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16)
# 216
Chapter.41 망각
“…그럼 죽이세요. 하지만, 제가 남작님의 말씀처럼 백작님이 살펴보라고 시켜서 접근한 거라면, 조용히 보고 드리면 될 일이지 도망갈 기회를 주는 것도 모자라서, 지금처럼 제 목숨이 위협받는 그런 바보짓을 할 것 같으신가요? 남작님, 제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시나요?”
시에나는 남작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너, 너는 대체 누구지?”
“평범한 시녀에요. 죽을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작님께 접근한 평범한 시녀요.”
“평범… 하다고?”
남작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시에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결론을 입에 담았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뭣이?”
“집무실의 청소는 시녀 3명이서 하는 게 원칙이에요. 하지만 다른 두 명의 눈을 속이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찾으려는 건 무엇인가요? 남작님보단, 오히려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백작의 영패와 영주의 인장이다. 영패는 백작의 명을 받았다는 증명이며, 인장이 찍힌 서류는 백작의 허가를 의미하지. 그걸 이용해 구호물자를 배급할 계획이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사냥터에 나가기 시작한 이때야 말로 기회니까.”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두 개. 제가 찾아드릴게요.”
역시 자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혼자서 그 영패와 인장을 훔친들 누가 믿는단 말인가. 자신이 영패를 들고 병사를 부리려고 하면 오히려 바로 잡혀 버리겠지.
하지만 남작은 다르다.
귀족이다.
남작이 백작의 영패와 서류를 가지고 명령하면 병사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네 말대로 이건 들키면 죽는 일이다. 아니 들킬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이 일을 하겠다는 건 곧 죽겠다는거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하겠느냐?”
이 행동으로 수천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남작은 그렇기에 나선 것이지만, 시에나의 생각은 어떤지 몰랐기에 남작이 질문했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다시 잡힐 땐 잡히더라도….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으세요?”
“그게 뭐지?”
“제국의 중앙에 있는 도시 쪽으로 도망치고 싶어요. 혹시 그레이크시라고 알고 계세요?”
“으음,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구나.”
“사실 저는 거기서 나고 자랐어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요. 성을 떠날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그 후에 잡히는 건 상관없어요!”
영주성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은 영주의 허가 없이 해당 영지를 떠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남작이 서류를 만들어주면 가능해진다. 그 인장으로 말이다.
“어디로 가든지, 결국에는 추격대에게 잡힐 것이 뻔한 데도, 그저 고향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남작님의 소원은 죽더라도 백성을 돕는 거 아닌가요?”
“맞다.”
“저 또한 그것이 죽더라도 이루고 싶은 소원일 뿐입니다.”
남작과 시에나가 서로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남작이 결심을 굳혔는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탈출을 시켜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당연히 곧 잡힐 것이다.”
“네. 상관없어요.”
“너를 어떻게 믿지?”
“저야말로 남작님을 어떻게 믿죠?”
“그건….”
“우리는 어차피 한 배를 탄 거 아닌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일 수 없으시다면요.”
딘크 남작은 그 말에 다시 시에나의 목을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보았다.
“집무실의 잠금장치는 매우 정교했다. 그렇게 커다란 문짝이니 당연하겠지. 그러니 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 일을 진행하는 건 무리가 되겠구나. 그렇다면 도박을 거는 수밖에. 오늘 밤에 내가 무사하다면 너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오늘 밤 어디론가 끌려가지 않는다면, 서로의 뜻이 일치한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내일 당장 집무실로 향하겠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도박인가?”
“…….”
남작의 말에 시에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품을 뒤지더니 열쇠 하나를 시에나에게 내밀었다.
“집무실의 열쇠는 열지 못했으나 이것은 미리 구해둔 집무실 책상 서랍의 열쇠다. 책상 서랍은 거대한 문짝과 다르다. 그걸로 충분히 열수 있을 것이야.”
“알겠어요.”
시에나는 그 열쇠를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은 시에나가 매우 묘한 여자라고 느꼈다. 고향에 가보는 것이 목숨보다 우선이라니.
너무나도 묘하지 않은가.
비범하면서도 묘한 여자.
사실 시에나는 어릴 때부터 비범했다.
그레이크가 도자기를 깼다는 누명을 쓰게 됐을 때 그녀가 나서서 조용하게 그 일을 해결했던 그 날부터.
시종장과 시녀장. 그리고 남작의 자제들. 더 위로는 귀족들까지.
그레이크를 위해서 그녀는 항상 여러 가지 계략을 부렸다. 물론 자신을 위해 계략을 부린 적은 없다. 오로지 그레이크가 안 좋은 상황에 처했을 때만.
그리고 그 계략은 항상 성공했었으니.
당연히 그날 밤.
시에나가 잡혀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집무실의 청소를 자청했다.
“이렇게 넓은 집무실을 언제다 청소하냐. 들어올 때마다 한숨이 나오네.”
“그러게.”
“영주님은 오늘도 시찰이래니?”
“응. 일주일 내내 하신다던데?”
시에나를 제외한 다른 두 명의 시녀가 그렇게 속닥거리면서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저기 리라님, 로라님.”
“응?”
시에나가 그런 두 명에게 접근했다.
“쉬다 오셔도 돼요. 어차피 별로 치울 것도 없고. 혼자 해도 되니까요.”
집무실을 3인 1조로 청소하는 것은 집무실의 무언가를 건드리지 못하게 3인이 서로 감시하라는 뜻이 담긴 것이기도 했다.
“뭐? 안 돼. 그러다가 큰일 나.”
당연히 리라와 로라는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손사래를 쳤다. 들키면 매질로 끝나지 않는 일이니까.
“제가….”
“응?”
“여기 굴러들어온 후 인맥이 전혀 없어서…. 저 좀 잘 살펴 주십사 이런 걸 준비했어요. 약소하지만….”
시에나가 그런 리라와 로라의 손에 돈 꾸러미를 얹어주었다. 딘크에게서 얻은 군자금이었다.
그러자 리라와 로라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그 모임이란 것에 저, 저도 좀 껴주세요!”
“어머어머. 너 무뚝뚝한 줄 알았더니….”
“거기 앉아서 쉬고 계실래요? 청소는 제가 다 할 테니까!”
“정말이니?”
“네! 거기 소파, 엄청 푹신해 보이지 않으세요?”
“뭐, 그렇긴 하네.”
시에나는 책상 반대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소파로 두 시녀를 유인했다.
시녀들은 돈 꾸러미를 챙기고는 웃으면서 그 소파에 주저앉았다.
“단순히 이 정도로는 껴줄 수 없어. 하지만, 앞으로 지켜는 봐줄게.”
“가, 감사합니다.”
“하는 거 봐서야. 하는 거.”
“쉬고 계세요! 빠르게 청소하겠습니다!”
시에나는 매우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였다. 리라와 로라는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소파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었기에 시에나는 책상을 닦는 척하고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작이 전해준 서랍의 키를 품에서 꺼냈다.
“콜록콜록.”
“기침은 웬만하면 참아. 영주님의 집무실에 침이 튀는 건 엄청나게 혼날 짓이니까.”
“네! 입을 막았어요! 걱정 마세요. 지금 바닥 닦고 있으니까요.”
“그래. 아, 그거보다 어제 말이야 걔가 웃기는 짓을 하더라고.”
“정말?”
리라와 로라는 다행히 자신에게 거의 신경을 끈 채 수다 삼매경에 빠졌기 때문에 시에나는 기침과 서랍 여는 소리를 맞바꾼 후 서랍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쪽에서 영패 같은 것을 찾아냈다.
‘이것일까?’
그 안쪽에는 도장 같은 것도 같이 보관되어 있었다. 딱 봐도 남작이 말한 인장으로 보였다.
그것을 몸속에 숨긴 시에나는 태연하게 이마를 닦으면서 책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리라와 로라의 시선 앞에서 열심히 걸레를 움직이며 곧 청소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남작은 무사히 창고로 달려갔다. 영패로 사냥터에 가지 않고 남은 방어 병력을 움직였다. 기사들에게는 위조 서류를 보여줬다.
“각하께 사람을 보내 확인할 여유는 없네! 감찰관이 내일 내려온다는 첩보 때문에 오늘 아침 급하게 구호물자를 옮기라고 하셨단 말이네. 자네, 머뭇거리다가 목이 떨어지고 싶은가!”
“아, 아닙니다. 남작님!”
그 협박에 병사들은 납작 엎드렸고 영패는 곧 영주이니 창고 문은 개방되었으며 도시 곳곳에 구호물자가 전해지기에 이르렀다.
“보이는가?”
“네.”
“백성들이 모여와 칭송하기 시작할 것이야. 그러면 줬던 것을 빼앗는 짓은 할 수 없게 되지. 나눠줄 것이 있으면서 주지 않고 창고에 숨겨놨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거 다행이네요.”
“다 네 덕분이다. 정말로 고맙구나. 그러니 나도 약속을 지키겠다. 마차를 수배해놨네. 추격대가 쫓아오면 아마 마부가 마차를 멈출 거네. 그러니 그때부터는 혼자 도망쳐야겠지만, 각하께서 사냥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시간이 꽤 남았으니 충분한 거리를 벌릴 수 있을 거야! 기사들이 쫓아갈 테니 어쨌든 잡힐 테지만….”
“도시를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에요. 이제부터는 저 말고 남작님 본인 걱정을 하셔요.”
“난 가훈을 지켰으니 만족한다. 그것이 나의 전부니까.”
딘크 남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딘크 남작이 위조해준 서류덕분에 시에나는 무사히 관문을 통과했고 그레이크시를 향하여 떠날 수 있었다.
서로의 뜻을 이뤘으니 딘크 남작은 이미 안중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했다. 그러니 매우 깔끔한 관계다.
어차피 둘 다 죽을 몸.
그런 서로를 걱정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일.
멀어지는 루티안 시를 보면서 시에나는 그렇게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오라버니가 아직도 데드란의 영주님께 억압받고 있다면…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내가 폐를 끼쳐서는 절대로 안 된다…! 모습을 드러내면 안 돼. 잡히기 전에 그저,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고… 루티안 백작에게 잡혀서 갖은 곤욕을 치르기 전에… 죽자. 물에 빠져 죽든, 혀를 깨물고 죽든 죽는 거야. 절대로 오라버니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
평생 다시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상을 실현하고, 그의 안전을 확인하고 죽는 것.
그것은 시에나에게 있어서 내일을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에나는 도망쳤고.
딘크 남작의 말마따나 곧 추격대가 쫓아왔다.
시에나가 마차에서 도망쳤을 땐, 이미 제국의 중남부에 도착해 있었고.
달리는 마차에서 무작정 뛰어내린 그녀가 발을 디딘 곳은 그레이크 산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시에나는 더더욱 필사적이었다.
‘허억. 허억.’
하지만 하루 종일 뛰어다닌 그녀의 체력은 점점 바닥이 나기 시작했고, 숲을 헤매던 그녀는 발을 헛디뎌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꺄아아악!”
시에나의 몸은 구르고 또 굴렀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낭떠러지 끝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향해 돌진했다.
쿠우웅-!
그 바위와 부딪힌 것은 시에나의 머리였고, 곧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