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
# 4
Chapter.2 친구와 소주
“실은 멘트씨께서 가게를 개업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해 주셨어요.”
“그게 무슨, 그럼 크놀씨는 돈도 없이 가게를 개업하려고 했다는 말인가요?”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이와 저 둘 다 장사란 걸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라 사기꾼 놈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좌절했던 적이 있어요. 용병 일을 하면서 모아온 돈을 몽땅 잃어버렸죠. 그러고 보면 참 무슨 생각으로 가게를 시작하자고 한 건지···. 너무 순진했어요.”
사기라. 그건 어느 도시를 가도 들끓기는 했다. 내가 식당을 낼 때도 들러붙으려는 사기꾼이 몇이나 있었다. 물론 나에게 사기를 치려는 사기꾼들에게는 모조리 지옥을 맛보여줬지만.
“남편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에요. 사기를 당한 후 꿈을 접겠다고 했어요. 저와 둘만의 평화로운 삶을 살겠다며 서로 오래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용병 일을 그만두고 그이의 아버지가 하시던 푸줏간 일을 이어 가려고 한 것인데···. 그게 엉뚱한 사기를 당해서 실패하자 그 사람은 웃는 일이 없어졌고 삶의 희망을 잃은 듯이 행동했어요. 그래서 저는 멘트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는….”
레이느씨는 그렇게 말하곤 멘트씨를 보았다. 그 눈빛에 깃든 것은 애정은 분명히 아니었다. 담겨있는 것은 고마움과 존경.
분명히 그것이 전부다.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 이유였군요. 그럼 오해를 풀어야죠. 두 분 다 저녁때까지 저희 식당으로 오실래요? 이미 더 속일 수 없는 지경에 왔잖아요? 그러니 크놀씨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원만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푸줏간이 닫는 일을 피하고 단골 거래처를 살리기 위한 노력.
그걸 위해 요리 솜씨를 발휘할 때다.
나는 하품을 하고 있는 루린을 질질 이끌고 크놀씨를 찾아갔다. 아직도 술이 덜 깨 있는 크놀씨에게 무조건 식당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가게로 돌아와 화해의 자리를 위한 세팅을 준비했다. 당연히 바 테이블이 아닌 4인용 테이블에 그들을 앉힐 생각이다.
내놓으려는 요리는 사이좋게 먹을 수 있는 샤브샤브.
냄비에 육수를 낸다. 그리고 크놀씨가 자랑하는 벨르렌고기. 드디어 벨르렌 고기를 사용할 때가 왔다.
몬스터인 벨르렌의 육질은 샤브샤브에 매우 어울렸다. 금방 익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들야들한 식감이 특징이 빨간색의 고기.
육수는 물론 멸치와 다시마다. 그리고 먼턴버섯을 투하했다. 이 버섯은 국물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귀한 재료다. 이 세상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멸치와 다시마가 이질적인지라 먼턴버섯으로 익숙함을 더해줄 필요가 있었다.
육수를 떠서 맛본다. 기본 육수인데도 불구하고 깊은 맛이 난다. 조미료를 넣지 않았는데도 MSG의 맛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것이 먼턴버섯의 위대함이다.
여기에 소고기보다 더 깊은 맛을 내는 벨르렌 고기가 있다. 나는 크놀씨에게 받아온 벨르렌 고기를 매우 얇게 썰어냈다. 얇게 썰어낸 벨르렌 고기는 소의 차돌박이랑 비슷한 색감을 자아낸다.
“함박스테이크는?”
“이따가 해줄게. 식당 밖이나 좀 쓸어 줄래?”
“그런 하찮은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러세요?”
“그럼 돌아가라고 하려는 것이지? 난 일족이 싫단 말이다. 항상 못난 놈이라고 놀리고, 그리고 인간도 싫다.”
“그러니까 일을 도우라고요!”
“으으으! 졸린데.”
나는 빗자루를 꺼내서 넘겨줬다. 루린은 어쩔 수 없이 빗자루를 받아들더니 터덜터덜 문밖으로 걸어가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청소하는 드래곤이라. 매우 이색적이다. 하지만 드래곤씨는 두 번 정도 바닥을 쓸더니 가게 난간에 기대어 고롱고롱 졸기 시작했다.
아이고야.
드래곤에게 뭘 바라나.
포기하고 벨르렌 고기를 써는 데에 집중했다. 어쨌든 크놀씨 가게의 고기는 신선도가 정말로 좋긴 좋다.
이 세상은 자유직업의 시대다.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있을 뿐. 직업 간의 귀천 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이 정도 푸줏간이면 좀 더 커다란 유통망을 가지고 키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고기를 썰다 보니 레이느씨와 멘트씨가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이런 곳에서 식당을 하십니까?”
“멘트씨, 이래 봬도 아까 그 레스토랑하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어요. 사실 남편이 단골만 아니었어도 여기로 모셨을 거예요. 확실히 남편이 오해를 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참, 비밀이라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여기까지 와버리다니.”
“도중에 가게를 접는다고 날뛰면 곤란하니 그런 거 아닙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네.”
“맞는 말씀입니다. 자, 여기 앉으세요.”
나는 두 사람을 테이블로 인도했다. 그러고 있으려니 크놀씨가 도착했다.
“레이느에 대해서 알아봐 준다 해놓고 무조건 식당으로 오라니! 대체 뭔 일인데 그래?”
도착하자마자 아직 술이 덜 깬 듯 비틀거리던 크놀씨는 레이느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멘트씨와도.
크놀씨는 갑자기 힘이 솟아난 듯 씩씩거리며 멘트씨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새끼야! 네놈이, 네놈이 감히 레이느에게 손을 대?”
“잠깐만요. 크놀씨.”
“잠깐만은 뭐가 잠깐만! 이놈 자식이 자세한 사정을 알아본다더니 아예 두 사람을 이렇게 이어 붙여놔?”
“여보, 그게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날 부른 이유가 뭐야? 헤어져달라는 거야? 기가 막혀서, 좋아. 다 죽여버리겠다. 다 죽여버리겠어!”
이미 알코올이 들어간 상태의 크놀씨가 분을 참지 못하고 난동을 피우려 들었다.
“멘트씨가 우리 개업할 때 돈을 빌려줬고 그 돈을 갚기 위해서 매달 만났던 것뿐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좀 진정해 여보!”
“뭐?”
크놀씨가 눈만 깜빡이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당신 성격 알잖아. 멘트씨가 평생 모은 돈의 대부분을 빌려줬다는 걸 알게 되면 당신이 가게를 개업했겠어? 죽어도 그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레이느씨가 급기야 눈물을 글썽거렸다.
“뭐, 뭐?”
크놀씨는 당황해서 맨트씨를 쳐다보았다.
“잠깐만, 레이느, 그 돈은 분명히 영주성에서 범인을 잡아서 되돌려 줬다고 하지 않았어? 분명히 그랬잖아?”
“당신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그 말을 덥석 믿어버린 거지 솔직히 그걸 돌려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그럴 수가···.”
멘트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놀씨는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는 내 목숨을 구해줬지. 그런 친구가 행복을 찾으려는 마당에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네놈과 더는 술을 못 마시게 되더라도 말이다! 속인 건 미안하다. 하지만 너에게 사실을 말하면 받을 리가 없다는 말에는 동의했기에 속일 수밖에 없던 거였다. 세월이 지나서도 한 번 속인 것이 찔리게 되어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되었고.”
“너희들….”
레이느씨가 울먹거리면서 말을 보탰다.
“당신이 워낙에 자괴감에 빠져서 마치 자살을 할 사람처럼 행동하니까 난 무서워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 멘트씨는 처음에는 심지어 돈을 갚을 필요도 없다고 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그래서 꼬박꼬박 적은 돈이라도 갚으려고 만났던 것뿐이야. 어떻게 그걸 오해할 수 있어?”
크놀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슬슬 끼어들어서 크놀씨를 부축해 테이블에 앉혔다. 그러자 크놀씨가 힘겹게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하아. 바람피우는 게 아니고 네놈이… 네놈이 평생 모은 돈을 나에게 빌려준 거였어? 나 같은 놈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냥 자주만 찾아와줘도 고마울 것을.”
“네가 잘못되는 꼴을 어찌 두고 볼 수 있겠냐? 난 페런 전투에서 네가 나를 밀치고 칼을 맞았던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니까 네놈의 자존심만 없었더라도 10년 동안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는 일은 없었겠지! 어차피 나는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계속 용병 일을 할 작정이었으니 돈은 필요치도 않았어. 혼자 살 수 있는 생활자금까지 빌려준 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
크놀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그 돈을 돌려주고 가게를 접는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을 듯 보였다.
“게다가 10년간 돈은 다 갚았어! 그러니까 이제 와서 돈을 돌려주느니 그런 소리를 해도 소용없어. 그러니 가게를 접는다느니 하는 말은 아예 하지 말아, 여보.”
콰앙!
레이느씨의 애원에 크놀씨가 입을 앙다물고 책상을 내리쳤다.
레이느씨는 깜짝 놀라서 몸을 흠칫거렸다.
“그런 너희들을 의심하다니, 나란 놈은··· 젠장, 빌어먹으을!”
하지만 다행히 애꿎은 분풀이는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화라고 할까. 그래서 끼어들었다.
“세 분, 일단 침착하고 이 요리부터 맛보시고 이야기하죠?”
나는 팔팔 끓는 냄비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크놀씨 가게에서 떼어온 벨르렌 고기 세 점을 집어넣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육수 안에서 벨르렌 고기는 금세 익어버렸다.
그걸 건져서 세 사람의 앞접시에 가져다 뒀다.
“그걸 들어서 그 앞에 있는 소스를 찍어 드셔 보세요.”
세 사람은 어리둥절해 보였으나 정성 들여 해준 요리라고 생각했는지 거부하지 못하고 고기를 입에 가져갔다.
“오오.”
“맛있네.”
“맛있어요. 엘씨.”
“그렇죠?”
나는 잠시 숨죽이고 입을 열었다.
“이게 크놀씨가 마련해준 고기로 만든 겁니다. 먹고 회포를 푸세요.”
나는 레이느씨에게 고기를 맡긴 후에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다. 냄비에서는 물이 팔팔 끓어올랐다.
세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자네 고기 보는 눈이 여전히 좋구만? 이 고기 맛이 일품이야.”
“그런가? 내 솜씨야 따라올 놈이 없긴 하지!”
멘트씨 덕분에 침묵이 감도는 테이블에 대화가 시작됐다. 그러면서 크놀씨가 김이 피어오르는 육수를 호로록 마시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조금씩 진정 돼가는 분위기였다.
“야, 임마! 술 좀 가져다 줘! 딱 봐도 술이 필요한 상황 아니냐? 그 소주! 소주를 가져와. 내 친구에게도 소주 맛을 보여 줘야겠으니.”
크놀씨는 고개를 홱 돌려서 나에게 외쳤다. 그래 딱 술이 어울리는 자리다. 나는 저절로 나오는 미소를 참지 못하고 소주를 배달했다.
소주를 마시더니 곧 크놀씨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나쁜 놈아···! 나쁜 놈아···. 고마워. 고맙다고. 고맙단 말이다! 크흨, 근데 뭐가 이렇게 연기가 뜨거워···? 야! 엘! 연기 좀 어떻게 해봐! 눈물이 다 나오잖아!”
“그게 왜 냄비 탓이랍니까.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시끄럽다!”
크놀씨는 다시 국물을 떠먹더니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멘트씨의 소주병과 병을 부딪친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레이느씨도 국물을 떠먹었다. 아무래도 오해는 잘 풀린 것 같았다.
오랜만에 식당이 북적거린다.
좋은 현상이다. 이로써 내가 애용하는 푸줏간이 닫을 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잘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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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