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79)
# 79
Chapter.19 레드드래곤과 드래곤구슬
그래도 인간을 저렇게 좋아하다니 별종이라면 별종이라고 장로는 생각했다.
지금껏 유희를 나가서 인간을 데리고 논 드래곤들이야 많았지만. 루린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놀이가 아니다. 애초에 엘과 만난 것도 유희와는 거리가 먼 상태에서였으니.
드래곤에게 인간이란 벌레 같은 존재.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관계인 것을.
물론 엘 또한 평범한 인간은 아니니까 납득이 안가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인정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강하다면 인간이라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니 레어만 지어지면 그곳에서 쭉 지내기를 바라는 것이 장로의 마음이었다.
장로가 그런 생각을 하는 무렵, 니에스는 가려다가 멈춘 장로를 초조하게 바라봤다.
엘이 등을 돌려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더 망설일 수 없다고 판단한 니에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천천히 엘과 루린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다가간 니에스는 생각대로 엘의 등을 확보했다.
기습이다. 속전속결.
한 방에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자신의 공격력은 갸르드와는 천지차이니까.
엄청나게 가까운 거리.
이 거리에서 브레스가 직격하면 아무리 로드의 하트가 살아 숨 쉬는 자라고 해도 대처할 방법은 없다.
니에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순간, 니에스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강력한 브레스가.
“그대에에에!”
루린이 놀라서 소리쳤으나 브레스는 엘의 등을 강타. 강력한 충격과 함께 엘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모두가 놀라서 그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나 엘은 니에스가 다가오고 있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엘 또한 니에스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원흉을 놔줄 마음은 전혀 없었으니.
그래서 더더욱 뭔 짓을 하는지 감시했고 브레스를 사용하려 한다는 것도 미리 깨달았다.
그 덕분에 브레스에 맞기 전 루린까지 밀어내는 여유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명분이란 것에 있다.
엘은 베인트와 니에스가 뭔가 얽혀 있다는 것까지는 추측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지금 상황에서는 뭔가를 더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가진 정보가 부족했으니.
그렇다고 그냥 놔두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 루린의 손을 떨게 만들 정도, 무려 그 정도의 트라우마를 입힌 장본인.
그건 이미 용서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니에스는 베인트와 서로 짜고 엘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려 한 공범들 중 하나인 것이 분명했으니, 이대로 그냥 놔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베인트야 자폭했으니 레드드래곤들이 처리한다고 해도 이대로라면 니에스는 무죄가 된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정보가 부족하니 당연히 증거도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공격을 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엘은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중 니에스가 움직여준 것이다.
엘은 바로 그 명분을 위해서 일부러 공격을 당했다. 물론 피하지 않은 대가는 컸다. 등 뒤에 직격한 브레스는 온몸을 태울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엘은 몸속에서 피가 요동치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 모든 것은 큰 그림을 위해서다.
최근 드래곤 구슬로 마나의 격이 한 단계 상승했다. 그 사실을 엘은 본인 스스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구슬의 힘을 모두 흡수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브레스를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마나가 몸 주위에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니 일단 브레스를 버텨내고, 엘레나가 있으니 회복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세레이나에게 했던 것처럼.
엘은 딱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대에!”
루린이 기겁을 하면서 엘을 흔들었다. 너무 놀라서 오히려 무표정할 정도.
루린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엘레나도 놀라서 엘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엘은 지금 이 순간 기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이 너무 크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고 했던가?’
아니다. 고통은 있었다. 오히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뇌가 못 따라가는 기분. 온몸이 타는 기분은 여전하다. 니에스를 처리할 명분이 필요하긴 했으나 그러다 죽으면 말짱 헛수고.
엘은 쓴웃음을 지으며 엘레나를 보았다.
물론 무모한 도박은 아니다. 여기에 엘레나가 존재하는 한.
이 고통까지는 계획에 포함된 것이다.
“니에스, 이놈! 무슨 짓을 한 게야!”
장로는 황당한 얼굴로 니에스를 꾸짖었다. 하지만 니에스는 그런 장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추궁은 나중이다. 일단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
다만 한 방에 죽지 않은 건 의외였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거리다. 계산상으로는 분명히 죽어줘야 했다.
니에스는 혀를 차면서 다음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장로가 엘의 앞을 가로막았기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루린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서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손도 발도 갓 잡혀와 펄떡이는 생선 마냥 부들부들.
거의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엘의 등에서는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피가 흘러나온다.
싫었다.
이런 건 싫다.
절대로 싫다.
루린은 입안을 깨물었다. 무의식중에 얼마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피가 입안으로 배어나올 정도로.
그녀에게 엘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비교할 수 있는 건 없다. 자신의 목숨보다 위에 있을 정도였다.
그녀를 그녀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준 존재. 엘이 죽는다면, 자신도 같이 죽어서 최후를 같이 하겠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확고했다.
때론 투덜거리고,
때론 혼내고,
하지만 때론 자상하고,
때론 웃어주는 그의 얼굴을 잃게 되는 순간, 그녀에게 이 세상은 의미가 없어진다.
니에스에 대한 분노보다 엘이 크게 다쳤다는 공포가 온몸을 지배한다. 복수조차 잊고 엘의 등을 쳐다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나마 침착한 것은 엘레나였다.
빠르게 엘에게 다가가 대회복을 걸기 시작했다.
“쿨럭!”
엘은 그 순간 엘레나에게 마나를 넘겨준 후 세레이나를 구했던 강력한 회복마법을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러지도 않았는데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가슴 쪽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들어오는 걸 느끼며 의아한 기분에 휩싸였다.
엘레나의 대회복은 그저 상처를 조금 재생시킬 뿐, 근본적으로 몸이 전부 타오르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계획대로라면 그녀에게 마나를 넘겨준 후 모든 것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는데 가슴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엘이 느끼기에, 무언가 강력한 마나가 가슴 쪽을 통해 흡수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나가 흡수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엘은 곧바로 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그곳에 있는 것은 분명히 항상 지니고 다니던 2개의 드래곤 구슬 중 하나.
루린의 어머니를 해친 원흉을 찾기 위한 드래곤 구슬은 레어에 보관해뒀고, 지금 가지고 있는 건 평소 마나를 흡수하던 드래곤 구슬이다.
바로 그 구슬에서부터 반조차 흡수하지 못했던 마나가 급격하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편안해진다. 평온함마저 느껴졌다.
타오르는 육신을 죽음의 위기로부터 보호하던 마나가 생명력과 융합하여 드래곤 구슬을 반응시킨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드래곤 구슬의 마나가 엘의 몸속으로 모조리 흡수되었다.
엘의 심장 안에서 살아 숨 쉬던 드래곤 로드의 하트가 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로 드래곤 구슬과 상호작용했고, 덕분에 엘은 온 몸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넘쳐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드래곤 하트를 하나 더 흡수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드래곤 하트를 하나 더 흡수하면 인간 쪽 심장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린다. 그러니 불가능한 일.
하지만 놀랍게도 드래곤 구슬이 그런 효과를 가져왔다.
니에스와 결판을 지을 명분을 찾으려다 얻어걸린 상황,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엘이 일어났으나 루린은 그 상황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떨고 있었다. 두 눈동자는 엘의 상처를 담고 있었지만, 시신경은 허공을 맴돈다.
루린은 지금 공포에 휩싸여 그 어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저 엘이 이렇게 크게 다쳤다는 사실에 놀라서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았다.
세레이나 보다 더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기에 지금 엘이 회복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떨고 있는 상태.
가장 먼저 이변을 깨달은 것은 엘레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타오르던 몸이 회복되어버렸으니까.
그걸 깨달은 니에스도 기겁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거 회복마법을 쓸 수 없도록 엘레나를 죽여버릴까 생각하고 있던 그였으나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나 그만 멍해져버렸다.
죽어가던 몸이 알아서 회복되다니. 그런 것은 최강의 존재라는 드래곤일지라도 불가능 한 일.
이대로는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니에스는 그렇게 생각하니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자신의 것을 가진 인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니에스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장로가 옆에 있든 말든 한꺼번에 태워 죽이려 하고 있을 때.
엘은 망부석처럼 굳어서 떨기만 하고 있는 루린에게 다가갔다.
“야?”
니에스의 처리도 중요하지만 루린의 상태가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루린의 눈앞에서 손을 휘젓는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엘은 놀라서 루린의 양 뺨을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얌마! 루린!”
크게 불렀으나 변하는 건 없다.
마치 영혼을 봉인해 버린 것 같은 상태.
그러면서도 떨고 있는 루린.
‘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상태가 이상해진 거야? 나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자, 뭔가 애처로워졌다.
너무나도 애처로워서.
엘은 자신도 모르게 루린의 몸을 꽉 껴안았다.
따뜻함을 느꼈을까?
굳어 있던 루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루린의 허리를 양손으로 감아 껴안은 그 순간 정신이 돌아온 듯 굳어있던 몸이 풀린 듯, 흘려야 했으나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뒤늦게 흘러나오고,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그대? 어, 어…! 분명히 쓰러져서….”
루린은 허겁지겁 안긴 상태 그대로 엘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러면서도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
엘이 멀쩡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음에도.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때문에 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루린의 눈꺼풀에다가 입을 맞췄다.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그만 정신 좀 차려.”
그 입술을 인지한 루린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그대에에에? 지, 지금!”
한없이 적극적이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부끄럼쟁이. 그것이 루린이다.
당황한 루린이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니에스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꼴값을 떤다고 혀를 차다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브레스를 내뿜어 버렸다.
루린을 껴안느라 엘의 등이 훤하게 노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죽어라, 이노노오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포효와 함께 엘에게 직격하는 강력한 드래곤 브레스. 하지만 엘은 그 브레스를 맞을 이유가 더는 없었다.
드래곤의 브레스가,
가볍고, 가볍고, 한없이 가볍다.
콰아아아앙!
엘은 루린을 껴안은 채 블레이즈를 사용하여 가볍게 브레스를 쳐냈다.
“루린, 잠시만 있어. 정리하고 올게. 그때까지 정신 차려야 돼.”
엘은 그렇게 말하고 루린의 등을 살짝 토닥인 뒤 몸을 돌렸다.
루린의 팔이 엘을 놓기 싫다는 듯 저항했지만 곧 떨어져 내린다.
엘은 니에스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온 몸에 마나가 넘쳐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드래곤 구슬의 완전한 흡수.
그렇기에 하늘 위로 메테오를 소환했다. 최강의 마법을.
곧 하늘에 나타난 메테오.
드래곤 구슬을 완전히 흡수한 엘의 공격마법은 어느 한계를 초월했고 그렇기에 하늘에는 운석이 가득 차버렸다.
이른바 다연발 메테오.
그 기상천외한 마법을 바라본 드래곤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니에스가 몸을 멈추고 굳어 버렸다. 느껴지는 마나의 폭풍.
자신이란 존재가 무력해지는 순간.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했다.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을 거부한 듯.
엘은 그런 니에스를 향해서 가차없이 메테오를 직격시켰다.
용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마음 같아서는 루린이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만큼, 루린의 나이만큼, 799발의 메테오를 떨어뜨리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세상이 멸망한다.
그렇기에 백번 양보해서 6발의 운석을 떨어뜨렸다.
구구구구구-!
“크아아아아악!”
그리고 곧바로 니에스의 몸은 메테오에 먹혀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곧 천지가 진동한다.
메테오란 것은 결국 소행성의 출동이다.
우주에서부터 행성으로 직격시키면 운석 하나만으로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
하지만 보통 9클래스 마법사가 사용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작은 소운석이며, 우주가 아닌 하늘에서 떨어뜨린다는 차이가 있었다.
엘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메테오로 하늘 위를 가득 수놓았다.
제각각의 크기로 불타고 있는 메테오 덩어리….
그 숫자는 까마득해서 셀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걸 본 니에스의 숙부인 디헤그마가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장로와 함께 이 장소에 온 뒤로 한마디로 안 하고 있던 디헤그마. 그 첫마디는 엘에 대한 부정이었다.
“마, 말도 안 된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인간 따위가! 인간 따위가!”
“인간 따위라고 했습니까?”
니에스를 흔적도 없는 가루로 만들어 버린 마법.
다른 말이 필요없다. 엘은 그저 디헤그마를 노려봤다.
세상에서 다른 존재를 가장 빠르게 입다물 게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힘의 차이.
자존감으로 가득 찬 드래곤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
그 일이 지금 일어났다.
아마도 드래곤들의 역사에 있어서 처음 있는 일이리라.
니에스가 죽은 것은 자업자득이다. 거기에 이 메테오.
뭔가를 더 따질 만한 드래곤은 없었다. 하늘 위 메테오에 당하고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드래곤은 없었으니까.
그것은 디헤그마도 마찬가지였다.
디헤그마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을 깔아버렸다.
그것이 사실상 블랙드래곤의 패배 선언이었다.
이 모든 것은 경고다.
또다시 니에스 같은 짓을 꾸며서 평화를 망가뜨리려고 한다면, 드래곤 일족 전부를 상대해 주겠다는 당당한 경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경고는 제대로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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