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09)
# 209
Chapter.41 망각
“좋아한다니까?”
“좋아하는 건 좋다! 근데 왜 딴 곳을 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시계가 왜 좋냐? 시계가 왜!”
엘은 자신이 만든 괘종시계를 보면서 말하고 있었고. 루린은 바로 그 점에서 뿔이 났다. 볼이 잔뜩 부풀어 올랐으며 눈썹은 치켜떴으니 전형적으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신호.
“아, 가만? 생각이 또 안 난다. 너는 누구라고 했지? 그리고 나는?”
“그댄 엘! 나는 루린이다아아!”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
루린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엘레나가 말한 것과 뭔가 다르다.
분명히 말을 잘 들어주기는 한다. 그래, 잘은 들어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들어는 주는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는 좀처럼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러니 부풀린 볼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게 부우웅한 얼굴을 하고 엘을 쳐다보고 있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루린.”
엘이 이름을 부르더니 풀썩 쓰러진 것이다. 너무나도 힘없이 풀썩 쓰러졌다. 침대 위에 앉아 있다가 상체만 침대로 고꾸라진 상태.
평소의 엘이라면 이렇게 쓰러지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러니 루린은 놀라서 부풀렸던 볼도 꺼뜨리고 쓰러진 엘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그대! 어디 아픈 거냐?”
하지만 루린의 손보다 엘의 팔이 더 먼저 움직였다. 쓰러진 상태로 침대 위에 앉은 채 다가오던 루린의 배 부근에 얼굴을 파묻고 양손으로 허리를 감싸 안았으니.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마치 갸릉갸릉 거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얼굴을, 정확히는 볼을 루린의 배에다가 쓰윽쓰윽 비비기 시작했다.
마치 어리광을 피우듯.
그 모습에 루린은 그만 넋을 놓아 버렸다.
“흐냐나아아?”
넋만 놓은 것이 아니다.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어리광을 피우는 모습이 뭔가 너무 귀여워서, 움직였다가는 혹시라도 멈출까 봐 그대로 정지해버린 것이었다.
“그대가 이상하다! 이, 이상하지만 이렇게 이상한 건 좋다!”
“착해?”
“그, 그래…! 차, 착하다아!”
착하다고 해줬더니 엘이 더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루린은 후냐아아 하는 감정이 돼서는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리는 손이 엘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너무나도 쓰다듬고 싶었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마구마구 쓰다듬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위이기에 부끄러움이 손가락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
쓰다듬는 것보다는 쓰다듬을 받는 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이 상태라면 그 반대도 기분이 좋을 게 틀림없다. 루린은 그렇게 확신하고는 큰맘을 먹고 조금씩 조금씩 손바닥을 엘의 정수리에 착지시켰다.
“따뜻해.”
“내 손이 따, 따뜻하냐?”
끄덕끄덕.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뭔가 아기 같았다.
“아, 아기 엘이다. 우오옥!”
심장에 해로울 것 같은 상황. 뭔가 평소와 반대가 되어도 한참 반대가 되었지만 이런 경험도 매우 찌릿하다는 것이 루린의 감상이었다.
“계속 그래라. 부벼라! 난 괘, 괜찮다. 그, 그리고….”
루린은 머리 위에 올린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엘의 머리가 부드럽게 쓸려간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루린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쓰다듬을수록 엘이 더 강하게 루린의 허리를 껴안았다.
“으, 으으. 이, 이건…! 아, 안 된다아! 안 되는데 좋지만!”
말은 그렇게 했으나 사실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그렇다. 처음 하는 경험이지만 좋았다.
샤락, 샤락.
쓰다듬는 감촉도, 그럴 때마다 더 안겨오는 엘도.
더 안겨오는 엘.
이게 포인트다. 이게 없었다면 쓰다듬지 않았을 터.
“그, 그대!”
“응? 내가 너의 그대야?”
“그렇다니까! 부, 부부라고 하지 않았냐! 에잇, 말하지 마라! 그냥 계속 부벼라! 그게 제일 나은 것 같다. 말을 할 때는 기억을 잃지 않은 그대가 멋있다. 기억을 잃은 그대는 말하면 답답하다! 애, 애교 부리는 건 귀여우니… 그냥 이대로인거다! 그래. 그런 거다. 꺄아? 꺄아아앙!”
앉아 있는 루린의 배에 머리를 대고 허리를 껴안은 채 누워있던 엘이 그 순간 루린의 옷을 들추더니 배를 할짝댔다. 강아지가 하는 바로 그 행동이다.
그것이 강아지에 빙의하여 하는 행동임에는 모른 채 루린은 그저 간지럽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두근두근!
“아!”
하지만 바로 그 두근두근의 상황에서 엘이 벌떡 일어났다.
“어어?”
루린이 묘한 얼굴을 하고 말하자 엘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혼자서 중얼거렸다.
“왠지 지금은 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에에에엥?”
루린이 시계를 봤다. 오후 5시. 확실히 평소의 엘이라면 주방에 있을 시간.
“아니다!”
물론 루린은 일단 부정했다. 말을 전부 듣는다더니 전혀 아니었다. 방금의 부비부비 공격에 속았지만 다시 현실이었다.
“왜 다른 건 기억 못 하면서 그런 거는 기억하는 거냐?”
“응?”
“뭐가 또 응이냐!”
“니 말 대로면 일하는 시간이 맞는 거 같은데? 왜 그런 거는 기억하냐며 화냈으니. 어디보자, 주방은 아까 거긴가?”
엘은 그렇게 말하곤 매정하게 침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앗!”
루린은 우우우 거리면서 자기 입을 두 손으로 막아버렸다.
입이 방정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그 상태로 눈을 댕그랗게 뜨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곧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으으!”
그러니 분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엘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대! 거기 서라!”
루린이 쫓아갔을 때 엘은 벌써 주방으로 올라가 있었다. 루린이 헉헉거리면서 엘을 찾았고, 그땐 이미 식칼을 들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이었다.
“음. 이걸로… 이걸 이렇게?”
엘은 갑자기 꺼내놓은 야채를 몬스터 찌르듯 푹 찌르기 시작했다.
푹푹푹푹!
도마 위에서 야채가 난자당한다. 써는 게 아니고 푹푹푹 찔리는 중이다.
“뭐하냐 그대…! 그게 아니다!”
루린이 다가가서 그 칼을 잡았다. 엘의 손위로 루린의 손이 올라온다.
“그럼?”
“이 몸은 모른다! 그건 그대가….”
“찌르는 거 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칼을 들면 찌른다! 이런 대사가 머릿속을 웅웅거리는거 같은.”
“그건 또 모냐! 으으으! 이거다 이거!”
루린은 엘이 잡은 식칼을 그 위에서 잡아 야채를 탕탕탕 썰기 시작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야채를 다듬는 건 질리도록 보아온 루린이 그 방식을 모를 리는 없었다.
하라고 시키면 절대로 안 하겠지만.
탕탕탕!
통통통!
“후우, 어떠냐! 기억났냐?”
양배추 비슷한 야채를 썰어놓은 루린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오오, 대단한데?”
“어어? 그러냐? 이 몸은 원래 대단하긴 하지만, 그대는 그런 말 잘 안 하는데? 히히히, 이것도 기억의 힘이냐! 아 하지만, 원래는 이런 거 하기 싫다. 이 시간은 원래 저기서!”
루린이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러자 엘의 눈도 테이블로 따라온다.
“저기서 늘어져 있는 시간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 부부라며?”
“어어?”
“부부면 같이 준비해야 하는 거 아냐?”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엘이 자신에게 불리한 소리를 하자 루린이 슬슬 뒷걸음질 쳤다.
“부부 아닌 거 아닌가? 그러면 니 말을 들을 필요도 없는 거고….”
하지만 부부라는 소리에 몸이 자석처럼 이끌리듯 다시 돌아와 버렸다.
“크아아악! 뭔 소리냐! 부부 맞다! 부부다!”
“그럼 도와줄 거지? 나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그럼 일단 여기다 뽀뽀해라. 부부니까 일하기 전엔 뽀뽀다.”
“그래?”
루린이 가리킨 입술. 엘이 빠르게 다가와 쪽, 키스했다. 너무 담백하게 뽀뽀를 해주자 오히려 루린이 당황해서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이 엘레나가 말한 위력인가. 기억을 잃어서 말을 다 들어준다는?
하지만 아까 침실에서는 이상했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루린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부부라는 노선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야 이따가 다시 이것저것 시킬 수 있으니!
지금은 부부니까 도와달라는 이상한 논리에 밀리고 말았지만, 나중을 위해서 그 논리를 부술 순 없는 것이다.
“뭐 할 수 없지. 도와주겠다. 부부니까!”
“이거 어떻게 써?”
루린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엘은 이번엔 프라이팬을 잡고 들어 올렸다.
“언제 거기로 갔냐. 바람 같은 그대다.”
루린은 도마 위에 서 있다가 순식간에 화덕으로 이동한 엘을 향해서 타다닥 뛰어갔다.
“그건 파이어볼을 써야 한다!”
“파이어볼?”
“마법도 기억 안 나냐?”
“으음. 파이어볼이라. 미세하게 기억은 나. 주로 기억이 안 나는 건 추억 같은 부분이야. 다른 존재와의 기억들이랄까. 아무튼 어디보자.”
“마법은 알면서 왜 하필 날 까먹냐! 정말 싫다! 그 기억이란 녀석!”
“어디 보자, 그러니까 파이어볼은….”
엘이 미간에 손가락을 가져가 고민하다가 곧 마나를 운용했다.
“아, 이렇게 쓰는 건가?”
퍼어어어어엉-!
콰지이이익-!
그러자 곧 화덕에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화염은 곧 천장을 날려버리곤 하늘 높이 뿜어져 나가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바보바보바보바보! 그게 아니다아아아!”
루린이 명화 뭉크의 절규를 닮은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엘을 흔들었다.
“프라이팬용 파이어볼을 뭐 그렇게 강력하게 쓰냐, 아니 파이어볼도 아니었다! 방금 건 6클래스!”
“그래? 어쩐지 마나가 잘 제어가 안 되는 거 같은 느낌이….”
“그럼 쓰지 마라! 그대 마법이 얼마나 강한데! 내일까지 마법금지다! 으으, 어쩔 수 없지. 내가 해준다. 이렇게 다 날아가 버렸으니, 내일 기억을 찾으면 그대 나처럼 끄아아악 할 거다! 그대가 고치는 거니까 난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가. 그건 뭐 할 수 없지? 내일의 내가 고치지 않겠어?”
“봐라. 이렇게 약한 파이어볼을 지피는 거다!”
루린이 반대쪽의 철판 아래에 파이어볼을 집어 놓고 불을 지폈다.
“저쪽은 다 날아갔으니 오늘은 여길 쓸 수밖에 없다.”
“그것도 그러네.”
딸랑.
그리고 그 순간, 문에 걸쳐진 종이 울렸다. 첫 저녁 손님의 등장이었다.
“밥 먹고 가려고 왔습니다! 헤헤.”
목장 일을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들린 린테가 헤실헤실 웃으며 항상 앉는 바 테이블에 앉았다.
마테가 약속이 있다며 사라졌기에 집에서 혼자 해 먹는 건 별로라 들른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사소한 이변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데 있다.
린테는 여느 때와 같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면서 엘을 쳐다봤다.
“오늘의 밥상 주세요!”
엘이 자랑스럽게 출시한 오늘의 밥상.
그날그날 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재료를 사 와서 만드는 가정식 같은 코스다.
물론 지금의 엘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린, 오늘의 밥상이 뭔데?”
“그런 거 모른다. 그대가 생각해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