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30)
# 230
Chapter.42 숙원
***
“어째서 네가 여기에!”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손녀딸.
메디다나는 놀라서 손녀딸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루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홱 돌릴 뿐.
옆에 있던 동료가 고작 날아 차기에 당해 날아가 버리자 놀란 레드드래곤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루린을 공격하려고 움직였다.
콰아앙-!
크아아아악-!
주변에서는 디헤그마를 비롯한 고룡들이 레드드래곤에 당해서 비명을 질렀다.
죽는 건 일부다.
즉사는 거의 없다.
레드드래곤들은 장로의 명령에 따라서 즉사가 아닌, 딱 죽지 않을 만큼의 공격으로 고통을 주고 있었으니까.
방어마법은 애초에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레드드래곤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저 크고 큰 육중한 몸뚱아리로 그 공격을 받아내는 것뿐.
물론 루린에겐 그다지 감흥이 없는 일이었지만.
모두가 엄마를 치욕이라고 불렀다.
모두가 자신을 괴롭혔던 드래곤이다.
하지만 엘은 말했다. 사과를 받아낸다고. 사과를 받아내야 하니 살리겠다고.
엘이 그렇게 말했기에 어쨌든 루린은 날아 차기로 장로를 구했다.
루린이 나타나 날아 차기를 하지 않았다면 메디다나 또한 똑같이 당해서 구르고 있었으리라.
피부가 태워지고 날개가 찢기고 브레스에 몸이 뚫리면서도 그 끈질긴 생명력 덕분에 죽지 않고 고통을 느껴야 했을 그런 상황.
레드드래곤들이 다시 루린을 공격하려는 그 순간.
엘이 등장했다.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공격명령을 중지했다.
자꾸 눈앞에 거슬리는 엘에게 더 큰 벌을 줄 생각으로.
그동안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소심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대군으로 엘을 공격했을 때 한 놈만 죽이겠다며 자신을 공격하는 것. 그것을 걱정한 소인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마나가 봉인되었으니까.
마나가 봉인된 엘은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
그러니 이제는 마음 놓고 죽을 수 있다. 그것도 자신 마음대로.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최대한의 고통을 주고 죽이겠다고 다짐한 채 엘을 향해 선언했다.
“블랙드래곤은 검정색이니 멸망한다. 골드드래곤은 항상 시답잖은 평화를 논하니 마찬가지로 멸망한다. 그리고 네놈은 주제를 모르므로 멸망한다.”
이른바 멸망선언.
하지만 엘은 매우 태연했다.
“아 그러셨습니까?”
그것 참 대단하다는 식으로 비꼴 뿐.
“그대!”
동시에 루린이 엘의 옆으로 다다다닥 뛰어와 팔을 잡는다.
루린이 자신의 포지션을 되찾았다.
엘의 옆이 자신의 자리다.
엘의 말투에 열 받은 레드드래곤은 씩씩거리면서 재차 선언했다.
“특별히 네놈은 가장 마지막에 죽여주마. 여기 있는 드래곤을 모두 죽인 후, 네 짓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공표하고, 그리고 특별히 네 옆의 그 꼬맹이는 너를 죽이기 직전에 보내줄 것이다. 애지중지하는 꼬맹이의 죽음에 분노하면서 무력한 너 자신에 분노하며 죽을 수 있도록.”
“그 꼬맹이는 루린을 말하는 겁니까?”
“그러하다.”
레드드래곤의 말에 엘이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거참 듣던 중 가장 기분 나쁜 말이었으니까.
“살리고 싶으냐? 나도 자비는 있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거라! 그럼 그 꼬맹이 보다 먼저 죽여줄 수도 있으니.”
“그대, 저놈 짜증난다!”
루린이 혼자 지껄이는 레드드래곤의 장로를 보며 속삭였다. 엘은 그저 웃으면서 루린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대답한다.
“괜찮아. 신경 쓰면 우리가 지는 거야.”
“인간이여, 어서 루린을 데리고 떠나거라. 이 싸움은 우리 블랙드래곤과 저놈들의 일이니까. “
가까이에서 엘과 루린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메디다나는 긴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엘은 루린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메디다나를 향해 대답했다.
“장로님. 그거 아십니까?”
엘의 동문서답에 메디다나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무엇을 말이더냐?”
“저놈들이 봉인진을 만들 때 사용한 드래곤 구슬 말입니다. 자세히 보셨습니까?”
“드래곤의 구슬 말인가?”
“네.”
“보았다. 그리고 진실을 알았느니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지? 사는 것이 먼저다! 루린을 데리고 떠나거라!”
“소용 있습니다. 루린이 치욕스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들으세요. 저놈들이 봉인진에 사용한 것이 바로 블랙드래곤의 구슬. 장로님의 따님이 가지고 있던 블랙드래곤의 구슬입니다. 그걸 바꿔치기하고 누명을 씌운 것이 바로 저 레드드래곤 장로고요!”
엘이 레드드래곤의 장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매우 컸기 때문에 주위에 있던 블랙드래곤들은 놀란 얼굴로 엘과 레드드래곤의 장로를 번갈아 쳐다봤다.
“어떻습니까? 레드드래곤의 장로님.”
“그게 어쨌다는 거지? 블랙드래곤의 운명은 어차피 그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거늘. 그따위 누명도 밝혀주지 못하고 속아서 동족을 치욕으로 만든 놈들은 원래부터 죽어 마땅하다.”
“네놈! 네놈이 정말 내 딸을…!”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흉수가 당당하게 죄를 인정하자 메디다나는 그만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어버렸다.
앞뒤 보지도 않고 레드드래곤의 장로를 향해서 날아올랐다.
마법도 마나도 브레스도 쓸 수 없는데, 그저 날아올라 레드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장로님!”
“장로!”
아래에서 블랙드래곤과 엘, 루린 등이 동시에 메디다나를 외쳤고,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하찮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리곤 달려드는 메디다나를 향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한 창처럼 생긴 마법이 분노하여 달려드는 메디다나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다.
퍼어어억-!
“네노오오옴!”
절규와 함께 메디다나의 몸은 힘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쿠우우웅-!
“장로!”
“장로님!”
엄마를 위한 분노.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으나 그걸 본 루린이 메디다를 향해 달려갔다. 다른 드래곤들도 놀라서 다시 한 번 메디다나를 부르짖었다.
엘도 다가갔다. 곧바로 상처를 살폈다. 기가 막히게도 드래곤하트를 빗겨 맞았다.
이건 일부러다.
그 일부러 덕에 메디다나는 일단 무사했다. 치명상은 아니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었다. 거기에 안심한 엘은 레드드래곤의 장로를 쳐다봤다.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재밌다는 얼굴로 이죽거릴 뿐.
“인간이여. 마지막 기회다. 무릎을 꿇어라. 아니면 공격이 시작되고, 이번에는 네 옆의 꼬맹이가 자기 할아비와 똑같은 꼴을 당할 터이니.”
그 협박에 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놈은 일부러 메디다나를 한 방에 죽이지 않았다. 드래곤의 끈질긴 생명력이라면 버티고도 남을 상처.
엘이 생각하기에 이건 그거였다.
오만함.
신이 되었다는 오만함.
신이 된 기분을 누리기 위해서.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는 그 오만함이 만들어 낸 행동.
지금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봉인 마법진위에 군림하는 신이자 조물주다.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가소롭다.
너무나 가소롭다. 엘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를 쏟아내는 장로의 상처에 손을 가져간 루린을 향해 말했다.
“괜찮아. 죽을 상처는 아니야. 심장은 피했어.”
“정말이냐?”
루린이 순간적으로 안심한 얼굴로 엘의 팔을 잡았다.
“그, 그럼 됐다!”
그리곤 장로의 상처를 잡고 있는 손을 홱 떼어냈다. 아직도 앙금은 풀리지 않았다. 오랜 세월 쌓인 루린과 장로사이의 벽이 쉽게 허물어질 리는 만무했으나 엘은 그런 꼴을 계속 보기는 싫었다. 이건 오해였으니까.
“되기는 뭐가 돼? 할아버지잖아?”
“엄마를 버린 그날 할아버지는 아니다. 그냥 장로다!”
“그 아이 말이 맞다.”
그러자 메디다나가 루린의 말을 거들었다. 피를 토하면서.
“그렇다! 장로는 엄마를 믿어준 적 없다. 이제 와서 저놈들에게 화내봐야 소용없는 거다. 그런 거다…!”
루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정한다.
DNA는 속일 수 없다. 어찌 이렇게 꼭 닮았을까. 엘은 그 생각에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루린의 손을 꼭 잡은 뒤 고개를 가로 저었다.
둘 다 잘못됐다.
루린이 알고 있는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그와 이야기하면 할수록, 확실히 느끼는 게 있었고, 그 느낌은 레드드래곤들에게 구슬에 대한 정보를 뿌려달라고 부탁했던 그 날 확신이 되었다.
“루린, 그건 아니야.”
“뭐가 아니냐?”
“장로님이 너와 너의 어머니 편을 들지 못했던 것은, 장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였어.”
“바로 그게 문제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대.”
“아냐, 장로의 자리를 지키려 한 이유가 달라! 딸의 편을 드는 순간 장로라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어. 모든 블랙드래곤이 그 일에 분노했으니. 그 분노 때문에 장로님은 장로의 자리를 지키려 한 거야. 장로의 자리에 아무런 미련도 없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지. 그 이유는 루린, 바로 너 때문이야.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어. 레드드래곤에게 일족 전체가 무릎 꿇은 것과 다름없는 사건, 그 사건에 대한 분노가 온전히 너에게 가는 것을 장로라는 자리가 주는 권력으로 막기 위해서였어. 장로님이 장로의 자리에 있었기에, 너에게 향하는 분노가 그저 괴롭힘으로 끝났대. 그게 아니라면 루린은 나하고 만나기도 전에 이미 살해당했을 거야. 저 사리분별 못하는 한심한 블랙드래곤들 때문에 말이지.”
엘이 대사를 내뱉으며 블랙드래곤을 쓱 둘러봤다. 블랙드래곤들이 움찔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 그건! 아니다. 죽어도 좋았다. 그저 엄마를 믿어줬으면 됐는데! 엄마도 그걸 바랐을 텐데….”
“그렇다. 모두 내 잘못이다. 그 아이의 말이 맞다. 그러니 인간이여,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루린를 안전 한 곳으로…!”
쿨-럭.
장로가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다시 피를 뿜어냈다.
커다란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주위를 웅덩이로 만들 만큼 많은 양이다.
“장로!”
루린은 그 피의 양에 놀라서 몸을 흠칫 떨며 메디다나를 불렀다. 부정하면서도 그래도, 할아버지라는 사실, 그리고 엘의 말이 루린의 마음에 확실히 영향은 미치고 있는 모양새.
“신파극은 끝인가? 인간놈도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았고, 자비는 끝이다. 다시 학살의 시작이니라.”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한심하다는 땅을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지금 땅에 내려와 있는 것은 블랙드래곤과 골드드래곤.
하늘에 있는 것은 레드드래곤이다.
힘의 차이가 명확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위치.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아까 사용한 마나의 창을 불러냈다. 하늘 위로 장로가 만들어 낸 마법이 수십 개 떠오른다.
그리고 레드드래곤들도 신호에 따라서 모두 브레스를 사용하려고 입을 벌렸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엘은 태연했다.
“블랙드래곤이여. 아직도 루린이 일족의 치욕입니까? 당신들은 평생토록 루린과 루린의 어머니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겁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말입니다. 그 증명은, 지금부터 해드리겠습니다.”
루린과 장로의 화해.
블랙드래곤들이 다시는 루린을 치욕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
누명의 해소.
그리고 드래곤로드와의 약속이행.
드래곤 구슬의 비밀.
그 모든 것이 이번 일로 해결되는 순간.
이제 끝맺음이 남았을 뿐.
엘은 블랙드래곤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 마나를 운용했다.
엘은 처음부터 봉인진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까.
비록 메디다나가 분노하여 레드드래곤의 장로에게 달려들다가 당한 것은 예상외였으나.
죽지 않았으니 상관없다. 어쭙잖은 신이 된 기분에 취해준 덕분에 말이다.
한편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엘의 대사를 듣고 기분 나쁜 얼굴로 소리쳤다.
소인배는 끝까지 소인배였다.
“뭘 증명해? 건방진놈. 네놈이 드디어 실성하였구나!”
“실성한 건 그쪽이지. 아, 그리고 귀가 썩으니까 그만 좀 닥쳐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