수 있다니.
“씹히는 맛은 일품이고, 베어 물었을 때 우바 육즙이 터져 나오면서 소스와 어우러져 달면서도 짜고,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싶은데 고기 한 점 안 할래?”
일부러 거창한 감상을 내뱉었으나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기를 왕창 입에 넣고 씹어 먹을 때 뭔가 시선이 느껴진 것도 같은데 이 녀석 강적이다. 움직임이 전혀 없다.
이거보다 더 강한 요리를 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밖은 어둠이 깔리고 있다. 기한은 이틀. 그러니까 아직 하루는 남았다.
드래곤의 상태를 살폈으나 무슨 오기라도 생긴 표정으로 꾹 입을 다물고 커다란 몸체를 말아서 웅크리고 있기에, 일단 후퇴했다.
그리고 밤.
그리고 수면.
그리고 아침.
스트레칭을 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이변을 발견했다. 분명히 돌 위에다가 구워놓은 고기를 남겨뒀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낚시를 한 거다.
식은 고기가 뭐 얼마나 맛있겠냐마는,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잖아?
그런데 큼지막하게 썰어서 구워뒀던 우바갈비들이 모조리 사라져있었다.
모조리.
드래곤 상태에서 이런 크기의 고기를 먹는 건 간에 기별도 안갈 일이다.
폴리모프를 했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두는 건데.
물론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뭐 심증은 100퍼센트인데 증거가 없다. 깔끔하게도 다녀가셨다. 그 상태에서 현장을 덮쳤어야 했는데 너무 맘 편하게 자버렸다.
“어이 드래곤.”
반응이 없다. 꿈쩍도 안한다.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평소에도 오후는 되어야 일어나서 뜬 눈으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녀석이다.
일단 아침 운동을 해주고 주변을 돌아다닌 후 오후에 깨어난 녀석에게 물었다.
“먹었지.”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안 먹었다.”
물론 돌아온 대답은 교과서적인 발뺌이다.
“정말?”
“안 먹었다. 그딴 맛없는 거!”
안 먹었는데 맛없는 건 어찌 알아. 심증이 더 굳혀지는 이 순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구워뒀던 고기가 사라졌는데?”
“네놈이 자다가 배고파서 먹었냐?”
오히려 질문이다.
“아니? 배불러서 남겨둔 걸, 왜 먹어? 내가 너야?”
“이 몸은 이 몸이다. 왜 이 몸이 네놈이냐!”
드래곤은 대화하기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하지만 이미 쿨함을 유지하던 상태가 깨졌다. 뭔가에 당황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으음, 나도 안 먹고 너도 안 먹었으면, 이 레어에 누가 침입했다는 건데, 그렇게나 허술해? 드래곤의 레어에 다른 존재가 올 정도로?”
“벌레다.”
“뭐?”
“청소를 안했다. 그러니까 피어에도 살아남는 조그만 벌레 녀석들이 먹은 거다. 그러니까 먹고 나면 치워라.”
“벌레에에?”
드래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이고, 죄를 뒤집어 씌워도 어떻게 벌레에게….”
“벌레다!”
다른 말을 용납하지 않고 벌레설을 계속 주장하며 입을 다문 드래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뭐 상관없다.
세상에 아예 안 먹어본 놈은 있어도 한번만 먹을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요리.
…라는 것은 솔직히 헛소리긴 하고.
그래도 녀석의 식습관이면 냄새를 못 참고 먹었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다.
이젠 더 못 참을 거다.
차라리 잘됐다.
현장을 급습하면 된다. 발뺌할 수 없게 하려면 어쨌든 현장검거가 제일이다.
범인은 남겨놨던 고기를 모두 먹었다.
맛없었으면 하나 먹고 뱉었겠지. 이 사실이 가장 크다. 즉, 또 먹고 싶을 수 있다. 한번 맛있는 음식에 눈을 뜬 드래곤의 최후를 살펴주마.
나는 크크크 악당의 미소를 흘리면서 다시 우바를 잡아와 굽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다시 소리와 함께 냄새가 퍼져나간다. 드래곤이 계속 움찔움찔 거리기 시작했다.
자기무덤을 판다는 것이 이런 거지.
“배부른데? 슬슬 잘까.”
나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고기들을 한 쪽으로 몰아놓고 돌판을 마법으로 식힌 후에 보란 듯이 누워서 눈을 감았다.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오려나.
어제는 긴가민가하고 확신도 없어서, 일단 맛을 보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진짜로 잤던 것이고, 오늘은 다르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계속 감고 있었다.
한동안 움직임은 전혀 없다.
조심성이 상당한데?
냄새를 그렇게 풍겼으니 한번 맛을 본 이상은 참을 수 없을 텐데?
정말로 맛없었나?
눈을 감고 있으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그건 안 된다.
내기에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이번 밤이 마지막이다.
참을성이 별로 없기를 바라면서 인내했다. 그렇게 수시간.
눈치싸움이 계속되는 와중에 드디어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러니까 드래곤의 움직임이 아니다.
매우 가볍다. 쿵쾅거림은 전혀 없었다.
커다란 몸을 움직이려면 당연히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안 난다.
하긴 어제도 전혀 내가 깨어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역시나 이 녀석은 추측대로 폴리모프해서 고기를 잡수신 거다.
나는 바로 그 장면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고기를 모아둔 돌 위를 쳐다봤다.
내 눈에 들어온 장면.
잠시 믿을 수가 없었다.
상당히 앳된 흑발의 미소녀가 손에 고기를 잔뜩 들고 있었으니까.
이미 입에도 들어가 있다. 입주위에는 소스가 잔뜩 묻어있다.
“드래곤씨. 폴리모프 하셨어요? 후후후 내 승리다.”
내가 그리 말하자 드래곤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그냥 나를 무시하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무시하면 끝입니까?”
“이 모으 드래고이 아이다!”
어쭈. 이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게다가 입에 고기가 가득이라 발음도 제대로 안되고 드래곤 상태가 아니라서 위엄 있는 울림조차 없다.
“그럼 인간이야?”
“이 모이 왜 이가이냐!”
드래곤이 아니라며. 인간도 아니야? 가지가지 한다.
나는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드래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죽어.”
그렇게 말하고 마법을 쓰려한다. 아니 이미 손에서 마법이 발현됐다. 입에는 고기가 있고.
“블랙드래곤님.”
그래서 불러봤더니 일어선 채로 나를 바라본다.
“뭐냐.”
시인했다 지금. 님을 붙여 부르니 시인했다. 단순한 녀석이었군.
“크악?”
그러더니 처음으로 쿨한 얼굴을 무너뜨리고, 차가움이 아닌 당황을 얼굴에 품은 채 볼을 부풀렸다.
뭐야. 이 드래곤.
왜 이리 귀여워?
이 블랙드래곤의 인간 형태를 처음 본 감상은 나 스스로도 황당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