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7)
# 57
Chapter.14 사과의 순정
“술 좀 더 주겠나?”
“베넨씨, 너무 드시는 거 아니에요?”
“괜찮네. 아직 안주도 남았잖은가?”
뭐, 분명히 조개탕은 아직도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었다. 소주에 조개탕이라니. 왠지 고향의 포장마차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이 조합은 이 세상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사람 입맛은 세상마다 시대마다 다르긴 하지만 술과 탕의 조합은 어딜 가나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일단 소주 한 병을 더 내민다. 바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는 50대 후반 정도의 베넨이라는 이름의 아저씨로 도시에서 언덕으로 올라오는 초입에 있는 과수원의 주인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헤르올릭이라고 불리는 사과를 재배한다.
그런 연유로 베넨씨는 식당에 올 때마다 사과를 한 바구니씩 나눠주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도 서비스를 준다.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법.
베넨씨와는 그레이크시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안면이 있었다.
원래 내 계획은 언덕 초입에 위치한 과수원 부지까지도 모조리 매입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 과수원의 과일들과 함께 삶을 마감하려고 하네. 여기가 내 집인데 어찌 팔 수 있는가?”
시세의 수 배에 달하는 가격을 제시했으나 협상이 불가능한 대답이 돌아왔기에 곧바로 포기했다. 아무리 땅이 필요하다 해도 삶의 이유까지 파괴할 수는 없는 거니까. 언덕의 초입부분이라서 레어 건설이나 목장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미안했는지 식당을 개업한 후에는 이렇게 심심치 않게 찾아와 주곤 했다.
“땅을 못 팔았으니 요리라도 팔아줘야지. 아니면, 필요 없나? 나갈까? 꼴도 보기 싫으이?”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찾아와 주면 저야 환영이죠.”
“그럼 다행이고. 허허, 그나저나 맛은 있구만 자네!”
이렇던 게 처음 찾아왔던 날의 대사였다. 그 이후로는 단골 중의 하나가 되었고.
뭐, 그건 좋은데 최근에는 찾아와서 이렇게 술만 퍼먹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뭔 술을 이리도 퍼마시는지.
“크으, 돈다 돌아.”
베넨씨는 추가된 소주도 빠르게 다 마셔버리더니 조개탕을 꿀꺽꿀꺽 들이켜고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럼 또 옴세.”
값을 치르고 팔자걸음으로 걸어 나가는 베넨씨. 뭐 언덕만 내려가면 집이니까 별일이야 없겠지만 서도.
“이 빨간 놈은 시면서 달구나!”
그러고 보면 루린은 베넨씨의 사과를 상당히 좋아했다. 지금도 루린은 베넨씨가 가져온 사과를 사냥하고 있었다.
아삭아삭!
사과를 베어 무는 루린의 얼굴은 항상 행복이 묻어나온다. 너무 복스럽게 먹어서 나도 먹고 싶어질 정도. 아무래도 루린에게 베넨씨는 빨간 사과로 보이는 듯 다녀가면 자동적으로 사과를 찾는다.
“그에도 머어라! 내아 다가준다!”
입에 사과를 잔뜩 머금고는 소매로 다른 사과를 쓱쓱 문질러서 나에게 내민다. 손님이 없어지자마자 목소리를 높이는 루린의 손에서 사과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손님이 있을 때는 거의 말이 없다. 방해는 안 한다. 아주 가끔 끼어드는 정도?
드래곤 왈, 손님이 있을 때가 제일 지루하지만 참아준다고 한다. 으이그.
***
“엘레나씨, 이것 좀 먹어봐요. 언덕 과수원의 과일인데 맛이 잘 들었네요.”
“어머, 색깔이 예뻐요. 이런 색깔은 되게 공을 들여 키워야 나온다고 알고 있는데. 엘프의 숲에서도 많이 있는데 이런 색깔을 내지는 않아요.”
엘레나가 반가운 얼굴로 태양의 빨간색을 그대로 머금은 사과를 받아든다.
지금 엘레나와 같이 있는 이유는 아침 장을 보려고 언덕아래 내려 온 김에 진료소에 들렀기 때문.
어제 잔뜩 받은 사과를 몇몇 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중이다.
“그나저나 백작님은 좀 어때요?”
“차도가 없어요. 아무래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지라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데….”
“그건 들었지만… 너무 안타까운 사람들이라 계속 묻게 되네요. 휴우.”
“그러게요. 대충 들었는데도 슬펐어요.”
엘레나가 하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축 쳐진 눈썹은 슬픔을 담고 있다.
“그래도 매주 들러서 살펴보고는 있어요. 엘프의 숲에도 문의를 해보려고요.”
“그렇게 까지요? 그레이크와 베르나가 좋아하겠네요. 역시 누가 뭐래도 엘레나씨는 다정하네요.”
“그렇지 않아요. 차, 착한 인간들은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이, 이건 잘 먹을게요!”
엘레나가 다정하다는 말에 몸을 배배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배꼬다가 받아든 사과 중 하나를 흘려버렸다.
“꺄악!”
굴러가는 사과를 쫓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사과까지 놓쳐서 바닥에 구른다. 너무나 순진무구한 엘프다.
어쨌든 지금 당장 그레이크 백작에 관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드래곤이 회복마법을 아는 것도 아니니까.
드래곤이 정신마법을 쓸 수는 있지만, 백작의 경우에는 아예 뇌신경이 파괴된 거다. 마법으로 뇌가 조작당한 거라면 모를까 독에 의해서 뇌신경이 손상을 입은 경우는 드래곤의 마법으로는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이 경우에는 정신 마법이 아니고 회복마법에 기대야 한다.
하지만 드래곤은 회복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회복마법을 아는 존재들, 즉 신을 모시는 사제나, 엘프 같은 숲의 종족에게 기대를 해야 하는데 그들조차도 별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사과를 같이 주워준 뒤 진료소에서 나와서 다시 걸었다. 걷다 보니 눈앞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베넨씨다.
언제나 과수원에 박혀서 과일을 키우는데 매진하던 사람이 웬일인가 싶어서 지켜보려니 베넨씨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손에 옷가지를 든 채로 눈앞의 건물을 왔다 갔다 거린다.
몰래 다가가 보니, 베넨씨는 미엘의 수선집이라는 조그만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언덕 쪽으로 걸어가 사라졌다.
호기심이 생겨서 베넨씨가 서성거리던 가게 안을 살펴보니, 안에는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베넨씨는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들었다. 결혼한 적도 없으며 당연히 자식도 없다. 비슷한 또 또래인 것 같은데 뒤늦게 짝사랑이라도 시작할 걸까.
이것만 보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크놀씨의 푸줏간과 야채시장을 거쳐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어제랑 같은 거 주겠나?”
첫 손님으로 나타난 베넨씨는 역시나 술을 찾았다.
“네, 그러죠.”
다시 술을 마시면서 한숨을 쉬기 시작하는 베넨씨. 아무래도 베넨씨가 이렇게 최근에 술을 퍼마시는 이유는 아까 봤던 그 수선집의 아주머니와 뭐라도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슬쩍 떠봤다.
“아까 낮에 거리에서 수선집 앞에 있던 걸 봤습니다만…. 혹시 그것 때문에 이렇게 술을 드시는 겁니까?”
“뭐?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아, 아니네. 그거랑은 상관없으이.”
“뭐 관련 없으면 말고요.”
말하기 싫은 걸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다. 나는 깡소주를 마시고 있는 베넨씨의 앞에 얼른 조개탕을 내어 주었다. 맑은 국물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 김을 보면서 뭔가 고민하던 베넨씨는 슬쩍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그런데 말이네.”
“네?”
“봤다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니, 아닐세!”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한 병을 다 마시고 또 한 병을 주문할 무렵 다시 또 슬쩍 말을 꺼냈다.
“그게, 자네는 부인이 있으니까 모르겠지만…. 나는 평생 혼자 살았네. 그랬는데…. 실은 거기에는 사연이….”
“네?”
수선집 앞에서 머뭇거리던 모습을 들켜서인지.
술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고민하던 베넨씨는 결국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만 넘어갈 수 없는 대사가 하나 있다. 여기 또 루린을 내 마누라로 보는 사람이 등장했다.
어째, 식당을 왔다 갔다 거리는 모든 사람은 루린과 나를 부부로 보는 건지.
신기한 일이다.
“그게 그러니까… 사실 미엘과 처음 만난 건 무려 50년 전이네….”
“미엘이란 분이 그 수선집에 앉아있던 그분인가요?”
“그렇다네. 내가 한심한 놈이지. 그때부터 무려 50년이나 짝사랑을 해왔으면서 단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었으니.”
“50년이나요?”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해지는 세월이다.
“그게, 소꿉친구였거든. 그 어린 시절 좋아하게 돼버린 감정이 평생을 가게 된 거네. 보통 비웃겠지. 비웃을 일이지만, 사실이네. 정말로 50년간 그녀만을 좋아했다네. 정말 미련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결혼하고 자식들 키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다른 여자가 좋아 지지가 않으니 어쩌겠나….”
“그, 미엘씨란 분은요? 결혼하셨어요?”
“그녀야 이미 30년 전에 결혼한 것으로 아네. 이웃 도시로 시집을 갔었어. 하지만 곧 돌아왔지. 결혼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네. 남편과 갈라서고 그레이크시에 다시 돌아온 걸 알았을 때는 그녀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너무나도 기뻤지. 사이가 워낙 안 좋아서 결혼은 했으나 자식도 없었다고 그녀가 직접 말했으이. 물론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기뻤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바느질을 잘했어. 그래서 각종 옷의 수선을 돕는 작은 수선가게를 차리는 걸 도왔지. 그리고 기뻐서 멀쩡한 옷도 찢어가면서 들락거렸어. 그것만으로도 좋았네. 다 늙어서 더 큰 걸 바라지도 않아. 그냥 같이 늙어가면서 이런 식으로 도우며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베넨씨는 길게 말한 후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순정파도 이런 순정파가 없다. 베넨씨 스스로 말한 것처럼 너무 외골수다. 확실히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백이라도 해볼 것이지.
“아, 그렇다고 뭔가가 없었던 건 아니야.”
“뭔가 있었어요?”
“결혼하기 전에 할 이야기가 있으니 찾아와 달라고 말했거든.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 결혼한다는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어. 그래서 정말로 큰맘 먹고 잠시 나오라고 이야기했지. 하지만 온종일 기다렸으나 그녀는 오지 않았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대답 대신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차인 것 같았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잊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네.”
그것참.
한 사람을 그렇게나 좋아하게 되는 감정이라.
나는 엎드려서 졸고 있는 루린을 보았다. 그녀라면 어떨까. 만약 내가 없어진다면 이렇게나 오래 기다려 줄 수 있을까.
루린에게는 50년이란 짧은 시간이다. 그 정도는 기다려주겠지. 그러니 루린에게는 한 500년은 갖다 붙여야 하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난데없이 뭔 생각을 하고 있나 싶었으니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베넨씨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