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7)
# 37
Chapter.9 드워프 마을
“웬만한 광산 크기에 견줄 수 있을 만한 커다란 부지지요. 재미있을 겁니다.”
“그렇군요입니다!”
같이 설계도를 보던 청년 드워프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그러니까 자금에 신경 쓰지 않고 모든 걸 다 퍼부을 수 있다는 그런거다입니까?”
족장의 말투는 자연스러웠으나 젊은 드워프들은 말끝이 조금 어눌한 경우가 꽤 있었다. 드워프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말해주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일까.
“다시 말하지만, 돈은 아낄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드워프들은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뭘 만들고 싶어도 자금난으로 허덕이던 그들에게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사치스러운 제안은 매우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공사비용의 이야기다.
드워프족 자체는 가난한 편이라 자신들의 물건을 만들 때는 근검절약이 기본이다. 부탁을 받을 때도 이렇게 부유하게 공사비를 책정해 주는 의뢰인은 드문 편이 보통.
나처럼 통 큰 의뢰자는 없다.
“그럼 결정하신 겁니까?”
“당연합니다. 위대한 존재께서 시키는 일이라면 목숨 걸고 해야 할 판인데 이런 조건을 걸어주시다니….”
“이왕 하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죠. 억지로 하기 보다는, 안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루린은 그렇게 폭력적이지는 않아요. 자기 마음에 거슬리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지금처럼만 받들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옵니다만….”
“그리고 어차피 마을이 초토화된 거 살아남은 드워프 모두 현장으로 이동하시죠? 30명이 충분히 지내고도 남을 공간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6개월 안에 레어가 만들어지면 다른 광산을 찾아서 정착할 수 있도록 재건비를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내가 액수를 설명하자 드워프들은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장 살아가기가 막막한데 너무나도 좋은 제안이옵니다. 허나, 정말입니까? 위대한 존재께서….”
드워프 족장이 말끝을 흐렸다. 여전히 얼굴빛은 어두웠다. 드래곤이란 존재에 대한 공포심은 생각보다 대단한 듯하다.
그렇다면 드워프의 향상심을 자극해서 공포심을 이겨내게 만드는 수밖에.
“마을 재건비와 별도로 제가 추구하는 가장 웅장한 드래곤 레어가 만들어 진다면 이것 또한 성공보수로 드리죠.”
“예?”
나는 장로의 손 위에다가 뚜껑을 딴 명품 기계식 시계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아름다운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기술의 집약체.
드워프의 정신세계로는 정신을 못 차리고 침을 흘릴 물건이다.
기계식 시계는 영구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쿼츠 시계보다 관리가 더 복잡하다. 만약 드워프들이 이걸 따라 만들 수 있다면 관리도 알아서 하겠지.
사실 드워프들이 시계를 재현하길 기대한다기보다, 기계식 시계의 상상조차 하지 못할 예술적인 구조에 침을 흘리길 바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행성.
지구의 또 다른 평행세계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시간 구조가 24시간으로 현대와 정확히 일치했다.
“대체 이것은 무엇인가입니다?”
드워프들은 내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청년 드워프도, 나이 있는 족장 드워프도, 눈앞의 태엽 부품이 자아내는 화려함에 넋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1시간이라는 시간 단위로 표현해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고도 기술의 집약체죠. 아직 이 세상에 없는 기술로 만들어진 소환품입니다. 관심이 있다면 레어 건설에 성공하세요. 이 예술품을 보수로 드리겠습니다.”
“……!”
내 말이 끝나자마자 드워프들이 단체로 커다랗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진 드워프들.
처음 보는 기술력에 넋이 나간 모양새.
내가 시계를 다시 받아가자 내 손을 따라 드워프들의 시선이 움직인다.
“어떠세요? 끝나면 드리겠습니다. 모든 게 끝나면.”
“아아아!”
“그럴 수가!”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그럼 이동하시겠습니까?”
드워프 족장이 다른 드워프들을 둘러봤다. 재건비와 성공보수. 이미 이견이 없어진 상황이다. 게다가 드래곤의 명령이니 거부권도 없다.
“알겠습니다. 우리 밀리오레크 산맥의 드워프들은 모두 위대한 존재를 따르겠나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루린?”
나는 드워프들이 급조한 신의 권좌에 편하게 늘어져 있는 루린을 불렀다.
“이야기 끝났냐? 내 레어다! 이쁘게 만들어야 한다! 이쁘게. 히히.”
루린은 자신의 레어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면서 텔레포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30명이나 되는 인원을 동시에 옮기는 것은 상당한 마나가 소비된다.
“자, 모두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모여주세요. 족장님은 절 안으시고요.”
그리고 나는 루린을 껴안았다.
드워프 족장이 내 등을 안는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래도 루린에게 드워프의 손이 닿는 건 싫고.
그냥 싫다. 루린도 아마 싫어하겠지.
내 등 뒤로 드워프들이 서로가 서로를 안아서 기차놀이 같은 상태가 되었고, 곧 세상이 어둠에 휩싸였다.
잠시 후 환해진 세상. 아니 환한 것까지는 아니다. 언덕 아래 뻥 뚫린 공사부지는 마법으로 어둠을 밝혀 놨을 뿐이니까.
“이곳이 저희가 일할 곳입니까?”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주자 드워프들은 규모에 압도되어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곧 자기들끼리 모여서 이곳저곳을 가리키기도 하고 내가 건넨 설계도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진지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임시로 거처를 편성하세요. 그동안의 식재료는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공사재료도 말씀만 해주시면 모두 구해드릴 겁니다.”
“이런 규모의 레어라면 정말로 위대한 존재들께서 사용하시는 레어 중에는 최고로 만들어야죠.”
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6개월만 고생해 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나와 루린을 향해 거창하게 조아리는 드워프 족장.
나는 그를 향해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파티라도 할까요? 내일부터는 직접 만들어서 드셔야겠지만, 오늘은 제가 만들어 드리죠. 이 동네에 대해서 설명도 드리고요. 물론 웬만해서는 부지에서 나오는 건 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파티라니…? 그게….”
“그동안 갇혀 있느라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드셨을 거 아닙니까?”
“오오오. 요리래?”
“맥주 먹고 싶다이다.”
“그렇다입니다.”
드워프들이 음식이란 말에 반응한다. 그동안은 오크가 주는 개 사료 급의 음식을 먹은 것 같으니까.
“저희는 대지의 종족. 원래부터 광산 같은 지하에 사는데 특화된 종족입니다. 그건 걱정마시옵소서.”
드워프 족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 각자 맡은 일로 분주해진다.
드워프들은 쿵쿵거리며 숙소를 편성해 공사의 방향에 대해서 의논하기 시작했고 나는 요리에 집중했다.
드워프 하면 내 머릿속의 이미지로는 왠지 소시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드워프는 맥주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소시지의 느끼한 맛을 맥주가 잡아 주기 때문에 둘 간의 궁합은 발군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칼로리에 대한 문제는 있지만, 드워프가 칼로리를 신경 쓰지는 않을 테니.
나는 루린에게 부탁해서 곳곳에 대형 보호막을 만들었다. 마치 둥근 볼 같은 모양으로.
루린이 만든 보호막은 요리도구 대용이다.
“졸리다.”
마나를 너무 쓰게 했더니 루린은 눈을 비비면서 내 팔을 붙잡고 하품을 시작했다.
“그래도 먹고 자야지. 좀만 기다려.”
“알겠다. 배도 고프니까.”
루린은 계속해서 눈을 비비면서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요리과정을 지켜봤다. 레어를 건설해줄 드워프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게 루린답지만.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가서 난리를 치겠지.
나는 다시 소시지 만들기에 집중했다.
내가 만들 소시지는 우바가 아니다.
최고로 품질이 좋은 우카.
즉 소다.
크놀씨에게 부탁해서 목장에서 갓 출하된 질 좋은 우카를 얻어왔다. 우카의 각종부위를 마법으로 짓이긴다. 다진다.
웬만한 기계보다 빠르게 우카고기를 짓이겨 준다.
우카만 넣으면 재미가 없다. 나는 생 먼턴 버섯을 매우 잘게 다졌다. 현대에서는 송이버섯이나 표고버섯, 유럽에서는 그 비싸다는 송로버섯을 최고로 치지만 이곳에는 단연코 먼턴 버섯이다.
송로버섯, 즉 트러플이라고 불리는 버섯의 향보다는 못하지만, 맛은 기똥차다. 표고버섯과 송이버섯의 맛도 섞여 있다.
먼턴 버섯을 넣어서 감칠맛을 추가하고 매콤한 맛을 위해서 고추를 첨가한다. 이곳의 고추는 그렇게 매운 편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적합하다.
이렇게 몽땅 넣고 섞어서 두드린 고기는 크놀씨에게 손질을 부탁해두었던 소의 양곱창에다가 집어넣는다.
바로 구워 먹을 것이니 거창한 케이싱까지는 필요 없다. 아니, 양곱창도 충분히 거창한가.
이 작업을 반복한다. 30명이나 되는 인원이니.
루린은 그 지루한 작업의 반복을 보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고개를 사정없이 꾸벅꾸벅. 침이 흘러나온다. 이 칠칠맞지 못한 모습이 왜 귀여운 건지는 미스테리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양곱창에 고기를 넣기를 반복. 그렇게 완성된 조금은 굵은 소시지들.
이것을 이제 보호막에 올리고 한 번에 굽는다. 보호막 아래에서 파이어볼을 흩뿌리는 것이다.
나는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치이이이익!
치이이익!
곧 소로 만든 소시지가 현란한 소리를 내면서 익어가기 시작했다. 소시지가 익어가는 냄새는 자는 드래곤도 깨어나게 만든다.
아니, 진짜로.
“뭐냐 뭐냐! 맛있는 냄새다!”
루린은 벌떡 일어나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익어가는 소시지를 발견하고 황홀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조금 더 익어야 돼.”
칼집을 넣은 소시지가 벌어지고 뒤틀려 익어간다. 그 냄새 때문인지 드워프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티가 시작됐다.
양곱창의 고소함. 그리고 쫄깃함. 그리고 소시지의 부드러움. 기가 막히는 고기 맛. 그리고 맥주.
“자, 드시죠. 식으면 맛없습니다. 아, 물론 위대한 존재께서 먼저 드셔야 할 것 같네요.”
내가 루린을 가리키자 드워프들이 침을 닦으면서 일제히 물러났다.
“그래. 내가 먼저 먹겠다. 히히. 여기서부터 여기는 내꺼다!”
루린이 포크로 소시지를 푸욱 찍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간다. 아앙 벌려지는 입.
한입에 소시지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루린.
드워프들의 입에서 결국에는 침이 떨어졌다.
“크하아!”
맥주를 들이켜고 감탄사를 내뱉는 것과 동시에 내가 족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호와 함께 드워프들이 달려들었다.
“내가 먼저이다 입니다!”
“웃기지마라 어린놈이!”
맥주와 소시지 전쟁의 발발.
드래곤은 선언한 자기 몫을 와구와구 먹어치웠다.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드워프 족장이 내 옆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엘님. 왠지 요리를 먹다 보니 걱정했던 부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희 드워프를 이용하고 죽일 거라면 이런 대접을 해주시지는 않겠죠.”
“당연합니다. 그 부분은 걱정을 놓으셨으면 합니다. 그보다 어떻게 6개월이면 충분하겠습니까?”
“저희는 대지의 종족 드워프. 그것도 밀리오레크의 드워프입니다. 반드시 완성합니다. 반드시.”
족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해주고, 임시거처를 마련해주고, 그 이후의 살길도 마련해주신 엘님의 은혜에는 반드시 보답할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드워프의 명예를 걸고.”
“그 보답은 레어 건설에 모두 쏟아주시죠.”
내가 드워프 족장에게 대답한 바로 그 순간, 뒤쪽에서 루린이 내 얼굴을 발로 공격했다.
“음냐아. 고로롱. 푸하!”
실컷 먹더니 어느새 잠들어 버렸나 보다. 그전부터 졸고 있었으니 예상했던 장면이기는 하지만.
“그대가 그렇게 원한다면 안아주마! 히히!”
왜 웃기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잠꼬대를 하는데?
“위대한 존재께서 이렇게 따르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엘님은 대단한 인간님이십니다.”
족장은 루린과 나를 향해서 그렇게 중얼거렸고 루린은 질세라 잠꼬대를 중얼거렸다.
“내 레어에 같이 있자. 그대.”
내 옷을 꼭 잡아 쥐는 루린.
텔레포트 때문에 피곤할 테니 깨울 생각은 없지만, 잠꼬대는 맘에 안 든다.
그래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