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68)
# 268
2부 Chapter.6 영화관 이야기
“이번 영화는 어땠어? 꽤 진지하게 보던데?”
“보긴 다 봤다.”
그래서 질문하자 루린이 쿨하게 인정했다.
“재밌었어?”
“재미? 아니, 재미는 없었다. 아까 거보다는 나았지만. 아깐 그냥 하품만 나왔는데 지금 본 건 그래도 쳐다보고 있을 만은 했다.”
“그렇지? 이런 게 영화라는 거야. 스토리를 보는 거거든.”
“하지만 말이다, 나오는 녀석들이 전부 나쁜 녀석들에다가 한심했다. 나 같으면 벌써 다 죽여 버렸다. 내가 그 첫 번째 부인이었으면, 으으! 생각하니 화난다. 사실 화가 나서 계속 쳐다본 것도 있다.”
“그래?”
갑자기 영화 내용이 떠올랐는지 루린이 씩씩거렸다.
“하지만 인간은 바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결론 내렸더니 별 감상이 없어졌지만. 그도 그럴 것이 그대랑은 너무 달라서 비웃어줬다. 결혼하려면 역시 그대와 해야지. 히히, 그대는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신경도 안 쓰는데.”
“뭐 그거야 맞지. 다른 여자는 신경 안 쓰죠.”
“히히. 알고 있다.”
“그건 그래도 나도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 지금이야 너밖에 몰라도, 옛날에는!”
“……?”
웃던 루린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순간적으로 후회했다. 뭔 헛소리를 지껄인 거지. 멍청한 나 같으니라고.
실제론 내 어린 시절은 아무것도 없는 암흑이다. 첫사랑이란 존재는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었고, 중학생 때는 이성에 대해서 눈은 떴으나 남중이었다. 사랑할 대상은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땐, 전이됐다.
전장으로.
“누구냐. 미리 죽인다아아아아!”
“진정하세요. 죽여서 어쩌려고?”
“그대는 나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찜찜하니까!”
“……찜찜하지 마.”
“안 된다. 그런 게 존재한다면 그대의 첫사랑 죽일 거다아아!”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혼돈에 빠져서 폭주 중이다. 심지어 마법까지 사용하려 들었다. 루린이 저장하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마나가 응집되어 퍼런빛을 내뿜는다.
지구에 운석이라도 충돌시키겠다는 그런 눈빛.
첫사랑이 누군지 모르니 아예 지구를 멸망시키겠다는 겁니까. 그건 곤란하니 루린의 귀에 진실을 속삭였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
“내 첫사랑을 죽이겠다는 거지?”
“그렇다.”
“그건 너야. 옛날에 좋아한 사람은 전혀 없었고, 널 알게 된 후 너를 좋아했으니 너가 첫사랑이지. 그러니까 여보님, 스스로를 죽이시던가요.”
또박또박. 첫.사.랑에 힘을 줘서 말해줬다. 그러자 광분해 날뛰던 발과 손이 우뚝 멈춘다.
그 상태로 마치 로봇이 움직이듯 고개를 삐걱삐걱 움직여 나를 쳐다봤다.
“어어어어어? 내, 내가 바로 그 문제의 첫사랑이냐! 으으으, 나도 참 첫사랑이기도 하고 부인이기도 하고, 그럼 아까 본 영화로 치면 난 두 사람분이다!”
아까 본 영화에서는 첫사랑과 결혼한 부인은 다른 사람이었지.
“히히, 하지만 왜 나냐? 그럼 나를 죽여야 되냐?”
“그런 셈이네?”
“그럼 죽인다.”
“엥? 죽이긴 뭘 죽여?”
“지금 말고!”
“그럼?”
“그대가 죽은 뒤쯤에?”
“뭐라는 거야. 언제가 됐든 죽으면 안 되지! 아무튼 이리와. 나가자 여기서.”
“어어.”
내 첫사랑을 알게 되어 후련한 얼굴을 한 루린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서 빠져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인근 식당. 슬슬 거리에 활기가 돌고 있었다. 퇴근 시간을 맞이해 혼잡해지고 있는 시간.
그래서 재빠르게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또다시 영화관이다. 시간상 이번에 보는 게 마지막 영화가 되겠지.
당분간 영화관에 올 일은 없다. 저쪽 세계로 돌아가면 더더욱 없고. 루린도 드디어 영화를 즐기기 시작했으니 한편 더 도전할 생각이었다.
버킷리스트인 평범한 데이트 중 영화관에서 손잡기 정도는 해보고 끝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뭐냐. 또 여기냐?”
다시 돌아오자 루린의 첫 대사는 이거였다.
“싫어…?”
“그건 아니다. 뭐 아까 같은 거면 일단 봐 줄 수는 있다.”
“그렇지?”
끄덕끄덕.
루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쩍 팝콘을 쳐다봤다. 또 먹으려나 싶어서 물었다.
“팝콘을 또 먹게? 질리지 않아? 아까부터 그렇게나 먹었는데?”
절레절레.
다행히 팝콘에 관심은 없어보였다. 고개도 가로저었고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으니. 그래서 팝콘 대신 영화관의 또 다른 음식, 버터 오징어와 나쵸칩을 사 왔다.
“팝콘 말고, 입가심으로 이거나 먹자.”
“이 녀석은 또 뭐냐? 왼쪽 녀석은 항상 보던 과자처럼 생겼지만.”
오징어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나쵸칩에는 평범한 반응.
루린은 오징어를 집고 킁킁거리더니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얌얌, 야무지게 씹더니 갑자기 눈이 번쩍거렸다. 손가락에 묻은 버터양념의 잔재를 빨아 먹은 후 소리친다.
“그대. 맥주! 맥주다! 이거 먹는 순간 맥주가 생각났다! 맥주 사줘라! 맥주, 맥주!”
“맥주는 집에 가서 드시고요.”
“우우! 맥주우!”
간절해 보이는 눈동자. 그렇게 쳐다보면 약해지는 게 나란 녀석이지.
“알았어, 알았어. 그럼 딱 한 캔이다?”
어쩔 수 없이 영화관에서 파는 맥주캔을 사서 들려줬다. 바람이 이뤄지자 신난 얼굴로 마시기 시작한 루린.
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있기에 테이블에 앉아 오징어와 맥주로 후식을 즐기는 루린을 그저 바라봤다.
“그대는 안 먹냐? 시원한데.”
“낮부터 그렇게 먹었는데? 나는 더는 못 먹겠어. 내 위는 드래곤과 다릅니다.”
“하여간 이래서 인간은 문제다. 그래도 그대가 앞에 있으니 술맛이 난다. 레어에서는 말이다 몰래 맥주를 가져와 혼자 먹으면 이 정도의 맛은 아니니까. 역시 안주는 그대가 최고다!”
음음. 그렇고말고. 라면서 고개를 끄덕인 후 나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나를 다시 힐끗 쳐다보고 맥주를 마시더니, 이번엔 오징어를 보고 나를 먹고, 아니아니 오징어를 먹고 나를 본 후 다시 맥주를 마셨다.
“크아아!”
“저기, 자린고비라고 알아?”
“그게 뭐냐?”
“생선을 매달아두고 맨밥 먹고 바라보고, 맨밥 먹고 바라보던 사람인데, 지금 너랑 매우 겹치는 거 같은 느낌이….”
물론 그건 절약 정신에서 비롯된 거고, 지금 루린은 절약하곤 하등상관이 없지만, 나를 안주 삼는 루린의 모습은 왠지 자린고비와 겹쳐진다.
“으으음? 뭐냐 그게. 그대는 최고의 안주니까. 뽀뽀해주면 좋겠다.”
“갑자기?”
“히히, 그대가 안주니까 그런 거 같다.”
“뭐라는 거야 벌써 취했어?”
“…안 취했는데.”
“어이고, 웃기지 말고 시간 됐으니 상영관으로 들어가자.”
“알겠다. 마침 다 마셨다!”
한 캔을 뚝딱 마신 루린과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다. 루린도 이미 익숙해져서 자리 찾는 것도 매우 빨랐다.
오히려 스스로 먼저 자리를 찾아내 나를 부를 지경.
“그대, 여기다!”
“오, 빠른데?”
“이 몸이니까.”
루린이 찾아낸 지정석에 앉았다. 곧 어둠이 찾아왔고 영화가 시작됐다. 이번에 고른 영화도 역시 멜로영화다. 루린이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영화는 이쪽인 게 분명해졌으니.
다른 건 전혀 관심 없는데 이 사랑이란 것에는 관심이 있는 녀석이라서.
그걸 증명하듯 이번에도 졸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영화에 몰입한 분위기다.
이번 영화의 주제는 사랑과 망각이다. 잊는다는 것에 대한 먹먹함을 잘 표현한 영화였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이지만, 여자 주인공이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에 걸린 그런 영화.
처음부분은 서로 사랑을 키워가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선 루린은 매우 흥미를 보였다.
로맨틱한 장면이기도 해서, 이때다 싶어서 루린의 손등에 손을 올렸다.
버킷 리스트의 실현이다!
루린은 어둠 속에서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다가 감촉을 느꼈는지 슬쩍 나를 본다.
그리곤 내 손을 꽉 잡아왔다. 올린 손이 루린과 완전히 포개진다. 뭔가 그 따뜻함이 감동적이라 어둡다는 것을 방패삼아 슬쩍 루린의 입술에 쪽을 했다.
때 마침 영화에서 키스하는 부분이 나오고 있었으니.
루린은 놀란 얼굴이더니, 오히려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잡으려고 했다.
뽀뽀가 아닌 진짜 키스를 하자는 듯이 혀가 이미 살짝 나와 있다.
“안 돼. 가볍게 쪽까지만. 사람이 많잖아? 공공장소입니다.”
“가볍게 쪽은 되냐? 그럼 또!”
“아니 사실은 그것도 안 돼. 바람을 이뤘더니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아니아니 조용하고 다시 스크린 봐, 날 보지 말고.”
“으우? 남들 키스하는 거 보는 거보다 내가 키스하는 게 더 좋은데.”
“키스하는 장면 끝났으니 스크린을 보세요.”
우리는 지금 조용하게 속삭이고 있다. 어디까지나 조용히. 하지만 아무리 속삭인다고 해도 민폐겠지. 루린의 보드라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 쉿! 을 해줬다.
그렇게 우린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점점 스토리는 진행되고 드디어 사랑하는 이를 잊어가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루린은 매우 몰입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스크린의 빛에 비치는 루린의 미간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
뭔가 눈망울이 그렁그렁 한 느낌이다.
상당히 집중했으며 장면에 엄청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
“우우….”
급기야 살짝 울먹이는 소리까지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다 울고 있을 정도로 슬픈 장면이긴 했다.
모든 것을 잊은 여주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남주의 모습이 나오는 중이니.
그렇게 영화가 끝났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불이 켜졌으나 루린은 볼을 부풀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은 매우 울상이었다.
여운을 즐기게 놔두려고 그냥 뒀더니 1분후 먼저 일어나 아직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대.”
“응?”
“안아줬으면 좋겠다.”
다짜고짜?
루린이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렸다. 뭔가 울먹이고 있으니 가녀린 느낌이다. 평소의 루린에겐 없는 분위기.
“안아줘라!”
얼굴이 심각해 보인다. 그래서 일어나 루린을 안았다. 그리곤 등을 토닥여 줬다. 매우 슬픈 얼굴이라서.
“괜찮아?”
“한쪽이 너무 불쌍했다.”
“그건 그렇지?”
“다른 인간이 불쌍해 보이다니, 영화란 거 너무 이상한 거다. 아까는 그대가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전혀 없으니까 감정이입이 전혀 안 됐는데, 이거는, 이거는 뭔가 무서웠다.”
“괜찮아. 루린 너는 드래곤이니까 인간보다 엄청나게 뇌세포가 많고 절대로 뭘 잊어먹을 리 없어.”
“그럼, 그대는…?”
“나도 건강하니까 그럴 리 없지?”
“그치만 그대는 인간이니까 모른다! 으으, 싫다. 왜 인간이냐? 드래곤이 되라.”
루린이 말도 안 되는 바람을 입에 담았다.
“아니 뭐 반의 반 정도는 드래곤이긴 해. 심장이 드래곤 거라서.”
“그러면, 그러면 기억을 안 잃는 건가?”
“바보네. 무슨 걱정이야? 너를 잊게 된다고 해도, 다시 좋아하게 만들면 되잖아?”
“다시?”
“응.”
“하지만 날 좋아하게 만드는 건 어떻게 해야 하냐? 모르는 사이에 그대가 날 좋아하게 됐다.”
“바보, 그러니까 다시 좋아하게 만드는 것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가만히?”
“응. 그냥 평소대로 네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어? 뭐가 그리 쉽냐?”
“그렇지? 참 쉽죠?”
“히히, 하지만! 그래도 날 잊는 건 싫다. 그대, 나는 내 세포에 그대를 각인시켰다. 그대의 피부를 다 받아들였으니까! 하지만 그대는 아닌 거 같으니 해부한다! 해부해서 내 세포를 집어넣은 후 다시 봉인해 준다.”
“얌마, 그건 또 뭔 말도 안 되는 짓이야. 그 전에 죽잖아!”
“안 죽는다아아아!”
갑자기 내 몸을 열어서 자기의 생체조직을 집어넣으려 드는 흑화 루린을 피해서 상영관 밖으로 도망쳤다.
“거기 서라!”
당연히 루린이 따라온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해부 당할 판이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