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7)
# 67
Chapter.17 첫눈
겨울.
완연한 겨울이 시작됐다.
식당 안에는 난로가 일하기 시작했다. 밖에 비하면 매우 따뜻한 식당이지만 드래곤은 그래도 춥다며 모포를 덮고 웅크렸다.
목장의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식당은 따뜻한 편이다. 식당일이란 게 야외에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어…?”
찬바람이 불어오는 밤하늘. 장사를 마치고 식당을 정리하는 내 손등 위로 새하얗게 빛나는 눈이 떨어져 내렸다.
첫눈이다.
밤하늘을 가득 덮은 눈구름이 매우 소심하게 눈을 내려보냈다. 조금씩 내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전쟁 중에는 눈이 쌓이면 여러 가지가 힘들어진다. 전쟁터에서 이 새하얗고 차가운 덩어리는 그저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다. 내리는 눈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바라봤다. 쌓일 것 같다는 생각까지는 안 든다. 드문드문 내려오는 눈은 그 강도가 매우 미약했다.
생각해보면 눈이 쌓이면 식당 장사는 접어야 한다. 새하얀 눈은 마음을 정화 시켜주는 축복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또 다른 일거리를 늘려주는 주범이기도 하다.
“루린, 올라가서 자자.”
“드디어 끝났냐?”
루린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모포로는 꼬옥 자신의 몸을 감싼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내민다. 그리고 타악 점프.
그리고 내 앞으로 대쉬.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드래곤의 팔을 잡고 지하로 내려간다.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기왕 목욕탕을 만들었으니 이런 겨울에는 이용해 주는 것이 마땅한 처사.
매일 밤 목욕을 하는 건 어느덧 필수적인 코스가 되었다.
“크루어어우커!”
북쪽대지에서 잡아온 하급 몬스터. 지금은 목욕탕 관리인인 카디슈가 기괴한 소리를 내뿜으며 루린에게 무릎을 꿇는다. 오우거랑 닮은 이 몬스터가 하는 일은 목욕탕 청소와 물 관리.
“푸하아아아아!”
목욕을 하고 나오면 루린은 맥주캔을 향해 달려간다. 머리를 푸욱 적신 물기를 닦아내는 것보다 항상 맥주가 먼저다.
머리는 나보고 닦아 달라는 의미지. 고얀 것.
뒤에서 머리를 닦아주며 2층으로 올라오면 이놈의 드래곤은 당연하다는 듯 내 방문을 콰앙! 열고 들어가 침대 위에 뒹굴며 맥주캔을 딴다.
“크하아아! 이 맛이다! 그대는 안 먹냐?”
“나는 맥주파가 아닌데? 이런 날은 온더록스다.”
싱글몰트 위스키. 즉 창고에 가득 있는 증류주의 경우에는 스트레이트로 그냥 마시는 게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이다. 하지만 때로는 온더록스도 나쁘지 않다.
온더록스는 혀가 아릴정도의 짜릿함은 덜하지만 내 생각에 향을 좀 더 살려준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마감으로 가볍게 한잔하길 원할 때는 가볍게 온더록스로 반잔 정도 마시고 자는 게 가장 부담이 없다.
“향은 괜찮지만, 그거 먹으면 기억이 없어진다! 무서운 술을 그대는 잘도 먹는다!”
루린은 위스키를 먹고 나면 그대로 필름이 끊긴다. 호기심 덩어리인 그녀가 위스키를 안 먹어 봤을 리가 없는 것이고.
먹고 잔뜩 난리를 친 뒤 일어나면 내가 왜 여깄냐. 어제 기억이 없다! 이상하다! 뭐 이런 소리를 나불거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곤 했다. 그러더니 그 이후로는 스스로 알아서 위스키를 피한다.
“난 그대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날아가는 게 싫다. 그러니 그런 거 안 먹는다.”
다만 그러면서 외치는 대사가 조금 반칙이다.
나는 루린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창문을 열었다. 여전히 눈은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이대로 눈발이 굵어지면 쌓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직 매우 드문드문 난리는 눈발이 운치를 더할 뿐으로 걱정될 정도는 아니다.
“오오, 눈 녀석이 아니냐!”
루린도 살랑이며 창문으로 후비고 들어오는 눈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녀석이든 뭐든지 간에 문 닫고 들어와. 난 자련다.”
머리도 다 말랐겠다, 위스키 반잔에 기분도 좋겠다, 침대에 점프해 드러누웠다. 루린은 맥주를 마저 털어 넣더니 캔을 꾸긴 후에 내 옆으로 비비고 들어온다.
“니 방가서 자세요. 그리고 머리 아직 다 안 말랐다?”
“나 안 졸리다.”
“안 졸리긴 개뿔!”
“개뿔? 그게 뭐냐!”
그러게 고향의 언어를 또 사용했네.
“좋아, 그럼 오늘 또 승부를 내볼까.”
“히히, 좋다! 오늘은 안 진다!”
최근 내 방에서 떠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드래곤을 위해서 자기 전 각종 게임을 하는 중이다.
승패는 18승 15패로 근소한 우위.
루린이 이기면 그냥 내 옆에서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잔다. 그러다 보면 루린도 어느새 꼼지락거리며 내 품에서 잠든다.
내가 이기면 루린은 자기 방으로 쫓겨난다.
물론 그걸로 끝날 드래곤은 아니다. 쫓아내봐야 새벽이면 어느새 내방으로 기어들어온다. 기어들어오는 것 자체는 폭풍수면을 하다보면 눈치 못 챌 때가 많은데 아침에 보면 언제나 여지없다.
그렇다보니 내기 같은 걸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최근 들어 이 드래곤이 옆에서 꼼지락거리면 잠이 잘 안 온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어쨌든 편안한 수면을 위해서는 일단 쫓아내야 한다. 중간에 오는 거야 이미 잠이 든 후니까 상관없다. 수면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일단 잠드는 게 중요하니까. 편안하게 잠드는 게.
오늘의 내기는 젠가라는 고향의 놀이다. 나무로 된 조그만 벽돌로 탑을 쌓고 하나씩 뺀다. 탑을 무너뜨리는 쪽이 지는 게임이다.
공기놀이는 저번에 너무나 퍼펙트 한 패배를 당한 후에는 완전히 봉인해 버렸다. 루린의 숨겨진 재능이긴 한데, 딱히 펼칠 곳이 없는 재능이기도 하지.
“어제 그대가 이겼으니까 오늘은 나부터다!”
“맘대로 하세요.”
루린은 진지한 얼굴로 방바닥에 엎드려 중간의 나무 벽돌을 빼기 시작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중앙의 나무 벽돌이 빠져나간다.
“후우!”
루린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비웃음이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 라는 바로 그 웃음.
아직은 여유다. 나는 가장 밑 부분의 젠가에 집중했다. 쭈그려 누워있는 자세로 무게의 중심은 양 무릎이다.
“야, 인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싶었더니 내 뒤로 돌아와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있다. 손가락으로 간질간질.
“간지러! 이놈의 드래곤이 반칙질을 해? 하여간 나쁜 건 빨리 배워요. 물론 그래도 나는 성공했지만! 후후.”
“그대의 발은 철판이냐. 간지러우면 실패하는 게 맞는데!”
“웃기고 있네. 또 반칙만 해봐. 가만 안 둔다.”
쭈우우우욱!
반칙해놓고 파워당당한 드래곤의 볼을 잡아당겼더니 질질 끌려온다. 인상은 썩어들어가고 있다.
“아프다! 이거 놔라! 내 차례니까 건드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대를 사양한다.”
루린은 손으로 팔을 쳐내더니 다시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나무 탑에 손을 가져갔다. 미세하게 떨리는 루린의 손가락.
하지만 세상엔 받은 만큼 돌려주라는 명언이 있다. 아니, 받은 거에 조금 더 보태서 돌려주는 것이 도리지.
루린은 평소에 전혀 하지 않는 초집중 상태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뒤로 돌아갔다. 여기까진 루린과 똑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무르지 않다. 반칙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나는 루린의 뒤로 접근해 그녀의 늘어 내려온 머리카락 끝을 잡았다. 바로 그 순간 나를 눈치 챈 루린의 입이 잔뜩 오므려진다. 입을 오므려 눈썹을 치켜뜨는 바로 그 표정.
“복수다!”
머리카락 끝을 그녀의 코끝에 가져갔다. 그리고 살랑거린다. 살랑살랑.
“후에에에엥? 엣츄!”
그 간지러움에 결국 기침을 하고만 루린. 당연히 손에 집어 들었던 나무 벽돌과 함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승리다! 크크크!”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며 우뚝 섰다. 루린은 당연히 세상 억울한 눈으로 벌떡 일어나 따진다.
“그대! 치사하다! 이런 게 어딨냐! 코를 간지럽히다니!”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기침 정도는 해야 탑이 무너지지 않겠어?”
“반칙이다! 무효다!”
“먼저 발바닥을 간지럽힌 게 어디의 누구시죠?”
“누구냐 그건! 그런 놈이 있으면 데려와라. 구워 먹어 버리겠다.”
“철판을 준비해 줄까? 스스로 뒹굴래?”
“으으아아아아아아앙!”
루린은 씩씩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찔리는 게 있으니 일단 후퇴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때 어서 자야지.
평화로운 하루는 그렇게 지나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역시나 루린은 몸을 웅크린 채 내 옆에 고이 누워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다. 오늘의 컨셉은 허리에 안기는 게 아니고 손을 잡는 건가 보다.
그 손을 조심스레 떼어놓고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거듭 말하지만 루린이 아침부터 일어날 일은 없다.
몸을 풀어주고 잠에서 깨면 창문을 연다. 환기도 시키고 바람도 쐴 겸. 하지만 웬걸.
나는 창밖의 풍경에 놀라자빠질 뻔했다.
아니 분명히 눈이 내리기는 내렸다. 눈이 내린 건 사실인데. 대체 언제 눈발이 굵어져서 내 허벅지만큼 쌓여있는 건데?
함박눈이 엄청난 기세로 내린 모양이다. 새벽이 깊어갈수록 말이다. 심지어 그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다.
어제 첫눈과 조우했을 때와는 눈의 굵기가 다르다.
“하아?”
순간적으로 장사는 망했다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큰일이로세.
아마 언덕 아래 시내도 난리가 났을 것 같다. 그레이크시는 원래 이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문이 안 열린다. 고립수준이구만? 그렇다고 문짝을 날려버리기는 아까워서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언덕부터 시작해서 온 세상이 새하얗다. 눈의 세상이다. 다리가 푹푹 빠진다. 개가 뛰어놀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수준의 눈이 아니잖아 이건.
뭐가 이렇게 많이 쌓였는데?
하늘의 농간에 혀를 차면서 일단 문 앞의 눈을 마법을 사용해서 몽땅 녹였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2층으로 올라갔다. 제설작업이 필요하다. 목장까지 길도 뚫어놓고 도시까지도 길을 뚫어놔야지 아니면 고립될 수준.
“루린!”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아침에 루린을 깨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옷방으로 내려가 털옷과 털모자, 털장갑을 가져왔다.
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장갑을 끼운다. 그리고 안아 들어 눈의 세상으로 내려갔다. 추운지 몸을 더 웅크리는 게 느껴진다.
그런 루린의 뒷덜미에 무자비하게 눈덩이를 집어넣으면.
“아앙!”
눈을 번쩍 뜬 루린을 볼 수 있다. 성질을 부리려던 드래곤은 낯선 풍경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일단 내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또 눈을 바라봤다.
“그대…? 이게 뭐냐? 웬 눈이 이렇게 많냐? 아직 꿈인가? 그런 것이냐?”
“아니? 현실이거든요? 잠은 이따 자고 좀만 도와줘.”
“졸리다….”
루린은 꾸벅꾸벅 졸면서 나에게 걸어왔다. 그러다 비틀거리더니 쌓인 눈 위에 쓰러진다.
“푸후우웁! 눈 녀석이 차갑다아아아아아아아!”
그러더니 먹은 눈을 뱉으면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잠이 깨겠네. 흐뭇한 광경이구만.
“좋아, 그렇게 입을 벌린 채로 브레스다. 브레스를 언덕 위 까지 발사! 약하게! 눈을 향해서!”
“브레스를 말이냐? 자다 말고 브레스라니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일단 내 말에 따라주는 것이 또 이 드래곤이지.
루린은 눈을 비비며 브레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브레스가 쏘아진 장소에 눈이 사라진다. 매우 편하게 눈길이 생겨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