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1)
# 21
Chapter.6-1 의사의 식탁
언덕 속을 모조리 빈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
마그마보다 높은 온도로 작열하는 8클래스 마법인 인페르노가 흙을 녹여버리면 그 순간 루린이 9클래스의 마나를 담은 배리어를 천장에 뒤덮는다.
그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흙 천장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된다. 무려 9클래스의 배리어다. 언덕 위에 거대 몬스터가 앉는다고 해도 루린의 마나를 뛰어넘을 정도의 무게나 존재가 아니라면 무너질 리는 없다.
물론 언덕 위에 건물을 짓는다면 곤란하다. 땅이 파질 리가 없으니까. 배리어 때문에 땅이 안 파지니 당황하겠지.
하지만 이 근처 언덕의 땅은 모조리 구입했으니 그럴 일이야 없다. 있어도 막으면 그만이고.
이왕 만들기로 한 레어다. 나는 이번 기회에 호화로운 레어를 만들 생각이었다. 거대한 지하궁전이라고 할까. 언덕 위는 식당. 그리고 언덕 아래는 지하궁전.
이른바 지하궁전 레어.
루린이 폴리모프를 풀어버린 상태에서도 지낼 수 있는 거대한 방뿐 아니라 각종 호화로운 시설을 만들고 커다란 식료창고와 소환품 보관창고, 그리고 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주류창고를 만들겠다는 야망이 피어오른다.
지하수맥 쪽에는 내친김에 목욕탕까지.
땅을 파놓고 그냥 놔둘 순 없기에 온천을 즐긴 뒤 엎어버렸었지만, 언덕 속에다가 만들면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다보니 이 레어는 루린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식료창고와 소환품창고는 루린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마법을 걸 생각이다. 10클래스 마법인 시간정지를 사용하면 유통기한을 영원하게 만들 수 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창고에 가기 위해 루린이 꼭 필요해진다. 그게 유일한 단점이지만 장점이 더 크니 어쩔 수가 없지.
공격마법은 드래곤하트의 영향으로 루린이나 다른 드래곤을 압도하지만 인간으로서는 거기까지가 한계다.
보통의 공격마법은 9클래스까지다. 이미 9클래스의 공격마법 정도가 되면 운석을 떨어뜨리거나 맘만 먹으면 도시조차도 파괴시킬 수 있다. 드래곤을 짓밟는 것도 9클래스의 마법이다.
반면에 보통 10클래스의 마법이라고 하면 정신과 시간의 조작에 관여하는 마법을 말한다. 이 세상의 마법체계에서 10클래스 이상의 마법이란 정신계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10클래스 마법은 인간에게는 무리다. 인간의 뇌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할까.
그러니 내가 아무리 거대한 마나를 가진다 해도 9클래스 공격마법의 위력이 강해질 뿐, 10클래스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 집 드래곤은 아직 어려서 정신계 마법을 다양하게 사용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사용할 순 있었다.
신 급의 마법을 식료품을 보관하는 데 쓰겠다는 나도 나지만, 이 얼마나 쓸데없는 호화로움인가.
하지만 지금은 기초 단계일 뿐.
시간정지든 창고든 궁전이든 아직은 먼 이야기다. 지금은 그저 계획 단계니까.
빠르게 흙을 녹여서 공간을 창출하는데 집중하는 게 우선이다.
이 단계에서는 드워프를 고용할 수도 없다. 언덕 안을 녹이고 배리어를 까는 건 드워프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이 정도의 배리어는 9클래스 급의 보조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루린의 몫일 뿐. 특이한 위치에 레어를 만들려니 사실 어쩔 수 없는 노동이긴 했다.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그때부터는 드워프를 고용해서 궁전을 짓게 시키면 된다. 그러니 언덕을 파놓기만 하면 고생은 끝난다는 이야기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열심히 일했더니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저 높기만 한 흙 천장. 앞으로는 아직 뚫지 않은 흙더미. 뒤쪽으로는 만들어 놓은 빈 공간.
잠시 쉬려고 루린을 봤더니 꼴이 매우 엉망이었다. 흙으로 범벅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루린은 그보다 더한 꼴로 나를 보고 서 있었다.
“너, 너! 왜 이렇게 젖었어?”
“저기서 물이! 우우으. 그대!”
“오지 마! 아악! 바보야. 진흙투성이로 어딜 와?”
퍼억.
아.
진흙 드래곤이 달려와 날 밀어뜨렸다. 좌절이다. 내 옷과 얼굴에 진흙이 튄다. 루린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 몸에 진흙을 비비기 시작했다. 매우 고의적이다.
“얌마!”
“그대와 난 한 몸이라고 전에 분명히 그랬다!”
그건 식당일 도우라고 낚은 거였지.
“알겠으니 떨어져. 일단 떨어져. 지금이라도 떨어져.”
“엣츄!”
“야, 왜 하필 내 얼굴에다가!”
루린이 침이 내 얼굴에 가득 튄다. 드래곤의 침이라니. 내가 못 살아.
심지어 드래곤은 비킬 생각을 안 하고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춥다….”
“이 정도 젖은 거 가지고 드래곤님께서 춥다고?”
“드래곤의 몸이 아니고 인간의 몸이니 신진대사는 어쩔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추운 건 추운 거다! 난 추운 게 싫은 거 같다!”
“알겠으니 제발 그만 달라붙어! 아악! 내 옷이…!”
나는 난로가 아닙니다. 드래곤님.
이대로는 흙더미에서 구를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루린을 잡아 안고는 번쩍 들어버렸다.
“오오! 그대가 나를 안아 들었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좋구나!”
공주님 안기를 했더니 엉뚱한 감상을 내뱉는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를 바닥에 앉혔다.
“그만 웃기고 여기 앉아 봐. 닦아야할 거 아니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등에 멘 배낭을 풀어 수건을 꺼냈다.
“대체 어쩌다가 머리까지 젖은 거야?”
수건으로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묻자 루린이 다시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서 갑자기 물이 푸왓! 하고 솟아나왔다!”
루린이 가리킨 곳을 보니 어느새 물이 고여 있었다. 저쪽이 바로 지하수맥인가보다. 수면이 아무런 파문도 없이 조용한 걸 봐서는 물이 흘러들어오는 건 멈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하수맥을 살짝 건드린 건가?
그렇다면 여기가 바로 목욕탕 부지라고 할 수 있다.
물이 솟아오르는 곳이니 공사하면 묵욕탕이 되는 거지. 물론 지금 만들건 아니니까 패스지만.
요즘 들어 언덕을 뚫으려고 올 때마다 옷을 버리는 드래곤이다.
그래도 별수 있나. 그녀의 옷을 벗긴 후 닦아주고 옷까지 갈아입혔다.
“그보다 그대, 배고프다. 밥은 주고 일을 시키거라!”
루린이 당장에라도 텔레포트를 사용할 기세로 나를 올려봤다. 배고픔을 가득담은 눈빛 공격. 내 품에 있는 게 고양이인지 드래곤인지 헷갈리는 순간이다.
“엉? 일을 시켜? 지금 만들려는 게 네 집인데? 반대로 드래곤님께서 저에게 밥을 챙겨주셔야죠?”
“그런가? 그랬지 참. 하지만 줄 밥은 없다. 난 밥을 못하니까.”
“당당하시네. 당당하셔.”
나는 드래곤의 기다란 검은 머리를 마구 헝클어 버렸다.
“꺄아아악! 하지마라!”
비명을 지르는 드래곤을 무시. 그래도 배가 고픈 건 사실이니 먹긴 해야지.
“어쩔 수 없지. 밥을 먹기는 해야 하니까.”
“정말이냐! 역시 우리는 한 몸이다! 히히히. 맛있는 거가 먹고 싶구나!”
“얼씨구?”
나는 기고만장 드래곤을 놔두고 다시 배낭을 뒤적였다. 배낭에는 비상식량이 들어있었다. 혹시 몰라서 챙긴 비상식량이.
그리고 코펠이라고 불리는 요리세트도.
내 앞에 냄비와 라면 봉지가 늘어진다.
비상식량이란 바로 이런 때를 위해서 준비한 거다. 텔레포트로 돌아가도 좋지만, 그보다는 일하다가 잠시 쉬며 먹는 라면이 또 각별하잖아?
나는 파이어볼을 마치 모닥불처럼 바닥에다 사용한 뒤에 냄비를 들어 생수를 부었다.
콸콸. 라면물이 냄비에 차오른다.
타오르는 파이어볼 위에다가 냄비를 들어 올렸다. 불길이 냄비 아래에 닿는다. 냄비를 올려둘 만한 뭔가를 준비하지 못한 이유로 잠시 팔이 고생이다.
“그건 뭐냐?”
“따뜻한 요리지. 우리 드래곤이 추워하니 몸을 덥혀주려고.”
“따뜻한 요리? 음, 그거 좋은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는 루린. 물이 끓기 시작하길래 루린에게 냄비 손잡이를 내밀었다.
파이어볼을 물에다 직접 사용하면 금방 끓기야 하겠지만 증발하는 양이 더 많다. 이렇게 끓이는 게 요리를 목적으로 할 때는 가장 안정적이다.
“들고 있어. 잠깐이면 돼.”
“이걸? 이렇게 말이냐?”
루린이 양손으로 냄비 손잡이를 잡고 몸을 기우뚱거린다.
“그래, 그대로 있어 봐.”
나는 냄비에다가 면을 넣고 스프를 넣었다. 후레이크도 당연히.
하지만 그 면을 본 루린이 기겁을 하며 냄비를 놓칠 뻔했다. 바로 잡아서 다행이지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 했다.
꼼짝없이 식당으로 돌아갈 만한 참사랄까.
“그, 그대… 그거 입이 아픈 그 음식 아니냐? 나는 그게 싫다! 너무 아프다 그건! 레드 녀석의 브레스가 차라리 낫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벌떡 일어나 도망가려는 루린. 아무래도 불닭볶O면의 공포가 그녀를 뒤덮은 모양이었다.
드래곤슬레이어 여러분.
드래곤을 잡으려면 불닭볶O면을 가져가세요. 확실하게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운 맛에 도망 다니는 드래곤이라니 너무 이색적이잖아?
게다가 루린은 그때 먹은 불닭의 맛이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눈망울까지 글썽거리면서 씩씩 거렸다.
“그건 먹기 싫다!”
“아냐, 아냐, 그때 그거랑 다른 거야.”
“다른 거?”
“그래, 이건 안 매워.”
“거짓말이다!”
“얌마,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그때는 분명히 먹지 말라고 경고를 했는데 네가 먹어버린 거고.”
“그, 그게 정말이냐? 이건 안 아파?”
“아프긴커녕 맛있습니다. 또 달라고나 하지 마. 살찌니까.”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루린이 머뭇머뭇 다시 내 주위로 다가온다. 곧 라면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라면의 향기는 저절로 식욕을 돋우는 작용을 한다.
드래곤도 그 냄새에 혹했는지 내 옆으로 다시 다가와 무릎을 껴안으며 주저앉는다.
“냄새가 다르긴 하다. 내용물은 비슷한 거 같은데, 하긴 그때는 국물이 없었다!”
“그래. 자. 포크.”
손에 포크를 쥐어주자 루린은 눈을 빛내면서 면을 집어 들었다.
먹기 전에 나에게 시선을 보내길래 고개를 끄덕였더니 후루룩 면을 흡입하기 시작한다.
“그대! 이건 정말 다르구나! 안 아프다! 맛있다!”
“그렇지? 국물도 먹어봐.”
“국물?”
지금 우리는 냄비째 2봉의 라면을 먹는 중이다. 동시에 얼굴을 들이밀면 먹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수저로 루린을 회유했다.
후루룩.
그러자 국물 먹는 소리가 들린다. 이때다 싶어 나는 면을 집어 먹었다.
루린은 국물을 마시고 감동한 표정이다. 라면에 빠진 드래곤라니.
그걸 보니 왠지 더 라면이 맛있다.
우리는 금세 냄비를 뚝딱 비웠다. 조금 있으면 저녁 장사를 하기 위해 돌아가야 할 시간.
“고로로로롱! 푸하냐.”
하지만 웬걸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루린이 내 허벅지를 베고 한 손에는 포크를 든 채로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드래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먹자마자 바로 자다니. 정말이지 본능에 충실한 생물이다. 살이 찔 리가 없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쥐어박고 깨우려다가 너무 만족한 얼굴로 자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했다.
어쩔 수 없지, 조금만 더 쉴까.
만족한 얼굴로 세상 편하게 쪼그려 자고 있는 모습에 나까지 졸려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쉬자. 일단 쉬고 보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