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53)
# 253
2부 Chapter.3 신혼과 일상
***
이진하의 문제는 약혼녀였다. 그녀의 약혼녀와 이진하는 같은 보육원 출신이다. 그렇기에 이진하는 어린 시절부터 힘들게 살아왔다.
같은 보육원, 그러니까 약혼녀와는 어릴 때부터 상당히 긴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코흘리개 시절 그녀가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것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진하와는 보육원 안에서 가장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보육원을 먼저 나간 것은 그녀였다.
근처의 좋은 집안으로 그녀가 입양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녀보다 5살이나 많던 이진하는 몇 년 후 자발적으로 보육원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이 시기에는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기에 이진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일했다.
그런 이진하와 그녀의 재회는 우연히 이뤄졌다. 그녀가 아직 중학생이던 무렵. 청년은 막 성인이 되어 정글 같은 사회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인도였을까, 길을 걷다가 그녀와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거짓말처럼. 영화의 한 장면같이.
당연히 반가웠다. 그래도 수년을 같이 지냈던 사이다. 하지만 그녀는 스치듯 이진하에게서 멀어졌다. 마치 아는 척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미 고아가 아니며, 나 같은 것과 다르게 좋은 곳에서 잘살고 있으니까. 아니, 듣기로는 그녀의 양아버지가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이미 재벌 수준의 회사를 꾸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그렇게나 친했던 여동생 같은 존재는 이미 없다. 어린 시절의 추억. 여동생이라고 여겼던 한 존재가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순간, 상실감이 느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말수가 별로 없어 항상 외로워 보이던, 그래서 이상하게 더 챙겨주게 되던 여동생.
이상하게도 말수가 적었던 꼬마가, 청년에게만은 여러 가지를 말하고는 했다. 그 유대감이 마치 진짜로 가족을 가진 느낌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허상이다. 추억은 추억이라 아름다울 뿐. 현실은 이런 것.
그래, 자신에게 가족이란 어울리지 않으니까.
청년은 그렇게 자학하며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옷을 벗어던진 순간 점퍼주머니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핸드폰을 발견했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놀라서 얼떨결에 전화를 받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핸드폰을 돌려달라며 만나자는 전화.
나중에 들었지만, 그때 그녀는 양부모가 지켜보고 있어서 아는 척을 하지 못했고 급한 마음에 핸드폰을 청년의 외투주머니에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그 핸드폰이 이어준 인연.
그렇게 청년과 그녀는 다시 재회했다. 그리고 연락을 이어갔다. 다시 생긴 여동생. 같은 보육원 출신에 청년을 잘 따랐기에 가족 같다는 느낌이 다시금 살아나던 순간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항상 사소한 것까지 이진하에게 상담했다.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는 말수가 적어 보였는데 청년 앞에서는 어릴 때 모습 그대로였다.
“오빠, 어릴 때 오빠가 지켜줬던 거 기억나?”
“그거야 당연히 기억하지. 같은 보육원 그 민철이 그놈이 특히나 더 그랬지.”
“그러니까, 그래서…. 요즘 태권도랑 유도를 배우고 있어. 괴롭힘 당하면 내가 이제 오빠를 도와줄게.”
“뭐? 쪼그만 것이 그런 걸 배워 봤자 아니냐?”
“아닌데. 두고 봐.”
이런 그녀였다. 이진하와 그녀의 만남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지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던 청년. 그녀는 이 세상에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물론 사랑을 하고 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코흘리개 시절, 중학생 때 재회, 그리고 고등학생.
그런 과정을 지켜본 이진하에게 있어서 그녀는 역시나 여동생이었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입양시킬 때부터 정략결혼을 염두에 뒀고, 나이가 차자 그녀를 결혼시키기로 한 것이다.
몰래 해오던 만남이 깨지는 순간.
그 정략결혼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청년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여동생이라고?
그 생각이 얼마나 어이없었는지를 깨닫는 순간.
이진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야 했다. 어릴 때 그녀를 도와줬던 건 확실히 자신이다.
하지만 그 이후 청년의 삶을 지탱했던 건 항상 자신을 응원했던 그녀의 존재였다.
“오빠, 나 어떡해?”
“결혼 상대는 어떤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제 말해줘. 오빠의 마음을.”
“좋아해.”
그 물음에 이진하는. 그저 멋도 뭣도 없는 고백을 해버렸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백을 듣자마자 울어버렸다. 멋없는 고백이라도 너무나도 기다린 고백이었기 때문이다.
“바보, 난 어릴 때 그 개구쟁이들에게 구해줬을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었는데….”
그 말이 뛰는 듯이 기뻤던 이진하는 그녀는 둘이서 남들 몰래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진하는 일 또한 매우 성실하게 했고 그것을 좋게 봐준 사장이 있었기에, 약혼을 한 그때는 이미 일하던 중견기업에서 결혼하는데 아무 문제없을 만큼의 월급과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온 청년.
그리고 그렇기에 한 약혼이었으니.
***
“어? 그럼 약혼한 거 아니세요? 축하할 일인데 왜 그리 죽을상을 하고 계셨어요?”
여기까지 들은 내가 의문을 그대로 입 밖에 내뱉었다. 그러자 이진하는 다시 한 번 말을 망설였다.
이런 거에 세상 관심 없는 루린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제대로 듣고 있었는지 벌떡 일어나 입을 열었다.
“너, 약혼반지 안 준거냐? 그건 줘야 한다!”
반지 받고 좋아하던 루린을 생각하면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그건 아니겠지.
“아뇨. 반지야 당연히 줬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요?”
늘어지는 말꼬리. 그리고 더 어두워지는 인상. 계속 들어가는 소주.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다. 방금까지 이야기에서 이진하의 인생이 암울할 곳을 예상하자면, 바로 약혼녀의 양아버지였다. 정략결혼인가 뭐시기를 입에 담고 있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사랑하는 사이였고, 저도 그녀를 고생 안 하게 할 수 있다 말하고 허락을 받기 위해 그녀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만나보지도 못했죠. 그녀는 집에 감금당해 나오지도 못했고, 제게는 오히려 아랫사람들을 보내서 폭력을 행사하더라고요. 다시는 접근하지 말라면서. 안이했습니다……. 진심으로 설득하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 제가 바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선혜는… 차라리 도망가자고 했었는데….”
역시나.
역겨웠다.
매우 역겨웠다.
뭐,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 둘이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집을 나와 연을 끊고 따로 살기도 한다.
그러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그것을 계기로 오래도록 연을 끊었던 집안과도 조금씩 가까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사실 레퍼토리라고 할 정도로 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청년의 경우, 양아버지라는 사람이 입양 자체를 정략결혼을 위해서 했다는 느낌이 아주 강했고, 그 목적을 위해서 딸을 감금하기까지 했으니, 역겹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진하로서는 오히려 아무리 양부모라도, 길러준 사람이기에 정식으로 인정받아 결혼할 수 있게끔 해주고 싶었겠지.
그것이 이런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 채.
“그녀의 양아버지가 그녀를 꼭꼭 숨기고, 강제로 식을 올리고 나서야 풀어줄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러다 보니 도저히 만날 방법이 없습니다.”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이건 이미 또 하나의 폭력이었다. 강제로 식을 올리다니.
들으면 들을수록 노답이다. 그렇다면 노답은 노답으로 상대해야지.
“그녀를 만나면 된다는 거죠?”
“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네요.”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상대가 만취한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
그리하여 이진하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뒷정리. 그리고 다시 루린과 둘이 되었다.
우리는 잘 준비를 하기 위해 또다시 나란히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와서 다시 침대에 올랐다.
루린은 내 이 닦는 모습을 찍고는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똑같이 루린의 이 닦는 모습, 그러니까 귀찮아서 늘어진 모습을 찍어줬더니 그걸 보고는 광분했다.
“그나저나 루린.”
“뭐냐?”
“아까 그건 뭐야?”
아까는 잠시 머릿속에서 지웠으나 분명히 루린이 아주 수상해 보였으므로 완전히 잊는 건 무리였다.
루린이 직접 유적이 있던 거대 방에서 가져온 그 버섯.
쿤들이 수컷의 스태미나에 좋다고 말했던 그 버섯을 끓여 먹으려 했을 때 루린이 보인 반응은 분명히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거… 는 그거다.”
“그거?”
루린이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뭐하는 건데?”
“그, 그걸 먹으면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마를 찍으면! 솔직해진다고 했다.”
“솔직해진다고?”
끄덕끄덕.
루린이 뭔가 기대감이 가득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는 질문에 그대는 모두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대답한 걸 기억 못한다고 했다!”
“어쭈, 뭐 그런 어이없는 효과가 다 있어? 아니 그전에 내가 너한테 솔직하지 않은 건 없는….”
“그대!”
“응?”
“그대는 내 어디가 가장 좋냐?”
“뭐?”
어디가?
그것 참 맹점인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게 기억이 안 날거라고?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왜냐면, 세쿤 버섯으로 확인했듯, 나와 루린에겐 먹었을 때의 버섯 효과가 없으니까.
하지만 뭐 그렇게 알고 싶으면 말해줘야지. 루린의 모든 것 중에 딱히 싫은 부분은 없다. 만사 귀찮아하는 점까지도 좋아하니까.
“나는 말이다… 그대가 나를 싫어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런 건 싫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알고 싶은 거다. 그러면, 그러면 그 부분 많이 보여준다. 모, 몰래!”
그렇게 루린이 어느새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뭐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하면.”
“하면?”
나는 침대 위에 앉아서 내 다리를 툭툭 쳤다. 그러자 루린이 알아듣고 내 위로 올라와 앉는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본 상태가 되었다. 거의 밀착한 상태에서.
“이 눈, 코, 입. 부드러운 입술, 그리고 어깨, 귀, 그리고 가슴, 허리 배….”
“흐, 흐앗….”
쓰다듬듯이 눈부터 배까지 손을 이동하자 루린이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아, 그러고 보니, 볼을 부풀릴 때가 가장 좋은 거 같기도 하고.”
“흐에? 보, 볼? 이, 이렇게 말이냐?”
그러자 루린이 갑자기 볼을 부풀렸다. 살짝 삐졌을 때 나오는 볼 부풀리기다. 물론 이것도 가장 좋아하는 귀여운 점 중에 하나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좋은데 어떻게 우열을 매긴단 말인가.
“바보. 너의 가장 좋은 점은, 언제나 한결같이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점인데?”
그래, 내가 힘이 들 때 ‘누가 그대를 괴롭혔냐!’ ‘그대가 최고다!’ 같이 소리치며 한결같이 내 편이 되어주는 루린의 마음이 나를 끌어당겼지.
“……? 내가? 그대에게? 아닌데.”
“응? 아니긴?”
“반대다!”
“그리고 다른 거라면 니 머리가 좋다고 할까? 이 머리카락이?”
“머, 머리카락? 머리카락이 좋으냐? 그, 그럼… 머리카락으로 뭘 어떻게 해야…….”
“뭘 어떻게 해?”
루린이 눈동자가 빙글빙글 도는 상태로 자기 머리의 끝을 잡으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루린.”
“뭐, 뭐냐! 왜 하필 머리카락이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아까 고기 먹을 때 너도 이 버섯 먹었는데?”
“에에에에엥?”
루린이 깜짝 놀라 내 위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놓치지 않고 루린의 이마를 콕 찍었다.
“으윽? 내, 내가 언제 먹었냐? 이럴수가…….”
“바보. 그 전에… 너가 먹었어도 그게 통할 리가 없잖아?”
루린의 얼굴에 물음표가 생겼다.
“으으… 어어?”
그리고 곧 엄청난 걸 깨달은 얼굴을 하더니 이불속으로 돌진해 버렸다.
“야!”
아무리 불러도 나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