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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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Chapter.8 그레이크시의 만찬
영주성의 서재에는 태무란 공작과 황태자, 그리고 그레이크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그 뒤에는 공작의 경호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가 한 명 서 있었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그녀는 마치 비석을 연상시킨다.
“백작은 여전하고?”
“네, 안타깝게도.”
그레이크 소년이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이 물음이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답답하고 우울할 뿐.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자상하던 아버지였으니.
그레이크 소년은 우울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으나 그 와중에도 공작과 황태자의 눈치를 보느라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중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자네 영지 말이다. 아, 아직 자네의 영지는 아닌가?”
“그 부분은 당연히 아직 아버지의 영지입니다. 제가 영주 대리를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요.”
“그거 귀찮군. 곧 자네의 영지가 될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 그냥 자네의 영지라고 칭하겠다.”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지그시 그레이크를 응시했다. 황태자는 그저 소파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기다란 금발의 미남자는 공작과 그레이크 소년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보다 말이야, 그레이크 백작은 분명히 세린 후작의 밑에 있었지?”
“아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왕래가 끊겼습니다. 저 또한 만나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런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섬기는 주인을 바꿔야겠구만 그래. 이런 영지는 특히나 중앙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기가 어려운 법이거든.”
드디어 태무란 공작이 슬쩍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레이크 소년조차 그 숨은 뜻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단호한 말투.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건가. 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레이크 소년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그 말씀은?”
“자네, 눈치가 없는 건가 일부러 그러는 건가? 확실하게 말을 해줘야 알아듣나? 쯧쯧,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야. 그렇다면 이 영지는 확고한 보호를 받을 테고, 자네도 고작 이런 영지에 만족하지 말고 중앙으로 올라와야지?”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공작은 그레이크의 대답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어린놈이 말대답하는 것 자체가 매우 거슬려서 곧바로 협박을 재개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할 것이야. 세린 후작도 병에 걸려 자리에 누운 지 오래거든.”
“그, 그렇습니까?”
이 또한 처음 듣는 일이었다. 정보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레이크 소년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 듣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뭐, 그건 그거고, 또 다른 이야기가 있네.”
“네?”
공작은 꼬았던 다리를 바꿨다. 그리고 조금 더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대규모 치수공사, 옆 왕국의 내전에 참전,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말이야. 그레이크시에서도 세금을 더 내줘야겠네.”
“그건!”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이다. 그레이크 소년은 공작이 방문한 진짜 의도를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치수공사나 내전에 참전이라니. 영지와는 상관도 없는 일이다. 이것은 명분을 가장한 세금 증액의 요구였다.
말 그대로 횡포. 이건 그동안 관리 하지 못한 영지를 짜내기 시작하겠다는 선포와도 같았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위해서 말이다.
“그건, 중앙의 공식입장입니까?”
침을 꼴깍 삼키며 그레이크가 물었다. 그러자 공작은 허허 웃기 시작한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백성을 길들이는 건 어디까지나 영주의 몫이야.”
그 말은 곧, 공공연히 밝힐 수 없는 세금이라는 뜻이다. 공작이 시작한 시찰의 목적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몬스터와의 전쟁 후 잠시 방치했던 각 영지들을 본격적으로 짜내기 시작하겠다는 선전 포고. 거기에 자기 수하의 귀족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몸집을 불리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공작이 직접 백작령을 둘러보고 다닐 일은 없다. 황태자까지 대동하고 말이다. 뭐 황태자는 놀고 싶다며 따라온 거지만.
어쨌든 공작은 조그만 녀석이 곧바로 꼬리를 내리지 않고 버티려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대답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공작은 성질이 솟구쳤다. 또다시 건방진 대답을 내놓다니. 그레이크 소년의 딴에는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간신히 내뱉은 말이지만 공작에게는 그저 거슬리는 말일뿐.
“뭐가 어째?”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 침묵하던 공작이 급기야 눈썹을 치켜뜨며 외치자 그레이크 소년은 발을 구르며 머리를 마구 굴렸다.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머릿속이 빙빙 도는 느낌.
공작의 말대로 되면 그레이크 시민은 지금 내는 세금의 수 배를 부담해야 할 판이었다. 절대로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원래 줄을 잘못 선 귀족에겐 늘 이런 횡포가 돌아오는 법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
그레이크 소년은 아직 그런 법칙까지는 몸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아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으니 벌떡 일어나 공작을 향해 외쳤다.
“만찬을, 만찬을 준비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그레이크가 할 수 있는 최대치. 긴박한 순간이 되자 그레이크는 머릿속에 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엘이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스승의 요리가 떠올랐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찬을 입에 담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자 하는 속셈이었으나 공작은 더욱 눈살만 찌푸릴 뿐.
“만찬? 이런 외곽의 영지에서 황궁의 요리보다 뛰어난 걸 뭘 먹을 수 있단 말이냐? 입맛만 버리는 게 아닐까 한다만.”
신기하게도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황태자가 만찬이란 말에 반응해서 공작과 그레이크 소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하! 아닙니다. 최고의 요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레이크 소년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기회라고 생각해서 재빠르게 황태자를 향해 외쳤다.
“마음에 안 들면?”
“네?”
“요리가 내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이다.”
황태자가 고운 눈썹을 만지며 말했다. 하지만 그레이크 소년은 별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뛰어난 요리사가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원론적인 대답을 했으나 황태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이 있단 말이렷다? 난 말이야, 지겹다. 황궁이란 지겨운 일상이지. 공작을 따라서 다른 영지도 많이 들렀지만 모두 나의 지겨움을 덜어주지 못했다. 요리 또한 맨날 똑같지. 산해진미라고 내놓는 것은 모두 코웃음만 나온다. 그러니 그대가 진정 날 만족시킬 자신이 있다면 나랑 내기를 하는 게 어떠냐?”
“무, 무슨 내기 말씀입니까?”
그레이크는 대체 이 황태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황태자는 짐짓 고민하더니 손바닥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음, 그래! 지는 사람이 옷을 벗고 그레이크시를 한 바퀴 도는 게 어떠냐? 내가 지면 나도 옷을 벗겠다. 어때? 공정한 내기 아니더냐?”
아무리 봐도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옷을 벗고 시내를 돌다니. 대체 그게 뭔… 그레이크 소년은 고개를 마구 가로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 수 없으니 속으로 마구 혀를 차면서 대답할 말을 궁리했다. 어쨌든 요리는 자신 있다. 스승님이란 존재가 가진 요리 실력에 대한 자신감.
그런지라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공작의 마수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려면 시간을 끌어야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그리 하겠나이다.”
그레이크 소년이 냅다 대답하자 공작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도 이런 재가 없었으니까.
공작은 왜 끼어들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냐는 표정으로 황태자를 쳐다봤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상급자다. 어쩔 수 없이 그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 좋다. 만찬에서 좋은 대답을 기다리겠느니. 아, 그리고 말이다.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레이크시는 고립당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알아두거라. 물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고 있겠지?”
공작은 팔짱을 끼면서 그렇게 말했다.
***
“전하, 무슨 그런 내기를 하고 그러십니까? 지면 어쩌시려고?”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딴 영지의 요리라고 해봤자 그게 그거지. 게다가 만에 하나 날 만족시킨다고 해도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말이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공작이 황태자를 보면서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노는 것만 좋아하는 황태자. 뭐 그럴수록 조종하기 쉬우니 더 좋은 거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황태자는 황태자대로 다른 생각이 있었다. 중앙의 황권까지 위협하려는 공작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놀기 좋아하는 황태자를 가장한 그의 진짜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그레이크시를 포함한 수많은 백작령의 시찰에 놀고 싶다며 따라온 진짜 이유가.
“그보다 그때 그 이야기나 해다오. 그 이야기 재밌었는데?”
“어떤 이야기 말씀입니까?”
공작이 이번엔 또 뭔 이야기를 꺼내야 하냐는 눈빛으로 황태자를 쳐다봤다.
“아바마마께서도 꼼짝 못 했다는 그 마법사 말이다.”
“그건…. 황궁에서는 절대 꺼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전하.”
“여긴 황궁이 아니지 않은가?”
황태자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공작은 대체 이놈이 무슨 생각으로 또 그 이야기를 꺼내려 드는지 골치가 아파왔다. 그럴수록 황태자는 마치 비웃듯이 공작을 쳐다봤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공작의 뒤쪽에 여전히 비석처럼 서 있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렇지! 그대가 설명하라. 그대는 한때 그 마법사와 같이 작전을 펼쳤다며?”
공작가의 수석 마법사. 무려 7클래스라는 마법을 이룩하여 백작의 칭호를 부여 받은, 제국에서 손꼽히는 마법사인 메드린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분에 대해선 감히 제가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사옵니다. 폐하께서도 쩔쩔매는 분입니다. 전하.”
어찌 보면 황제와 공작까지 쌍으로 능멸하는 말이었으나 공작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공작도 그를 본 적이 있는가?”
“전 없습니다.”
공작은 그 마법사가 활약할 당시 타국에 가 있었다. 몬스터 전쟁으로 인한 다국적 회의를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직속 부하가 그 마법사에 대해 함구하는 것에 토를 달 수 없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 절대적인 힘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주워들었기 때문에.
“공작의 부하는 매우 그 사람을 존경하는 것 같은데?”
“뭐, 그런 마음까지 막을 수야 없지요. 게다가 상대는 인간의 범주에 있다고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황태자는 은근히 공작을 내리깔면서 웃었다.
하지만 평소 황태자의 행동 때문인지 공작은 그저 쓸데없는 것에 흥미를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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