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0)
# 80
Chapter.19 레드드래곤과 드래곤구슬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다면 그 힘을 사용하면 되는 것,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걸로 이런 촌극을 막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의 힘을 월등히 넘어선 마법에 드래곤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깔았다.
“그냥 공격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는가!”
장로는 엘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다른 블랙드래곤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대를 멘 것이다.
“전 그 상황에서 몸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아니면 인간은 드래곤이 공격하면 그냥 죽기라도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그건….”
엘은 자신을 뜨겁게 바라보고 있는 루린의 어깨를 감싸 안고 강한 어조로 선언했다.
“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을 함부로 쓸 생각은 없습니다.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시 또 니에스 같은 놈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블랙드래곤의 존속이 위태로울지도 모릅니다.”
그 무지막지한 선언.
하지만 대꾸할 수 있는 드래곤은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메테오 한 방으로도 최고의 수준의 공격마법이 된다.
그런 메테오가 셀 수도 없다. 동시에 떨어지면 종족의 멸망은 순식간이다. 이 순간 그 단순한 계산을 못 하는 드래곤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장로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루린을 바라보았다.
사실 장로의 마음은 다른 드래곤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일부러 노한 음성을 흘렸으나 사실 니에스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중에 블랙드래곤들이 딴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나서서 말했을 뿐.
장로가 보기에는 니에스의 행동에 수상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수천 년을 산 그가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다.
조사하면 다 나온다. 장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루린의 안전은 확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신의 손녀딸은 아비보다 먼저 죽어버린 딸과는 달리 천수를 누리고 살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
하지만 그럴수록 동족의 편에 서서 은근슬쩍 목소리를 내야 했다. 그래야 일족의 모두가 자신의 결정을 공평하다고 생각할 테니. 실제로는 루린을 돕는 행위라도 말이다.
“모두들 돌아간다. 이 일은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다.”
장로는 그렇게 말하며 엘에게서 돌아섰다.
장로가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사라지자 다른 드래곤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그리고 곧 상황은 종료됐다.
엘은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들의 대응이 또 평화를 망치려고 한다면 그때는 진짜로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을.
***
세레이나는 엘레나의 품에서 다시 기절해 버렸다. 내 마나와 엘레나의 회복마법 덕분에 상처는 완전히 회복됐으나 기력이 매우 쇠한 탓이었다.
레드드래곤이 사라지고, 블랙드래곤도 사라지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레이크시로 돌아왔다.
드래곤들과의 악연은 곧 정리할 생각이다.
루린의 어머니가 죽게 된 그 사건을 엮어서 모조리 한꺼번에 말이다.
나와 루린을 공격했던 존재를 모두 소멸시킨다. 루린과 관련된 악연.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레드드래곤과의 악연. 그 모든 것을 하나 남은 드래곤 구슬을 이용하여 청산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루린이 성년이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잠시는 참는다. 일단은 그럴 생각이었다.
레드드래곤들이 세레이나를 그냥 버리고 가버렸기에 그녀 또한 데리고 복귀했다. 레드드래곤들의 작태에는 화가 치민다. 세레이나도 레드드래곤이지만, 그녀는 이용당한 쪽이며 나의 히든카드가 되어줬다. 그러니 그냥 버려두고 올 수는 없었다.
도움을 준 이들에게는 도움을. 싸움을 건 이들에게는 소멸을.
그것이 세상 사는 법칙이 아니던가.
어쨌든 세레이나도 드래곤이니 회복만 시켜놓으면 알아서 자기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레이크시에 돌아온 후 세레이나는 엘레나의 진료소에 맡겼다. 드래곤 특유의 생명력 때문인지 기력이 쇠한 상태에서도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여긴 어딘데?”
정신을 차리자 마자 대뜸 한다는 말에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당혹감이 전혀 없다.
“어디긴, 엘레나의 진료소지.”
“엘레나라면, 너랑 같이 날 살렸던 엘프?”
세레이나는 엘레나의 마법을 기억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엘레나를 찾는 듯 보였다.
뒤에서 가만히 그 장면을 바라보던 엘레나는 세레이나와 눈이 마주쳤는지 깜짝 놀라 어깨를 쭈뼛거리며 내 뒤로 숨어버렸다.
그걸 본 세레이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묘한 웃음이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이렇게 다시 살아나게 될 줄은 몰랐다구! 게다가 설마 인간이 생명의 은인이 될 줄은 더더욱…!”
“그래?”
“뭐,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인정해 줄게.”
세레이나는 쿨하게 대답하더니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생명의 은인은 나뿐이 아냐. 아까 말했듯 대회복을 쓸 수 있는 엘레나씨가 없었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그녀에게도 감사해둬. 난 회복마법 자체를 쓸 수가 없으니까.”
“감사라. 뭐, 좋아. 그러면 날 살려준 보답으로 거기 너, 엘프! 내 것이 돼라!”
“네, 네에에?”
엘레나는 갑작스러운 세레이나의 제안에 화들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드래곤의 명령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농담이야 농담. 맹한 엘프네. 그나저나 말이야 눈꼴 시린 너희 커플을 더 봐야 하다니 싫다! 후우, 뭐 할 수 없지만. 아 그보다 나, 여기서 자면 되지?”
화제전환이 너무 심하게 빨랐다. 같잖은 농담을 하더니 나와 루린을 커플로 설정한 것도 모자라서 자겠단다.
“죽었다가 살아났더니 너무 졸려. 그러니 잘래.”
세레이나는 당당하게 수면을 선언하더니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상태. 그렇기에 화려하기 짝이 없는 빨간 머리카락이 침대 아래로 늘어져 내린다.
“그래, 아프면 졸리지. 그건 맞는 말이다.”
루린이 웬일로 레드드래곤의 말을 긍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대도 가서 자자. 혹시 모른다!”
내 팔을 잡고 질질 끈다. 눈에는 진짜로 걱정이란 감정이 담뿍 담겨 있다. 이럴 때는 참 귀엽게 느껴진다. 귀엽게 느껴지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도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번 싸움에서 얻은 것 중 하나가 내 감정에 대한 확신이다.
얻은 것은 마나뿐만이 아니다.
루린이 손을 떠는 걸 보는 것만으로 화가 치밀었다. 그것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끓어오를 정도로.
그것만 해도 그런데 다른 남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에서는 꼭지가 돌아갈 뻔했다. 물론 그 괴롭힘의 주범은 죽여버렸다. 그래도 진정이 안 된다. 루린의 우울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말이다.
“그, 그, 그 엘님! 드래곤을 물리치신 건, 그렇다 쳐도! 아까 그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엘님의 마나가 들어오니까 대회복의 위력이 거의 4배 이상으로 상승했어요!”
“아마도 내 마나를 품었기 때문에 대회복의 위력이 드래곤급으로 올라갔을 겁니다.”
“그럴 수가! 그런 방법이 있다니….”
엘레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 옆을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눈이 빛난다. 위대한 존재라는 드래곤에게 경외심을 보일 때와는 사뭇 다른 눈빛. 그 눈빛에는 왠지 거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런 방법이든 뭐든 간에 빨리 집에 가자! 졸리다!”
루린은 엘레나와 이야기하는 나를 용납하지 않았다. 원래도 나를 질질 끌고 가려는 와중에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거였지만, 결국엔 진료소 밖으로 끌려나왔다. 동시에 루린은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해버렸다.
직행한 곳은 식당이다.
돌아온 식당. 어쨌든 피곤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뭐, 곧바로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다음 날 점심나절이 되고 나서였다. 컨디션은 문제없다. 드래곤 구슬과 드래곤하트의 공명 때문인지 내 육체는 매우 강인해졌고 루린의 걱정과는 달리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피곤함도 거의 없다. 푹 자서 그런지 몰라도.
컨디션이 좋았기에 요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고 있는 루린을 억지로 끌어내서 엘레나의 진료소를 찾았다.
세레이나는 침대 위가 마치 자기 집인 마냥 앉아있었다. 엘레나는 어쩔 줄 몰라 쭈뼛거리고 있고.
“바보 커플이다.”
세레이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손을 흔들었다. 엘레나는 이제 살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괜찮나 보네?”
“호호호! 체력이 조금 빠져서 그렇지 괜찮고말고. 이 몸은 드래곤이다 이거야. 그런데 너흰 안 덥냐? 허이구, 더워 죽겠다 야. 뭘 그렇게 찰싹 붙어있어? 그래 봐야 블랙 녀석은 아주 그냥 숫처녀인 것 같은데 붙어있는 꼴은 어찌 수천 년 된 부부여.”
루린은 등에 업혀서 내 머리를 움켜잡은 채 졸고 있는 중이시다. 세레이나의 폭언에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생각보다 깊게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더울 리가 있냐? 추워죽겠는데?”
한겨울인데 더울 리가 없다. 오히려 루린을 업고 있으면 등에 온기가 가득해진다. 지금 루린은 내 목도리나 다름없다. 하도 쥐어뜯어서 머리끄덩이가 조금 아프지만.
세레이나의 목소리에 깼는지 루린이 꿈틀거린다. 등 뒤에서 눈을 비비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건 좋은데 왜 내 머리를 더 세게 움켜잡냐고.
아프다. 이것아.
“뭐, 뭐냐! 왜 일어나자마자 빨간 게 보이냐. 최악의 아침이지 않냐! 기분 나쁘다.”
“아침은 무슨? 이미 해가 중천에 떴으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루린을 내려놓자 서서도 한참을 눈을 비빈다. 잠이 덜 깬 반수면 상태다. 그런 루린을 방치한 후 일단 가져온 음식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나도 그렇고 세레이나도 그렇고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체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어서 특별히 준비한 요리다.
도움을 받았으니 챙겨주는 건 당연하다.
준비해 온 음식은 효종갱이라고 불리는 한식이다. 쉽게 말하면 해장국이라고 할까? 하지만 매운 음식은 아니다.
오히려 속을 달래주고 피로를 잊게 해주며 체력을 보충해주는 그런 음식으로 조선시대 때는 최초의 배달 음식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양반들이 가서 먹기 좀 그래서 배달해 먹었다나?
그 효종갱을 더 고급스럽게 만들면 진정한 체력보충의 영양식이 탄생한다.
소의 양지와 갈비, 그리고 큼직한 전복까지. 시간 정지의 창고 덕분에 해산물 또한 언제든 갓 따온 그 상태처럼 신선한 상태로 조리가 가능하다.
우선 고기의 핏물부터 빼주고 양지와 갈비, 다시마 등의 밑 재료를 넣어 미리 끓인다. 그리고 전복과 배추를 손질하여 데쳐준 후에 다시마를 빼고 모든 재료를 투하해서 푹 끓이면 진국이 우러나온다.
듣기만 해도 힘이 솟아난다고 할까.
보통 표고버섯으로 고기의 맛을 한층 더 배가시켜주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먼턴버섯을 사용했다. 국물요리에는 표고버섯보다 먼턴버섯이 한수 위다.
갈비탕보다 더 고급스러운 맛과 전복의 시원한 국물 맛이 합쳐진 이것.
몇 분 전까지 눈을 비비고 있던 루린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돌격해와 갈비살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우카갈비는 특히 비법소스와 함께 찍어먹으면 부드러운 육질이 더욱 입안을 자극한다. 또한 진한 고기 육수의 맛이 퍼져나가며 몸을 녹이듯 시원하게 속을 풀어주는 것이다.
전복의 쫄깃함도 만만치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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