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1)
# 81
Chapter.19 레드드래곤과 드래곤구슬
“맛있다. 히히!”
루린은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버렸다. 언제 졸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 기세에 엘레나와 레드드래곤 모두 놀란 듯 눈알을 마구 굴린다.
내가 그릇에 담은 요리를 엘레나에게 넘기자 곧 레드드래곤의 앞으로도 요리가 배달됐다.
“환자는 가만있어라! 착한 내가 먹여준다.”
루린은 숟가락을 들고 세레이나 앞으로 다다다 달려가더니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서 세레이나에게 들이밀었다.
“아 해라! 레드!”
“뭐? 어?”
평소라면 루린의 손길을 단칼에 거부했을 세레이나였지만 감질나는 먹방과 요리의 냄새에 이끌렸기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려 버렸다.
물론 그건 실수였다.
“안 준다!”
세레이나가 입을 쩍 벌린 상태에서 루린은 숟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버렸다. 그리고 뒤로 후퇴한다. 덕분에 레드드래곤은 졸지에 입 벌린 아기새 같은 꼴이 돼버렸다.
그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진 세레이나가 루린을 향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블래애애애액! 죽이고야 말겠어!”
“그러시던지? 히히히. 늙은 주제에!”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블랙과 레드. 이 둘은 항상 이 모양이다.
“루린을 데리고 돌아갈 테니 식사 좀 챙겨줘요.”
“그거야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엘레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레드드래곤과 싸우고 있는 루린을 질질 끌고 식당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루린의 상태가 이상했다. 장사를 하는 내내 이상하더니 영업을 끝내고도 이상하다.
온종일 멍하니 있는 것도 모자라 내 방에 들러붙어서 나갈 생각을 안 한다. 물론 루린이 내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오늘은 뭔가 특이한 표정으로 뒹굴고 있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멍한 와중에도 나를 힐끗거린다. 대놓고 시선을 보내는 게 평소의 루린이니 지금 같이 눈치 보듯 힐끗거리는 건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그대. 그 레드 드래곤….”
“응?”
“아니다….”
가장 이상한 점은 바로 이 대화다. 먼저 말을 걸더니 대답하면 곧바로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 대화가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는 중으로 왜 이러는지는 도저히 모를 일이었다.
“얌마, 진짜 뭐야?”
“그대!”
“응?”
심지어 이번에는 갑자기 정좌를 한다. 그리고 지그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눈빛이 촉촉하다. 얘가 왜 이래 정말?
“그대! 난 그대 말고 다른 인간은 싫다!”
뭐, 그거야 항상 그랬지.
루린과 내 눈이 마주친다. 아까까진 눈을 마주치면 피하더니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드디어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답지 않게 한참이나 망설이던 본론을 말이다.
“그대도 나 말고 다른 드래곤이 싫은 거 맞냐?”
질문하는 루린의 눈동자에는 머뭇거림이 담겨있었다. 질문 내용도 매우 황당했다. 다른 드래곤이 싫냐고? 뭐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루린을 괴롭히던 블랙드래곤 나부랭이들은 싫어하는 편이고.
질문의 의도는 무엇인가.
혹시, 세레이나 때문에? 에이, 요리하나 해줬다고?
그건 아닌 것 같다. 루린은 엘레나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에게 그런 감정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엘레나와 내가 친하게 이야기해도 별다른 미동도 없는 루린이다. 물론 드래곤 외의 종족을 아예 돌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다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런 생각에 루린을 다시 쳐다봤다. 뭐, 어떤 의도건 간에 루린의 마음을 짓밟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응, 뭐 그렇지.”
그러자 루린의 눈동자에서 머뭇거림이 사라진다. 다시 빛나기 시작한 눈동자. 평소의 루린이다.
“이히힛, 그러냐! 그럴 줄 알았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주섬주섬 내 침대로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팔을 벌린다. 그리곤 당당하게 꼬옥을 요구했다.
“그대! 오늘은 옆에서 자면 안 되냐? 오늘은 밤새 꼬옥 해줬으면 좋겠다. 내기에 계속 꼬옥을 거는데도 잘 안 된다! 저번에도 귀걸이에 넘어가버렸다!”
“그러면 다음에는 넘어가지 말고 꼭 챙기시든지요. 장사해야지 온종일이라니 뭔 소리를…. 아무튼 내가 여기서 이러면 내가 잠이 안 오니, 어서 네 방으로 돌아가.”
“치사한 그대!”
거부하자 대뜸 볼을 부풀리는 루린.
일어나더니 삐진 척 고개를 홱 돌리곤 방에서 나가버렸다. 나가버리는 과정이 평소보다 매우 빠르다. 하여간 아까부터 상태가 이상했다. 저렇게 나가봤자 어차피 새벽에 돌아올 거면서 뭘.
***
시간은 지나간다.
레드 드래곤은 며칠 만에 금방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니 떠나갈 줄 알았으나.
웬걸.
“후후후, 엘프 녀석아. 머릿결이 좋은데?”
레드드래곤은 진료소에 눌러앉아 엘레나에게 성희롱을 해대고 있었다. 금발의 엘레나와 붉은 머리칼의 레드드래곤. 개성 넘치는 머리색을 가진 두 존재가 얽혀있다. 그것도 엄청난 미녀가. 그러다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
“회복했으면 빨리 네 레어로 돌아가는 게 어때? 언제까지 죽치고 있을 셈이야? 살려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레드드래곤에게 머리카락을 공략당하며 몹시 떨고 있는 엘레나를 끌어 내준 후 묻자 그녀는 빨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어깨만 으쓱였다.
대답은커녕 거처로 삼은 입원용 침실로 가서 다시 몸을 눕히고 뒹굴거리기 시작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이렇게 된 김에 유희나 하려고 하는데? 안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 그건 자유의 억압이거든!”
“엘레나씨가 싫어하는데 눌러 붙어 있는 건 안 됩니다만? 친구가 곤란한 꼴을 볼 수는 없잖아?”
“그렇다. 꺼져라. 레드녀석아. 휙휙!”
루린은 내 옆에서 말을 거들더니 엘레나에게 다가가 레드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붙잡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엘레나의 머리카락을 들어도 보고, 쓰다듬기도 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과 비교를 하는 것이다.
그걸 왜 비교해.
루린의 머릿결도 충분히 좋다. 물론 폴리모프의 한계가 있긴 하다.
그러니 엘프의 타고난 금발이 조금 더 부드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냈다가는 난리가 나겠지.
“이게 머릿결이 좋은 거냐? 흐음.”
“예, 예? 그, 그게….”
두 마리의 드래곤에게 둘러싸여서 엘레나만 불쌍하지.
“그리고 아직 몸이 다 안 나았어. 거기 엘프가 그랬어. 앞으로 일주일은 더 안정을 취하라고!”
“정말인가? 내가 보기엔 다 나은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나이롱환자다. 안 아파 보인다.
하지만 착한 엘레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하면서도 자비를 베풀다니.
“그건 사실이에요. 지금 상태에서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드래곤으로 돌아가면 본체에 조금 무리가 갈 것이라….”
“거봐! 그렇다고 하잖아!”
바로 끼어들어서 자신은 무고하다는 손짓을 하는 레드드래곤. 마치 아픈 게 벼슬인 것 같은 상황.
“그럼 일주일 후에는 떠날 거고?”
“인간 주제에 너무 질문이 많은 거 아냐? 그건 내 맘이지!”
퍼어어억!
“건방지게 그게 무슨 말이냐! 빨간 거 주제에 정말로 정신을 못 차린다.”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 대신 루린이 나서서 발차기로 응징했다. 루린의 날아차기는 침대위의 드래곤에게 보기 좋게 직격.
그래 이건 잘했다. 말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후후.
“꺄악! 아파! 환자라고 이 멍청한 꼬맹아! 죽일 게 아니라면 그냥 뒀으면 좋겠어. 나도 배신당해서 충격이 크단 말야!”
“누가 꼬맹이냐! 늙다리! 그대! 이딴 드래곤은 봐줄 것 없다.”
루린은 침대에 발차기를 날리느라 몸이 겹쳐진 채로 레드드래곤에게 암바를 시도했다. 완벽한 암바는 아니다. 루린이 관절기를 알고 있을 리는 없으니.
지금의 기술은 고통을 주기 위한 급조된 고문기술이랄까. 어쩌다 보니 그 모양새가 암바를 닮아있을 뿐으로.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효과는 비슷한지 세레이나의 비명이 울렸다.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세레이나도 루린의 머리를 쥐어 잡는다. 막싸움이 시작되려는 순간 나는 루린의 머리를 잡은 레드드래곤의 손을 잡았다.
“머리카락은 안 돼. 루린의 머리카락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어.”
“뭐? 미치겠네. 둘이서 짜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야! 엘프! 도와줘!”
“네, 네에? 그게 그러니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했던가. 엘레나는 어쩔 줄 모르며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코미디 같은 상태를 해결할 사람은 역시나 나지.
나는 루린의 뒷덜미를 잡아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그러자 바둥바둥하면서 딸려온다.
“왜 그러냐? 빨간 늙다리는 좀 더 응징해줘야 한다. 봐주면 기어오르니까!”
“웃기지 마! 블랙주제에 감히!”
으르르렁 거리는 두 드래곤. 그래도 진짜로 피를 튀기며 싸우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이젠 익숙해지려고 한다. 무의미한 이 싸움이.
“그만들 해. 그만! 그리고 거기 레드, 난 엘이다. 말끝마다 인간, 인간 거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엘? 엘이라. 이름이 이상하네! 뭐, 좋아. 위대한 레드드래곤의 이름을 인간 따위에게 알려줄 수는 없지만 큰 맘 먹고 알려주겠노라. 나는 세레이나다.”
“알고 있어.”
“뭐어어! 어째서! 왜!”
놀랐는지 목소리를 높이는 세레이나.
저번 드래곤 싸움에서 수 없이 불려진 이름이다.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러자 세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루린은 그런 레드를 노려보더니 나를 잡아끌었다.
“레드 따위의 이름은 필요 없다. 그대, 배고프다! 집에 가자.”
“그래, 하긴 올라가서 장사해야지.”
그리고 돌아온 후.
또다시 일주일. 그리고 열흘이 지났다. 세레이나는 여전히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레이크시에 아예 뿌리를 내리려는 마냥 자연스럽게 진료소에 녹아들고 있었으니.
유희를 많이 해본 드래곤답게 그런 부분에서는 매우 자연스럽다고 할까.
그 자연스러움을 평가하자면 당연히 루린보다 한 수 위다. 인간으로밖에 안 보인다.
“독 때문에 뇌가 파괴됐다고?”
세레이나는 엘레나와 함께 영주성으로 진찰을 갔다 오더니 그런 말을 내뱉었다.
“흐음. 그런 경우에 대한 방법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뭐? 정말?”
“정말이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세레이나의 대답에 나와 엘레나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근데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난다는 건 방법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어휴. 드래곤이란 것들은 진짜.”
“흐음…. 뭐 당분간 여기 눌러있을 거니까 생각나면 말해줄게.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웃기네. 엘레나씨, 저 녀석 귀찮죠? 솔직하게 말해 봐요. 진료소에서 쫓아내 줄 테니. 드래곤 하나 쫓아내는 건 매우 쉬운 일이랍니다.”
나는 엘레나를 질질 끌고 레드드래곤의 안광에서 벗어나게 한 후 진지하게 물었다. 하지만 의외로 엘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요, 위대한 존재께서 계셔서 그런지 남자분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오시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해져서…. 조금은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엥? 정말요? 그럼 오히려 환자가 전혀 안 오는 거 아니에요?”
“아뇨. 흑심을 품은 분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뿐으로 환자분들은 또 별 상관없이 방문해주고 계세요.”
“그래요?”
드래곤 피어 때문인가?
나는 레드드래곤을 쳐다봤다. 언제나처럼 루린과 싸우고 있지만 표정은 천진난만하다.
무슨 속셈으로 눌러있으려는 건지, 정말로 배신의 충격 때문에 쉬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엘레나가 괜찮다면 참견할 수는 없다.
“언제든지 불편하면 레어로 돌려보낼 테니까 이야기만 해요. 뭔가 협박당하고 있는 건 아니죠?”
“네! 그리고 실은…. 지식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어요.”
레드드래곤 세레이나.
젊은 드래곤에 속하며 1400살 정도의 나이. 많은 유희를 경험해서 그런지 지식도 풍부한 편.
그래서 그런지 여러 도움도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엘레나가 그렇다면 뭐 내가 강제로 쫓아버릴 구실은 없다.
누구에게나 자유는 있는 법이니까.
오