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32)
# 232
Chapter.42 숙원
***
루린은 미처 몰랐다.
이 세상이 밝다는 것을.
루린의 세계에 있던 것은 그저 어둠이었으니까.
그것도 그냥 어둠이 아니다.
루린의 마음속에 있는 건 항상 분노가 끓어오르는 어둠이었다.
밝은 세상.
그것은 루린의 세상에 없던 단어.
그러니 ‘행복’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루린과 가장 동떨어진 단어였다.
루린의 어머니도.
장로도.
그녀를 괴롭히던 블랙드래곤들은 더더욱.
그리고 루린 스스로도.
루린의 삶에 사랑과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쌓여서 큰 지층을 형성하듯, 루린의 마음에 일어난 균열은 조금씩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 균열이 루린의 마음속에 있던 커다란 장벽을 허물어트리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원래 루린의 마음에는 ‘사랑’이 아닌 커다란 분노가 들어있었다. 엘을 만나기 전 루린을 구성하는 건 분노와 어둠밖에 없었으니까.
루린은 엄마를 잃은 후에 고독하게 살아왔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
하지만 정작 그 분노의 종착역인 복수를 위해서 스스로 한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욕하며, 혼자서 속을 썩이고, 혼자서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길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루린.
그런 루린에게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엘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엄마’에 대한 생각은 항상 ‘마음’ 속에서 부글거리는데도.
엘과 있는 동안 저도 모르게 부글거림이 잦아들었다. 팔팔 끓던 감정은 그와 다니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미지근해지기 시작했다.
복수에 대한 열망은 여전했으나,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던 끓어오르는 어둠이 사라져 버리고,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루린은 웃을 수 있었다.
엘과 장난치며 웃고.
엘과 음식을 먹으며 웃고.
엘을 힐끗 쳐다보고 웃는다.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존재가 생겨났다. 루린은 옛 레어를 떠나와 처음으로 웃어보였고.
끓어오르는 어둠에 잡아먹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루린에게 그 미소는 제대로 복수와 마주 볼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복수와 마주 보고. 복수와 싸워서 그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 기회를.
그렇기에 루린은 지금 이 순간 원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단 한 순간도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을 것이다.
마치 메디다나가 원수를 확인한 순간 몸을 날렸던 것처럼.
루린은 자신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엘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도.
하지만 루린은 참았다.
제대로 된 복수를 위해서 엘이 참으라고 했으니까.
콰아아앙-!
드래곤들이 여전히 서로 싸운다.
하지만 루린은 기회란 것이 올 때까지 모든 드래곤을 무심하게 쳐다봤다.
메디다나가 뛰어들 때 놀랍게도 한 가지를 깨달았다.
메디다나 또한 예전의 자신과 똑같은 어둠을 가지고 있었다고.
메디다나는 고룡이기에 끓어오르는 ‘어둠’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충분한 ‘어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어둠 덕분에 가슴이 뚫려버렸다.
예전의 자신이다.
루린은 처음으로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애잔한 동질감을 느꼈다.
-장로는 엘이 없었으니까.
멀쩡해 보였지만 멀쩡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후 엘이 장로에 대해서 설명할 때 깨달았다. 장로는 강해 보였으나 오히려 자신보다 나약한 상태였다고.
그것이 장로, 아니 자신의 할아버지다.
‘장로도 아팠던 거냐? 나와 같은 어둠 속에서?’
그렇기에 루린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가 흘러내린다.
피가 웅덩이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다르다. 엘이 있어서 참을 수 있다. 지금도. 저 원수놈들을 눈앞에 두고도!’
루린은 눈을 깜빡이면서 장로의 상처를 손으로 지혈했다. 드래곤의 몸에 난 상처를 인간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져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손을 가져갔다.
장로에 대한 원망과 소원함이 한 번에 눈 녹듯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루린은 지금 이 순간 분명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엘이 장로에 대한 설명을 끝마쳤을 때. 루린은 엘의 앞으로 딱 붙어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럼… 용서해본다.”
물론, 그 말에 엘은 상큼하게 웃어주었다.
하지만 장로와 원수는 다르다. 참게 되었을 뿐.
복수는 해야 한다.
기회는 곧 찾아왔다.
엘이 그 기회를 이끌어 주었다. 그냥 기회가 아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블랙드래곤들 앞에서, 그들이 모두 주둥아리를 닥치고 자신에게 단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으으.
루린은 눈을 감았다. 원수가 눈앞에 떨어졌는데도 어째서인지 나오는 것은 분노에 휩싸인 ‘화’ 아니라, 눈물이었으니까.
순전히 엘 때문에 흘러나오는 눈물이다.
만났던 그 순간부터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 준 남자의 뒷모습에 새삼스럽게 멋있어서.
루린은 그런 생각과 함께 고룡 리하임을 걷어차고 마법을 퍼부었다.
그럴수록 하늘에 있던 레드드래곤의 장로는 포효했다.
“안 된다! 안 된다! 절대로 이럴 순 없다! 이건 잘못됐다아아아!”
의미 없는 발광이 계속 됐다.
“잘못됐다. 한참 잘못됐다. 돌아가서, 돌아가서 정비한다!”
이런 소리까지 외칠 만큼. 하늘에서 몸을 배배 꼬며 지랄발광을 하고 있었다.
붕괴 아닌 붕괴다.
루린은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받을 수만은 없으니까.
스스로도 챙겨 먹는다.
그렇기에 레드드래곤의 장로에게 눈을 떼지 않다가 도망가려는 찰나 브레스를 사용했다.
날개가 찢어지는 고통으로 레드드래곤 장로가 모으던 마나가 사라져버리도록.
추락하는 원흉을 보면서.
루린은 왜 이런 놈들 때문에 그 긴 세월동안 어둠에 갇혀있어야 했던 건지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엘을 힐끗 보았다.
엘은 레드드래곤의 장로에게 화내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순전히 자신 때문에.
그러니까 루린은 꼭 앙다물었던 입술을 벌렸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아니 이런 상황이어서 세차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의 자신 앞에는 행복을 주는 존재가 있다.
그러니 이 마지막 비극의 마침표를 찍어버리고. 이제는 웃기만 할 것이라고.
루린은 그렇게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다짐하면서 날아 차기를 날렸다.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비명과 함께 먼지가 된 순간.
루린의 마음속은 거짓말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루린은 왜인지 엄마가 하늘에서 웃어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블랙드래곤들은.
치욕이라고 부르며 괴롭힐 때와 다르게 이제는 자신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바보들이다. 이젠 아무 상관없어졌지만.”
루린은 이렇게 생각하며 엘을 보았다.
***
붉은 하늘.
노을이 지는 석양.
붉은 피로 물들 뻔했던 블랙드래곤의 성지는 평화로웠고, 저녁노을은 어째선지 평소보다 더 아름다웠다.
잠시 운석의 더미에 가려져, 자신의 빛을 마음껏 뽐내지 못한 태양이 마지막에 분발하듯이.
그 앞에서 루린은 엘에게 재촉했다. 아까는 너무 많은 드래곤이 있어서 참고 또 참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둘만 남았다.
그래서 볼을 부풀린 채 소리쳤다.
아까부터 계속 얼버무리는 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분명히 겨겨겨, 결혼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그대! 시끄러운 것들은 이제 다 갔다! 그러니까 아까 그거 말이다! 그거!”
“그거?”
“모른 척하지 마라!”
“그럴까?”
“어?”
루린의 외침에 엘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러자 루린은 오히려 당황했다.
하지만 엘은 저돌적이었다.
루린의 손을 들어 올린다. 그리곤 루린이 당황한 사이 핑크빛 반지를 단숨에 빼버렸다.
방심하다 당한 루린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뭐,무머머머머냐! 그대?”
줬던 반지를 빼앗다니?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루린은 고장 난 로봇처럼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내, 내놔라! 나와 그대의 사랑의 증표라고 해 놓고서 왜 뺐냐!”
“루린.”
“뭐냐!”
그럴수록 엘은 반지는 주지 않고 정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 정색한 표정에 루린은 저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떨어야 했다.
“이제 그렇게도 원하던 원수를 갚았잖아? 루린 마음속에 가장 짐이던 게 사라졌지?”
“그건 그렇다. 뭔가 마음이 깨끗해진 기분이 든다!”
“그렇지?”
끄덕끄덕.
반지를 빼앗은 건 용서할 수 없지만. 그건 맞는 말이니까 일단 루린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루린도 새롭게 시작해야지. 새 마음으로.”
엘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루린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뭘 새롭게 시작하냐?”
“이 반지는 잊어버리고, 원수도 잊고, 원한도 잊고,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자는 말이야.”
“……뭐어?”
루린은 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반지는 압수야.”
엘의 터무니없는 발언에 루린은 폭발했다.
“그대? 그게 무슨 소리냐…?”
으으으으!
반지를 왜 압수하는가.
사랑의 증표를!
루린은 참지 못하고 엘을 향해 날아 차기를 날렸다.
퍼어어억-!
루린의 전매특허가 터지자 엘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얌마!”
엘이 소리쳤으나 루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넘어진 엘 위에 올라타서 멱살을 잡았다.
“반지가 압수면 우리 약혼은? 그대, 나 정말로 화났다! 용서 안 한다!”
루린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워서 빨개지는 얼굴이 아니다.
혈압이 높아져서 터질 것 같은 빨강이었다.
용서 안 한다는 말에 아래 깔려있던 엘이 웃기 시작했다.
“이 반지만 그렇다는 거야. 이 반지만. 다른 게 있지.”
“엥?”
뭔가 아까 반지를 뺐으며 정색할 때랑 분위기가 다르다. 루린은 그 분위기를 읽고 멍한 얼굴을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분명히 밑지고 있다.
“으으으!”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 볼을 부풀렸다.
“볼 부풀리지 마. 터진다? 그리고 좀만 내려가 봐, 아래로! 상체 좀 일으키게.”
그 말에 루린은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엘의 허벅지 쪽으로 후퇴시켰다.
그러자 엘이 상체를 일으켰고 루린의 손을 잡았다.
“루린, 이쪽 손 펴봐.”
루린은 여전히 볼을 부풀린 채, 하지만 마치 엘의 말에 이끌리는 자석처럼 손을 폈다.
“아까 그 반지는 너도 알고 있다시피 약혼반지야.”
“사랑의 증표다!”
“그래, 그런데, 사실 진정한 증표는 이거야.”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냐!”
루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부터 엘이 너무나 이상했다. 그런 루린의 앞에 엘이 품속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
핑크빛이 아니다.
반지 자체는 투박했다. 급조하느라 세공을 할 시간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검은색의 알맹이가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루린. 이건 블랙드래곤의 구슬이야. 놈들에게 이용당하고, 여러 가지 빌미를 제공했지만, 그건 드래곤들의 욕망이 잘못된 거지 이 구슬자체는 잘못이 없으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루린의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장로님에게 들은 건데, 루린의 어머니는 드래곤의 구슬을 성지에서 보관할 수 있도록 바칠 테니까 나눠서 반은 루린 너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대.”
구슬은 찾은 존재가 임자다. 성지에 바친다는 건 어디까지나 자진해서 하는 행동.
“급하게 만들어서 예쁘진 않은데, 레드드래곤의 장로가 부숴먹은 걸 동그랗게 만들었어. 그러니까 이건 곧 너의 어머니야.”
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루린의 손가락에 그 검은색 구슬이 빛나는 반지를 쏙 끼워주었다.
“너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듬뿍 담겨있는 구슬이니까, 네 어머니와 같아. 그러니까 그 앞에서 말할게.”
엘은 거기까지 말한 후 하체에 앉아 있던 루린을 들어서 세워놓고 일어나 먼지를 턴 후 다시 무릎을 꿇었다.
“평생 모실 테니까, 그런 바보 같은 표정 그만하고 나랑 결혼해 줘. 루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