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29)
# 229
Chapter.42 숙원
***
블랙드래곤의 시체 앞으로 인간 모습을 한 금발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인간 모습이지만 인간은 아니다.
마나를 최대한 숨기고 움직이느라 인간의 모습을 한 것일 뿐.
남자는 안타까운 얼굴로 블랙 드래곤의 시체를 둘러봤다. 폭발로 인해서 흔적은 거의 없었고, 그냥 봐도 심장과 함께 자폭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얘야. 어찌하여 이런 선택을···.”
그렇기에 남자는 탄식을 흘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만 빨리 왔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을······. 아니, 그보다 자살이라니!’
아니다.
이건 아니었다.
분명히 이쪽 주변에서 다른 드래곤의 존재도 느껴졌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자살한 시체뿐이다.
너무나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이 아이는 이번 소동의 그 아이가 아닌가? 사린의 손녀라고 들었는데···.’
최고령 블랙드래곤인 사린의 손녀. 그렇기에 남자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어떤 의문이 마음속에서 계속 커지기 시작했다.
‘몇 해 전부터 레드드래곤의 낌새가 수상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레드드래곤과 관련이 있다.’
드래곤 로드.
드래곤의 왕이라 불리는 자리.
남자는 그 자리에서 드래곤 전체의 평화를 위해 한평생을 일했다.
그가 로드자리에 있는 동안은 단 한 번도 드래곤간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드래곤에 의해 인간이 세운 나라가 멸망하는 일도 매우 적었다. 드래곤의 폭주를 철저히 제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드래곤로드는 최근 레드드래곤의 낌새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이번 사건만이 아니다.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에서도 모두 레드드래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해한 쪽이든, 피해를 당한 쪽이든.
하지만 증거도 없이 한 일족을 억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로드는 홀로 조사에 나섰으며 그 결과 이번 사건에서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눈앞의 드래곤은 꼭 만나고 싶었다. 제대로 된 증언을 듣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죽어버려서 증거도 증언도 할 수 없다. 이 사건에 자신이 더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해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자신에게 남겨진 수명이 별로 없다는 것.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
드래곤 로드는 최고룡 블랙드래곤인 사린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그는 자신의 수명을 예측하였고, 그 끝이 곧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덮기엔 너무 찝찝한 점이 많았다. 이것이 향후 드래곤과 다른 종족들의 평화를 위협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그렇기에 로드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후임을 찾겠다는 결단을.
그러다보니 그 후임은 드래곤이어서는 곤란했다.
이 일은 드래곤에게 맡길 수 없다.
레드든, 블랙이든, 골드든, 드래곤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드래곤의 명리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으니까.
드래곤의 거만함이 이 조사를 망칠 것이다.
자신처럼 제삼자의 눈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드래곤은 흔치 않았다.
그러니 아예 제삼자를 찾는 것이 빨랐다.
드래곤 로드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사건을 조사시킬 후임을 찾는 것뿐이니까.
물론 드래곤을 조사하는 일이니 그만한 힘은 쥐어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하트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설사 인간이라도 드래곤급의 힘을 얻을 수 있기에.
물론 그 하트를 받아들이는 것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하트의 힘을 담을 수 있는 마나의 그릇이 없다면 드래곤 하트도 터지고,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존재도 터져버리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래곤 로드는 점점 난감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마음을 잊지 않으며 강인한 결단력을 가지고,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에 목숨까지 걸어줄 그런 존재를 찾는 일은 드래곤 로드의 기나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으니.
***
“장로님!”
성지를 산책하던 블랙드래곤의 장로 앞으로 젊은 블랙드래곤이 다급히 접근했다.
얼굴이 완전히 사색이었기에 메디다나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얼굴이 어찌 그 모양이냐? 네 녀석도 이제 조금 있으면 고룡의 반열에 들어서거늘, 체통을 좀 지키거라.”
“체통을 지킬 때가 아닙니다! 그, 그그그!”
“그그그그 뭐?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하거라, 이놈아!”
메디다나가 상대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블랙드래곤은 여전히 사색이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레드드래곤의 대군이 성지를 향해 몰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대규모입니다! 지난 전쟁보다 더 큰 규모라고 하는데 어찌 체통이나 지키고 있겠사옵니까···!”
“뭐가 어째?”
보고를 받은 메디다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보고였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레드드래곤인가?”
“틀림없습니다!”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게 아니고, 날아서 오고 있다고?”
“네. 그건 이상한 일이지만, 분명히 성지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메디다나는 황당했다.
드디어 놈들이 미쳤단 말인가?
메디다나가 그런 생각을 품었을 때 소식을 들은 다른 고룡들도 하나둘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몰려온 것은 실질적인 블랙드래곤의 2인자 디헤그마였다.
디헤그마는 날아오자마자 메디다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건 명백한 협정위반이네! 거기에 휴전 협정을 제안하고 체결한 것은 골드드래곤! 놈들은 지금 우리뿐 아니라 골드드래곤까지 상대하겠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메디다나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어는 해야 했다. 놈들에게 성지를 탈취당하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하니까.
메디다나는 곧바로 가용 가능한 블랙드래곤들을 모조리 성지로 소집시킨 후 골드드래곤의 성지로도 드래곤을 급파했다.
조용하던 블랙드래곤의 성지가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고룡 디헤그마는 오히려 흥분했다.
“차라리 잘되었네! 이 기회에 골드드래곤과 연합하여 놈들을 뭉개버리는 것이야!”
“일단은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도록 하지. 골드드래곤이 오면 같이 의논하세.”
하지만 메디다나는 어디까지나 신중했다.
일단 속내를 알아내겠다는 생각.
바보가 아닌 이상, 휴전 협정을 체결하자마자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2대1로 싸우자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며, 그것은 놈들도 매우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녀딸이 떠올랐다.
‘루린이 놈들의 성지로 갔을 터인데….’
물론,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루린에게 붙어 있는 건 그저 인간의 탈을 쓴 존재.
자신이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나 성지로 부르려고 했으나, 엄마의 추억이 담긴 레어에서 죽어도 나가지 않겠다던 루린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그 인간.
그러니 자신이 생각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레드드래곤의 속내일 뿐.
메디다나는 속속들이 성지로 소집되는 블랙드래곤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
레드드래곤의 침공은 현실이었다.
그에 맞서는 것은 블랙드래곤과, 일단 상황을 지켜보려 찾아온 골드드래곤의 소규모 부대였다.
숫자는 호각이었다.
아니 어째서인지 레드드래곤의 숫자가 조금 적어보였다. 분명히 지난 전쟁의 여파로 숫자가 부족한 것은 블랙드래곤인데 골드드래곤의 소규모 부대와 연합한 블랙드래곤 쪽이 조금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골드드래곤이 정식으로 참전하면 숫자는 일방적으로 기울게 된다.
양측의 대군이 집결한 자리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레드드래곤의 장로였다.
“오랜만이군. 블랙드래곤의 장로여.”
“휴전 협정을 맺은 지 얼마나 됐다고 오랜만을 논하는가?”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번에 일어날 일은, 자네들의 멸망이지만 말이네.”
“지금 멸망이라고 하였는가? 자네는 도대체!”
메디다나가 되물었으나 장로의 입에서 나온 것은 공격명령이었다.
곧 붉은색의 브레스가 블랙드래곤의 성지를 향해 휘몰아쳤다.
“선제공격을 한 건 분명히 레드드래곤이다! 골드드래곤들이여!”
이 기회를 놓칠세라 디헤그마가 골드드래곤쪽을 보면서 소리쳤다. 놈들의 도발은 도발로 끝나지 않고 전쟁이 되었으니 참전하라는 뜻이었다.
상황이 매우 명료했기 때문에 골드드래곤의 고룡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전쟁은 가속화됐다.
여기저기서 서로 죽고 죽이며, 마법과 브레스가 얽히고설켜 성지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콰앙-!
여기저기서 콰앙, 콰아앙!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아름답던 성지에 균열이 가고 무너져 내리는 상황.
명백한 협정의 위반으로 인하여 본대가 합류하기 시작한 골드드래곤. 결국 연합은 레드드래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디헤그마가 원한 것이었고, 그는 신나서 레드드래곤을 때려죽였다.
콰앙-!
그걸 막은 것은 레드드래곤의 리하임이었다.
디헤그마와 리하임이 격돌한다.
그 힘의 충돌이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그럴수록 성지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수적으로 불리한 레드드래곤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메디다나는 여전히 이게 의문이었다.
디헤그마의 생각은 레드드래곤의 장로 또한 분명히 알고 있을 터. 자살특공대가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혼자 하늘 위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레드드래곤의 장로 옆으로 젊은 레드드래곤들이 텔레포트를 통해 나타났다.
‘잠깐, 어쩐지 숫자가 좀 부족하다고 했더니 빠져있는 녀석들이 있었는가?’
메디다나는 마법을 뿌리는 레드드래곤들의 공격을 쳐내면서 시선을 레드드래곤의 장로에게서 떼지 않았다.
레드드래곤이 골드드래곤과 블랙드래곤의 연합에 의해서 밀리는 상황.
사실 이것이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원한 상황이었다.
지난 전쟁 후, 드래곤 로드의 유지를 이어받아 골드드래곤은 블랙드래곤과 레드드래곤의 협정을 제안하고 싸움을 중재시켰다. 그러니 그 협정을 깨는 순간, 당연히 골드드래곤은 약속을 어긴 쪽을 응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협정서다.
사실, 지난 드래곤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이것이었다.
골드드래곤이 제안한 협정.
협정을 한 후 깨버려, 골드드래곤이 참전한 전쟁을 만드는 것.
그리고 모두 몰살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목표.
그러기 위해서는 구슬이 모여야 했기에 미루고 미뤄졌으나 드디어 오늘이 밝았다.
세상은 이제 자신의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품속에서 드래곤 구슬을 모두 꺼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레드드래곤들.
장로의 뜻에 동조하며 레드드래곤의 세상을 위해 나선 드래곤들은 스스로 상처를 내 피를 모았다.
손가락을 베어내 피를 섞어 마시듯, 그들은 흘린 피를 모두 모아 블랙드래곤의 성지 주변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렸다.
피로 만든 마법진.
그 마법진은 강력한 봉인 결계를 발동하는 술식이었다.
피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결계에 피가 섞인 대상에게는 효과가 미치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이 정도로 거대한 봉인 결계를 발동하는데는 드래곤 구슬이 필요하다는 정도였으나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
오래된 문헌에서 터득한 이 거대한 봉인 마법진은 강력한 마나를 필요로 했고 그 매개체는 술자의 피와 구슬이었다.
술자의 피는 해결했고 구슬도 해결했다.
3개의 구슬은 지금 마법진의 중앙에 자리했다.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온전히 구슬을 자신의 힘으로 흡수하는 방법은 몰랐음에도 구슬을 원한 이유. 그것은 젊은 시절 발견한 이 거대 봉인 마법진을 위해서였다.
마법진에 반응한 드래곤 구슬이 강한 빛을 발동하기 시작했고.
구우우우웅-!
곧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그렇게나 꿈꾸던 거대한 봉인 결계가 성지를 덮어버렸다.
모든 에너지를 봉인한다.
마나뿐 아니라 드래곤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봉인결계다. 즉 브레스조차 쓸 수 없게 된다.
에너지가 부족하기에 육탄전도 힘들게 되는 것.
반대로 봉인진의 피에 의해 보호받는 레드드래곤들은 마법이며 브레스며 육탄전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렇게 되면 싸움은 어른과 아이의 싸움보다 싱거워진다.
크아아악-!
퍼어어어엉-!
콰아아앙-!
마법진의 발동으로 블랙드래곤과 골드드래곤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메디다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학살.
무자비한 학살.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블랙드래곤과 골드드래곤 대다수를 한 대 몰아넣기 위해서 오랜 세월 준비한 계획은 매우 순조로운 상황.
메디다나 조차도 위기에 빠졌다. 그의 주위를 레드드래곤들이 에워싼다.
레드드래곤들은 장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 번에 죽이지 말고 최대한 고통을 주라는 장로의 명에 따라서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던 순간.
“이거나 먹어라!”
퍼어어억-!
장로를 에워싸고 있던 레드드래곤 한 마리가 날아 차기에 당해서 하늘 위로 솟구쳤다.
날아 차기를 날린 장본인은 뜬금없이 나타난 인간이었다.
정확히는 인간 모습을 한 검은 머리의 드래곤.
즉, 루린이었다.
루린은 레드드래곤 한 마리를 가볍게 날려버린 후 손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역시 빨간 거한테는 날아 차기가 최고다. 히힛.”
구슬로 파워업한 루린은 인간 상태에서도 드래곤 한두 마리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으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