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74)
# 174
Chapter.38 그대가 없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달라진 거?
그다지 없다.
이 녀석의 레어는 매우 단조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입구에 조금 던전스러운 미로가 있고 안으로 들어오면 드래곤의 방이다. 그게 다다. 나는 지금 그 방의 귀퉁이에 서식하는 중이고 블랙드래곤은 방 중앙을 가장 좋아한다.
레어 중앙에는 햇빛이 들어오기도 한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 따뜻함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드래곤의 레어니까 매우 넓고, 레어에서 물리적인 거리감 또한 대단하다.
그러니 정신적인 거리감은 태평양 수준이다.
그나마 가만히 서서, 또는 살벌하게 쳐다보면서 죽으라는 소리만 하던 처음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는 정도.
여전히 거의 무시다. 말을 처음 배운 어린아이가 아무 말이나 마구 해대는 것처럼, 먹을 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빼면.
“이건, 우바 발, 음, 족발구이라는 건데, 피부에 매우 좋고, 쫄깃하기 까지 하지.”
나는 족발을 구우면서 거기다 만든 양념을 칠하며 요리에 대해서 설명했다. 족발 자체가 이쪽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지만, 어차피 이 드래곤은 모를 테니 뭐.
“그런 거 좋아져서 뭐하냐.”
드래곤은 피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내 말을 그대로 스킵했다. 하지만 냄새는 마음에 들었는지 구워지는 족발 앞에서 계속 코를 킁킁거렸다.
“어쨌든 다 구웠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봐.”
“확실히 통째로 먹는 거 보다 맛있긴 하다. 네놈은 요리 만드는 부하다!”
“어느 세상에 부하가 주인보다 더 강해?”
“…….”
“노려보지 말고 그거나 드세요. 음식은 너무 식어도 맛없는 법이지.”
족발을 베어 문다.
맛있다. 크, 이 쫄깃한 식감. 그리고 콜라겐!
내가 생각해도 양념을 적절하게 잘 조합한 거 같은데.
쩝쩝.
내가 와구와구 구워진 족발을 먹는 걸 확인한 블랙드래곤이 가만히 넘겨받은 족발을 바라보고 있다가, 입에 가져갔다.
잘 먹는다.
매우 잘 먹는다.
돼지갈비 이후에 먹성이 폭발한 기분이다. 뭘 해주면 같이 있기도 싫다는 듯, 멀리 떨어져서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왔다 갔다 하기가 싫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돌판 앞에서 자리를 유지하고 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도 돼?”
대답이 없다.
관심이 없어 보인다. 드래곤 상태일 때와 달리, 폴리모프한 인간형의 드래곤은, 그 작은 얼굴을 오직 족발에만 고정하고 있었다.
어쨌든 같이 밥을 먹을 정도로 살기는 조금 사라졌으니, 나는 은근슬쩍 질문했다.
“그 너네 어머니 사건 말인데….”
그 말을 꺼내자마자 드래곤이 벌떡 일어났다. 집중해서 먹고 있던 우바 뼈를 미련 없이 나에게 던져버린다.
그리고 진짜로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강력한 살기였다.
이 근처에 다른 생물이 있다면, 모조리 지금 뿜어내는 피어에 죽어버렸을 정도로.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미 질식해서 죽어버렸을 정도의 피어.
금기를 너무 섣불리 건드렸나?
그저 운을 떼본 것인데. 역시나 턱도 없었다. 이 정도 티끌만 한 거리를 좁혔다고 그때 일에 대한 상세한 상황을 들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건.
“너, 싫다. 너도 똑같다. 모두랑 똑같다. 당장 내 레어에서 사라져라!”
지독하게 차가운 눈빛이었다. 이미 요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고, 호흡은 매우 거친 상태.
브레스를 마구 내뿜는다. 돌판이고 뭐고 모조리 사라질 정도로, 분노로 파워업한 마나가 레어 안을 뭉개기 시작했다.
“죽어라. 엄마를 죽게 한 놈들. 엄마를 모욕한 놈들. 모두. 모두 죽어라!”
“잠깐, 잠깐, 난 딱히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 정말이야.”
브레스를 쳐내면서 소리쳤으나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마나의 영향으로 흑발이 마구 머리 위로 치솟고, 눈썹은 더 이상 치켜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치켜 올라가서,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공격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안, 미안. 이건 미안했다. 난 그 사건과 전혀 관련 없어. 얼핏 들은 게 있어서 물어본 거야. 미안!”
고개까지 숙이고 사과했으나 여전히 살기를 담은 눈빛만이 다가올 뿐.
그러다가 손을 꽉 쥐더니 부르르 떨면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성큼성큼 걸어가 자신의 공간에 당도해서 그대로 무릎을 껴안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상태는 계속 이어졌다.
그대로 단 한마디도 나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죽으라고 하는 둥, 좋은 관심은 아니었어도 최소한 상대는 해줬었고, 어느덧 그래도 요리를 먹어줄 정도까지 발전시켰었는데.
후퇴해도 너무 후퇴해 버린 것이다.
무슨 말을 걸어도 그녀는 아예 입을 봉인해 버렸다.
물론, 누구에게나 절대로 건드려 서는 안 되는 역린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래서야, 어떻게 정보를 얻는단 말인가.
그 사건을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는 건 아마도 이 녀석뿐일 텐데.
심장과 바꾼 로드의 부탁이니 포기하고 떠날 수도 없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레어에는 침묵이 감돈다. 레어 천장에서 흙이 부스스 떨어진다.
후드드득.
흙모래가 줄줄.
계속해서 사방에 줄줄.
-쿠웅!
레어 천장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더 많은 흙모래가 천장에서 줄줄 떨어진다.
-콰앙!
-콰앙!
레어 바깥. 그리고 산 정상에서 누군가 일부러 레어를 노리고 쿵쿵거리지 않는 이상, 올 수 없는 진동이다. 지진이라면 땅에서부터 흔들려야지 천장에서 흙모래가 떨어지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콰앙!
아예 레어를 무너뜨릴 기세. 떨어지는 흙모래가 점점 심해진다. 블랙드래곤은 이틀 만에 몸을 일으켰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드디어 일어난 것이다.
흔들리는 천장에 대한 짐작이 있는지 후다닥 레어 밖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도 따라갔다.
저렇게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레어 밖으로 나갔더니 산 정상에는 블랙드래곤 두 마리가 눌러 앉아 있었다.
음. 딱 봐도 거만한 표정이다. 물론 드래곤들은 보통 다 거만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놈들은 거만함에 악의가 넘치는 장난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드래곤의 표정을 읽는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니 천장이 흔들린 원인은 명백하게도 이 놈들이다.
“크크크크.”
바로 그 원인들이 서로를 보면서 크크크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매우 도발적이다.
“어쭈, 왜 인간 따위의 모습을 하고 있냐? 네 주제에 유희라도 나가겠다는 거야? 크크크크. 그건 너무 웃기잖아?”
“그러게? 주제를 알아야지. 주제를!”
왼쪽의 드래곤이 다시 밟고 있는 레어 천장 부분을 쿵쿵 찼다. 레어가 위태위태하게 흔들린다. 아마 내부에서는 더 많은 흙모래가 떨어져 내리고 있겠지.
“당장 레어에서 떨어져라! 감히, 감히 엄마의 레어를…!”
“뭐? 다시 한 번 말해보시지? 일족의 수치 주제에. 어미가 일족의 수치라면 그 자식 또한 당연히 수치인 법. 아니 더 심하지. 어디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지껄여?”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왜 태어나서 지랄이야?”
두 드래곤이 번갈아 가면서 녀석의 존재 자체까지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레어를 건드렸다. 녀석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엄마한테서 당장 떨어져!”
참다못했는지 녀석이 브레스를 발사했다. 하지만, 수적으로도 불리하고, 성체도 되지 않은 녀석이 놈들을 상대하는 건 어려워보였다.
브레스는 힘없이 무효화 되고, 왼쪽의 드래곤이 펄쩍 뛰어와 녀석의 몸을 짓뭉갰다. 커다란 발로 인간 형태의 몸을 깔아뭉갠다. 드래곤의 발바닥이 녀석의 몸을 가려버린다.
얼굴만 발 위로 나와 있다. 그 얼굴은 굽힘없이 드래곤들을 노려본다.
“이런 레어 따위 그냥 부숴버려도 딱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일족의 수치가 쓰던 레어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자체가 문제지. 그러니, 그 건방진 눈, 안 까냐?”
“그러게, 장로의 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숨을 구제해줬으면 설설 기면서 살아도 모자랄 판에 쯧쯧.”
“…….”
명백한 괴롭힘의 현장.
그것도 아예 녀석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녀석은 이런 괴롭힘이 매우 익숙한 얼굴이었다. 놈들이 짓밟았는데도 그저 노려볼 뿐으로.
오히려 엄마라는 단어에만 발끈해서 소리친다.
“엄마는 일족의 수치가 아니다!”
“지랄 마. 이거 안 되겠네. 니에스를 불러줄까? 니에스가 와도 그 소리를 내뱉을 수 있나 한 번 보지 뭐.”
녀석이 입을 꽉 앙다물었다. 표정에 한 층 더 분노가 서린다.
“야, 니에스는 지금 유희중이야.”
“아, 그래? 유희중이야? 루린 너, 살았네? 아니면 또 지옥을 맛봤을 텐데 말이지. 크크크크, 어쨌든 니에스는 니에스고 나는 나니까, 꿇어라. 레어를 부수지 말아 달라고 꿇고 부탁해. 그럼 이번에도 이 더러운 레어를 보존해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부순다. 우리 둘이 뜀뛰기로 부셔주지. 키킥. 그리고 위에다가는 그냥 내려앉았는데 노후화돼서 부서졌다고 하지 뭐.”
드래곤이 녀석을 짓밟고 있던 발을 떼어냈다. 인간이었으면 몸이 이미 으스러졌을 상황이다.
속은 드래곤의 골격이기에 그런 참담한 상황을 피했지만. 이미 마음속은 엉망진창이 되지 않았을까.
너무 황당해서 참견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나설 때다.
나는 일단 녀석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
“……괴롭힘 당한 적 없다.”
놈들에게 고마운 게 딱 하나 있다면, 덕분에 녀석이 며칠 만에 내 질문에 대답했다는 사실. 이틀이나 침묵하던 그 입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그렇지. 이건 괴롭힘이 아니지. 일족의 수치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고통이라고. 벌써 수백 년간 당해왔는데도 눈빛이 저 모양이니 더더더 고통을 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지만. 아니 것보다 네놈은 또 뭐야? 설마 인간?”
“인간 맞는 거 같은데?”
드래곤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땅이 울릴 정도로 쳐 웃기 시작했다.
무시하고 쓰러져 있는 블랙드래곤의 팔을 잡았다. 흙먼지로 가녀린 몸이 꾀죄죄하게 변해버렸다.
하지만 녀석은 내 팔을 쳐내버렸다.
“만지지 마라!”
비틀거리며 일어나 나를 노려보더니 시선을 바꿔서 드래곤들을 노려본다. 입을 앙다문다. 설마 무릎을 꿇으려는 건가?
며칠간 같이 지낸 게 다다.
이 녀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무릎을 꿇을 녀석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놈들은 일족의 수치라는 이유로 수백 년간 고통을 줬다고 말했다.
이 녀석은 그럼 언제나, 이 어두운 레어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그저 살기 위해서 아무 조리도 안 된 날짐승을 잡아먹고, 다시 웅크려 자고, 놈들의 괴롭힘을 감내하고, 그런 삶을 살아왔다는 걸까?
마음이 꽉 닫혀 있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나 거리감이 좁혀질 생각을 하지 않은 건가. 마음의 문이 너무나도 굳게 닫혀 있기에?
그녀의 어머니가 얽힌 사건은 로드와 족장에게서 대충은 들었다.
설령 그것이 진실일지라도, 그 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나 괴롭힘을 당할 필요는 없을 진데.
그러고 보니, 엄마의 레어라고 말했다.
엄마의 유품?
그러니까 녀석에게는 레어가 곧 엄마의 품이고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 아닐까?
이 드래곤들은 바로 그런 레어를 볼모로 잡고 부순다고 협박하면서 괴롭히고, 그 반응을 즐기는 거다.
비열하다.
너무나도 비열하다.
혈압이 상승한다.
마음이 아프다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서. 그렇게나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 단 하나인 유품을 지키려고 무릎을 꿇으려고 비틀거리는 장면이.
너무 짜증이 났다.
“푸하하하. 루린. 네 녀석, 감히 인간을 종으로 부리고 있나? 어처구니가 없군.”
“주제를 좀 알라니까. 이거 안 되겠는데? 니에스에게 말해서 정신까지 파괴시켜야….”
“더러운 주둥아리 좀 닥치시지.”
놈들의 말을 끓고 소리쳤다.
짜증이 나서 더는 못 들어주겠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