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79)
# 279
2부 Chapter.11 새 생명과 함께
다음날도 여전히 루린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몸은 여전히 뜨겁다.
아픈 게 아니라고 했다. 자연스러운 거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면?
여러 가지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딸의 말이니 일단 하루를 기다렸다.
내일 가는 게 좋겠다고 미래에서 온 녀석이 말했으니 그에 따를 수밖에.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루린을 안고 진료소로 쳐들어갔다.
“세레이나! 텔레포트 좀 하자.”
루린이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니 성지로 가는 수단은 자연스럽게 세레이나 밖에 남지 않으니까.
육로로 드래곤 성지로 가려면 한 달도 넘게 걸리는 길.
“엘님! 루린님은 좀 어떤가요? 밤새 뒤졌지만 별다른 문헌이나 비슷한 병을 찾지 못 했어요….”
엘레나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면목이 없다는 얼굴이다.
“뭐, 뭐야…! 아침부터!”
세레이나가 피폐한 얼굴로 눈을 비볐다. 내가 워낙 난리를 쳤더니 일어나긴 일어나셨다.
“제발!”
간절하게 소리쳤다. 간절한 부탁인지 협박인지 나도 모르겠는 어투로.
“알겠어. 알겠어. 가면 될 거 아니야. 그나저나 그 수상한 여자 만났어? 뭔가 알아냈어?”
“아, 만나긴 했어. 이젠 돌아가서 못 올 거야.”
“그래? 니 딸이라 워낙 강해 놔서….”
“뭐? 어떻게 알고 있어?”
“직접 들었는데? 게다가 매우 폭력적으로!”
미래가 어쩌고 하더니? 세레이나에게는 말해도 된다는 거야 뭐야.
“지 엄마를 똑 닮아서 나부터 괴롭혔어. 웃기는 녀석이었지. 뭐가 나는 엄마랑 달리 언니를 좋아해요야? 참나.”
세레이나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레이나는 일단 무시하고, 우리 사이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과, 한 편으로 루린을 보면서 걱정스러워 하는 얼굴이 섞인 엘레나를 향해 말했다.
“엘레나님. 다행히 루린은 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블랙드래곤의 성지에 좀 다녀올게요. 그 방법이 성지에 있다고 하니까요.”
“네? 정말요?”
“네. 그러니까 걱정 말고 있어요. 자, 어서 가자 세레이나.”
세레이나를 다시 독촉했고, 세레이나는 한숨을 쉬면서 루린을 공주님 안기로 안고 있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텔레포트.
잠시 어둠이 닥쳤고 어지러움이 머릿속을 맴돌더니 곧 성지의 초입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런 식으로 세레이나가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툴툴거려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녀석이긴 했다.
“난 여기서 간다. 블랙드래곤하고 레드드래곤… 뭐 거의 멸망했지만 어쨌든 관계를 생각하면 여긴 좀 그래.”
“그래, 먼저 돌아가 있어.”
세레이나는 그때랑 똑같은 말을 하고 사라졌다.
성지에야 드래곤 천지니까 집에 데려다줄 드래곤이 없겠어? 별걱정은 없는 일. 물론 최선은 루린이 나아서 자력으로 돌아가는 것.
루린의 몸을 안고 있으면 자연히 찜질방의 불가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루린의 고통을 이렇게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생각과 함께 성지를 향해 걸었다. 곧 하늘 위에 있던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온다.
“인간이여. 이곳은 인간 따위가 드나들 수…….”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로 한결같은 수문장들이다.
“장로님은 어디 있죠?”
그래서 그 말을 무시하고 물었다.
다행히 드래곤은 드나들 수… 까지 말하곤 내가 누군지 알아차렸는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저쪽에 계십니다!”
발음까지 꼬여 있었다.
“전 댁들처럼 날아오를 수가 없으니 소식을 전해주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블랙드래곤이 당황한 얼굴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블랙드래곤 메디다나가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날아왔다.
내가 이렇게 등장했다는 건 루린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루린의 텔레포트로 성지 안에서 나타났을 테니. 그걸 깨달았는지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루린은 왜 쓰러져 있는 게야!”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내려와서 상태 좀 봐주세요. 급합니다!”
“뭣이?”
메디다나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곧바로 폴리모프를 시전. 몸을 줄이곤 내 앞으로 다가와 루린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곤 루린의 손도 만지기 시작했다.
체온을 재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곤 그 순간 뭔가 의아한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의아한 얼굴?
나는 장로가 별것 아니라며 웃어주기를 기대했다.
미래에서 온 딸이 말하길 별것 아닌 현상이고 성지에 데려가면 장로가 설명해 줄 거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장로의 얼굴은 뭔가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 때문에 뭔가 불안해졌다. 딸이 한 말과 다른 상황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불안감이다.
“장로님? 루린이 대체 왜 이러는 거죠? 어제 갑자기 쓰러지더니 깨어나질 않고 있습니다. 이건….”
“음, 일단 성지 안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대화할 일은 아니다. 루린도 눕히는 게 좋을 테고.”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자 장로가 나와 루린을 데리고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성지 안으로 들어온 우리.
장로는 루린을 돌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다시 장로에게 물었다.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서.
“원인을 알고 계시면 어서 말씀해 주세요! 답답해 죽겠습니다.”
“일차적 원인은 아마도….”
“아마도?”
“네놈, 결국 기어코, 기어코 우리 루린을!”
이 장로님 갑자기 왜 캐릭터가 붕괴했지?
“뭔 소리를 하십니까. 루린을 뭐요?”
“망할놈! 어쨌든 일차적 원인은 임신이다. 루린은 지금 임신했느니.”
“역시!”
“알고 있었나?”
“아, 네 뭐 대충은요. 하지만 그럼 대체 왜 깨어나질 않는 건데요? 이런 게 당연한 현상입니까?”
미래의 딸께서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아픈 게 아니라고. 하지만 아까 장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
그 점이 너무나 찜찜했다.
기쁜 일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루린이 깨어나기 전엔 기쁜 일에 마냥 기뻐하는 게 불가능했다.
“으으으음.”
내 질문에 장로가 고민을 시작했다.
턱을 매만진다. 턱을. 턱을. 계속 매만진다.
답답하다.
답답한 시간이 지나갔다.
루린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그럴수록 속에선 천 불이 올라왔다.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려고 하자, 장로도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마도.”
“네?”
“보통은 열이 나는 건 사실이야. 블랙드래곤은 임신을 하고 일정 기간 후 열이 난다.”
“그렇군요.”
“그래, 블랙드래곤이라면 다들 그렇지. 그것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징조.”
“그럼 루린도 별문제는 없는 겁니까?”
“하지만.”
장로는 그 순간 내 바람을 뭉개드렸다. 하지만이라는 단어. 그것은 부정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니까.
“보통은 하루 이틀이면 열이 내린다.”
“하루 이틀이요?”
그렇다면 루린은 지금 딱 이틀째다.
“그럼 오늘이 이틀짼데 곧 좋아질 수 있는 겁니까?”
“그건 틀리도다.”
장로는 계속해서 내 바람을 박살 냈다.
“네?”
미래에서 온 딸이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거였다. 블랙드래곤이 임신하면 하루 이틀 열이 난다는 것.
그러니까 별것 아니라고 말했다면.
아무래도 그 녀석도 진실을 모르고 있던 건가? 내가 이것까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미래와 현재가 바뀌었나? 아니, 그건 최악의 경우다.
과거의 일이니 그 녀석은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아니, 그 모든 걸 떠나서 그 녀석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루린이 나을 수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켁, 이놈아, 늙은이 팔 부서진다!”
어느새 나는 장로의 팔을 꽉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답답한 상황.
“제발 속 시원하게 말씀 좀 해보세요. 뭐가 다른 겁니까.”
“정신을 잃은 것이 문제다. 드래곤이 정신을 잃다니. 보통은 열만 나고 끝나는 일이야. 드래곤이 정신을 잃는 일은, 내 생전 본적이 없다.”
정신력 덩어리인 드래곤이 정신을 잃은 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경과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메디다나의 설명.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겠느냐?”
“자연의 섭리요?”
“어느 폭주하는 드래곤이 있었다. 그 녀석은 유희하러 나가서 수많은 인간을 건드렸지.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무려 1000명이 넘었다. 그 1000명이 전부 드래곤이라면 세상의 균형이 깨져버린다. 하지만 그 1000명은 전부 평범한 인간이었다. 이게 바로 자연의 섭리야.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섭리. 드래곤은 드래곤과의 사이에서만 태어난다. 엘프나 드워프들처럼 하프는 태어나지 않아. 하지만 그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발생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너와 루린의 아이는 드래곤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현상은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존재, 그 존재가 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자연은 그것을 무로 돌리려고 한다. 정화능력이지.”
“뭐 그딴 게 다 있답니까! 드래곤 하트가 제 피를 드래곤의 피와 똑같이 만들고 똑같은 힘을 불어 넣어주기에 드래곤이 탄생한다는 것뿐이지…. 게다가 실제로 미래….”
이야기하다가 입을 막았다. 흥분해서 말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말할 뻔했으니까.
“뭐?”
“아닙니다. 그래서 해결방법은 있겠죠? 수천 년을 살아온 고룡이… 그것도 모른다면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놈. 시끄럽다. 루린은 내 손녀기도 하다! 저 상태로 놔둘 것 같나? 하지만…….”
“그놈의 하지만이라는 소리 지겹네요. 방법이 있다면 제발 속 시원하게 말해주세요.”
“방법이야 간단하다! 정신을 차리게 하면 된다. 정신을 잃은 것이 문제다. 열이 나는 상황에서 정신을 잃어서 못 깨어나게 된 것이야. 어딘가로 정신이 날아가 버린 게지. 자연의 섭리라는 녀석이 그렇게 만든 거니…. 그 자연의 섭리에게서 빼앗아 오면 되는 일.”
“……방법만 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자연의 섭리에게 대항하겠습니다. 저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루린이 소중합니다. 그건 장로님께 새삼스럽게 강조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겠죠.”
한때 지키려고 했던 세상이라고 해도.
루린보다 소중할 순 없다.
만약 그 세상이 대가라면 세상조차도.
루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제 루린은 홑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내와 딸.
그러니 둘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짓도 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향해 진득한 시선을 보내던 장로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야 있지.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저 루린의 정신에 접속해 깨워오면 되는 거니까.”
“루린의 정신에요? 정신에 들어가다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 또한 방법이 있다. 우리 드래곤에게서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이.”
장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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