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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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Chapter.10 그런 하루
“저, 여기…. 아직 합니까?”
손님도 없어서 가게를 닫으려는 찰나. 한 중년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5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는 바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네, 물론이죠. 앉으세요.”
“언덕 위에 식당이 있었다니 몰랐네요. 무심코 걷다가 놀랐습니다. 아, 혹시 술 있습니까?”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고민 많은 얼굴이다.
“네, 술이야 당연히 있죠.”
우리 식당의 기본은 술이니까 말이다.
“그대! 밥은 아직이냐!”
바로 그때 루린이 쿵쾅거리면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퇴근한 아버지께서 딱 저랬었는데.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잠시만요. 손님.”
“네, 괜찮습니다.”
머리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식욕 드래곤. 지하 건설현장을 누비고 다니더니 이 꼴이 된 모양이다.
“얌마, 머리가 먼지투성이야.”
“먼지?”
루린은 대뜸 머리를 나에게 들이민다. 털어달라는 뜻이다.
“그건 그렇고 밥은?”
머리를 털어주자 곧바로 밥 타령이다. 머릿결이 엉망이라 빗겨주기 시작했더니 뒷머리를 내게 기대며 편안한 자세로 배를 어루만진다.
“배고프다!”
“드립니다. 드린다고요.”
“아까 분명히 맛있는 거 먹여준다고 그랬다!”
“내가?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밥을 먹고 싶으면 뭐라도 하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서 짜리몽땅 들에게 내 방을 이쁘게 만들라고 말해주고 왔다. 그러니 일 한 거 맞지 않냐? 어서 밥줘라!”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드워프들은 그녀에게 조아리느라 바빴겠지. 오히려 드워프 일을 방해한 꼴이 아닌가.
“그게 일 한 겁니까?”
“일 맞다!”
“아니거든요.”
“맞는데. 이상한 그대.”
루린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머리 빗기는 데 방해된다. 어휴.
나는 간신히 머리를 정리해 준 뒤 그녀에게 말했다. 물론 굶길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그나저나 옷은 좀 갈아입고 오지? 너무 더러운데?”
“그치만, 오늘 입을 옷은 이거다. 옷 없다!”
“뭐?”
루린의 말에 뇌를 더듬었다. 그녀의 옷은 아마 총 5벌. 헐.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그러고 보면 상당히 헤졌다.
뭔가 충격적인 사실이라고 할까, 그동안 별로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할까.
“이런.”
“이런?”
“일단 알겠으니 갈아입는 건 보류. 어쨌든 좀만 기다려. 금방 밥줄 테니.”
“알았다. 배고프니까 빨리 줬으면 좋겠다.”
루린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포크를 들었다. 양손에 말이다. 쌍 포크 장착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손님에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술 이야기를 하다 말았죠?”
“저 여성분은 부인이십니까? 깨가 쏟아지시네요.”
“네?”
엉뚱한 질문을 하는 남자. 순간 멀찍이 앉아 있는 드래곤의 귀가 왠지 쫑긋거리는 기분이다.
“그건 아닙니다만.”
쿵! 쿵! 쿵!
단호하게 부정하자 루린은 테이블 위를 포크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마누라는 아니잖아. 저놈의 드래곤이?
“행복해 보이십니다. 부럽군요….”
남자는 아련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이 남자와 루린. 짰어? 왜 이래?
“제가요?”
“네. 저 여성분이 식당에 들어오니까 얼굴빛이 달라지시던데요?”
“그럴 리가요? 제가 얼굴빛이 원래 잘 바뀝니다.”
부정해주고는 무심한 척 루린에게 줄 고기를 꺼내 들었다. 남자에게는 소주를 내밀었다. 술이나 먹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희 식당에서만 파는 술이니 드셔 보세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술과 잔을 건네준 후 우카고기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엊그제 소시지를 만들고 남은 부분이다.
일부러 조금씩 남겨둔 이 부위는 구워 먹으면 진미로 꼽힌다.
“그건, 고기입니까?”
“네.”
“파는 음식인가요? 그러고 보니 출출하기도 하네요.”
“아, 맞습니다. 당연히 드려야죠.”
소주를 홀짝이더니 입맛에 맞았는지 연거푸 술을 마시던 남자의 주문.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냉장고로 가서 소스를 꺼내왔다.
소뼈를 넣고 푹 고아서 육수를 낸 후 벨르렌 고기를 갈아서 감칠맛을 더하고, 여기에다가 적포도주로 풍미를 추가한 뒤 간장과 후추 등으로 맛을 낸 후에, 만능의 먼턴버섯가루를 첨가하면 찍어 먹어도 뿌려 먹어도 맛있는 소고기구이 전용 소스가 마련된다.
바로 그 소스를 루린과 손님에게 따라주고 철판에 고기를 올렸다.
남겨둔 부위. 제 1탄은 안창살이다. 소고기 중의 소고기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
소 내장 주위의 살이기도 하고 약간 검붉기도 한데 오히려 검붉은 것이 좋은 편이다. 이 빛깔에는 묘한 매력이 충만하다.
“바로 굽는 겁니까?”
“네, 우카의 내장을 감싼 부위인데요. 드셔 보시면 다른 부위랑 다르다는 걸 아실 겁니다.”
나는 설명을 하며 안창살을 굽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마성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간이고 드래곤이고 할 것 없이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소리다.
철판에서 적당히 익은 안창살을 남자와 루린에게 내밀었다.
“오오, 육즙이! 다른 고기보다 육즙이 넘친다! 맛있다!”
“그렇네요. 고기를 자주 먹는 건 아니지만 이런 건 또 처음 먹어봅니다!”
남자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우카는 오랜만에 먹네요. 한 10년 전일까요? 군에 있을 때 우카 관련해서 재미난 소문을 들었던 게 생각나네요.”
“군에 있으셨습니까?”
“뭐 누구나 한번은 끌려가는 징집이지 않습니까? 특히 지금이야 몬스터를 완전히 북쪽 대지로 몰아넣었다지만, 그때는 몬스터를 몰아내도 금방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잖습니까?”
“그거야 그렇죠.”
내가 소환됐을 무렵이, 이 대륙에서 몬스터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때였다. 덕분에 곳곳에서 몬스터와의 싸움이 일어났고.
하필이면 소환된 장소도 전쟁터라서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인의 길을 가게 되었었지.
“그나저나 얼마나 재밌는 소문이길래 10년이나 지났는데 기억하세요?”
“아, 한때 부대에 있던 사람한테 들은 건데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지 뭡니까?”
남자는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다시 안창살을 입에 넣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립된 한 부대가 우카 한 마리로 위기를 모면했던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카로 오크를 낚아서 이겼다던가요. 신기했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루린벨트에 고립된 한 부대의 처절한 생존기. 듣기만 해도 참, 뭐랄까 힘이 나더군요.”
남자는 허허, 하면서 다시 술을 마셨다.
나는 그저 웃으면서 이번엔 다른 부위를 철판에 올렸다. 2번째 부위는 우설 구이다. 즉 소의 혀. 먹어 본 사람은 계속 찾게 된다는 그 부위.
구워놓으면 동글동글한 게 왠지 귀여운 모양이다. 내가 추천하는 소 구이에는 빠질 수가 없는 부위기도 하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부위입니다.”
치익- 치이이익-
우설 구이가 익어가기 시작한다.
10년 전 루린벨트의 고립.
사실 그건 내 이야기다.
군에서 거의 포기했던 고립된 부대의 생존기에 대한 소문이 꽤 퍼졌던 건 기억한다. 새삼스레 눈앞의 남자에게 들으니까 좀 뭐라고 할까. 추억 돋는다고 할까.
10년 전이라면 당연히 루린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기.
최강도 아니었으며 10년 전이면 5클래스에 불과했던 시기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의 이야기지. 남자는 추억에 잠기듯 그때 이야기를 계속해서 꺼내기 시작했다.
“음, 자세히는 뭐랄까 우카 한 마리를 맛있게 구워서 오크를 유인해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인데, 그때 병사들은 그 맛없다는 오크 고기를 먹으면서 승리를 쟁취했다던가.”
그렇다.
오크 고기는 정말로 맛이 없었다.
맛이라고는 없는 놈이다.
질기기만 하고, 고무를 씹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때는 오크 고기라도 먹어야 연명할 수 있는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굽고 있는 건 오크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자랑한다.
나는 금방 구워진 우설 구이를 각자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쫄깃한데…. 고기가 이렇게 쫄깃할 수 있나 싶으면서도 아까 거랑은 전혀 다르군요.”
“이것도 맛있다!”
루린은 곧바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리 드래곤이 맛있다고 한다면 정말로 맛있는 거겠지.
남자 또한 신기한 얼굴로 우설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 소스의 깊은 맛이 또 일품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방금 드신 게 우카의 어느 부위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묻자 남자는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실은 이건, 우카의 혀라고 하는 진미입니다.”
“네에?”
남자가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저 먹기에 바쁘던 루린도 반응을 한다.
혀라는 소리를 듣더니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 상태로 자신의 혀를 삐쭉 내밀고 외친다. 발음은 다 새고 있지만.
“혀아이. 이어 마이냐!”
“그래 그 혀.”
긍정해주자 루린은 자기 혀를 빼서 남은 우설과 비교하는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우설을 들고는 오오오! 감탄을 연발한다.
남자도 신기한 얼굴이었으나 이내 자책하듯이 중얼거렸다.
“혀라니…. 그렇군요. 혀라. 마치 저 같군요.”
“네?”
“저는 혀를 잘못 놀려서, 놀려서… 딸을 잃었습니다.”
다시 아련한 얼굴이 되는 남자. 그냥 무시하기는 너무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지라 일단 남자에게 반문했다.
“딸을 잃었다고요?”
“네, 실은 아내가 딸을 데리고 도망친 지 벌써 15년이 흘렀습니다. 15년이요….”
“15년이라고요? 그동안 안 찾아보셨어요?”
“아예 다른 도시로 잠적을 해버려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남자하고 눈이 맞아 도망친 것 같은데…. 그럴 거면 딸은 두고 갈 것이지. 이제는 원망스럽지도 않습니다. 그저 딸을 좀 만나게 해줬으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 바람입니까?”
“그건 어려운 바람은 아니죠.”
처음에 들어오자마자 술을 찾던 건 이 일 때문이었던가.
“일 때문에…. 아, 저는 벽돌공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젊을 적에는 일이 바빠서 제대로 못 들어간 적도 꽤 많았었는데…. 그게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어요. 전 그저 좀 더 벌고 싶어서…. 다 가정을 위해서….”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루린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기 계신 아가씨같이 딸하고 비슷한 나이의 여자를 보면 너무 반갑습니다. 딸을 보는 것 같아서.”
루린이 내뿜는 기운은 보통의 남자들은 다가가지조차 못하게 만든다.
대놓고 드래곤 피어를 내뿜는 것은 아니지만 치근덕거리지 못하게 하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딸을 보는 감성이라면 통하지 않는지 남자는 의외로 루린을 똑바로 바라봤다.
루린은 내가 구워준 얇디얇은 차돌박이를 먹다가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쳐다본다.
“뭐냐! 뭐냐?”
루리둥절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그보단 고기가 먼저인지 다시 고개를 돌려 입을 벌렸다.
남자도 마저 고기를 다 먹고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갔다.
“뭐 언젠가는 만날 날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 후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친 남자에게 줄 만한 술.
장로에게 내어주었던 오래된 위스키에다가 꿀과 레몬을 섞는다. 그리고 팔팔 끓는 물을 식힌다. 적당한 온도의 물을 부어서 섞으면 핫한 위스키가 된다.
“인연이 있으면 꼭 만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걸 드셔 보세요. 식후 술입니다. 이걸 마시고 몸을 덥힌 후 돌아가 푹 주무세요.”
“이건…? 술입니까? 술이….”
남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잔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에 가져갔다. 그리곤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뜨겁네요.”
“그렇죠?”
남자는 잠시 술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나는 식사를 마친 루린에게 다가가 입을 닦아주었다. 얼굴을 맡겨오는 루린의 입가를 쓱쓱 닦고 있자니 남자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뜨겁고 산뜻하고 깊은 맛이…. 아니 뜨겁다기보다는 따뜻하네요. 하긴 그 우카와 함께 고립된 병사들도 결국 살아났는데 저도 언젠간 딸을 만날 수 있겠죠?”
남자는 술을 조금씩, 조금씩 그러면서 계속해서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나간 남자.
밤도 깊었기에 나는 식당의 뒷정리를 시작했다. 루린은 슬금슬금 맥주를 향해 움직인다. 냉장고를 향해서 잠입하더니 재빠르게 캔을 꺼내 손에 들었다. 그리곤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곤 2층으로 줄행랑을 쳤다. 맥주캔을 양손에 쥐고, 하나는 입에 물고 말이다.
3캔이나 마실 셈이냐.
어휴.
먹겠다는데 뭐 어쩌겠어.
어쨌든 식당 문을 닫으려는데 그때 웬 여자가 식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소리쳤다.
“저기요!”
“네?”
“아까 왔던 그 남자. 이 식당 단골인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