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06)
# 206
Chapter.40 요리 대결
나와 리센트가 동시에 대답했다. 루린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내 등을 박차더니 땅바닥에 폴짝 착지했다.
“루린?”
게다가 눈이 이상하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뭐긴, 손에 하는 인사인데?”
“키스라고 했다. 난 들었다!”
“잠깐, 잠깐.”
상태가 이상하다 못해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기에 루린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이건, 손에 하는 키스. 손에 하는 키스는 평범한 인사야. 예를 표할 때 하기도 하지. 같은 키스라도 의미가 전혀 다르다? 아! 그래 반지랑 똑같은 거야. 팔찌 같은 거랑 다르게 이성이 반지를 선물하는 거에는 사랑의 의미가 들어있듯이.”
“……엥?”
루린이 표정이 그 순간 풀렸다. 묘한 눈빛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요. 제, 제가 무슨! 제가 좋아하는 건 마법사님인데요!”
리센트가 루린이 뭘 오해 했나 깨달았는지 타닥 달려와 루린의 손을 잡으면서 구애의 눈빛을 보냈으나, 루린은 바로 뿌리쳐버렸다.
“자, 잡지 마라! 너, 너 너 안 좋아한다. 나는!”
루린은 빙글 돌더니 다시 내 등으로 주섬주섬 올라와 업혀서 고로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그… 차였어요….”
리센트가 하핫, 웃으면서 이제는 진짜 미련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저, 그럼 진짜로 가요!”
그렇게 말하고 뛰기 시작한다. 물론 리센트는 리센트.
얼마 안 가서 또 엎어져버렸다.
아이고.
그나마 하도 자주 넘어지니 본능적으로 낙법을 사용하게 됐는지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부분은 오히려 대단했다.
***
모든 일이 끝나고, 완전히 레어로 돌아온 그날 밤.
씻고 침대에 앉아서 책을 보는데 루린이 다가와 머리를 들이밀었다.
“벌써 다 씻었어?”
머리를 들이미는 건 닦아달라는 뜻이다.
언제나처럼 루린의 머리를 말려줬다.
“그나저나 그 녀석 대담하다. 먼저 입을 맞추다니.”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까 그 인간 말이다!”
“아… 리센트? 손바닥에 키스한 거?”
“난… 난 아직도 먼저 아무것도 못 하는데! 엊그제도 바보같이 실패했단 말이다!”
“그러니까, 대체 그 실패는, 뭘 실패했다는 거야? 제발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으으으. 그건 안 된다.”
“뭐 좋아. 아무튼 그 손바닥 키스는 존경의 의미야. 오해하지 마. 사랑의 의미는 없어. 사랑의 의미가 담겼으면 입술에 해야지. 입술에.”
“아까 이해했다. 그건! 최근에 알게 됐다. 그대도 인간이니까, 드래곤 뿐 아니라 인간도 적이란 걸.”
“적은 무슨 적입니까. 뭐에 대한 적?”
나는 루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슬쩍 들어올려, 손등과 손바닥에 쪽, 입을 맞췄다.
“하, 하지 마라! 존경의 의미는 싫다. 난 사랑만 있으면 된다!”
“아니, 그러니까 너도 해봐.”
나는 슬쩍 손을 내밀었다. 아까부터 손바닥에 키스한 리센트가 대단하다고 하고 있으니, 똑같이 해보라는 뜻이었다.
“어어? 내가 그대 손에? 내가 먼저?”
“먼저의 의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해봐.”
루린이 살짝 머뭇거리더니 슬쩍 눈치를 보면서 내 손을 잡는다.
“아니지.”
“뭐, 뭐뭐뭐가 아니냐! 해볼 거다! 실험으로 딱 좋다.”
“에이, 니 말대로 손에 하는 건 아니지. 리센트보다는 발전해야지. 자. 키스해봐. 내 입술에. 그렇게 먼저를 강조할 거면, 그러고 보니 니가 먼저 키스해온 적은 한 번도 없지?”
“이, 있었다! 실패해서 그렇지….”
“뭐? 혹시 그럼 아까부터 실패 어쩌고 하는 게… 그런데 언제? 기억이 안 나는데?”
“그그그그그 그런 게 있다. 그대는 몰라도 된다.”
“알겠으니 입술 삐죽 내밀며 삐지지 말고, 여기다 키스해 줘. 지금이라면 얌전히 기다리겠습니다. 루린님!”
“저, 정말이냐? 해, 해보라니… 이렇게 쉽게? 또 다른 내가 말했다. 뭔가 조건이 있어서… 그러니까 뭔가 그대가 헤벌레 한 귀여운 표정을 지을 때만 해야 한다고! 먼저 하는 건! 그럴 때만 가능한 거라고, 그래야 그대가 좋아한다고… 그랬단 말이다!”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저번부터 똑같은 말을 계속 하는 거 같은데, 설명을 좀 해봐. 꿈이라도 꿨어?”
“그 녀석은 역시 바보다.”
알 수가 없다.
말을 계속 피한다. 꿈에서 대체 뭘 봤길래 저러는 걸까.
어쩔 수 없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 꿈속의 또 다른 루린이라는 존재는 이기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뭐 잘은 모르겠지만 루린. 또 다른 너도 너니까, 결국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사랑에 대해서는 바보니까.”
“으으으으. 그렇지 않다! 난, 나느으으으으은. 누가 뭐래도 그대가 좋으다….”
루린은 그렇게 외치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내 얼굴을 잡더니 강하게 박치기를 해왔다.
입술 박치기였다. 입술 박치기.
진한 키스라고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입술 박치기.
루린은 뭔가 홧김에 박치기를 해놓고 날뛰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해… 해냈다! 드디어 해냈다! 으으으으, 괴, 굉장하다!”
그래. 입술이 서로 박치기를 했다. 아프다.
이게 해낸 거라고?
이빨이 아파온다. 루린은 뭐가 그리 좋은지 사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얼굴은 빨갛고, 귀도 빨갛고, 빨개진 상태로.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좋아하니 별 상관없긴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Chapter.41 망각
그레이크 디에란. 통칭 그레이크 백작.
그것이 그레이크의 영주인 그레이크 소년의 풀네임.
나이는 18살.
어린 나이에 영주에 올랐으나 현재 그레이크시는 제국의 어느 도시 보다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레이크시의 가장 큰 특징은 부조리함이 다른 도시에 비해서 상당히 적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람들이 부조리한 일과 마주칠 위험이 다른 도시에 비해서 매우 낮다는 의미다.
그것은 그레이크 디에란의 도시 운영정책 때문이었다.
그레이크 소년은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마음속에 좋은 영주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왔으며, 어느덧 성년을 앞둔 지금에 와서도 그런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 열망이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도 그레이크 디에란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서재에서 쌓인 각종 서류들을 처리하는 중이다. 처리한 서류에는 도장을 찍어야 하기에 그레이크는 드르륵, 서랍을 열었다.
하지만 도장을 꺼내려다가 멈칫해버렸다.
문득 서랍 한편에 있는 은으로 된 동그란 작은 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치 군인의 인식표 같은 물건으로 그 판에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시에나’
라고만 적혀 있는 판.
오랜만에 꺼내든 작은 판에 쓰인 이름을 보면서 그레이크는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
그레이크 디에란이 막 10살이 되었던 때였을까.
그레이크 소년은 집안을 거닐다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구박받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뭣들 하는 게냐!”
소년이 다가가자, 소녀를 괴롭히던 또래의 소년들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소년들은 그레이크 백작가에 속해있는 남작가의 아들들이었다.
남작가가 백작가에 대드는 것은 있을 수조차 없는 일. 그렇기에 소녀를 괴롭히던 소년들은 그레이크의 한마디에 우르르 도망 가버렸다.
어릴 때부터 신분제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귀족사회다.
그러니 백작가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평민이나 시종들은 막 대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졌는지, 소년들이 괴롭히던 건 백작가에서 일하는 시녀들 중 한 명의 딸이었다.
“괜찮아?”
“네, 넷!”
그레이크 소년의 질문에 소녀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머리를 얼마나 쥐어 뜯겼는지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머리카락….”
그레이크는 그 머리카락을 일일이 줍더니 소녀를 향해서 말했다. 소녀가 울먹이고 있었기에 그레이크 소년은 그저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소녀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머리카락을 내밀며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진심을 담아야 한단다. 눈앞에 놓인 진심을.’
그래서 소년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진심을 담아 소녀를 향해 말했다.
“예쁜 색이네. 머리카락.”
“흐극, 네, 네…? 저, 정말요?”
울먹이던 소녀는 그 말 한마디에 조금 경계심을 풀었다. 머리색이든 뭐든 칭찬을 받은 것 자체가 처음이었던지라 뭔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자기 머리카락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예쁜 색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에 그레이크 소년을 향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안 이쁜데요…? 모두 화려한 금발이 예쁘다고 하지, 이런 색은….”
“아닌데? 이쁘다고 생각해! 그, 그러니까! 나한테는 예쁜 색이야!”
소녀의 머리카락은 금발이 아니다. 금발이 되다만 주황색 계열의 색깔이었다.
이 시대에서 예쁜 머리색이라고 하면 소녀의 말대로 찬란한 금발을 지칭했다. 그러니 소녀의 말은 지극히 정상이었으나 그레이크는 정말로 예쁜 색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안 이쁜데… 이상하다.”
소녀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의문 때문인지 어느덧 눈물은 쏙 들어가 있었다.
“이상할 거 없어. 너 린느의 딸이지?”
“네. 맞아요.”
“저애들이 괴롭혀도 기죽지 마. 시녀라고 해서 괴롭힘을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어. 잘못을 했으면 모를까 잘못도 없는데 벌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비열한 짓이라고 아버지가 그랬어! 항상 떳떳해야 한다고 말했거든! 그리고 역사책에도 나와 있었으니까. 제국의 건국사라는 책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레이크 소년이 멈추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런 그레이크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한 귀족님이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것이 그레이크에 대한 소녀의 첫인상.
그리고 그 후로 그레이크 소년은 소녀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소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다른 귀족 소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그레이크 소년은 무슨 히어로처럼 나타나 소녀를 도왔다.
소녀의 나이가 좀 더 어렸으므로, 그럴 때마다 소녀는 다른 귀족들과는 다른 그레이크 소년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다른 사용인의 가족들도, 그리고 엄마의 동료도, 다른 귀족들도, 소녀를 챙겨주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간단한 집안일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구박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유일하게 자신에게 잘해주는 소년과의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하루 중에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저택의 2층에 장식되어 있던 도자기가 깨져있는 걸 발견하고 경악하기에 이르렀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큰일이 난 것은 분명했다. 그 도자기는 백작님이 아끼는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를 일을 배우면서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자기 앞에는 익숙한 소년들이 서 있었다. 항상 자신을 괴롭히는 소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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