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4)
# 54
Chapter.13 태풍과 공깃돌
“일단 몸을 닦고 옷 갈아입고 내려와. 빨래는 레어 공사현장 빈 공간에다 말리면 되니.”
“알겠다….”
루린은 훌쩍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혼자 올려 보내놓으니 불안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따라 올라갔다.
루린은 젖은 옷을 훌훌 집어 던지고 수건을 집어 든 채 서있었다. 얼굴에는 귀찮음이 가득하다.
“니가 그렇지….”
“그대!”
수건을 들고 나에게 뛰어오는 루린. 즉 해달라 이거지.
어쩔 수 없이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옷은 니가 입어. 옷 입고 내려와.”
그리고 엄명을 내린 후에 내려왔다.
이제는 요리나 해볼까 싶다.
아직 점심을 안 먹은 관계로 따뜻한 요리가 당겼다. 오장육부를 따뜻하게 해주는 그런 요리가.
물론 몸을 덥혀주는 그런 요리야 여러 가지 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국물요리가 왔다갔다 춤을 춘다.
거기에 비바람까지 불어대니 얼큰한 국물이 최고다.
“그대!”
루린은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내 등으로 달려들었다. 뭐지, 이 빠른 속도는.
혼자 옷을 갈아입으라고 두면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드래곤이다.
“추우니까 난로가 되라! 그대의 등은 따뜻하니까!”
다짜고짜 백허그를 해오는 루린 때문에 들고 있는 칼을 놓칠 뻔했다. 등 뒤에 느껴지는 감촉 때문이다.
현대의 여러 가지 속옷도 구비해줬건만, 안 입었다. 안 입었어. 이놈의 드래곤이 진짜.
괜스레 호흡이 가빠진다.
칼까지 들고 있는데 이러면 정말로 곤란하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일부러 더 다그쳤다.
“얌마! 칼을 들고 있는데 뛰어들면 어떡해? 놓쳐서 발등에 박힐 뻔 했잖아! 좀 상황을 보고 달려드세요, 드래곤님아.”
“추운데 어떡하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루린은 내 등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내 등에 볼을 부비부비 비비는 게 느껴진다. 그래, 그나마 볼은 괜찮다. 아니 괜찮지 않다.
드래곤님아, 떨어져야 밥을 하지.
“추우면 이불 뒤집어쓰고 있어. 밥 안 먹을 거야? 이러고 있으면 굶어야 되는데?”
“그건 싫다. 밥해라! 배고프다!”
“그러니 떨어져라.”
“싫다!”
“배고프다며?”
“이 상태로 해라!”
“싸우자는 거?”
“히히히! 어떻게 알았지!”
루린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면서 안하무인 스킬을 시전. 그러면서 나를 더 꽉 껴안는다.
그녀의 양팔이 내 가슴을 꽉 조였다. 아주 보란 듯이 도전적이다. 싸우자는 거면 싸워줘야지. 그 도전, 받아들여주마.
“그래, 덤벼라.”
나는 칼을 내려놓고 팔을 내려서 루린의 허리춤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간질간질-
“푸하하하하! 하지마라!”
“너나 놓으시지!”
“꺄하하, 그대 손이 으하항, 허리 약하다! 하지마라!”
우리 둘은 곧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떨어뜨리려는 나와 참아보겠다는 루린. 엎치락덮치락 난리가 났다.
결국 너무 간지러웠는지 루린이 나를 노려보면서 뒤로 물러났다. 사실상 항복 선언이었다.
간지럽히는 것도 힘들었지만 어쨌든 간신히 이겼다.
허리춤에 간지러움을 심하게 타는 루린은 웃다가 지쳤는지 거친 숨을 들이켰다.
하아, 하아 하악!
“그대, 그대, 내가 분명히 간지럽다고 했다! 했는데!”
루린의 눈가에는 하도 웃어서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그래서 등을 돌려버렸다. 보고 있자니 말려들 것 같아서.
“항복했으면 가서 앉아있으세요. 안 굶으려면 그만 까불고.”
“그대그대그대, 그런데 덕분에 안 춥다!”
“그러냐? 웃다가 혈압이 상승했구만?”
“춥지 않으니까 봐줬다.”
루린은 선심 쓴다는 듯 말하며 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포크를 쥔다.
“봐줬으니까 밥 줘라! 당장 당장!”
“드래곤아, 식칼 날아가면 받을 수 있겠어? 지금까지 방해한 사람이 누군데?”
“그게 누구냐.”
시치미 떼는 드래곤. 뭐 식칼을 던진다고 죽을 리도 없고. 태연하게 피하거나 심지어 칼이 박혀도 멀쩡하겠지만.
그렇다고 진짜 던질 수도 없는 노릇.
살짝 긁혀서 피가 나는 것조차 싫으니까.
그래도 그냥 두기엔 너무 뻔뻔하니, 양 볼을 잡아 당겨줬다. 아주 세게. 부드러운 볼은 아주 잘 늘어난다.
“이어어 머하는 거냐!”
뭔가 재밌어서 이리저리 땅기다가 쿨하게 등을 보이고 다시 요리로 돌아왔다. 루린은 볼을 쓰다듬으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지만, 무시가 최선이지.
오늘의 점심은 국물 요리다.
아까도 말했지만, 비가 내리니까 아무래도 따뜻한 국물 요리가 당긴다. 국물 요리 중에서도 한식.
지금 나는 한식이 먹고 싶은 기분이다.
최근엔 꽤나 양식 위주로 만들어 왔었는데 비바람이 거세니 더 고향이 생각나는 오늘.
나는 칼국수를 머릿속에 그렸다.
드래곤이 감탄할 칼국수를 만들어 줘야지.
도마 위에다가 팔렌큐를 한 마리 터억 올린다. 내장부터 시작해서 냄새가 날 수 있는 부분은 완벽하게 제거한다.
칼국수하면 진한 닭칼국수다.
닭칼국수를 만드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한식이다.
조금의 귀찮음만 감수한다면.
현대에서라면 그냥 만들어진 칼국수 면을 사다가 풀어 넣기만 하면 되니 육수만 뽑으면 되는 일.
물론 나는 명색이 요리사니까 약간 힘들기는 해도 밀가루를 이용해서 칼국수 면발을 뽑는다.
반죽에 있어서는 두들겨 패는 공격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밀가루 반죽의 찰짐이 족타나 수타보다 더 낫다. 물론 그 반죽은 이미 해뒀다.
그러니 중요한 건 국물이다.
뼈의 결대로 칼집을 넣어서 분해한 팔렌큐를 소금을 넣고 끓인 물에다가 1차적으로 데친다.
5분정도 끓이다가 빼줘야 한다. 그저 데치는 거니까.
이 작업의 이유는 기름과 잡내를 제거하는 데에 있다.
“오오, 그 녀석은!”
루린은 곧바로 팔렌큐 냄새를 알아보고 킁킁거렸다. 팔렌큐를 매우 좋아하는 루린이다. 그러니 기대감을 품은 얼굴로 킁킁킁 콧김을 내뿜는다.
“그래, 이 녀석으로 스프를 만들 거야.”
“냄새 맡으니 더 배고프다.”
루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늘어졌다.
닭 뼈는 진한 육수를 내고 살은 맑은 육수를 내지만, 닭칼국수는 뼈와 살 모조리 집어넣는 게 좋다. 물론 내 기준이다.
일률적으로 정해진 요리법은 없다. 어디에나 응용이 가능하니까.
“배고프면 도와라. 드래곤. 혼자하기 힘들다.”
“도우면 빨라지냐?”
“그러엄.”
씨익 웃어주자 루린이 뭐에 홀린 듯 주방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물론 돕는다고 빨라지진 않는다. 적어도 육수를 내야하는 국물요리에서는.
진하게 육수를 내려는 경우에는 찬물 상태에서부터 팔렌큐를 넣는다. 팔렌큐를 퐁당퐁당 모조리 투하하고 여기에 통양파와 파의 흰 부분을 대충 쑤컹쑤컹 썰어서 마찬가지로 퐁당시킨다.
통후추를 넣어주면 잡내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 좀 더 뒷맛이 개운한 국물을 원한다면 통후추를 넣어야한다.
그리고 비법 아닌, 비법.
닭에는 이노신이라는 물질이 나온다.
이노신은 표고버섯의 글루탐산 맛을 돋워주는 녀석이다. 고기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표고버섯이 이노신을 가진 닭과 만나면 감칠맛은 폭발한다.
그러니 특별히 닭칼국수에는 먼턴버섯이 아닌 말린 표고를 적당히 넣어준다. 너무 많이 넣으면 오히려 맛을 버리니까 적당한 게 좋다.
이러고 30분 동안 푹 끓이면 된다.
“나, 뭐하냐?”
“파이어볼을 지켜보고 있다가 국물에 거품이 일어나면 걷어내.”
“그대는?”
“난 면을 만들 거야.”
“그러냐. 요리는 어렵다. 흐힝.”
살짝 못 미덥지만, 일단 드래곤에게 육수를 맡기고 나는 면 뽑기에 돌입했다. 루린은 가만히 서서 나름 거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분후. 루린은 거품을 걷어내는 국자를 든 채로 졸기 시작했다.
불 앞에서 졸다니. 화상 입으려고 작정했나.
꾸벅꾸벅꾸벅꾸벅.
루린의 머리가 냄비 앞에서 꾸벅거린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얌마! 아이고오!”
나는 루린을 재빨리 안아다가 테이블 위에 널어놓았다. 그새를 못 참고 잠드냐. 하긴 루린이 하기엔 너무 졸린 작업이기는 했다. 가만히 서서 거품이 일어날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야 하는 작업이라니.
드래곤과 완전히 상극.
그래도 덕분에 면은 다 만들었으니 홀로 육수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계속해서 거품을 걷어낸다. 그리고 파이어볼의 세기를 줄인 후 다시 또 15분을 끓이면서 마찬가지로 거품을 제거.
쉽다고 하긴 했는데 다만 시간과 정성은 필요하다. 육수란 그런 거지.
이 정도 끓였으면 채에 받쳐서 국물만을 걸러낸다. 그리고 팔렌큐를 제외한 다른 건 다 버린다. 팔렌큐는 뼈와 살을 분리한다.
분리한 뼈는 다시 국물에 넣고 조금 더 끓이고, 발라낸 살은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을 한다.
이제 거의 마무리다.
육수 냄비에 청주를 넣어 마지막으로 잡내를 제거한 후 육수를 작은 냄비로 옮겨서 표고버섯과 파를 썰어 넣는다.
그리고 면을 넣어준 뒤에 끓이면 된다.
2인분이니까 작은 냄비면 충분.
그 후에 발라낸 팔렌큐의 살을 고명으로 올려주면 모락모락 따끈따끈 진한 닭육수의 맛과 면의 쫄깃함, 그리고 표고버섯과 상호작용한 국물이 일품인 작품이 탄생한다.
배에서 빨리 먹여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지금.
나는 테이블에서 자고 있는 루린을 깨웠다.
“밥 다됐어. 어서 일어나라.”
“우웅? 드디어 다됐냐?”
루린이 눈을 부비면서 잠에서 깼다. 배가 고프긴 한지 비칠거리면서도 한 번에 일어나 바 테이블로 이동해 의자에 앉는다.
그런 루린의 옆에 나란히 앉아서 닭칼국수, 아니 팔렌큐칼국수 두 그릇을 내려놓았다.
“이건 닭스프로 만든 국수요리야. 어서 먹어. 배고팠지?”
“오! 비 녀석이 좋을 때도 있군. 휴업이니까 점심인데도 그대랑 같이 먹을 수 있는 거냐! 그건 좋구나! 히히히.”
“그래, 그러니 어서 드세요.”
“알겠다!”
루린이 포크로 면을 집어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파스타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찰지게 면을 목구멍으로 흡입한다. 그걸 보면서 나도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내가 했지만 맛이 아주 잘 들었다. 역시 팔렌큐 자체가 유기농 그 자체다 보니까. 후후.
후루루루루룩!
“맛있어?”
“후아아아!”
쾅.
루린은 대답대신 국물을 왕창 들이켠 후 냄비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매우 만족한 얼굴이다.
“그대가 해주면 뭐든 맛있다!”
확고한 얼굴로 외치는 드래곤. 마치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당연한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우리 루린.
맛있는 게 당연한 거라고 해도 저렇게 맛있다고 해주면 솔직히 기분이 좋아진다. 힘든 조리과정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내가 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준다는 보람이 깃든다고 할까.
그러니 밥을 얻어먹는다면 일단 맛있다고 칭찬하고 보는 게 생존의 비법이지.
어쨌든 점심은 그렇게 지나간다.
여전히 비는 내린다. 바람은 좀 줄어들었으나 빗줄기는 여전히 강렬하다.
이 상태로는 저녁장사도 아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