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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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Chapter.13 태풍과 공깃돌
“게임이나 하자, 후후, 내기 2탄이다.”
“내기이?”
루린의 눈썹이 물결친다.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지난번의 악몽이 떠오른 것 같았다.
“싫다. 또 질게 뻔하다. 저번에도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내기였다! 그대는 사기꾼이다! 그대가 만드는 게 맛없을 리가 없었으니까!”
졌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루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정하다. 그때는 확실히 승패가 정해진 승부였지.
밤이 맛없을 리가 없잖아?
밤은 진리니까.
“아냐, 아냐. 이번엔 공정해. 앉아봐.”
내가 강하게 주장하자 루린은 불신 가득한 얼굴이지만 일단은 의자에 앉았다.
“어쭈? 의자가 이렇게 비어있는데 왜 하필 여기에 앉냐? 으이구.”
루린은 4인용 테이블. 즉 빈 의자가 3개나 있는데 당연하다는 듯 내 허벅지에 앉더니 여전히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뭔 내기냐는 궁금증을 담은 시선이다.
내 허벅지에 앉은 것에 대해선 너무나도 파워당당해서 오히려 내가 잘못한 느낌이다. 어휴.
“앉으라니까 앉았을 뿐인데. 너무하다 그대는.”
그 부분을 지적하니 투덜거리면서 옆 의자로 간다. 나는 그런 드래곤의 앞에다가 조그만 돌 5개를 내려놓았다.
“이게 뭐냐?”
“후후, 고향의 민속놀이인데 공기놀이라는 거지.”
“알겠다! 돌을 먼저 가루를 내는 쪽이 이기는 거냐? 그건 쉽다!”
“풋.”
어찌하면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거지? 그저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러자 루린은 팔을 치켜들며 화내기 시작했다.
“그대 표정이 얄밉다! 아니냐?”
“당연히 아니지.”
“그, 그럼!”
“그럼?”
“설마 돌을 먹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대나 먹어라. 난 안 한다.”
옆 의자로 옮겨 앉아 몸을 반쯤 틀어 나를 보더니 으으- 거리는 드래곤.
상상력이 빈약하구만. 뭐, 한국의 민속놀이를 이세계의 드래곤이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런 거 아니야. 이걸 할 때는 마나를 쓰면 안 돼. 드래곤의 능력 또한 금지야. 썼다간 반칙패니까 순수하게 손의 움직임으로만 해야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나는 직접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1단. 2단. 3단. 4단. 5단으로 이어지는 공기놀이. 세세한 규칙은 정하기 나름이다. 나는 손등 위에 올려놓은 것을 다시 잡는 일명 꺾기를 할 때, 이때 잡은 공깃돌 숫자를 점수로 해서 먼저 해당 점수를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는 공기놀이를 어릴 때 곧잘 하곤 했다.
“호오.”
규칙을 설명하자 드래곤은 불신이 가득하던 얼굴을 풀었다. 할 만한 내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훗, 미안하지만 공기놀이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 괜히 공깃돌을 꺼내는 건 아니라는 말이지.
드래곤에게 패배를 안겨서 인간 세상의 또 다른 개념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숭고한 목표.
“좋아, 그럼 50점 먼저 내기다?”
“내가 이기면 꼬옥이다! 하루종일!”
“그거 좀 너무 귀찮지 않냐? 하루종일은?”
내기에 의문을 표하자 드래곤이 볼을 부풀린다.
“그대가 먼저 하자고 한 거니 뭐든 걸어도 되는 거 아니냐! 호오, 그대! 자신 없냐? 히히히.”
심지어 비웃으며 도발을 해오는 드래곤.
하긴 그렇다. 루린은 처음 해보는 놀이고. 질 리야 없겠지. 나는 그 도발을 받아들였다. 그 비웃음을 곧바로 절망으로 바꿔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어디 보자, 내가 이기면 시장을 봐오는 게 어때? 절대 드래곤화 하지 말고 인간인 것처럼 공손하게 시장을 보고 와야 하는 거지.”
“인간에게 굽히라고? 그럴 순 없다!”
“그러니까 내기지.”
“으으, 재미없다.”
“무서워?”
이때다 싶어서 역으로 도발을 해줬다. 그러자 드래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신 있다는 눈동자다.
오냐, 해보자.
“자 일단 순서를 정하자고, 가위바위보다.”
“알겠다!”
가위바위보에 대해서는 루린도 익숙하다.
동료들과 여행할 때도 가위바위보로 설거지부터 뒷정리까지 각자 담당을 정해왔으니까. 거기에 루린도 껴서 수도까지 동행하는 여정을 통해 가위바위보에 완전히 익숙해진 드래곤이다.
루린은 뭘 낼까 심사숙고하는 표정을 하더니 뭔가를 결정한 듯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본다.
어디 보자, 루린의 표정을 읽어볼까?
루린은 대체적으로 주먹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주먹이 왜 보자기를 이기지 못하냐며 불만이 가득했다. 보자기 따위는 주먹으로 뚫어버릴 수 있다나?
파괴본능이 그대로 드러나는 녀석이었지. 그렇다면 적어도 보자기를 내면 지지야 않겠지.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우리는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외쳤다. 루린이 낸 것은 가위. 내가 낸 것은 보자기다.
“잠깐 타임! 니가 웬일로 가위를 다 내고 그래?”
“그대를 잘라주려고 그랬다!”
루린은 엉뚱한 말을 내뱉으며 공깃돌을 손에 들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펼쳐서 하는 거란 말이군!”
“그래, 맞아.”
루린이 공깃돌을 뿌리고는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고 하나씩 잡는 1단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 좀 하는데?”
“히히. 이 몸은 위대하다!”
내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다. 그래 봐야 한두 바퀴지.
실수는 분명히 나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루린을 지켜봤다. 점점 점수가 올라갔다. 루린은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공깃돌을 주워들었다.
점점 내 얼굴에 절망이 맴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결과적으로 루린은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고 퍼펙트하게 50점을 완수했다. 너무나도 싱거운 패배였다.
“어떠냐!”
어떻긴 뭐가 어때. 할 말이 없다. 나는 절대로 한 번에 50점을 달성하진 못한다. 즉, 가위바위보에 이겼어도 이건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이었다는 이야기다.
루린이 새초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답을 강요한다. 나는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깃돌 놀이의 괴물이었다니.
이럴 수가.
“졌습니다….”
“이겼다! 내가 그대를 이기다니! 처음이다! 오오오오!”
루린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의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승리의 브이자를 그린다.
그리고 나에게 뛰어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꼬옥이다!”
안겨오는 드래곤.
콰앙!
덕분에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또다시 드래곤에 깔려버렸다. 지다니. 깔렸다는 충격보다는 졌다는 충격이 더 크다.
게다가 하루종일이라는 건 무리다. 식당일도 해야 하고. 원래부터 하루종일 꼬옥이라는 건 너무 악마적이다.
“루린, 일단 떨어져 봐.”
“뭐냐? 내기는 바로 집행이다! 이제부터 그대는 내 베개나 마찬가지다! 신난다!”
“아니 그전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조건?”
“선물을 줄게. 그걸로 퉁치자.”
“그게 뭐냐! 싫다!”
“이래도?”
나는 손바닥에 다이아몬드를 소환했다. 번쩍이는 걸 본 루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냐 그건? 보석은 좋지만, 지금은 그대를 베개 삼는 게 더 좋다! 따뜻하고! 뭔가 쿵쾅거리고!”
“쿵쾅거리는 건 뭐야?”
“그런 게 있다.”
루린은 고개를 슬쩍 피하다가 나를 다시 내려 봤다.
“너, 베르나나 레이느씨가 하고 있는 귀걸이 맨날 쳐다봤지?”
“어? 그… 귀에 빛나는 보석 말이냐?”
“응.”
“그건… 그렇다. 뭔가 예뻤으니까. 귀에도 보석을 달다니….”
루린이 살짝 호기심이 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협상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루린은 목걸이나, 팔찌, 그리고 반지는 익숙한 듯했으나 귀걸이는 상당히 신기하게 여겼다. 드래곤족 중에 귀걸이를 한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내가 지난 생일 때 선물로 준 팔찌를 하고 있을 정도로 보석을 좋아하니까.
몸에서 떨어뜨리는 법이 없다.
“드워프에게 부탁해서 예쁘게 세공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다. 어때?”
드롭 이어링이라는 물건이다.
반짝이는 끈처럼 길게 떨어지는 모양의 귀걸이. 귀에 걸리는 이어링 본체에서 늘어져 내려온 부분이 중심이 되는 귀걸이다.
이 드롭 이어링의 특출한 점은 모조리 다이아몬드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거기에 드워프의 세공이 들어갔다. 매우 아름다운 빛을 낸다. 특히나 루린의 검은 머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반짝이는 끈처럼 가늘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드롭 이어링이 너무 길게 내려오면 오히려 이상하다. 당연하지만 이건 딱 적당한 길이다.
디자인 또한 전문가가, 세공도 전문가가, 제작의뢰는 내가. 당연히 귀걸이를 하는 대상은 루린으로 특정했다.
루린만을 위한 귀걸이다.
“우리 드래곤이 남의 걸 부러워하는 건 못 보겠으니까. 자, 귀 뚫는 법도 배워왔어.”
“나, 안 뚫어도 구멍을 만들 수 있다!”
“어?”
“어차피 이 몸은 폴리모프한 몸이라, 그 정도 구멍이야 자유자재다. 히히.”
루린은 쓰윽 귀를 내밀었다. 어느새 조그마한 구멍이 생겨버렸다. 매우 신기한 몸이다. 신기하고 편리한 몸. 하긴 파충류의 일종인 도마뱀은 스스로 꼬리를 자르기도 하니까 뭐.
뚫을 필요가 없으면 나도 편하긴 하지. 나는 곧바로 그녀의 귀에 귀걸이를 걸어주었다.
반대쪽도 해주자 다이아몬드가 빛을 발한다. 사실 이 귀걸이는 나중에 써먹으려고 한 건데, 이렇게 빠르게 꺼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그러니까, 그대가 나를 위해 준비한 거냐?”
“그렇지. 네 전용 귀걸이다.”
내기는 어느새 잊어버린 듯 루린은 자기 귀를 만지기 시작했다.
“나, 예쁘냐?”
“뭐, 당연한 거 아냐? 우리 드래곤이 예쁜 거야 뭐.”
내가 루린의 머리를 쓸어 넘겨 귀를 노출시키며 거울을 보여주자, 루린은 갑자기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대… 나, 또 뭔가 이상하다! 몸이 뜨겁다!”
루린은 그렇게 말하더니 2층으로 뛰어 올라가버렸다.
또 귀가 빨갛다.
요즘 저런 반응이 잦다. 귀가 빨개져서 도망가는 것 말이다. 약간 루린 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까.
하지만 어쨌든 내기는 무마시켰다. 몸의 자유를 빼앗기는 무시무시한 하루종일 꼬옥에서 벗어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밖에서는 비도 그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정상 영업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점심은 칼국수였으니 저녁은 대충 때워야지.
식빵을 꺼냈다. 그리고 철판에 굽기 시작했다.
치이익. 치이이이익!
빵을 구울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고소한 풍미라고 할까. 노릇노릇하게 구운 빵 위에다가 블랙베리, 라즈베리를 뿌린다. 그리고 시럽을 뿌린 뒤 슈가파우더로 눈을 만들면 맛있는 토스트가 완성이다.
너무 달긴 한데, 루린에게 단 것은 진리니까.
“루린! 밥 먹어야지!”
루린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다. 나는 토스트를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루린은 귀에 걸린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멍한 얼굴로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대그대그대그대!”
언제 수줍음 모드에서 회복했는지 나를 보자마자 다가왔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눈부시다. 다이아몬드도 눈부시고.
태풍과 평화.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