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
# 3
Chapter.2 친구와 소주
루린에게 만세를 시킨 후에 옷을 입혔다.
“팔 벌려봐.”
“알겠다!”
내 말에 루린은 아무런 위화감 없이 팔을 올리고 정지한다. 상의를 입혀주고 하의를 입혀주면 그제서야 움직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이제는 별다른 할 말도 없다.
옷을 입히고는 빗으로 머리를 빗긴다. 사방으로 뻗쳐나간 머리를 정리하지 않으면 마치 사자 갈기 같으니까.
정성스럽게 검은색 머리카락을 만지면 역시나 가만히 몸을 맡겨온다.
처음에는 위대한 존재인 드래곤 이라며 곁에 오는 것도 못하게 했지.
드래곤의 모습이라도 다른 드래곤이 놀랄정도의 미형 드래곤인 것같고, 인간 모습도 미인이다. 물론 이젠 덤덤하다.
꽤 오래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대!”
“또 왜?”
“좀 더 부드럽게 해주면 안 되냐? 내 머리카락은 섬세하단 말이다.”
“어휴 그러세요.”
요구에 따라 빗질을 매우 섬세하게 재개했다. 섬세하게. 그리고 또 섬세하게. 검은색 머리카락이 그럴 때마다 생기를 찾아간다. 신기한 머리카락이다. 드래곤의 털이라 그런가.
다 빗겨준 후에는 머리끈으로 정리를 시작한다. 이쁘게 머리를 묶어 주면 루린은 내 등에 몸을 기댄 그대로 입을 연다.
“근데 일이란 무엇이냐? 이 도시에 브레스라도 한 방 먹여주면 되냐? 파괴란 좋은거다. 히히.”
드래곤의 파괴본능을 역설하는 루린. 나는 당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내려와.”
“히잉.”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내뱉는 드래곤을 이끌고 1층으로 내려왔다.
루린에 대한 내 감정?
당연히 정이 있다. 그 정이 있기에 대륙의 중앙, 블랙드래곤의 성지 근처에 사는 루린을 데리고 나왔지.
하지만 그 정이 어떤 종류인지는 나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드래곤님은 주방으로 내려가자마자 성큼성큼 돌로 만든 냉장고를 열더니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맥주를 들더니 단숨에 들이킨다.
“캬아! 바로 이 맛이지. 역시 일어나선 맥주가 최고다!”
나는 입에 거품을 묻히며 맥주를 들이키는 루린의 입가를 닦아 준 후에 손을 잡아끌어 내 앞에다가 옮겨 놓고는 물었다.
“알겠으니 일이나 하러 갑시다. 도와줄 일이 있어.”
“그럼 맥주 한 캔만 더 마시고 가겠다!”
“됐고요.”
“맥주우우우!”
나는 루린을 질질 끌고 가게를 닫은 후 언덕을 내려갔다.
“그대는 가끔 좀 너무한 경향이 있다. 개선을 요구하는 바다. 그런데 뭔 일인지 아직도 말해주지 않았다. 이 루린님의 힘을 빌릴 정도라니 대단한 일이겠군!”
눈을 빛내며 손을 허리에 두르는 검은 머리의 꽃미녀.
그녀를 데리고 언덕 아래의 과일 농장을 지나쳐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여전히 북적거린다.
크놀씨의 정보에 의하면 레이느씨는 저번 달에 데란트라는 레스토랑에서 상대를 만났다고 말했었다. 그 데란트는 상업지구와 거주지구가 만나는 중앙 광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데란트 뿐만이 아니라 이 도시의 식당은 거의 이 지역에 밀집해 있다. 식당의 거리라고 불러도 될 정도.
루린은 데란트 안의 붐비는 손님을 보면서 외친다.
“우와, 그대! 이 식당은 엄청나게 붐비는구나! 우리 식당과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니냐?”
“그러게.”
“어? 뭘 답지 않게 침울해지는 것이냐. 이 식당 째로 옮겨버릴까?”
“그런 웃기지도 않는 일을 시키려는 게 아니니 조용히 좀 하시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크놀씨의 부인. 그러니까 레이느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 뭐하는데?”
시끄러운 드래곤님에게 쉿을 해준 후에 맥주를 시켜주었다. 그제야 좀 조용해진다. 맥주 드래곤 같으니.
입구를 한참 주시하고 있으려니 드디어 레이느씨가 들어왔다. 크놀씨의 말대로 정말로 남자와 함께였다. 크놀씨와 비슷한 건장한 체격의 40대 남자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크놀씨보다 매우 깔끔하고 깨끗한 인상이다. 수염돌이인 크놀씨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할까.
“야 루린.”
꿀꺽꿀꺽꿀꺽.
“크하!”
맥주에 빠져있는 드래곤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눈썹을 늘어뜨리며 투덜거린다.
“왜 그러냐! 먹으라고 줄 때는 언제고!”
글썽거리며 세상 무너진 얼굴로 올려본다. 젠장, 귀엽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폴리모프 하면서 인간의 외형을 선택할 수는 없다. 드래곤 본체의 피부부터 시작해서 색깔, 그리고 드래곤으로서의 외형이 그대로 인간 상태에도 적용된다. 그러니 지금 루린의 모습 또한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모습이다.
그렇기에 웃음부터 울음까지.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니 귀여움도 자연스럽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드디어 일이야.”
“오? 그러냐!”
루린은 그제야 맥주잔을 내려놓고 다시 눈을 빛냈다. 일어나려다가 말고 다시 앉아서 일단 맥주잔에 있는 맥주를 완전히 들이킨다. 그러고 나서야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뭘 하면 되느냐! 다 부실까?”
“이 파괴적인 드래곤이! 누가 블랙 아니랄까 봐. 파괴하지 마라! 그보다 지금 들어온 저 커플 보이지? 남자 여자.”
“그렇다! 보인다.”
“저 사람들 말을 엿들어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게 단데?”
“그대! 이 루린님에게 고작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다는 것이냐?”
“좀 해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
“정말이냐! 오오! 어디 어디 저 두 인간?”
루린은 드래곤의 자존감을 함박스테이크에 바로 팔아먹고는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내 요리에 길들여진 드래곤은 먹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좋아하는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눈으로 레이느씨와 같이 온 남자를 가리키며 입을 연다.
“엿듣는 거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드래곤의 청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하는 범위를 조절해서 들을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딱히 마법도 아니다.
타고난 드래곤의 능력이지.
이 능력은 주로 자신의 레어를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이 주변을 감지하는 데 사용하는데 그 범위가 산 전체에 미친다.
그렇기에 이런 식당 정도에서는 얼마든지 청각을 조절해서 소리를 엿들을 수가 있었다. 인간과는 청각의 구조부터가 다르다.
그런 루린을 앞세워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었는데 레이느씨는 품을 뒤적거리더니 돈 꾸러미를 꺼내서 남자에게 내밀었다.
돈을 넘기다니?
조금 예상외의 상황이다. 역시나 시끄러운 식당이라 그들의 대화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드래곤을 쳐다봤다.
루린은 입을 벌려서 두 사람의 대화를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오늘로 드디어 다 갚았네요. 10년간의 빚을요. 정말로 감사드려요. 멘트씨가 없었다면 저나 남편이나 절대로 재기할 수 없었을 거예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놈에게는 목숨을 빚졌어요.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도요. 도와준 걸 말도 못 하게 하셔서 남편은 아직도 멘트씨가 배신했다며 욕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놈이 제 돈을 받을 놈이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루린이 그대로 대화를 옮기고 있는 덕분에 상황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화를 엿들은 결과론 아무리 봐도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곧 대화가 끊겨 버렸다. 곧이어 식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탁받은 일이다. 불륜이라든가 아니면 다른 범죄적인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냐?”
당연히 루린도 벌떡 일어나 나를 쫓아온다.
“안녕하세요, 레이느씨?”
“어머, 엘씨?”
“네.”
여기서의 내 이름은 엘이다. 엘르시온이라는 이름. 줄여서 엘이라고 남들에게 소개했고 그렇게 불리고 있다.
“조금 무례하긴 하지만,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네, 네?”
레이느씨는 앞에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멘트라고 불린 그 남자는 약간 황당한 얼굴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역시나 무례하지만, 의자를 끌어다 앞에 앉았다.
“실은 말입니다. 크놀씨가 두 분이 외도를 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어서요.”
“네에?”
“넷?”
두 사람은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린은 내 옆에 서서 거만한 눈으로 그런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나를 제외한 인간과는 이야기조차 하기 싫어한다. 벌레를 보는 눈이랄까.
루린은 인간이 아니다. 당연히 드래곤인 그녀에게 있어서 보통의 인간은 매우 하찮은 벌레 같은 존재인 건 사실이고.
“그게 무슨···?”
“지난달에 두 분이 만나는 걸 목격하고 혼자서 오해를 쌓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언뜻 들으니 빚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에 레이느씨는 곤란한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집안의 문제라서···.”
“죄송한데 저는 크놀씨의 대리인으로 이 자리에 끼어든 상황입니다. 괜한 오해를 쌓아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오해로 말미암아 칼부림이 일어나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는 일들 말입니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고 들었습니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 참지 못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후회하는 사람은 많다.
아마 고향에서 저 속담이 나오게 된 계기가, 부인이 누군가와 노닥거리는 걸 보면서 칼을 가지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일단 세 번 참고 참은 덕에 그 이불 안에서 노닥거리던 누군가가 처제라는 걸 깨닫고 안심했다는 이야기로…. 아무튼 그런 오해로 말미암은 파국을 피하려면 지금 사정을 확실히 들어둬야지.
“그리고 레이느씨, 사실 이건 비밀인데 말입니다.”
아직도 머뭇거리는 레이느씨를 향해서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크놀씨가 말이죠, 레이느씨가 바람을 폈다고 생각하면서도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이다가 가셨단 말입니다.”
“어머나, 그이가요?”
레이느씨가 매우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놀씨는 정작 레이느씨 앞에서는 사랑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자 멘트씨가 말을 거들었다.
“당연합니다. 레이느씨. 크놀 그놈, 같이 일할 때도 순 레이느씨 이야기만 했었거든요.”
“그, 그런···.”
레이느씨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실은 사정이 있어요.”
“네?”
그래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라면 사정이 있겠지. 아무 사정도 없는데 돈을 주고받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니까. 기둥서방도 아니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