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24)
# 224
Chapter.42 숙원
***
어머니에게 나를 너무 오래 소개한 루린이 간신히 떨어졌을 땐 식당에서 갓 만들어온 도시락이 완전히 식어버린 후였다.
전자레인지도 없고, 그냥 먹어야지 뭐.
그 식은 도시락을 펼쳤다.
먹을 걸 보자 기분이 바뀐 우리 드래곤은 얌전히 앉아서 도시락을 냠냠 퍼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범인에게 접근할지 궁금하지 않아?”
“범인? 설마 그대! 범인을 알고 있냐?”
원수를 갚으러 가자니 대뜸 따라와 놓고는 궁금해 하는 기색이 없어서 물었더니 루린이 밥 먹다 말고 흥분해서 눈을 빛냈다.
“아니아니, 아직은 아니야. 내 말은 범인을 어떻게 찾아낼지 궁금하지 않냐는 건데?”
“아. 그거냐. 우걱우걱.”
루린이 멈췄던 손을 움직여 다시 도시락을 까먹기 시작했다. 영 관심이 없다는 투다.
“그건 그러니까 그대 옆에 딱 붙어 있으면 해결되는 거 아니냐? 그대가 범인을 잡아 준다고 했으니까.”
이건 뭐 전적으로 맡긴다는 말이지?
너무 믿다가 발등이 찍히는 경우가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하지. 그러니까 확 발등을 찍어버려?
나는 슬쩍 루린의 발등을 쳐다봤다. 새하얗다.
으음. 찍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뭐 그건 그런데, 아무튼 전에 말했듯이 결정적으로 이걸 사용할 거야.”
발등을 찍을 수 없으니 얌전히 품에서 레드드래곤의 구슬을 꺼냈다. 그레이크 산에서 얻었던 구슬 중 하나다. 원래부터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서 남겨뒀던 구슬이다.
바로 그 남은 구슬을 꺼내자 루린이 슬쩍 보더니 대답했다.
“그러냐. 빨간 거의 구슬인 점은 맘에 안 들지만 나도 사용했었으니까…. 뭐 음음. 우걱우걱.”
그래. 우리는 잘 사용했지.
덕분에 엄청 강해졌다.
루린도 드래곤 한두 마리는 거뜬할 정도로 강해졌고.
어쨌든 이 미끼는 사용됐다. 그리고 물고기는 이미 미끼를 물었다. 이제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
미끼를 뿌린 건 내가 아니다. 나와 루린이 레드 드래곤의 구슬을 얻었다는 정보.
나는 블랙드래곤의 장로 메디다나에게 그 정보를 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리고 바로 최근에 그 결실이 맺어졌다.
뜬금없이 메디다나를 통해서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나와 루린을 자신들의 영지로 초대한 거다.
이 초대장은 메디다나가 정보를 퍼뜨리고 얼마 후 날아왔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게 바로 레드드래곤이었다는 소리다.
수상한 냄새가 역시나 펄펄 풍긴다.
물론 우리를 레드드래곤의 성지로 초대한 이유는 그럴싸하긴 하다.
일전에 세레이나의 일로 폐를 끼쳤으니 그 일에 관해서 사과도 하고 보상도 하겠단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면 웃기기 짝이 없다. 이제 와서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며,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세레이나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결국 놈들의 목적은 우리가 얻은 레드드래곤의 구슬이겠지.
초대에 응하면 좋고, 만약 안 오면 다른 방법을 쓰겠다는 것이 놈들의 의식 수준. 너무나도 수상한 제의라서 오히려 기쁘게 승낙했다. 이 의식 수준에서 나와 루린을 깔보는 게 느껴진다.
뭐 깔봐줄수록 좋다. 그리고 수상하면 할수록 좋고.
그 수상함을 파헤치면 찾던 진실이 있을 수 있으니.
루린의 어머니 사건에서 가장 수상한 것은 누가 뭐래도 레드드래곤의 수뇌부들이다. 싸잡아 모든 레드드래곤이라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레드드래곤을 이끄는 장로와 고룡, 그리고 수뇌부들은 분명히 연관이 있을 것이다.
루린의 어머니를 노렸다는 듯 블랙드래곤의 성지에 때마침 방문한 레드드래곤의 사자.
그 후의 마치 짜놓은 것 같은 대응. 모든 것이 레드드래곤에게 이득 그 자체.
보통 살인사건을 수사하면, 그 살인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사람을 제일 먼저 의심한다.
그러니 가장 큰 이득을 본 레드드래곤의 수뇌부들은 나라는 사람에게 가장 의심이 가는 존재.
게다가 나는 증거는 필요 없다. 놈들이 했다는 사실. 증거가 없더라도 그 사실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호랑이굴로의 초대, 아니 드래곤굴로의 초대는 백번 환영하는바.
레드드래곤의 가장 큰 오판은.
내가 가진 실력이 여전히 예전 전쟁 때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레이나 사건 때 레드드래곤은 먼저 물러가버렸다. 그러니 최근 레벨업한 내 힘을 본 것은 블랙드래곤들 뿐.
그러니 더더욱 재밌는 초대가 되지 않겠어?
“읔.”
차가운 도시락을 와구와구 먹던 루린이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목이 막히는 모양이라서 나는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루린, 가뜩이나 식었는데 천천히 먹어. 자, 이거 마시고.”
보온병에 들어있는 차를 따라서 루린에게 넘겼다. 그러고 보니 도시락도 보온 도시락에 싸올 걸 그랬나?
보온병에서 따른 차는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난다.
루린은 망설임 없이 받아든 보온병 뚜껑에 입을 가져가 벌컥벌컥 차를 마셨다. 곧 차가 목으로 넘어간다.
아니, 넘겼어야 했다. 넘겼어야!
-푸우우우우우웁!
“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것과는 정반대. 루린은 내 얼굴에 마셨던 차를 그대로 뿜어 버렸다.
밥풀과 뜨거운 녹차가 내 얼굴에 흘러내린다.
“야 임마!”
“그대에, 흐윽, 너무 뜨겁다아아아아아!”
루린은 돗자리에서 일어나 옛 레어 주변을 마구 뛰기 시작했고 내 외침은 듣지도 못했다.
돌고 돌고 또 돈다.
그러고 보니 보온병이라는 현대의 문물에 관해서 설명한 적은 없다.
뜨거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루린은 한참을 방방 뛰더니 강아지처럼 혓바닥을 내밀며 다시 돗자리에 앉았다.
“으에에에에. 주, 죽는 줄 알았다! 그대, 왜 날 죽이려고 하냐!”
“그런 거로 죽겠냐. 드래곤께서? 뻔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조심해서 먹어야지.”
“목이 막혔단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루린의 입에 묻은 밥풀과 뿜는 바람에 흘러내린 물을 손수건으로 쓱쓱 닦았다.
흐에한 표정으로 얌전히 얼굴을 내민 결과 혼자만 말끔한 얼굴이 됐다.
다 닦아주니 감고 있던 눈을 뜨고선 나를 보고 눈을 깜빡인다.
“그대, 왜 그렇게 얼굴이 엉망이냐?”
“……뭐?”
한다는 소리는 매우 어이없다. 저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 왜 엉망이냐니?
“칠칠맞다! 하여간 그대는 나 없으면 안 된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그러곤 상황에 안 맞는 달콤한 대사를 내뱉더니 내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아 쓰윽쓰윽 내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뭐 이런 부분은 발전했다. 루린이 내 얼굴을 닦아주는 건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으니까.
“밥풀도 있다.”
“니가 씹던 밥풀이거든요?”
“그럼 다시 먹는다!”
“뭐?”
루린은 손수건을 내 던지고 내 얼굴에 가까이 다가왔다. 루린의 숨소리가 매우 가까이 들릴 정도로.
코와 코가 거기 맞닿을 거리.
“다시 먹을 거니까, 가만히 있어라 그대.”
그렇게 말한 루린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루린의 귀여운 혓바닥이 아까 뜨겁다고 혓바닥을 헥헥 거릴 때와는 다른 곡선을 그리며 다가온다.
“냠!”
루린의 혓바닥이 내 볼 끝에 닿았다. 루린은 혀끝으로 밥풀을 떼어내 먹어버린다.
할짝거리니까 뭔가 간지러운 기분이다.
그것도 코앞에서.
“야, 루린? 수건으로 닦지? 손으로 떼먹던가. 더럽게 뭐해?”
“안 더럽다. 내가 먹던 거고 그대 얼굴에 붙어있으니 오히려 깨끗하다!”
아니, 내 얼굴이 그렇게 깨끗하지는? 너무 과대평가인데?
루린은 황당한 신념 그대로 다시 혀를 가져왔다.
그러더니 내 입가에 붙은 밥풀을 건드린다. 입술 바로 옆이다. 그곳에 혀가 닿자 뭔가 찌릿한 기분이 온몸을 훑었다. 뭔가 부드러우면서도 뜨뜻미지근한 느낌과 함께 살짝 전기가 온 것 같은 느낌.
거기에 계속해서 들려오는 루린의 숨소리와, 혀를 내밀어 핥을 때의 묘한 표정이 조금.
아니 많이 오묘했다.
정작 본인은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오묘하달까 매혹적이랄까.
다 떼어먹었는지 내 양 볼을 잡고 슬쩍 일어나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얼굴을 한다.
“너, 뽀뽀는 먼저 못하면서 이런 건 또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뽀뽀랑 무슨 상관이냐? 뽀, 뽀뽀는 그리고 먼저 할 수 있다! 아, 아무 때나는 못하지만.”
콧김을 내뿜으면서 소리를 치고는 매우 태연하게 도시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다시 먹었다. 언제까지 도시락을 먹고 있을 순 없으니 좀 빠르게.
별다른 일 없이 배를 채우고 돗자리를 치웠다.
이제 여기서 볼일은 없다.
마치 전투에 나가기 전 부모의 묘에 들르듯, 보고도 끝났으니 이니 드래곤굴로 가볼 차례.
“루린.”
아까 내 옆에 꼭 붙어 있으면 범인을 알게 될 거라고 하더니 루린은 어느새 내 팔을 확 붙잡고 있었다. 이미 껌딱지다.
그 상태로 왜 부르냐는 얼굴로 올려본다.
“음, 레드드래곤의 성지로 가자. 초대받았거든.”
“초대?”
레드드래곤이란 말에 루린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루린의 전투의식을 불사르는 단어가 레드드래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응. 초대.”
“엄마의 원수를 갚자면서 웬 초대냐? 빨간 거의 초대 따위는 북북 찢어버리면 된다.”
“뭐 그건 맞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지. 레드드래곤의 수뇌부가 용의자거든.”
“빨간 거가?”
내 말에 루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곧 그 눈동자에는 적의와 살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잠깐, 루린? 진정해.”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살기를 내뿜는 루린의 몸을 뒤에서 꽉 껴안고 말했다.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그냥 용의자야. 모든 것이 밝혀지면 그때 가서 심판을 받게 하면 되는 일이니까. 이번 초대는 그러니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고 오히려 그렇게 티를 내면 일을 망친다?”
“…그치만!”
“루린? 나를 믿는다며?”
“믿는다.”
“그럼 일을 망치면 안 되겠지? 내 옆에 그냥 꼭 붙어만 있는다고 하지 않았어? 일이 밝혀질 때까지?”
“그랬다.”
“그럼 한 말은 지켜야지.”
끄덕끄덕.
루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루린의 콧날을 꼭 잡았다.
“밝혀질 때까지만 무표정하게 있으란 거야. 분노를 뿜어내지 말고. 그리고… 코도 풀지 말고!”
코를 잡았더니 아침에 씻겨주고 코 풀 때로 착각하나 훙훙거리길래, 한마디를 더 추가했더니 콧소리를 내며 대답한다.
“후잉, 알았다. 가만히 있을 거다.”
“그럼 레드드래곤의 성지로 출발합시다.”
“그대.”
“응?”
“나, 레드드래곤의 성지 따위 가본 적 없는데?”
“…….”
하긴 그러네.
루린이 거기에 가봤을 리는 만무하지. 가장 근본적인 걸 생각하지 않고 출발했네?
훗.
“푸하하하하하하.”
이런 멍청할 때가.
“왜 그렇게 웃냐? 바보 같다 그대. 평소처럼 멋있게 웃어라!”
“아니 그게 이번엔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거든. 그럼 뭐 세레이나에게 가서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지 뭐.”
바보짓이긴 한 데 직행이 아닐 뿐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알겠다. 그럼 간다!”
루린이 내 몸을 더더 꽉 잡고는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했다. 우리는 곧 어둠에 휩싸였다.
***
“저기가 레드드래곤의 성지란 말이지?”
“우리 성지랑 비슷하다. 뭐 우리 성지도 마음에 안 드는데 저기는 더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러냐. 그런 말은 저기 가서는 하면 안 돼. 그냥 꼭 다물고 있어. 내가 다 말할 테니까.”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루린의 손을 잡고 산 아래 거대한 계곡에 펼쳐진 레드드래곤의 성지를 바라봤다.
초대를 받았으니 불청객이 아니다.
과연 어떻게 나올까?
곧 우리를 발견했는지 성지 위를 날아다니던 육중한 덩치를 가진 빨간색의 드래곤이 파닥파닥 날아와 착지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그리고 다짜고짜 호통이다.
세레이나 사건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로 싹수가 없는 놈들이다.
세레이나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 다 때려 패도 상관없다며 쿨하게 이 장소를 알려줬다. 하긴 자신이 죽어가도 안중에도 없는 동족이니 정이 완전히 떨어졌겠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