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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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Chapter.41 망각
시에나는 나무에 묶였다. 그리고 놈들은 시에나를 깨우려고 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시에나가 죽지 않게만 조치할 생각이다. 그녀를 구하는 것은 내가 아닌, 그녀의 왕자님이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불청객의 우두머리 같은 놈이 제일 앞에 나서서 시에나를 깨웠다.
깨어난 시에나는 곧바로 그 불청객을 알아봤다.
“게, 게린 남작…!”
남작이라.
품위가 전혀 없어서 귀족인 줄 몰랐는데, 남작이었어?
감옥에서 만났던 그 남작하고는 천지차이다.
하긴 뭐 공작 중에서도 품위와는 담을 쌓은 녀석들이 있으니.
그런 시에나에게 게린 남작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다가갔다.
“게린 남작님이겠지, 이 요망한 것이?”
짜아아악-!
게린 남작이 시에나의 볼을 내리쳤다.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그녀를 구하는 건 그레이크의 몫이 돼야 한다. 죽을 위기가 아니라면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나무 위에 올라 나는 상황을 주시했다.
지금쯤이면 엘레나에게서 소식을 들었을 텐데.
“…기어코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그럼 그런 짓거리를 저지른 너를 가만둘 줄 알았어?”
“그건… 아니지만….”
시에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게린 남작은 그걸 보며 웃더니 칼을 뽑아 들었다.
칼이라.
이건 안 좋은데.
“너와 그레이크 백작 놈 사이에 대체 무슨 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네년을 두둔한 이상 그레이크 놈도 끝장이다! 감히 다른 영지의 사람을 건드리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한참 나왔어 그놈!”
“그, 그게 뭐예요? 게린 남작님! 그레이크 백작… 님과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처음에는 게린 남작이라고 외치던 시에나가 얼굴이 사색이 돼서 게린남작‘님’이라 부르며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이미 너를 보호하고 있던 그레이크 백작에게 정식으로 요청했었다. 하지만 놈은 범죄자를 넘기는 걸 거부했어.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겠나? 알겠냐고!”
짜아아악-!
시에나의 반대편 볼에 다시 따귀가 올라왔다.
여기서 나는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그 위화감.
그건 시에나의 대사다.
아무래도 그녀는 기억이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레이크와 자신이 연관되어, 그레이크에게 폐가 될까봐 저택에서 빠져나온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 아침, 눈앞의 모든 상황이 납득이 간다.
물론 거기에는, 시에나가 여전히 그레이크를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으며, 기억이 돌아왔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지만.
보아하니 이미 모든 걸 기억하는 것 같은데.
“놈에게 더 피해를 주기 위해서 널 산채로 잡아가 처형하는 것보다, 놈의 영지에서 정체불명의 일당에게 살해당한다는 그림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것이 백작님의 명령이니, 폐를 안 끼치긴 커녕 이중 삼중으로 끼친 채 죽게 되는 거다. 너는… 후후후.”
“…당신! 당장, 당장 나를 풀어줘요! 그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안 되니까!”
“웃기고 있네.”
게린 남작이 시에나의 머리카락을 잡아선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시에나는 얌전히 묶여 있다가, 그레이크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격렬하게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몸에 상처가 생길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이쯤이면 됐다는 표정으로 게린 남작이 칼을 뽑아들었다.
극적인 순간이다.
그레이크 녀석. 극적인 타이밍에 나타나면 얼마나 좋으련만, 세상일 이란 건 항상 그렇게 순리적으로 흘러가지만은 않기 마련이지.
어쩔 수 없이 게린 남작과, 놈의 부하들에게 자신들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서 당한 것처럼 보이게끔 마법을 쓰려고 하는데, 그 전에 먼저 시에나가 뭔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요.”
“뭐가 잠깐이야? 닥치고 죽거라.”
“절 백작님께 데려가 줘요.”
“왜 그래야 하지?”
“제, 제가 영패와 인장만 훔쳤다고 생각하세요?”
“뭐?”
그 말에 게린 남작의 행동이 멈춰버렸다. 들었던 칼을 일단 내려놓고는 인상을 쓰면서 시에나의 턱을 콰악 손으로 잡았다.
“너, 뭘 숨기고 있지?”
“…….”
시에나는 입을 다물었다.
“데려가주면 말할게요. 당신들이 한 행동에 대한 증거가 되는 거라는 것만은 알고 있으세요.”
“이 잡것이!”
게린 남작이 한 번 더 따귀를 내리치려고 했다. 증거라면, 그날 내가 모조리 긁어왔다.
그러니까 뭔가 찔리는 게 있을 수는 있는데.
감옥에 있던 남작의 증언에 따르면 또 다른 걸 훔쳤을 리는 없는 것 같고.
죽지 않기 위한 기지일까?
하긴, 구호물자를 빼돌리기 위한 방법을 즉석에서 생각해냈다고 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시에나에게 붙어 있던 게린 남작과 기사들이 강한 바람에 의해서 모조리 바닥을 나뒹군다.
“크아아악!”
“가, 갑자기 뭐야!”
바람이 멈추자 놈들이 간신히 일어났다. 이렇게 한 이유는 그레이크가 이 모습을 보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게린 남작이 시에나를 때리는 모습 말이지.
그걸 본다면, 그레이크는 앞뒤 안 가리고 게린 남작을 죽일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루티안 백작을 옭아맬 수 있는 증거 덩어리를 그렇게 쉽게 죽게 하는 건 좋지 않으니, 쓸데없는 분노는 냉정하게 삼가게 해주기 위한 장치랄까.
물론 이걸 행동에 옮긴 이유는, 저 멀리서부터 미친 듯이 달려오는 그레이크가의 병사들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더 볼 것도 없는 상황.
나는 나무에서 일어났다. 이 앞은 그레이크 녀석이 해결하는 게 가장 좋으니까.
***
태어나서 이 정도로 격하게 뛰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시에나가 없어진 것을 알고 영주성을 탈곡하듯 까뒤집고, 시내에도 사람을 푼 와중에 엘레나에게 소식을 접한 그레이크는 당장 가동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거느리고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째선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게린 남작과 그 일당을 향해서 커다랗게 외쳤다.
“당장 멈춰라!”
그레이크 가문의 문장이 멋들어지게 박혀 있는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순식간에 숲을 장악했고 게린 남작과 기사들까지 포위했다.
그레이크는 가장 앞에 서서 칼을 뽑아 들었다.
“게린 남작 네이오오옴! 남의 영지에서 이게 지금 뭐하는 짓거리더냐?”
“크윽….”
“저놈을 당장 내 앞에 꿇려라!”
“네, 각하!”
수많은 병사가 동시에 외쳤고, 그 즉시 게린 남작과 기사들은 모조리 땅바닥에 무릎이 꿇려져 칼끝의 차가움을 목 끝에서 느껴야 했다.
“빌어먹을 자식, 감히 너 따위가 시에나를!”
퍼어어억-!
그레이크가 게린 남작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게린 남작은 땅바닥을 뒹굴었다.
퍼억, 퍽 퍽-!
“죽어라, 이놈, 죽어!”
그레이크는 분에 못 이겨 계속해서 게린 남작을 걷어찼다.
“나를 죽이면, 루티안가와 전쟁이 벌어질 거다. 그레이크 백작… 칵. 컥, 그, 그만! 그만!”
일방적으로 걷어차이던 게린남작은 몸을 웅크렸다. 그 와중에 전쟁이란 말에 놀란 시에나가 그레이크에게 소리쳤다.
“그, 그만해요! 오라버니! 전쟁은, 전쟁은 안 돼요!”
“괜찮다. 이 자는 루티안 백작을 벌하는 재료로 이용할 것이다. 여봐라! 당장 이놈들을 하옥시켜라!”
그레이크가 외치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의 잔재가 사라진 곳에서, 그레이크는 나무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시에나가 묶인 줄을 풀었다.
“그, 그레이크 백작님.”
“방금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않았어?”
“네?”
시에나는 그 순간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그레이크를 바라봤다.
그레이크가 루티안가의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미 건너면 안 되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시에나는, 차라리 루티안가로 돌아가, 그레이크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결정을 내렸다. 결자해지의 자세로 기억이 안돌아온 척 하는 중이었으나.
저도 모르게 급한 상황에서 그레이크를 오라버니라고 부른 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백작님….”
“시에나.”
“네.”
“거짓말 하지 마. 분명히 오라버니라고 말했어. 기억이 돌아온 거 맞지? 그렇지? 시에나!”
그레이크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표정 때문에 시에나는 저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할 뻔 했으나 간신히 참아내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그렇지 않아요.”
“뭔가 이상했어. 계속 제 이름을 기억해달라고 할 때부터. 계속이란 말. 그리고 오라버니. 거기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도망치려고 하는 것까지!”
그레이크가 다시 한 번 강하게 소리쳤다. 시에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은 것이다.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인정하면 자신을 위해서 땀범벅이 되어 달려와 준 남자의 행복을 망치게 된다.
그건 싫었다.
“있잖아, 시에나.”
그런 머뭇거림을 향해서 그레이크는 또다시 소리쳤다.
“괜찮아.”
“네? 뭐, 뭐가요?”
“그거 알아? 너는 가장 힘들었던 나를 지탱해줬어. 그렇기 때문에 그 힘든 시기에도 항상 생각했어. 그레이크시를 좋은 영지로 만드는 길을. 좋은 영주, 좋은 영지… 그건 모두 너가 있어서였다. 너가 있기에 나는 좋은 영주가 되고 싶었어! 그런 네가 살아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 너를 되찾기 위해선 영혼도 팔 수 있으니까! 그리고 시에나… 네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어!”
시에나는 목이 메여왔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또르륵 떨어질 것 같았다.
그만한 가치. 자신에겐 없는데.
어릴 때부터 그렇게나 좋아했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팔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뭐가 뭔지 모르게 된 시에나는 그래도 간신히 이성을 끈을 잡으면서 되물었다.
“그, 그게 뭔데요?”
“내가 아직도 예전의 나로 보여? 예전의 그 힘없던 영주로 보여?”
시에나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심장이 터질 듯 곤두박질쳤다.
“이젠 달라. 너를 위해 강해졌어. 스승님이 많이 도와주셨지만, 그렇기에 성장했어! 이젠 널 지킬 수 있다.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던 지킬 수 있어. 게다가 넌 죄를 짓지도 않았어!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데드란 백작도 물리쳤고, 데드란시를 내 것으로 만들었어. 루티안 백작도 마찬가지야. 나, 이길 수 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서 떠나지 마!”
그레이크는 시에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순간 시에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나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저도 모르게 다시 한 번 기억이 돌아왔음을 인정하듯 ‘오라버니’를 속삭였다.
그레이크의 품에서 계속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