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56)
# 256
2부 Chapter.4 외전 – 그레이크시의 여름
그레이크시의 여름은 한국과 많이 닮았다. 습도가 높은 점도 그렇고 덥다는 점도 그렇다.
절대적인 온도로 보면 물론 한국의 여름보다는 시원한 편이지만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는 세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쪽이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계절.
식당은 더워서 오히려 호평이다.
뭐니뭐니해도 우리 가게의 맥주는 시원하니까. 소주도 시원하고.
“다른 가게랑 달리 여긴 왜 이렇게 맥주가 시원하답니까?”
“맞아. 맞아.”
“그거야, 제가 아는 마법사가 있어서요.”
더운데 시원한 비법.
그거야 마법이다. 마법이라고 얼버무리면 더는 캐묻는 사람이 사라진다. 하지만 최근 며칠은 너무 날씨가 덥다 보니 언덕 위로 올라오는 사람이 뜸해졌다.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시원한 음료가 있어도 올 힘이 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법.
“스승님. 뭐 힘이 나는 음식 없을까요?”
날씨가 이렇자 그레이크 소년까지 진이 빠진 얼굴로 찾아와 투덜거렸다.
“시민들도 다들 힘이 없는 것 같고, 날씨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어디 무슨 화산이라도 터진 것 마냥.”
“그러게요. 근처에 화산이 터졌다는 소리는 못 들었지만, 확실히 날씨는 미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는 소년의 손에 든 물컵의 얼음은 계속해서 톡톡 부딪혔다.
그레이크 소년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돌아간 후. 이번에는 크놀씨는 완전히 죽어가는 얼굴로 방문했다.
“야, 이놈의 날씨 때문에 죽겠다. 죽겠어!”
얼굴만 죽어가는 게 아니고 대사도 이미 죽어 있었지만. 이 사람 호들갑이야 익숙할 만큼 익숙하기에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잘만 살아계시는데요? 죽을 날은 매우 먼 것 같습니다만?”
“말이 그렇다는 거 아니냐! 말이! 아니, 그런데 실제로 여기까지 올라오다 죽는 사람도 생기겠다. 날씨는 덥고 언덕은 높고, 아이고….”
어쨌든 크놀씨의 화제도 그레이크 소년과 똑같이 날씨였다. 날씨에 대한 고충이다.
확실히 덥긴 더웠다. 식당에 있으면 느껴지는 열기와, 레어의 시원함은 그 차이가 너무 심하니 더더욱 피부로 느껴지는 더위긴 하다.
대낮부터 술을 줬다가는 레이느씨가 곤란해지니 그레이크 소년에게와 똑같이 얼음이 든 시원한 물컵을 건넸다. 그러자 바로 받아 마신다.
벌컥벌컥벌컥벌컥.
가만히 앉아서 물컵을 여러 번 홀짝이며 입안의 열기와 내장의 열기를 천천히 식히며 물을 음미하던 그레이크 소년과는 달리, 크놀씨는 생긴 그대로 물컵을 원샷하고 얼음도 아작아작 씹어 먹더니 다시 내 앞에 내밀었다.
“더, 더 더! 이왕이면 맥주로 주면 더 좋고!”
“안되죠! 아직 크놀씨도 영업할 시간 아닙니까?”
“젠장. 그거야 그런데! 딱 한 잔도…. 안 되겠지?”
“허락한다는 레이느씨의 친필 서한이라도 가져오시면 드리고요.”
“크윽. 물이나 내놔!”
내 말에 크놀씨는 얌전히 다시 물을 받아 들고 입에 가져갔다. 그리곤 한 컵 더 원샷 하더니 이번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아까 들어올 때도 이 표정이었다. 잠시 물 먹느라고 표정이 풀어졌다가 금세 또 이런다.
“그건 그렇고, 그 레이느가! 레이느가 문제란 말이다. 레이느가!”
“레이느씨가 왜요? 금주령이라도 내렸어요? 또 무슨 사고를 치셨습니까 그래?”
문제라니까 또 뭐 사고를 쳤나 해서 물었으나 크놀씨는 마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표정이 어딘가 낯익었다. 언젠가 본 적 있는 매우 간절한 얼굴이었다.
그래, 이건 그때랑 똑같다. 레이느씨가 바람피우는 거 같다며 세상 모든 불행을 짊어진 얼굴로 신세를 한탄하던 그때와.
그때 이후로 등장한 적 없는 표정이니 이번이 두 번째였다.
크놀씨가 이러는 건 정말로 레이느씨에게 무슨 일이 있기는 있다는 뜻. 물론 그때도 결국 크놀씨의 오해였으니, 무슨 일이란 크놀씨의 뇌 안에서만 유효할 수도 있다.
“그럼 무슨 일인데요?”
다만, 설레발이 아니고 정말로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기에, 그것도 크놀씨면 몰라도 착하고 성실한 레이느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곤란하기 때문에 심각하게 되물었다. 그러자 크놀씨는 이번에는 손까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뭔가 확실히 문제가 있기는 있어 보였다.
“크놀씨?”
일단 주방에서 나와 대답이 없는 크놀씨에게 다가갔다. 손만이 아니고 등까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하게 왜 이래?
나까지 심각한 얼굴을 해서 그런지, 곧 크놀씨가 말을 더듬으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게 말이다. 그, 그게… 레이느가 몸져누웠다! 더워서 통 입맛이 없는지 물을 제외하곤 입에 대지를 못한다… 그러니 기운이 없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이러다 큰일 생기는 거 아닌지…….”
불안한 얼굴로 입술을 깨무는 크놀씨.
“그건 안 되잖냐!”
마지막엔 크게 소리까지 치며 벌떡 일어났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기까지 하면서. 충격이 매우 심한 상태로 보였다.
평소에는 매우 호탕한 남자인데, 레이느씨의 일만 되면 어미를 찾는 새끼 양 같이 안절부절 못 하게 되어버리는 사람이라서.
“맞아요. 덥기는 하죠. 그보다, 큰일 아닙니까? 쓰러지다니… 엘레나씨에게 진찰은 받아봤어요?”
엘레나와 레이느는 심지어 친한 편이다. 친하지 않아도 엘레나가 진찰을 허투루 할 일은 더더욱 없고. 그러니 당연히 진찰을 받았을 테고 그래서 물었더니 크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게… 당연히 받았지. 하지만 병이 있는 건 아니래. 더운 날씨에 몸이 못 버티는 거라고 약초를 배합해 주기는 했는데 입맛이 돌아오지를 않는 거야. 회복 마법으로 기운을 북돋아도 날씨는 계속 더우니 결국, 먹지를 못하고 있고…….”
“아, 입맛!”
더위만한 병도 없긴 하다. 더위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다. 이건 현대에도 있는 일이니까.
“그래, 그 입맛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레이느 입맛 좀 돌아오게 해주라. 내 평생의 부탁이다. 제발!”
크놀씨는 다시 간절한 얼굴로 손을 높이 들어 맞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기까지.
“너, 너는 임마! 여러 번 기적을 만들었으니…!”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고개까지 숙이는 걸 보니, 간절하긴 간절한 모양. 물론, 그러지 않더라도 돕는 건 당연하지만.
“평생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레이느씨의 일이니 도와야죠. 으음.”
“그, 그래? 그럼… 고맙고… 뭐, 뭔가 방법이 있는 거냐?”
입맛이라.
빵이나 고기, 느끼한 음식, 뭐 이런 것이 주식인 세상이니 몸이 좀 허약한 편이라면 더위에 입맛이 없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
깔끔한 파스타?
레이느씨는 파스타 같은 면 요리도 좋아했다. 그러니까 힘이 나게 마늘을 많이 쓴 갈릭 계열의 파스타가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시원한 면 쪽으로?
더울 때는 뭔가 자극적인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환자니까 너무 자극적인 건 빼고, 새콤달콤한 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다면 한식 종류 중에 아주 좋은 음식이 있다. 그래, 이런 날씨에는 시원한 비빔국수만 한 음식이 또 없다. 이쪽 세상에는 시원한 음식이라는 개념이 없다. 음식은 뜨거운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비빔국수를 만들면, 이 세계에서 시원한 요리를 처음 선보이게 되는 건가?
“네. 뭔가 있습니다. 요리해서 내려갈 테니 먼저 돌아가서 레이느씨를 돌보고 계세요.”
“정말? 정말 방법이 있는 거지? 정말 정말?”
크놀씨가 내 양팔을 붙잡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놀씨는 알겠다며 뛰듯이 언덕을 내려갔다. 덥다고 투덜거리더니 쏜살같이 뛰어가는 모습에서 사랑이 느껴진다. 좋은 부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도와야지.
그럼, 양념장을 한 번 만들어 볼까? 비빔국수의 생명은 누가 뭐래도 양념장이다.
그리고 국수는 메밀이지.
냉국수 중에는 메밀만한 게 없다. 고소한 메밀가루로 만든 면을 얼음에다가 씻어서 아주 쫀득쫀득한 메밀면을 만든다.
반죽은 당연히 압축 마법으로 이렇게 저렇게. 수타도 족타도 아닌 마법타 반죽으로 만든 면.
여기에 양념장 올려서 비벼 먹으면 비빔국수고, 육수를 뽑아서 오이, 무, 배랑 소의 양지 부위를 썰어 올리고 말아 먹으면 냉면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메밀국수의 육수는 아무래도 이쪽 세계의 사람들이 한 번에 적응하기 힘들 수 있으니 비빔국수가 제격이다.
양념장은 당연히 고추장이 베이스다. 여기에 식초와 설탕을 잘 버무려서 최적의 조합으로 비법 양념장을 만들고 상추, 오이, 얼음 등,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부재료를 올리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는 비빔국수가 탄생한다.
면에다가 양념장을 잘 버무리고 녹기 시작한 얼음을 윤활유 삼아 휘적휘적 비벼준 후 호로록 말아 올려 먹으면!
나는 우선 양념을 제조하고 메밀국수도 뽑았다. 그러다가 쓸 만한 야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창고에 보관한 걸 쓰기는 그렇다. 시간 정지 창고는 루린을 깨워야 쓸 수 있기도 하지만 아직 오전이니 일어날 리가 없고.
그러니 당연히 가야 할 곳은 시장이었다.
***
레어 안은 언제나 쾌적하다. 여름에는 밖의 더위와는 상관없이 선선하고, 겨울에는 역시나 밖의 날씨와 관계없이 훈훈하다.
언제나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루린이 강력한 10클래스의 마법을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정지하는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데 온도를 유지하는 마법 정도야 드래곤인 루린에게는 별것도 아닌 일.
잡학, 각종 마법에 다재다능.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니!
그렇기에 드래곤에게 있어서 마법은 만능이며 모든 일의 해결책이었다.
에어컨의 시원함과는 다르다. 봄꽃이 휘날리는 그런 선선한 계절을 느끼게 하는 자연스러운 선선함이었다.
레어에 털 덮인 루룬들이 살 수 있는 것 또한 이런 루린의 마법 덕분.
그렇기에 다른 그레이크시의 사람들과는 달리 매우 쾌적한 숙면을 취하고 계시던 우리의 루린님께서는 감았던 눈을 갑자기 번쩍 뜨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음냐?”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를 토해내고는 눈을 비볐다. 이리저리 뻗친 머리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자고 일어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보통 루린은 혼자 일어나지 않는다. 엘이 깨울 때까지 일어나지를 않으니까. 엘이 깨우면! 그때 가서 엘의 목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것이 하루의 첫 시작이니.
하지만 아주 드물게 엘이 깨우지 않아서 시간이 2-3시가 넘어가 버리면 배가 고픈 탓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만다.
아무리 루린이라도 온종일 자고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을 엘도 알고 있지만, 루린이 혼자서 일어나는 시간은 너무 늦다. 엘은 보통 루린을 12시면 깨우니까.
그러니 엘이 깨우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엘이 매우 바쁘다는 이야기.
루린은 혼자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볼을 잔뜩 부풀리면서 어정어정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