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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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
Chapter.42 숙원
덕분에 장로는 내 허접한 연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인간이여.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도다! 죽기 싫다면 구슬을 넘기거라!”
그러더니 거만한 말투로 최후통첩을 내렸다. 동시에 루린이 얼떨떨한 얼굴로 내 옆에서 소근거렸다.
“그대. 정말로 텔레포트를 못하겠다.”
“괜찮아. 지금은 텔레포트가 전혀 필요 없어. 넌 그냥 꼭 붙어있으면 돼.”
“그건 내 특기다!”
붙어있는 게 특기야?
루린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내 옆에 더 꼭 붙었다.
확실히 특기 맞네.
루린의 특기를 새삼 확인한 후 다시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레드드래곤을 쳐다보며 양념을 뿌렸다.
“싸우고 싶지 않으면 구슬을 내놓으라는 겁니까?”
“그렇다. 이 숫자가 보이느냐? 아무리 네놈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으렷다?”
“하지만 당신들도 죽을 텐데요? 길동무는 최대한 많이 만들겠습니다만?”
“건방진 인간이여! 거기 그 꼬마까지 죽어도 좋다는 말이더냐?”
“…….”
나는 슬쩍 루린을 보는 척했다.
어디까지 저질로 나올 생각일까. 정말로, 상종도 못할 저질이다.
나는 놈들에게 보란 듯 간절하게 루린을 쳐다봤다. 다른 건 연기여도 간절한 눈빛만큼은 진짜다.
루린을 간절하게 보는 건, 어느 상황에서나 가능하니까.
“흐어?”
루린이 고개를 갸웃거림과 동시에 다시 레드드래곤에게 시선을 돌렸다.
루린 때문에 못이기는 척, 항복한다는 선언을 하면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드리겠습니다. 그럼 결계를 풀어주시는 겁니까?”
“얌전히 넘긴다면 그러고말고.”
“그 말을 어떻게 믿죠?”
나는 살짝 약한 척을 하며 물었다. 경계하는 눈빛을 레드드래곤들에게 퍼부었다. 놈들에게는 사냥에 성공한 토끼 같은 눈망울로 보이겠지.
“네놈의 실력은 알고 있다. 우리도 쓸데없는 피해는 원치 않는다. 구슬만 얻는다면 네놈과 그 꼬마 따위는 어찌 돼도 상관없느니라!“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연극이 너무 작위적이다. 그래서 그냥 끝을 고했다. 품에서 레드드래곤의 구슬을 꺼내 던졌다.
게다가 내 실력을 알긴 뭘 알아?
정보는 항상 최신화가 중요하다. 언제 적 ‘나’를 가지고 지껄이는 건지.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그 구슬을 넋 놓고 바라보더니 곧 눈짓을 했다. 그러자 루린이 다시 속삭였다.
“그대. 이제 텔레포트 된다!”
그렇겠지. 놈들의 목표를 위해선, 여기서 나와 싸우다가 쓸데없이 숫자가 줄어들면 곤란하니까.
구슬을 받은 레드드래곤은 역시나 악당답게 악당다운 대사를 내뱉었다.
“인간이여. 다시 눈에 띄면 그때는 죽음뿐이니라! 주제를 알고 행동하거라!”
“그러죠. 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루린에게 말했다.
“루린,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근처 아무데로 텔레포트해.”
이건 마치 허겁지겁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다.
놈들이 봤을 때 나와 루린은 그저 목숨 부지하기 바쁜 상황이니까.
끝까지 그 모습을 연기해야지.
잔뜩 방심하도록.
“알겠다.”
루린이 고개를 끄덕였고, 덕분에 어둠이 우리를 잠식, 곧 눈앞에서 보기 싫은 레드드래곤들이 사라졌다.
놈들은 이제 곧 대부대를 이끌고 블랙드래곤에게 가겠지.
그것이 놈들의 최우선 목표니까.
그러니 일단 성지에서 퇴각한 후 그 뒤를 몰래 따라가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었다.
***
드래곤간의 싸움.
하지만 일대 다수다.
블랙드래곤은 명백하게 밀리고 있었다. 상대하는 건 다수의 레드드래곤.
이미 피투성이였다.
명백하게 린치를 당해서 날아오를 힘도 없이 지상에 처박혔다. 진작에 도망치지 않은 것은 죽더라도 놈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젊은 레드드래곤 한 마리만 보고 얕보고 쫓다가 오히려 함정에 걸려서 이 지경에 빠졌다.
자신에게 그런 일격을 남긴 것은 바로 눈앞의 레드드래곤.
딱 봐도 고룡이었다.
블랙드래곤은 힘을 짜내어 눈앞의 드래곤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마을 하나는 가볍게 괴멸시킬 강력한 브레스였으나 상대 역시 드래곤.
브레스를 브레스로 응징하면서 주위는 고에너지의 충돌로 강력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콰앙-!
충돌의 결과 발생한 충격파와 함께 두 에너지는 상쇄되어 사라졌고 블랙드래곤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가만히 있거라.”
블랙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은 젊은 드래곤 시트니를 뒤로 물리고 고룡 리하임이 입을 열었다.
“역시나 네놈들이었어.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비열한 놈들.”
이미 몸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눈앞의 고룡이 날린 직격타가 너무나 강력했다. 덕분에 마나를 제대로 쓸 수조차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건 브레스 뿐.
피가 쏟아진다.
희망은 텔레포트뿐.
하지만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마나를 모으는 것도 버거운 상태. 그렇기에 어떻게든 대화를 하면서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가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말이다, 그만 죽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느냐? 젊은 드래곤이여.”
“죽더라도 누명은 벗고 죽을 것이다!”
“이것은 다 드래곤의 미래를 위한 일. 그에 따른 거룩한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겠느냐? 그냥 얌전히 죽으라는 이야기다.”
“거룩한 희생양? 웃기고 있네. 네놈들의 더러운 짓거리 어디에 거룩한 이란 단어가 나오는지 설명 좀 해주겠어?”
“그럴 필요야 없지. 그저 우리 레드드래곤을 위한, 그래, 인간들의 단어로 설명하자면 거름이 된다고 생각하거라.”
“헛소리 집어치워라!”
참다못한 블랙드래곤이 다시 브레스를 사용했다. 하지만 리하임은 아까 전의 시트니와 달리 블랙드래곤의 브레스를 가볍게 쳐내버렸다.
괜히 고룡이 아니다.
그것도 레드드래곤의 서열 2위나 되는 고룡. 당연히 강했다.
그렇지 않으면 치명상을 당해서 골골거리고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놈들이 지금 자기 입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죽어도 된다.
죽는 건 상관없다.
그저 누명을 벗어서 억울함을 씻을 수만 있다면. 그래야 자신의 딸인 루린도 떳떳해지니까.
그러니 베일에 쌓여있던 범인이 레드드래곤이라는 걸 안 이상, 증거가 없더라도 현명한 드래곤 로드는 반드시 그 시비를 가려줄 것이라고 생각한 블랙드래곤은 필사적으로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여기서 도망쳐 누명을 벗겠다는 포부.
그러다 힘을 너무 써서, 받은 치명상이 악화돼 죽는다고 할지라도.
“웃기는 군. 마나를 모으고 있는 것이렷다? 성지로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것이더냐? 하지만 말이다. 블랙드래곤의 성지든, 너의 레어든, 또는 그 어느 곳이든, 텔레포트는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니라.”
“내가 미쳤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피를 왈칵 쏟으며 블랙드래곤이 힘을 짜내 소리쳤다.
다행히 텔레포트는 쓸 수 있었다. 마침 딱 모은 상태였다.
이제 쓰면 된다.
그러면 된다.
하지만 블랙드래곤은 텔레포트를 쓸 수 없었다. 리하임의 대사 때문에 말이다.
“미안하지만 젊은이여. 그러니까 네 딸이 문제이니라. 네가 여기서 텔레포트를 하는 순간, 너의 레어에 남아있는 해츨링, 그러니까 너의 딸은 즉사할 테니까.”
“……!”
블랙드래곤의 몸이 굳어버렸고, 동시에 시종일관 보이던 적의와 분노가 뒤덮인 표정이 그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지금이라도 어서 텔레포트를 해, 이 사실을 고해야 했다.
그것이 목숨과 명예를 찾는 유일한 길. 치료받지 않으면 죽는다.
어서 도망가야 했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놈들은 자신이 도망칠 수 없는 급소를 노리고 들어왔다.
사실, 누명을 벗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건 딸을 위해서 명예를 되찾는 것.
하지만, 정작 그 딸이 없어진다면?
“네, 네놈들···! 루린에게 대체 무슨 짓을! 그 아이의 날개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억겁의 세월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네놈을 찢어버릴 것이다!”
“허어, 그거 무섭구먼. 노인네한테 이빨을 들이밀기는.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젊은이여, 죽어서 식어가는 딸의 몸을 안아줄 생각이라면 돌아가던가. 같이 죽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지 뭐.”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 블랙드래곤.
그거야 그랬다.
딸이 다칠 수도, 아니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것은 그녀에게는 거대한 공포였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의 목숨을 쥔 자에 대한 공포.
기개 따위, 증오 따위, 누명 따위 모두 버릴 정도로 블랙드래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안 된다···! 네, 네놈오오오옴들!”
리하임은 표정변화 없이 블랙드래곤을 응시했다. 그리고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너만 죽으면 되는 일이다. 굳이 딸까지 말려들게 할 건 없지 않겠느냐? 어차피 구슬을 찾은 것도 너인 것을, 돌아가 치료받아서 구차하게 살겠다고? 그러느니 여기서 자폭하거라. 심장을 터뜨려 자폭하는 방법은 알고 있겠지? 그러면 우리에게 당했다는 증거도 모두 날아가며, 동시에 네 딸도 무사할 터.”
이대로 죽으면 증거가 남는다.
자신들이 살해했다는 증거가.
그건 안 될 일.
그렇기에 레드드래곤들은 이런 일을 계획했다.
눈앞의 드래곤이,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까지 차버리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계획을.
매우 잔인하고 비열한 계획을 말이다.
하지만 블랙드래곤은 이미 얼굴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선택은 당연히 딸이다.
그렇게 벗고 싶던 누명 따위, 놈들의 이 비열한 짓거리에 모두 휴지조각이다.
다만 자신의 바보짓에는 혀를 찼다.
누명을 씌운 존재들. 그들의 비열함을 모른 채 루린을 혼자 둔 것은 명백히 자신의 죄다.
지켜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분노에 뛰쳐나온 죄.
“죽어달라고? 네놈들이 내 딸을 살려줄 거라는 걸 대체 어떻게 믿고?”
“젊은 드래곤이여. 아쉽게도 너에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느니라. 딸을 버리고 네 목숨을 선택할 생각이면 마음대로 하거라. 뭐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말이다, 사실, 네가 혼자 죽어준다면 네 딸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이다. 기껏 자살로 몰았는데, 그 딸까지 의문의 죽임을 당하면 너무 이상하니까. 그런 이유로 네가 죽으면 네 딸은 살 수 있다. 너는 도망치고, 네 딸이 죽는 걸 선택한다면, 레드와 블랙간의 전쟁이 펼쳐질 뿐이겠지만.”
레드드래곤이 길게 떠들었다.
분노가 치솟는 대사였지만, 오히려 블랙드래곤은 안심했다.
그 말은 맞았다.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그로 인해 루린은 레드드래곤들의 손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상관없다.
블랙드래곤은 폈던 날개를 힘없이 접어버렸다.
세상에 어느 엄마가 딸의 목숨을 버리겠는가. 그것도 고작 누명을 벗겠다고?
수천 년이 지나서까지 치욕의 대명사로 불리더라도 딸의 목숨 앞에선 아무 상관없는 일.
“그거면 됐다. 루린이 살아만 준다면 그 어느 것도 필요 없으니까. 그래, 네놈들 말대로 죽어주겠다.”
“결정을 내렸는가?”
끄덕끄덕.
블랙드래곤은 적의를 보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섰다. 그저 근처 절벽에 커다란 드래곤의 본체를 기대고 주저앉았다.
딸을 위한 목숨.
아까울 건 전혀 없다.
혼자가 될 딸이 걱정됐지만,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 뜰 날은 온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죽는 건 무섭지 않지만, 루린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도 무서웠다.
혼자 낳아 혼자 기르고, 자신의 옆에서 꼼지락 꼼지락, 항상 웃던 딸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 중하단 말인가?
이런 것에 걸려든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한탄하면서 블랙드래곤은 마나를 응집시켰다.
망설이면, 루린이 다친다.
레드드래곤은 그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루린···.”
마지막으로 블랙드래곤이 딸의 이름을 커다랗게 부른 후.
블랙드래곤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쿠아아아아앙-!
강력한 폭발의 연기가 걷힌 뒤에는, 안에서부터 터진 블랙드래곤의 잿더미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